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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밀한 만남 (8/93)

7. 은밀한 만남

“미쳤어, 미쳤어!”

연회가 끝난 직후, 카니벨라는 방으로 도망쳤다. 황실에서 제공한 손님방에 오자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라이넨은 그녀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처음 본 사람과 키스를 하게 되다니! 그녀의 얼굴이 마치 딸기처럼 빨개졌다.

아무리 그녀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았다고 하지만 이런 것까지 모를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다. 설렜다. 이런 기분, 살면서 절대로 느끼지 못할 줄로만 알았는데.

그녀는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이 황홀한 기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들이 말하는 머리에 종이 울리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눈앞에서 별들이 터져 나갔다.

“…….”

그러나 이성을 되찾자 그녀는 한숨이 나왔다.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지금의 상황, 꼬마와의 약속, 루카민에 대한 걱정까지. 여러 가지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마치 꿈처럼 달콤한 무엇인가였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강력하게 원하게 되었고, 상대도 나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 그녀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떡해야 하지…….”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편, 라이넨은 침실에 들어와서도 창문에 비친 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은 아니겠지……?”

처음으로 누군가를 강하게 원하게 되었고, 상대도 그를 원했다. 그렇지만 그는 불안했다. 모든 것이 신기루가 되어 사라질까 봐. 그녀 또한 자신의 실책으로 사라져 버리게 될까 봐.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실수로 인해 잃어버렸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그 때문에 그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꿈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 특별한 날이 나에게 일어난 현실이라고. 이미 자각한 사랑이었고, 키스를 하며 그는 느꼈다.

나는 이 사람이 아니면 살 수 없어.

그는 자신이 겪은 오늘이 제발 꿈이 아니었으면 했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것이 꿈이라면 그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제발 당신이 나의 현실이길.

그렇게 두 사람의 밤이 지나갔다.

*   *   *

다음 날이 되었고, 카니벨라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하는가, 아니면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는가.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그녀는 작은 문틈으로 시종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편지를 펼쳤다.

[어떻게든 몰래 회장에서 빠져나올 테니 오후 7시까지 평상복 차림으로 러이카 광장 앞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나가야 할까, 나가지 말아야 할까. 그러나 이내 결심했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라도 즐기면 되지 않을까?

그는 그녀에게 휴식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의무나 목표를 잠시나마 내려놓고 쉴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그래서 그녀는 그의 데이트 신청에 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어차피 이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녀는 알겠다는 서신을 시종의 편으로 전했다.

댕댕!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7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로브로 얼굴을 가린 채 광장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분수대 앞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이상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옷은 그를 마치 암살자처럼 보이게 했다.

“옷가게에 가야겠네요.”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운 옷가게로 향했다. 그곳은 귀족들의 옷만 상대하는 곳으로 신분에 따라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녀는 저런 옷차림의 그가 과연 출입이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으나,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 맡겨 두신 옷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그렇다. 내 옷은 있을 테니 주고, 이 사람이 입을 만한 드레스를 하나 골라 주어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직원들에게 이끌려 여러 옷을 입어야 했다.

“여기에 있는 옷이 외모를 받쳐 주지 못하는군요. 그냥 만드는 것이 낫겠습니다.”

여러 색상의 옷을 입히던 그들은 그녀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예쁜 옷들을 죄다 내팽개쳤다. 그러더니 그녀의 몸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한 직원이 마담으로 보이는 여자를 불러왔다.

마담은 그녀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부란츠 부티크의 주인인 카샤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영애의 옷을 만들어 드리겠으니, 원하는 원단이나 색을 골라 주세요.”

얼떨결에 그녀는 그의 옷을 보러 왔다가 자신의 옷을 맞추게 되었다. 그녀가 아무리 괜찮다고 거절해도, 그들은 끈질겼다. 이렇게 되니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그의 작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와 이곳으로 유인하고, 그녀에게 드레스를 맞춰 주려 한 것이 분명했다.

‘뭐지? 왜 나에게……?’

그녀는 그가 베풀어 주는 너무나도 큰 호의에 마음이 불편했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만큼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는지 막막해졌다.

게다가 그녀는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 무도회가 끝나면 그 ‘기적’을 쓰는 꼬마가 인도해 줄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달리게 될 것이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바쳐 진실을 밝히고 나면 나는 아마 당신을 잊게 되겠지. 모든 것이 다 끝나면 언젠가는 이 행복한 시간을 두고 좋은 추억이었다고 말하게 되겠지.

그녀는 고민했다. 저 사람들의 행동을 말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하고 지금을 즐길 것인가.

‘일단 지금은 모른 척하자.’

그가 왜 자신에게 이런 고가의 원단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드레스를 주는지, 그 저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일단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펼쳐져 있던 원단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은은한 분홍빛이 아름다운 원단을 골랐고, 다음에 드레스 스타일이 그려진 책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려져 있는 그림 중 위에서 아래까지 트여 있는 드레스를 골랐다.

어렸을 적, 받았던 학대의 흔적 때문에 노출은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으나 왠지 모르게 끌렸다. 연분홍빛 색깔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마치 아름다운 꽃들의 정원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담은 원단을 그녀의 몸에 한 번 대보고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어떤가? 이 영애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는가?”

어느새 적당히 튀는 옷을 입고 나타난 그가 그녀 몰래 주인에게 물었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맞는 옷이 없습니다. 옷들이 전부 빛이 바랩니다. 그래서 제작을 하려 합니다.”

