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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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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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2)
2022.10.05.
길을 따라 나아가던 일행의 경공이 동시에 멈추었다. 우측에서 기괴한 형상의 뼈 무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사마철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놈들이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뼈의 형태로 말미암아 정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안타깝다는 듯 악비가 연신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껏 휘나라 내에서 실종된 백성들이 무수히 많다고 들었네. 이 가여운 자들을 어찌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탑처럼 쌓인 뼈 무덤의 크기로 보아 못해도 수만 명은 끌려와 죽임을 당한 듯 보였다.
상황을 짐작한 일광도 화가 나는지 이마에 핏대가 곤두섰다.
“황제라는 작자가 뒤로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이 개 같은 놈들이…….”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오직 소무뿐이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뼈에 남은 흔적을 살펴보고 있었다.
곧이어 그의 표정이 몹시 어두워졌다.
“연공의 흔적이로군요.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여 수련하는 끔찍한 마공을.”
익히는 방법이 워낙 잔인하여 마교에서조차 금지된 마공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은화파파가 익힌 흉마살혼조가 그중 하나였다. 당시 노괴가 이 끔찍한 마공을 익히기 위해 천 명의 정기를 흡수하지 않았던가.
뼈에 남아있는 반점들을 보니 당시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악비는 허탈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어찌 이리 천인공노할 짓을…….”
모두가 그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지만, 계속 이곳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무가 다시 앞장서며 일행을 이끌었다.
“곧 죗값을 치르게 해줄 겁니다. 어서 가시지요.”
일행은 다시 길목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두 개의 동굴을 지나 삼백여 장을 더 전진했을 때쯤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또 다른 관문이 나타났다. 어찌 된 일인지 어서 들어오라는 듯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비추어진 광경이 가관이었다.
천 평쯤 되는 공터의 안쪽에 이 층 구조의 전각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허름한 백의 장삼을 입은 백여 명의 마인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의 단상 위에는 눈썹까지 흰 백발의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요염한 복장에 양손에는 피리를 움켜쥔 모습이었다.
“벌써 이곳까지 당도하다니,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교활한 극마의 고수로 소무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천검마녀 백묘진. 오늘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긴장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유로운 웃음까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할 소리 같은데? 근데 그 악랄한 년은 어디 갔지? 갚아 줄 게 좀 있었는데 말이야.”
백묘진은 아내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장안의 시장에서 정신없이 맞은 후 양주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일 때문이리라.
지금 설화가 첫 번째 관문에서 홀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 필요 없다. 넌 지금 여기서 죽을 테니까.”
“과연 그럴까?”
말을 마친 백묘진이 피리를 한 번 불자 검을 움켜쥔 백여 명의 마인이 대열을 갖추며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몹시 이상했다. 얼음처럼 창백한 피부. 그리고 눈의 동공은 일반인의 일 할 정도로 매우 작았다.
“이자들에겐 또 무슨 짓을 한 거지?”
“글쎄. 아직 세상에 드러낼 시기는 아니다만, 너희들 덕분에 한발 앞서 시험을 할 수 있게 되었지 뭐야.”
무림인들과 영물들까지 잡아다가 온갖 생체실험을 했던 휘나라였다. 산군의 새끼 또한 그들의 손에 잔혹하게 죽어가지 않았던가. 그 끔찍했던 행적의 결과물이 틀림없었다.
“고작 이따위 것들로 우리를 어찌할 수 있다고 믿는가 보군.”
“응. 충분히.”
백묘진이 다시 한번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마인 하나가 검을 움켜쥔 채 소무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정말이지 귀찮게 하는군.”
소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인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류고수를 뛰어넘는 움직임이라니. 더 황당한 것은 자신에게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눈 깜짝할 사이 자신의 코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소무는 이미 좌측으로 반보를 움직인 이후였다.
쉬이익-!
호기롭게 다가왔던 검날은 보기 좋게 헛손질을 하며 허공을 베었다.
그 순간 마인의 앞가슴에 소무의 손바닥이 벼락처럼 쑤셔 박혔다.
쩌엉-!!!
둔탁한 굉음과 함께 단번에 함몰되어 버린 앞가슴. 동시에 마인은 다가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후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무려 십여 장을 날아간 그는 절벽의 벽면에 등을 ‘쾅’ 부딪히고는 미끄러져 내려왔다.
스르르륵-!
현경의 내공으로 뿜어낸 엄청난 괴력이었다.
소무는 놈이 죽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이럴 수가…….”
“어찌 저런.”
등 뒤에서 황당하다는 탄성이 들려왔다.
절정고수라도 즉사했어야 할 정도의 타격이었다.
그러나 마인은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절뚝거리며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신음은커녕 표정 변화조차 없다니.
지켜보던 소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스르릉-!
허리춤에서 검이 스스로 뽑혀 나와 그의 손아귀에 움켜쥐어졌다. 동시에 유백색의 검기가 반장 가량이나 뽑혀 나오며 전면을 향해 그어졌다.
섬전처럼 쏘아져 나간 초승달 모양의 기류는 마인의 전신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콰앙-!
다가오던 마인은 그대로 철퍼덕 넘어졌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일어서기 위해 바둥대고 있었다.
무심히 지켜보던 소무의 표정은 다소 어두워졌다.
‘믿어지지 않는군. 검기에도 잘리지 않는 신체라니.’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검날에 맺힌 아지랑이가 응집되며 푸른 광채를 띠기 시작했다.
검강(劍罡). 화경에 이르지 못하면 익히는 것조차 어려운 상승 기술이었다. 반면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기에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비틀거리면서 다가오는 마인을 향해 소무의 검이 두 차례 그어졌다.
