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무도회 (7/93)

6. 무도회

“통과되셨습니다.”

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는 연회장 앞에 서 있던 시종에게 초대장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하얀 돌을 그 위에 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삑 소리가 나고 시종은 그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즐거운 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풍경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니 머리가 아팠다.

“이번 수도의 드레스 유행이…….”

“이번 전국 사냥 대회에서 1등을 한 사람이…….”

“이번에 황태자 전하가 글쎄…….”

“꺄아악! 맞아요!”

“어쩜 그리 멋있으실까!”

늘 조용한 방에서 루카민과 둘이서 대화를 할 때와 너무 달라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귀가 너무 아팠다. 틀어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눈에 띄겠지.

‘여기가 좋겠어.’

그녀는 아무도 없는 깊숙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오지 않을 연회장 끄트머리. 그녀는 그때서야 안심이 되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사람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각양각색의 음식 등. 너무나도 당연한 풍경이지만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나 혼자 이방인이 된 것 같아…….’

이방인이 맞기는 하였으나 6년 전 사고 이후로 파티 근처로는 가지도 못했다. 어린아이 행세를 하게 된 이후에는 마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그 어느 연회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무늬만 공주인 사람…….’

여왕은 경멸하고, 왕비는 방치하며, 동생들은 무시하고, 시녀나 시종들, 하인들, 하물며 허드렛일을 하는 노예들에게까지 없는 취급을 당하는 공주.

왕국의 모든 행사에서는 멀어진 지 오래였고, 연회에 참여했던 건 까마득하다. 모든 문명과 수업에서 멀어져 제왕의 자리에서 탈락된 자. 그것이 그녀의 위치였고, 그랬기에 이런 연회장은 그녀에게 낯섦을 넘어 공포감을 일으켰다.

오늘은 황태자의 생일 기념 연회라던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여기서 이런 공포감을 느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지?

가면을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공포 어린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래, 진정하자.

떨리는 손을 잡아 애써 떨림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어깨를 폈다. 그러자 벌렁거리는 가슴이 다소 진정되었다. 따갑게 울려대는 소리도 익숙해졌다. 그때서야 그녀는 어둠에서 나와 밝은 곳으로 나왔다.

“어머, 이번 드레스는 어느 숍에서 사셨나요?”

“아버지께서 특별히 레이강스 숍에서 사는 것을 허락해 주셨어요.”

“정말 아름다운 드레스네요.”

영애들은 드레스와 숍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른 곳으로 향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이번에 토벌 작전에 참여하셨는데…….”

“하루빨리 자리를 물려받으셨으면 좋겠군요.”

“아직 모릅니다. 라이부스 황자께서도 아주 뛰어난 인재이시지요.”

“무슨 소리이십니까? 이미 황태자는 정해졌습니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예전에 참여했던 라소니 왕국의 연회를 생각해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보통 거기서는 영애들이나 여가주들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영식들은 사냥 이야기나 옷 이야기를 했었는데 여기는 전혀 반대이구나.

그래, 지금만 참으면 이 이국적이고도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여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있어.

마음을 굳게 먹자 버틸 만했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익숙해지자 연회를 제대로 즐길 수가 있었다. 대화 너머로 들리는 음악 소리는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았고, 음식은 맛이 있었다.

그렇게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녀의 흥을 깨 버린 소리가 있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그리고 황태자 전하와 라이부스 황자님께서 등장하십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며 황족들이 등장하였다. 그중에서 보이는 차가운 느낌의 미남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눈에 박혔다.

“아…….”

마치 운명처럼 멍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던 그녀의 시선과 날카롭기만 한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뭐지, 그 눈빛은?’

그녀는 그의 특이하고도 신비한 황금빛 눈동자가 자꾸 생각나 혼란스러웠다. 언제나 잔잔하기만 했던 심장이 놀라 뛰기 시작했다.

‘내가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 잘 혹하는 존재였나?’

그러나 그걸 그녀가 잘 알 리는 없었다. 그녀는 남자를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차기 여왕 자리를 위한 여러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그 사건 후에는 세상과의 연결 자체가 끊겼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본 남자라고는 왕비, 마이클슨, 루카민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셋은 객관적으로 봐도 미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왕비는 늙었고, 마이클슨은 평범하고, 루카민은 무섭게 생겼다.

게다가 어차피 그녀는 황태자와 엮일 일이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일주일 후에는 사라져야 하는 존재였고, 거기에는 아무하고도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으니까.

그녀는 주변의 영애들이 황태자에게 한꺼번에 다가가는 소란을 틈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무 잘생기지 않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우리 가문과 사돈을 맺었으면 정말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거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이미 혼인할 여식을 정해놨다고 하는 그 소문을.”

“정말 아깝습니다.”

