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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프롤로그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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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빗속을 뚫고 마차 한 대가 나아가고 있었다. 마부는 마차를 몰면서도 시야를 자꾸 가리는 비를 불만스럽게 쳐다보았다. 빗물이 전신을 때리자 온몸이 욱신거렸고, 추웠다.

“에잉, 오늘은 일진이 안 좋네.”

그렇게 투덜거리던 마부는 맞은편에서 오는 마차를 보며 방향을 돌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마차 안에 있던 아이가 문을 열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넨! 위험해!”

순간적으로 뒤의 소음에 정신이 팔린 마부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마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히이잉!

말들이 거칠게 울음을 내뱉었다. 마차는 거칠게 회전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마차는 말들의 거친 울음소리를 삼키면서 통째로 절벽 위에서 떨어졌다.

퍽!

마차의 문이 거칠게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안에 있던 세 사람은 그대로 마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고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튕겨 나가자마자 추락해 긴 나뭇가지에 심장이 찔려 즉사하였다.

그리고 다른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쪽빛 머리의 여인은 한참을 구르다 바위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는 힘없이 땅 위로 쓰러졌다.

여인의 품에 안겨 한참 동안 비를 맞고 있던 아이가 눈을 떴다. 아까 문을 열었던 아이였다. 아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옆에 쓰러진 어미를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어, 어마마마……! 정신 차리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어미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죽은 몸뚱이를 거칠게 계속 흔들던 아이는 자신의 옆에 거칠게 박살 난 마차를 보았다. 마부의 머리는 저 멀리 날아가 깨져 있었고 말들도 다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흑흑흑!”

빗줄기가 아이의 볼을 거칠게 때렸다.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연약한 피부는 거칠게 때려 붓는 빗줄기를 버티지 못했다. 기어이 볼에는 빨간 상처들이 채찍처럼 새겨졌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어마마마!”

한참을 엉엉 울던 아이는 자신의 형님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는 어느새 그쳐가는 빗줄기를 멍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형님을 찾아 나섰다.

“형님! 어디 계세요?”

어린 동생을 항상 사랑으로 돌봐 주었던 형님. 아이에게 있어 형님은 어마마마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이는 달달 떨면서 주위를 한참 동안 돌아다녔다. 그러나 형님은 보이지 않았다.

‘형님이, 훌쩍, 어디 가셨지?’

아이는 한 곳에 멈춰 다시 한번 훌쩍였다. 그런데……. 위에서 뭔가가 흘러내렸다. 그 뭔가는 아이의 얼굴, 흰 제복, 머리카락 등 온 구석구석에 다 쏟아졌다.

“이게 뭐지?”

아이는 자꾸 떨어지는 빨간 물의 근원을 찾으며 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정체는 피였다. 그것도 죽은 형님의.

형님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이의 눈에 담긴 순간, 아이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   *   *

매캐한 연기는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자욱하였다. 그리고 사방에서 환청처럼 비명이 들렸다. 매캐한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 아이의 코를 거칠게 찔러댔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고 싶을 만큼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복면을 쓴 자의 칼에 맞아 죽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 유언은 아이의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아이는 눈물을 흩뿌리며 계속 달렸다.

‘어마마마……!’

아이는 자신의 하루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어마마마와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맛이 너무 좋아 입을 헤벌쭉 벌리며 웃었다.

그런데 그것이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고 말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복면인들은 음식을 치우던 시종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아이와 아이의 어미를 향해 칼을 들었다. 아이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결국 그들은 도망쳐야 했다. 복면인들이 사방을 막아서 비밀 통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달렸다. 연기와 그들을 위협하는 날붙이를 피해 달렸다. 그러나 연기는 어느새 비밀 통로에까지 침투하였다.

“콜록콜록!”

아이의 입에서 거친 기침이 나왔다. 그러자 아이의 어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손수건을 아이의 입에 댔다. 아주 조금 아이의 호흡이 편해졌다.

“폐하, 길을 아십니까?”

한 기사가 물었다. 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미 연기로 가득한 비밀 통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방향을 찾는 것조차 난감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연기가 뿌옇게 되어 버려서야…… 아무것도 안 보이는군.”

그러나 여유롭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그들을 쫓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디로 가든 통로는 연결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더욱 힘을 내서 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달리는 속도가 점점 더 늦어졌다. 결국 따라잡히고 말았다.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갔다. 어미는 결단한 듯 아이의 손을 놓았다.

“에이라, 너는 지금 당장 카벨을 데리고 통로를 빠져나가 지금의 상황을 알려라.”

“하, 하지만 폐하!”

“미적거릴 시간 없다! 지금 우리 둘 중 하나는 살아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어미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이미 배운 지 몇 십 년이 지난 검이었다. 나는 과연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미는 이대로 다시는 사랑하는 딸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내가 죽으면 누가 아이를 이끌어줄 수 있을까.

그런 주군의 심정을 함께 느낀 시종의 손이 떨렸다. 섬기는 왕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점이 그녀를 매우 괴롭게 만들었다.

“어서 가거라!”

그러나 왕의 명을 들어야 하는 것이 곧 시종의 의무. 시종은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마마마!”

아이는 울부짖었다. 그 비명을 들은 어미가 말했다.

“꼭 살아남아야 한다!”

아이는 대답하고 싶었다. 네, 그럴게요! 반드시 그럴게요!

그러나 곧 검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통로를 가득 채웠다. 아이는 끊임없이 팔을 뒤로 뻗으며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울부짖는 아이의 몸을 애써 이끌며 시종은 마지막 명을 수행하였다.

“주군…….”

한동안 대치하는 쇳소리가 넓은 통로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의 어미를 포함한 모든 기사들이 적들의 검에 힘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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