“그래? 그럼 가격은 내 앞으로 달아 두고. 그 드레스, 5일 안에 완성시켜야 하네. 마지막 날에 입히기 위한 것이니.”

그녀는 그의 말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아 그가 이 드레스로 뭘 하려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냥 단순한 선물일까? 나에게 뭘 하기 위해 이런 드레스를 주시려고 하는 것이죠?

그녀는 묻고 싶었으나 물을 수 없었다. 저렇게 신나 하는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다 끝났습니다.”

그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본격적인 데이트의 시작이었다.

*   *   *

“우와!”

궁 밖으로 처음 나와 보는 그녀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단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했던 음식 냄새에 코가 황홀했고, 시끌벅적한 풍경은 귀를 자극했다. 사람들은 활기찼고, 그들의 삶이 각종 소리를 통해 그녀에게 와닿았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돌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빛나는 눈빛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맛있겠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들이 쥐고 먹고 있는 양꼬치에 눈이 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맛을 다셨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당장 가게에 가서 음식을 사 왔다. 처음에 거절하던 그녀는 그의 권유에 할 수 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 신세계를 맛보았다. 궁에서는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그러한 맛이었다.

“맛있네요.”

그녀는 맛있게도 먹었다. 연기가 들킬까 봐 허겁지겁 먹었던 숨 막히고 긴장감이 넘쳤던 식사와는 대조적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음식은 소박했지만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는 음식을 먹고 있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아 주었다.

“어머!”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추접스럽게 먹었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핥으며 말했다.

“맛있군.”

그 모습은 뇌쇄적이었다. 양념을 핥는 혀와 그걸 머금는 부드러운 선홍빛의 입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가 저렇게 섹시해도 돼?’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손으로 비어 있는 그녀의 다른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애써 감정을 가라앉혔다. 화끈거림이 가셨다. 그리고 이내 다시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좋아.’

지금 내 상황이 어떠하든, 지금은 즐기자.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웃었다. 그는 그녀의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데리고 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와, 저기 봐요. 요정님이에요!”

“저런 사람들이 바로 귀족이란다.”

“부럽다…….”

그와 그녀의 외모와 아우라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아무도 그들이 황태자와 라소니 왕국의 골칫거리 공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으며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겼다.

“자, 자.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없을 기회! 이 라소니 왕국산 꽃 팔찌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라소니 왕국산’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옆에서 가만히 꽃 팔찌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가 저 팔찌를 당신께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녀는 딱딱하게 말했으나 그는 그녀의 표정에서 관심을 포착해 냈다. 그는 곧장 가서 팔씨름 대회에 접수를 했고, 당연한 듯 1등을 하여 팔찌를 가지고 왔다. 그녀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웃었다.

“우리, 연극 봐요.”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다. 그녀는 그와 무엇을 할까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극장을 보았다. 한 번도 밖으로 나가서 이런 문화 활동을 해 본 적이 없기에 그녀는 흥미가 돋았다.

“연극이 보고 싶었습니까?”

그러고는 그녀의 손목에 우승 상품으로 받았던 팔찌를 끼워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말에 웃으며 호응했다.

“재밌겠어요!”

극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녀가 소리쳤다. 연극의 제목은 ‘사랑은 울지만, 그대를 떠나지 않는다!’라는 다소 촌스러운 제목이었다. 그녀는 마치 연극을 처음 본다는 듯,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피식.

그는 연극을 좋아하지 않았다. 연극의 주제는 대부분 신파니까. 그는 즐겁게 봐야 할 이야기 속에서까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슬픔을 유발하고 그때를 자꾸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옆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왜 웃으세요?”

“그렇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까지 기분이 좋아져서 말입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너무 오버한 것 같아 기분이 머쓱해졌다.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연극을 보며 웃고 울었던 것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장소가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든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는 옆에 앉아 연극이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인물들과 함께 웃거나 눈물짓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그녀의 손뼉을 치는 모습, 인물의 불행에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반드시 이 여자와 혼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그가 이렇게 귀찮은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이유는 바로 아버지인 황제와 황후의 간청 때문이었다.

“넨, 나의 아가야. 이제 너도 혼인을 해 후계를 양성해야 하지 않겠느냐.”

황후가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다. 간단한 음식을 입에 넣고 있던 그는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황후를 쳐다보았다.

“그렇구나. 이제 의무적으로라도 혼인을 해야 하는 나이 아니냐?”

그 말에 황제가 맞장구를 쳤다. 둘의 몰아붙임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라이부스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황후의 아들인 라이부스가 황태자가 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이 황태자 자리는 형님인 라이넬에서 받은 자리다. 자신 때문에 황제가 되지 못한 채 죽은 형님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는 빼앗길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스물두 살이란 나이도 이미 많이 늦은 축에 속했다. 황제 또한 자신의 어머니와 열네 살이란 나이에 결혼하지 않았던가.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혼인, 하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가문, 외모, 지위 등 그 어느 것도 상관없이 제가 원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

그가 그녀를 본 것은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함께하며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연극이 끝난 후, 그는 다른 사람들 몰래 그녀를 배정된 방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남은 1주일 동안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내일 또 전령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녀는 기분 좋게 방으로 들어가 그가 선물해 준 팔찌를 빼서 손바닥에 올렸다.

“헤어짐이 어찌 되든……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꿈에서 그와 함께 다음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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