“이번 성인식을 기점으로 전하께서 본격적으로 황제 폐하의 업무를 맡는다고 하셨는데, 너무 기대되지 않나요?”

황태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연회장 변두리로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귀에 들리는 이야기가 황태자와 관련된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 그렇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다. 그녀는 테라스로 이동하여 커튼을 쳤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 피곤하다.’

그러나 혼자 있게 되자마자 아까 본 황태자의 얼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넘긴 흑발과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서늘한 표정까지……. 만약 저 무표정한 얼굴이 웃음을 지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자신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황태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너무 잘생긴 것이 아닌가!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주책이야 주책!’

얼굴은 빨개지다 못해 딸기가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사랑의 열병은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남자의 얼굴에 반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녀는 마침 테라스 앞을 지나가던 시종의 그림자를 보고는 불러 세웠다. 마침 시종은 얼음이 잔뜩 든 음료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으로 그녀는 얼굴을 식혔다. 그 차가움에 이윽고 그녀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지금 내게 이럴 시간이 없어.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테라스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이 보였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여기서 뭘 하십니까?”

그러나 갑자기 들리던 목소리는 애써 모은 생각을 흩뜨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컵을 꽉 쥐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   *   *

‘지루해.’

황태자 라이넨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성인식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극히도 권태로웠다. 모두가 특별한 날이라고 하지만 황족인 그에게 이날은 그저 수많은 연회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지나갈 때마다 자신에게 춤을 권하는 영애들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이번 연회에 귀찮은 조항을 넣었더니 지나갈 때마다 영애들이 밀려와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밀려오는 짜증에 경멸의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 저는 아티지 가문의…….”

“전하, 오늘도 멋있으신……!”

“저희 가문의 영애인…….”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었다. 그는 귀에 걸려오는 수많은 소리에 시끄러워 귀를 막고 싶었다. 그때, 그는 강렬한 한 시선을 느꼈다.

“……!”

빨려갈 것 같은 여자의 바다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그는 놀랐다. 처음 보는,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서 그는 동질감을 느꼈다.

‘상실감, 외로움.’

가면 사이로 드러난 파란 눈동자는 그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그는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회장의 소음이 사라지고 그 넓은 장소에서 마치 그녀와 단둘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누구지?

그는 그녀와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과 동류인 이 여인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또한 당시 얼떨결에 같이 시선을 받은 다른 영애들이 꺅 소리를 지르며 앞을 막아섰다.

“황태자 전하!”

“전하 오늘도 멋있으십니다!”

“전하!”

그의 앞은 번잡스럽다 못해 시장통이 되었다. 그는 인상을 썼다. 사라져 버릴 신기루처럼 위태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그 여자의 곁에 가고 싶은데 장애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영애들이 막아선 사이, 그 여인은 사라져 버렸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몰린 수많은 인파를 물러내고 황제의 뒤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많은 영애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오늘은 황태자 라이넨의 생일 연회다! 모두들 축하해 주어 고맙군.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들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네.”

모두가 황제의 입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연회의 시작을 선포함과 동시에 라이넨이 일어섰다. 오늘의 주인공인 그가 춤을 추지 않으면 연회는 제대로 시작되지 못한다.

“제게 함께 춤을 출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라이넨은 아무와도 춤을 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뻔히 속셈이 보이는 영애들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황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황후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연회장 한가운데로 나왔다.

음악이 바뀌고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제국식 왈츠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황후를 리드하였다.

“……넨, 고맙구나.”

“…….”

황후는 그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의 표정은 굳어진 채였다. 그렇게 의무감으로 황후와 춤을 춘 그는 낮게 말했다.

“저를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

황후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인사를 한 채 황후를 자리까지 에스코트하였다. 그리고 마치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손을 떼어 냈다. 상처 입은 황후의 표정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따라오는 추종자 및 영애들을 몰아낸 채 휴게실에 들어갔다.

혼자 있게 되자 그는 자연스럽게 그 여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 누구를 잃은 것일까?

그는 너무나 궁금했다. 왜 울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고 함께 공감해 주고 싶었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충동이었다.

‘……안 돼.’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이후, 그는 철저히 자신을 절제해 왔다.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걸 억지로 잘라 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잘라 냈고, 그건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잘라 내자 그는 비로소 모든 것에 무심해질 수 있었다. 요동치지 않는 호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죽음으로 내몬 혈육들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했다.

전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요, 형님. 전…… 그러면 안 돼요. 살인자잖아요.

그러나 사고 이후 13년 만에 그는 어떤 것에 강렬하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무섭기까지 했다. 그는 이러다가 그 여자에게 겉잡을 수없이 빠져 버릴까 무서웠다.