써컥-!
잘린 무처럼 깨끗해진 어깻죽지.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마인의 모습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다시 가로로 그어지는 검이 수급을 떨어트리고 나서야 그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이제 슬슬 긴장이 좀 되지?”
조롱하는 백묘진은 지금의 상황이 통쾌하다는 듯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반면 소무를 포함한 다섯 명은 낭패를 당한 심정이었다.
“다들 보셨으니 알 겁니다. 최소한의 공격으로 수급을 자르십시오.”
그것이 내력을 최소한으로 아끼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재빠르게 움직이는 마인들을 특정 부위만 골라서 공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묘진이 본격적으로 피리를 불자, 미동조차 없던 백여 명의 마인들이 동시에 돌진을 개시했다.
그들과 마주하던 다섯 명의 맹장들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마주 나아갔다.
본격적인 난전이 시작되자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거센 폭음이 요동치고, 마인들의 잘려나간 팔다리가 연달아 솟구쳐 올랐다.
서컹-! 서걱-!! 서거걱-!!
모두가 정신없이 뒤섞여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중에서도 소무의 활약이 단연 압권이었다.
그는 정확히 한 호흡에 한 명씩 마인들을 고꾸라트리고 있었다.
악비와 사마철, 그리고 진광도 전장에서 갈고 닦던 기술들을 아낌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광이였다. 그는 두 주먹이 무기였기 때문이다.
다가오던 마인의 목을 움켜쥔 그는 악력으로 꺾어버리고 있었다.
우드득-!
붉은 기류에 휩싸인 오른손이 다시 우측으로 움직이며 다가오는 마인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앙-!
오므려지는 상체. 그리고 그 위에서 일광의 손날이 작두처럼 내려앉았다.
써컹-!!
검강에도 뒤지지 않는 위력이 일품이었다.
전세는 예상대로 아군이 유리했다. 상황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으나, 문제는 이들만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싸움꾼인 일광은 정신없이 싸우면서도 계속 상황을 쟤고 있었다.
“대장, 어떻게 좀 해봐!”
이대로라면 지쳐 탈진할 것만 같았다. 내력의 소모가 큰 기술이 아니면 통하지를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마인들의 사이를 누비던 소무는 그나마 상황이 양호했다. 그는 필요한 순간에만 맞추어 검강을 자유자재로 발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장수들은 그렇지 못했다.
“금방 끝낼 테니 조금만 버텨!”
일광은 점점 답답해졌다. 그러던 중 그의 시야에 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조롱 섞인 미소로 피리를 불고 있는 여인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마인들의 움직임이 피리 소리에 맞춰서 움직이는 듯했다.
“저 흰머리 X이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은 백묘진을 쓰러트리면 상황이 정리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일광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비단 소무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백묘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소무도 이상함을 느꼈다.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전신에서 기(氣)의 파동이 물결처럼 뻗어 나왔다.
콰쾅-!
소무를 둘러싼 십여 명의 마인이 동시에 밀려나며 비틀거렸다.
그 틈에 그가 지면을 박차고 백묘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마인들이 소무를 막기 위해 다급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사 속도였지만, 그들이 현경의 움직임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무가 지나는 자리로 한 줄기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파앙-!
단상 위에 넋을 놓고 있던 백묘진은 다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잔꾀를 부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번 속을 소무가 아니었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꾼 소무는 검을 허리춤으로 잡아당겼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눈치챈 백묘진은 자신이 아는 가장 강한 초식을 준비했다. 그녀가 움켜쥔 검 끝이 여덟 갈래로 갈라지며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그 모습을 마주한 소무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탈혼검법 이초식, 전광추흔(電光追痕). 매처럼 선회하던 그의 신형이 백묘진을 벼락처럼 스쳐 지나쳤다.
꽈아아앙-!
폭음이 요동치며 외마디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용케도 일합을 받아낸 백묘진이었다. 그러나 그 충격으로 넘어질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소무의 왼손이 그녀의 멱을 틀어쥐었다.
꽈악-!
“끅.”
“이곳의 마인들은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다. 너를 포함해서 말이지.”
휘나라의 앞잡이로서 은화파파와 비교될 정도로 세상에 해를 끼친 악인이었다. 용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붙잡힌 상태에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바둥댔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중후한 내기를 잔뜩 머금은 주먹이 그녀의 왼쪽 가슴을 강타했다.
쩌정-!
“끄허헉!”
다리가 풀린 그녀는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핏대가 곤두서고 두 눈이 충혈되는 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듯했다. 게다가 말도 나오지 않는 듯 입만 뻥긋거리는 모습이었다.
“어디 너도 한 번 즐겨보아라. 그동안 네가 죽인 사람들의 고통을…….”
말을 마친 그는 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심장이 파괴된 그녀는 서서히 고통을 느끼며 죽어갈 것이리라.
어느새 자신들을 공격했던 마인들은 움직임이 정지되어 있었다. 저항하지 않는 적들을 공격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자 악비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 백묘진을 향해 있었다.
“인과를 거스르는 일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멀쩡했던 사람들을 산송장으로 만들고도 어찌 좋은 결과를 바랐는가.”
“…….”
그녀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여전히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 내용을 궁금해하는 이는 없었다. 입 모양으로 봐서 욕이 틀림이 없었으니까.
오인(五人)은 그녀를 뒤로한 채 마지막 목표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잠시 후 앞장서서 나아가던 소무가 진지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언질을 주었다.
“짐작대로라면 다음 관문에 교주와 측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일광이 잘됐다는 표정으로 소무를 바라보았다.
“빨리 가서 해치우자고, 대장. 배고파 죽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