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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3) (248/250)


248화 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 (3)
2022.10.06.


악룡산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한 소무 일행은 어리둥절했다.

“뭐야? 교주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잖아?”

일광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우거진 나무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의 지척에 있는 사마철도 별반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이대로 물러났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 어딘가 단서가 있을 터인데…….”

모두의 시선이 소무에게 향했다. 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감지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짐작대로 그는 기(氣)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십 리 밖을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까지 그의 감각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지하로군요.”

그것도 아주 깊숙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어딘가 입구가 있을 터.

곧이어 악비의 장창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대한 쌍둥이 바위 아래로 보이는 작은 틈에 동굴이 보였다. 내부에 깊은 공간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틀림없어 보였다.

“제가 앞장서지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소무를 필두로 일행은 끝없이 뻗어 있는 동굴의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진 통로. 그리고 점점 넓어지는 공간은 마치 하나의 왕국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거대한 동굴을 인위적으로 개조하여 좀 더 넓혀놓은 듯했다.

곳곳에 설치된 야명주와 무공 수련의 흔적들까지. 볼수록 기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놈들 도대체 여기서 뭔 짓을 했던 거야?”

체구가 큰 일광은 동굴 안이 답답한지 연신 투덜거렸다.

그의 질문을 고민해보던 소무는 마교의 전대교주인 아내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수백 년 전 마교의 정통파에 밀려난 영교라는 계파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이 바로 지금의 신마교로 불리는 자들의 뿌리였다.

“수백 년 동안 이곳에 숨어 세상을 뒤집을 준비를 했던 것 같아.”

“그럼 몇 세대는 이 안에서 살다가 죽었다는 얘기 아니야? 지독한 녀석들….”

잠시 대화를 나누던 사이 일행은 어느새 동굴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그곳은 지하에 존재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광장이었다. 동굴의 모든 통로가 이곳으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그리고 광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지금껏 추격하던 자들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있는 황제와 그를 보좌하듯 우측에 서 있는 대호법. 그리고 그들의 뒤로 여섯 명의 장로가 기립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황제를 바라보는 소무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화려한 용포를 입고 동굴에 숨어있는 꼴이 우습군.”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네 녀석을 잡을 수 있다면…….”

소무와 황제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탐색전을 벌이려는 듯 말이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소무의 본능은 그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투지를 더욱 끌어올렸다.

“자신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황제는 의자에 몸을 더욱 깊숙이 기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왜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가. 너희들이 도망칠 수 없는 곳으로 유인한 것이다.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아무도 이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동굴 안에 무슨 기관이라도 설치되어있는 모양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말은 너희들도 도망갈 수 없다는 얘기겠지?”

소무의 말에 황제는 광오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기지?”

한참을 웃던 그는 다시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깍지를 꼈다.

“천하가 눈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결정적으로 방해가 된 자가 둘이 있었지. 그중 하나가 제 발로 걸어들어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은가.”

자신을 눈엣가시로 생각할 것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또 한 명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자신의 아내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녀는 지금껏 휘나라와의 전쟁에서 전면에 나선 일이 거의 없었다.

“또 한 명은 누구지?”

“모르는 척 발뺌을 하는군. 우리가 알아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소호라는 노괴를 말이다. 네 놈이 죽고 나면 다음 차례다.”

소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나라의 대장군이자 연합군의 사령관인 자신조차도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수년 전 장안을 공격할 당시에 섬서에서 의병대가 결성된 일이 있었다. 당시 그곳의 의병장이 휘나라군 사이에서 소호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지 않았던가.

‘이름이 소소라고 했지, 아마.’

딸과 이름이 같았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로 몇 년째 행방이 묘연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던 터였다. 그 이름을 휘나라 황제의 입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군.”

황제는 치가 떨린다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반로환동한 몸으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전장에 나타나 사자후를 뿌리고 다니면 모를 줄 알았는가? 뭐 상관없겠지. 네놈이 말하지 않아도 곧 정체가 밝혀질 것이니.”

황제의 말에 소무는 움찔거렸다.

‘……설마?’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당했지만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일광이 손목을 풀어대며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 소소가 언제 이렇게 유명인사가 되었대? 내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근데 쥐새끼같이 생긴 놈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누굴 노려?”

일광의 도발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하게 변했다.

교주를 보필하듯 주변에 기립하고 있던 대호법과 여섯의 장로도 출수 태세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황제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자 광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제 끝을 봐야겠지. 그런데 인원은 우리가 더 많은 것 같군.”

그 말은 머릿수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극에 이른 탈마와 일곱 명의 극마였다. 반면 아군은 현경인 소무와 화경에 이른 네 명의 장수가 전부였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때 어디선가 청량한 여인의 목소리가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

“X랄하고 있네.”

양손이 피로 물든 한 여인이 요염한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천 명이 넘는 마인을 몰살시키고 온 연설화였다. 조금의 지친 기색도 없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던 교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같은 탈마의 경지임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이 나를 가지고 놀았군.”

