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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1) (246/250)


246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1)
2022.10.04.


악룡산에 진입한 연합군의 지휘관들은 심기가 몹시 불편해져 있었다. 고개 너머로 하나씩 기문진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귀찮고 성가신 일이었다.

얼마 가지 못해 또다시 막다른 길목이 나왔다. 전면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절벽. 진입할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눈속임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환영을 이루는 기물 중 하나만 제거해도 없어질 테지만, 그걸 찾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면 그뿐.

“잠시들 비켜주소!”

성큼성큼 전면으로 걸어간 일광이 호흡을 들이켰다.

이어서 붉게 달아오른 두 주먹으로 사방을 향해 연달아 내질렀다. 그러자 권경(拳勁)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모든 것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쾅-! 콰쾅-! 콰콰쾅-!!

권경이 뿜어지는 곳마다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고, 바위는 산산조각이 났다. 절벽에는 움푹 파인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폭산권(爆山拳). 그의 절기인 파산권과 섬멸폭권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무공이었다.

곧이어 근처의 썩은 나무 한 그루가 박살나는 순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스스스슥-!

전면을 막고 있던 절벽이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곳으로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길이 나타나 있었다.

일광이 양손을 털어대며 앞장섰다. 입에서는 습관처럼 욕지거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이 미친놈들이 정말 많이도 준비했네.”

그의 뒤를 소무와 연설화가 나란히 걸었고, 후미에는 악비와 사마철, 그리고 진광 장군이 있었다.

연설화가 당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수백 년간 이곳에 숨어 세상을 뒤집을 준비를 했던 놈들이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더한 것도 있다는 말입니까?”

일광이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돌연 설화의 왼손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일광의 뺨을 향해 뻗쳐나갔다.

난데없이 기습이라니. 화들짝 놀란 일광이 움찔거렸다.

푸욱-!

일광의 뺨에서 들려온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뒤로 십여 장 거리. 그곳에선 이마에 대침이 박힌 복면인 하나가 뒤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털썩-!

탈마의 움직임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일광은 그녀의 엄청난 반응속도에 감탄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처형. 매복을 이리도 쉽게 감지하시다니.”

연설화는 팔짱을 낀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저딴 녀석들로 매복해서 우리를 막겠다고? 그냥 정탐꾼이야.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러왔나 보네.”

“아……. 그렇군요. 예리한 분석력이 흡사 공명 선생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일광은 그녀를 향해 입바른 소리를 계속해댔다.

이번에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녀의 동생인 초희와 혼사를 논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부인으로 맞을 사람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니, 잘 보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를 소무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아부가 나와? 그것보다 내력을 아껴둬. 아직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소무의 잔소리에 일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일행은 침묵에 잠긴 채 계속해서 전진해 나갔다. 그렇게 반 각쯤을 나아갔을 때였다.

소무는 얼굴이 따가운 것을 느끼고 우측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전음이 날아들었다.

- 아부라니?

그녀의 기분을 생각하지 못한 실수가 있었다. 일광의 칭찬을 자신이 아부라 치부했으니 삐질 수밖에. 당황한 소무는 말을 얼버무렸다.

- 아니 일광의 말은 사실이긴 하지만…….

- 하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이었다. 위기의 순간, 소무는 겨우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에게 경고 신호를 보냈다.

“도착한 것 같소.”

공교롭게도 절묘한 순간에 목적지에 당도한 것이다.

아직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기감(氣覺)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설화도 무엇인가를 느낀 듯 같은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뒤따르던 다른 네 명은 한 호흡이 더 지난 뒤에서야 그것을 감지한 듯했다.

사마철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적들의 인원이 너무 많은 게 아닌지요?”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다. 마치 마귀들의 소굴이라 해도 될 정도로 기분 나쁜 마기(魔氣)가 바글바글하게 느껴졌다.

“수천 명은 되겠는데? 하긴 믿는 구석이 있으니 기를 쓰고 이곳으로 유인했겠지.”

설화가 소무에게 눈빛을 보냈다. 어찌할 거냐고 묻는 듯했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돌아가서 병력을 모아올 시간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황제를 놓친다면,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거야.”

“그럼 황제만 잡으면 다 끝난다는 얘기네?”

소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쟁에 처음 뛰어들 때부터 자신이 정한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원대한 계획은 민공과 군사인 진유소가 마련해둔 상태였다.

눈앞으로 다가온 최후의 전투. 그러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만큼 다른 자들의 동의 또한 구해야 했다.

“다들 어찌하시겠소?”

주위를 둘러보자 가장 먼저 악비가 장창을 치켜세우며 의지를 다졌다.

“전란을 끝낼 수만 있다면 이 한목숨 언제든 바칠 각오가 되어있소.”

의용군의 맹장인 사마철 또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는 말처럼 용맹한 장수 한 명은 만 명의 병사도 상대할 수 있는 법이지요. 여러분들과 함께라면 백만대군과 싸워도 두렵지 않습니다.”

포나라의 진광 장군은 벌써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쟁쟁한 고수들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을 뿐, 그 또한 자국에서는 유명한 싸움꾼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나는 여러분들을 전우가 아닌 형제로 생각할 것이오.”