그래도 그는 그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비밀 통로를 이용해 정원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는 것은 오직 눈동자 하나뿐, 그녀의 얼굴을 몰랐다. 그는 이 광활한 정원에서 어떻게 여자를 찾을 수 있을지 갑갑해졌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러던 그는 문득 자신이 여자에게 홀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그런 하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여자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그런 것뿐이야. 나랑 비슷해서. 그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는 아무도 듣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정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따라 본 별빛이 너무 아름다워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그의 시야에 그가 간절히 찾던 여자가 보였다.

‘찾았다.’

그는 재빨리 그녀가 있는 테라스로 향했다. 커튼을 걷자 여자가 깜짝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귀가 빨갰다.

“당신은…….”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러나 그는 막상 여자를 찾아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침묵이 드리워졌다.

“……루미니르 제국에 무한한 영광을, 저는 어마리 가문의 마리야입니다.”

“어마리 영애, 반갑군.”

그리고 또다시 이어진 침묵. 둘은 서로의 눈을 어색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그의 황금빛 눈동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흠칫 놀라 물러갔다. 그녀가 아차하며 자신의 손을 거둬들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본래 호기심을 잘 참지 못해서…….”

사실이었다. 카니벨라는 6년 전의 사건 전에는 누구보다도 활달한 성격을 가진 공주였다. 호기심도 많았고, 웃음이 많았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그녀는 변하였으나 이런 것만은 그대로였다.

“괜찮다. 이런 눈동자가 흔한 것은 아니니까.”

“넓은 아량,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라이넨은 그런 것에 있어서는 관대했고, 카니벨라는 안심했다. 그녀의 그런 행동으로 둘 사이의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었다. 둘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이런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둘은 신이 나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비를 잡는다고 넘어졌는데 돌에 두 번 걸려 양쪽 다리에 상처가 났었습니다. 그때 절 바라보던 시종들의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제가 넘어지는 것은 안타까워하는데 그 당시 넘어진 모습이 많이 웃기니 차마 티도 내지 못하고 참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네. 내가 사고를 치고 울고 있으면 형님이…… 오셔서 나를 잡아 주곤 하셨지.”

형님. 정말 오랜만에 내뱉어 본 단어였다. 라이넬 형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서 머뭇거림을 느꼈다.

아, 이 사람도 나처럼 누군가를 잃어 본 사람이구나. 본능적으로 그녀는 그것은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문득 그녀는 그를 안고 싶어졌다. 이 사람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위로해 주는 사람 없이 홀로만 서 있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녀는 그를 말없이 안았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품에 들어온 그녀를 보며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말없이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는 위로를 받는 것 같은 따뜻함을 느꼈다.

절대 따뜻한 이 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그리 서로에게 포옹하고 있었을까, 웅장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둘은 그때서야 아직 연회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와…… 춤을 추지 않겠습니까?”

그는 용기를 내보기로 하였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했다.

“네?”

안타깝게도 그녀는 춤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6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모든 수업에서 멀어져 버린 그녀는 남들 몰래 해야 했던 독서를 통한 1차원적인 지식 이외에 다른 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도 검술을 배우긴 했다. 어린아이 행세를 시작한 이후, 어떤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루카민의 가르침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녀의 검술 스승이었던 루카민 역시 검술 이외의 다른 지식에는 전무했기에 그녀는 당황했다.

어떡하지? 춤을 춘 적이 없는데!

그런 그녀의 머뭇거림은 괜찮다는 듯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 둘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능숙하게 그녀를 이끌었다. 그의 스텝은 방정맞지도, 딱딱하지도 않았다.

실력을 배려하는 리드. 그리고 그 리드를 경쾌하게 만드는 스텝. 그녀는 그와의 춤에 점점 이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즐거워.’

6년 동안 제대로 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사고 후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항상 쫓겼고, 그 이후에는 어린아이 연기를 하며 항상 긴장하고 살았다. 언제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도, 자신을 진창에 처박은 뮤일라 일가에 대한 증오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리고 연주가 끝났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춤은 멈췄다. 그러자 폭죽이 터졌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긴 채 형형색색들의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밀착하니 서로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 그녀의 입술이 보였다. 폭죽에 번쩍이는 그녀의 입술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문득 그녀가 감추고 있는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홀린 듯 그녀의 가면을 벗겨 버렸다.

“앗!”

“……!”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녀의 본 얼굴은 그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하얀 피부와 오뚝한 콧날, 그리고 푸른 눈동자까지. 그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

그러나 그녀는 그가 자꾸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자 불안해졌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을까 초조해졌다.

“저기…….”

그러나 그때 그의 입술이 그녀의 말을 막아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곧 황홀함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의 혀를, 뜨거운 숨길을 공유했다.

너무나도 달콤하여 이 순간이 영원히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펑!

다시 폭죽이 터졌다. 그리고 그들은 말없이 계속 사랑의 세레나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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