비록 팔(八)대 육(六)의 싸움이었지만, 설화의 합류로 인해 숫자적 우세는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경지가 탈마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곳으로 유인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설화는 출수할 준비를 마치며 코웃음을 쳤다.

“이제 균형이 맞춰진 것 같은데? 아니 우리가 좀 더 유리한가?”

황제가 움켜쥔 검에서 검강이 솟구쳐 오르며, 전신에서 숨 막히는 살기(殺氣)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뭐 상관없다. 오늘 이곳에서 모두 죽여주마.”

소무도 앞으로 나서며 그와 마주 섰다.

그리고 한 호흡이 더 지난 뒤. 둘의 신형이 서로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까앙-!

눈 깜짝할 사이 일합을 교환한 둘은 거리를 벌린 채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 서로가 우세를 점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네놈의 야망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모를 것이다. 지금부터 그 죗값을 묻겠다.”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서로를 향해 거친 공세를 뿜어내는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된 것이다.

주변에서도 설화와 네 명의 장수들이 그의 측근들과 대결을 시작하고 있었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지하궁전을 방불케 할 드넓은 광장이 통째로 무너질 듯 쉼 없이 흔들렸다. 어찌나 튼튼하게 지어진 것인지 버티는 것이 용할 정도였다.

쩌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시 거리를 벌리는 소무와 교주. 두 자루의 검날에 맺힌 검강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지이이잉-!

소무가 움켜쥔 검날이 괴성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 전방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칼날 같은 바람이 전면을 훑고 지나갔다.

폐관수련을 통해 터득한 파천검법의 삼 초식 중 첫 번째인 무극일섬(武極一殲)이었다.

교주의 검에서도 초승달 모양의 기류가 마주 뿜어져 나오며 중간 지점에서 격돌했다.

쩌어엉-!!!

격돌의 결과를 확인할 틈도 없이 소무는 바로 다음 초식을 준비했다.

동시에 그의 검이 마구 휘둘려지며 허공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방의 공간으로 수십 가닥의 빛무리가 발현되며 번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꽃이 피는 듯했다. 하지만 보여지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꽃잎들은 칼날처럼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머금고 있었다.

개화멸겁(開花滅劫). 삼 초식으로 이루어진 파천검법의 두 번째 기술로, 휘나라의 대장군인 완안후이를 끝장낸 초식이기도 했다.

꽃잎 다발에 집어 삼켜진 교주는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계속했다.

섬전처럼 움직이는 검은 한 호흡에 수십 번이나 휘둘려지고 있었다.

“크윽!”

비록 교주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으나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어느새 꽃잎을 거둬내고 역공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소무는 그가 승부수를 띄우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흔들리는 교주의 검 끝으로 막대한 기(氣)의 응집이 느껴졌다.

자세를 낮춘 소무는 재빨리 검을 우측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것은 마치 발검술의 자세와도 같았다.

파천검법 삼 초식. 멸천지세(滅天之勢).

이 필살의 초식은 쾌(快), 환(幻), 강(强), 유(柔)의 모든 기운을 내재하고 있으며, 가장 완벽에 가까운 초식이었다. 반면 극심한 내력의 소모가 뒤따르기에 그동안 실전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초식이었다.

서로를 노려보던 소무와 교주는 마지막 심호흡을 들이켰다.

찰나의 순간 소무가 움켜쥔 검날이 빛을 발하며 비명을 토해냈다.

단 한 차례 휘두름이었지만, 그가 내뿜은 빛살은 수백여 개로 늘어나며 전면을 휩쓸어갔다. 눈으로는 쫓을 수 없을 만큼 가히 빛의 속도로 펼쳐진 한 수였다.

교주의 검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붉은 빛줄기가 곡선을 그리며 마주 다가오고 있었다.

꽈아아앙-!!!

두 개의 강력한 기운이 격돌하자 지하광장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곧이어 먼지 속에 한 줄기 신음이 나직이 울려 펴졌다.

“끄윽.”

교주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그의 가슴과 갈라진 복부의 틈새에서는 피가 샘물처럼 흘러나오고 나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반면 소무는 안색이 조금 창백할 뿐 이렇다 할 부상이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였다.

그가 움켜쥔 검 끝이 서서히 움직이며 교주의 목을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동공이 풀린 교주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둠을 먹으며 수백 년을 지내왔다. 나는 단지 우리만의 세상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목표가 코앞으로 왔다고 생각했거늘……. 지나고 나니 모두 한갓 꿈이로구나.”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검을 비틀어 쥐었다.

“망상은 망상에서 끝나야 하는 법이지. 헛소리는 지옥에 가서 하거라.”

편히 죽여주기엔 그의 죄가 작지 않았다.

소무가 그를 향한 응징을 시작할 무렵, 주변의 상황도 거의 정리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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