의기투합한 육인(六人)은 신마교의 본거지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앞장서서 경공을 펼치던 소무는 얼마 가지 않아 등 뒤로 누군가의 투덜거림을 들었다.

“나한테는 왜 안 물어봐, 대장?”

부관인 일광이었다. 그가 돌아간다고 할 리가 없었기에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찌하고 싶은데?”

“지켜봐. 지금부터 내 앞을 가로막는 놈들은 머리통을 하나씩 하나씩 모조리 날려버릴 테니.”

앞장서서 달리던 소무는 피식하고 웃었다.

자기 딴에는 다른 장수들을 흉내 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일광이 생각해낸 가장 멋있는 말이었다.

모두가 각오를 다지고 있을 무렵 그들의 앞에 가파른 협곡을 틀어막은 장벽이 보였다.

높은 돌담과 이 장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문짝. 마치 성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었다.

“깊고 험한 산속에 이런 것을 잘도 지어놨군.”

뛰어넘어도 되었지만, 굳이 수고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내공이 가득 실린 소무의 앞발이 문짝을 걷어찼다.

콰아아앙-!!!

거대한 문이 단번에 박살나며 내부의 광경이 비추어졌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게 된 육인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삼천 평쯤 되어 보이는 넓은 인공 분지에 마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얼추 보아도 천 명이 넘는 머릿수였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동공이 풀린 두 눈과 턱 밑까지 줄줄 흘러내리는 분비물. 각성제 종류의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것이리라. 그 와중에 진법까지 펼쳐놓고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설화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앞으로 나섰다.

“하긴, 우리를 상대로 맨정신으로 맞설 수는 없겠지.”

그녀의 소매에서 수십 개의 비침이 빠져 나와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한층 더 진화한 그녀의 절학. 진 마화비전(眞 魔華飛電)의 발출 태세였다.

대량학살을 위한 최고의 무공이었지만, 소무는 다급히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 만류했다.

- 연매는 아직 힘을 모두 드러내면 안 돼.

아직 황제는커녕 그의 측근들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군 또한 모든 힘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양손을 오므리자 비침이 다시 소매 속으로 빨려들듯 회수되었다.

“그럼 뭐 각자 이백 명씩만 맡으면 되겠네.”

표정 변화조차 없는 중얼거림에 뒤에 있던 장수들은 혀를 내둘렀다.

소무의 아내가 무림 출신의 절대고수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패기가 넘치는 인물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광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었다.

옆에서 악비가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다들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저들을 희생양 삼아 우리의 내력을 소모시키려는 수작이니.”

사마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동조했다.

“황제인지 교주인지 그놈도 이번 싸움에 모든 것을 내건 모양이로군요. 저 많은 인원을 희생시키려 하다니.”

“우리가 쓰러지면 앞으로 놈의 독주를 막을 자는 없소. 세상의 명운을 건 싸움이니 신중해야 하오.”

“그나저나 저놈들을 모두 쓰러트리자면 우리도 많이 지칠 것입니다. 좋은 방도가 없겠습니까?”

마인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자신들이 패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운기조식을 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을 터.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설화가 한숨을 내쉬고는 양손을 살며시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등 뒤에 메고 있던 칠현금이 붕 떠오르며 가슴 앞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녀석들에게 음공이 통할까?”

“예전 같았으면 통하지 않았겠지. 지금은 달라. 여긴 내가 정리하고 따라갈 테니 먼저 들어가.”

극마의 수준에서 펼쳤던 음공만 한두 번 정도 목격했던 소무였다. 탈마가 펼치는 음공이 어떤 위력을 내는지는 본 적이 없었다.

음공은 본디 내공이 고강한 자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최강의 광역무공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기에 효과만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장수들을 이끌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면 단번에 돌파하여 다음 지역으로 넘어갈 심산이었다.

진광 장군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소무를 바라보았다.

“……음공으로 정말 저들을 저지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음공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였기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마공에 속하는 음공은 흔히 볼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익히는 자도 적을뿐더러 경지에 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주목했다.

허공에 떠 있는 칠현금에 살포시 올려진 양손. 그 상태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신선이 음을 연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띠리링-! 띠리리링-!

진광은 연주와 동시에 기혈이 요동침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우려는 단숨에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나한테까지 이 정도의 영향이…….’

화경의 신체가 이 정도의 불편함을 겪는다면, 어지간한 마인들은 버티기 힘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본격적인 음공을 펼치기에 앞서 준비 동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갑자기 무쇠를 찢어내는 듯한 기분 나쁜 음률이 물결처럼 퍼져 나왔다.

찌이이잉-!!!

그 순간 천여 명에 이르는 마인들이 동시에 비틀거렸다.

“끄악!”

“끄아아아…….”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진법을 펼쳐놓고 기다리던 마인들은 전신의 모공에서 핏물을 쏟아내었다.

일광을 포함한 다른 장수들조차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곳에서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가 무표정한 얼굴로 앞장서며 말했다.

“어서 가시지요.”

말하지 않아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던 터였다. 네 명의 장수는 인상을 쓰며 소무의 뒤를 따라 재빨리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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