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혼자만의 이별 (9/93)

8. 혼자만의 이별

라이넨이 궁으로 돌아가기 전.

그는 자신이 없는 파티는 팥 앙금이 없는 찐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상관이 없었다. 어느 가문이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은 받아 줄 것이라는 황제의 조항 때문이었다. 어차피 마지막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선언할 것이다. 신부를 찾았다고.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주는 편안함과 충족감을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았다. 13년 전,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이별 후 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던 그는 그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돌아가고 있던 그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살기에 얼굴을 찌푸리며 두리번거렸다. 뱀같이 끈적끈적한 감각이 그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였다.

‘누구지?’

그때 갑자기 누군가 위에서 검을 들고 찍어 눌렀다! 그는 재빨리 뒤로 피하며 재빨리 검을 들었다. 그런 그의 앞에 선 상대는 가면에 로브까지 쓴 자였다. 그는 상대의 준비성에 혀를 둘렀다.

“비켜라. 내가 누군지 알고 습격한 것이냐?”

“당연히 알고 있다, 황태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도대체 자신의 행선지가 어디서부터 새어 나간 것인가?

“당신을 발견한 것은 조금 전이니 안심해. 본래는 황태자궁을 습격하려고 했으니까.”

황태자궁 습격이라니. 황궁은 그 어느 곳보다 더 강한 결계로 겹겹이 쌓여 보호받는 곳이다. 그리고 암살자들에게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절대 외부에서 습격받을 수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의문의 괴한은 아무 말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한 손으로는 얼굴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다른 손으로는 복부 쪽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그는 재빨리 방어했으나 느껴지는 묵직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괴한은 지체 않고 이번에는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는 재빨리 막고 손목을 공격했다.

“제법이군.”

괴한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오른손에 있던 단검을 던졌다. 라이넨은 날아오는 단검을 향해 검을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큭!”

손목이 시큰거렸다. 그사이, 연달아 단검들이 그의 검면에 적중했다. 그의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노린 괴한은 곧장 품에서 다른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달려가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검은 그의 목젖에서 멈추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반응 속도를 자랑하는 괴한의 검을 보며 얼어붙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괴한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검술 실력은 좀 더 길러야겠어. 실력이 형편없군, 황태자.”

그가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 있는 사이, 괴한은 사라졌다.

*   *   *

똑똑.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었다. 그동안 카니벨라는 라이넨과 궁에서 은밀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후회 없이 그와 즐겼다.

‘오늘이 마지막인가…….’

며칠 전에 의뢰하였던 드레스가 드디어 그녀의 앞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드레스를 바라보며 그와의 행복했던 며칠을 회상해 보았다. 아마 어렸을 적을 제외한다면 그녀의 18년 인생 중에서 가장 즐거운 날들이었다.

그런데 그와의 행복한 시간을 묻은 채 사라져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퍼 그녀는 슬프게 웃었다.

그때, 다시 한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부란츠 부티크의 카샤였다. 우연찮게 그녀가 사람의 접촉을 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가 그나마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녀가 어리둥절 하자 카샤가 말했다.

“전하께서 저희를 보내어 아가씨를 치장하라 명하셨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끄덕임에 화장 도구, 장신구, 향유, 그녀가 받았던 드레스, 목욕물과 함께 대야를 가지고 몇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치장을 시작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치장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접촉’을 주의하기 위해서였다.

“단언컨대 오늘 회장에서 아가씨보다 더 아름다운 분은 없을 겁니다.”

카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인사하고 나가는 그들을 보며 살짝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이 모습은 영원하지 못하다.

“아이야, 잘 있었느냐.”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저 기묘한 말투의 주인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꼬마를 반겼다.

“당연하지. 약속을 지키러 왔나?”

“그래, 마법사는 약속을 어길 수가 없단다.”

꼬마는 그때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그냥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 회장 밖으로 나오면 된단다. 그럼 내가 마차를 보내 줄 터이니.”

“그러도록 하지.”

“행운을 빌어 주마.”

꼬마는 마치 모든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행운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람이 사라지자 깜짝 놀랐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곧 정신을 차렸다.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종의 안내에 따라 회장이 아닌 그곳과 떨어진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라이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제가 골라 준 옷을 입었군요.”

“드레스가 참 예쁩니다.”

그녀만 보면 휘어지는 눈매를 가진 그는 너무 눈부셨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 시선에 의아했지만 곧 그녀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갔다.

평소와 다르게 올린 머리는 성숙해 보였다. 연분홍빛 드레스는 그녀의 흰 얼굴과 잘 어울렸다. 꽃 모양 자수와 자잘하게 붙어 있는 보석들은 착용자를 더 빛나게 했다. 그리고 옆 라인이 트여 있어 아찔함을 동시에 유발했다.

드레스와 물아일체가 된 그녀의 모습에 그는 혼미해졌다. 그녀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그는 연회고 나발이고 그녀를 당장 껴안고 싶었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그녀의 귓불을 만졌다. 제국 제일의 보석으로 만든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그녀는 값비싼 보석과 드레스로 치장하였지만 전혀 천박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천상의 존재 같았다. 가히 이 무도회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손등에 짧게 키스했다. 그녀는 그의 입술이 닿는 순간 손이 불타오를 것 같았다. 너무나도 뜨거웠고, 그의 뜨거운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 황홀함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나중에 회장에 가기 전에 말해야 할 것이 있어 여기로 불렀습니다.”

낮게 깔리는 그의 음성에 그녀는 그가 나름 진지한 말을 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뭔가…… 중요한 말.

그녀는 그의 모습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이번 무도회의 핵심은 나의 신붓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일 기념 연회라는 것은 허울일 뿐이었고. 그래서 유독 영애들이 많았던 연회였습니다.”

그랬던가? 그녀는 1주일 전의 광경을 생각해 보려 애썼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그가 등장했을 때와 그와의 짜릿하고도 달콤한 첫 키스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이러는 것일까? 그의 서론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초조함을 느꼈다. 그녀는 한 손에 쥐고 있던 가면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 신붓감을 모든 귀족들 앞에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그 신부가 당신이라는 것을.”

“네? 뭐라고요?”

“당신을 내 신부로 발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그녀는 당황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왼손에 들고 있던 가면을 떨어뜨렸다. 손에서 느껴지던 감촉이 사라졌으나 그녀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오늘 그녀는 그에게 슬픈 이별을 통보하려 했다.

난 당신을 좋아한다.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고,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처럼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안 된다. 난 떠나야 한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마.’

그녀는 오늘이 더없이 행복하면서도 슬픈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서야 그 꼬마가 했던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이 기간 동안은 그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말. 그것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하고 한 말임이 틀림없다!

‘안 돼!’

조약을 완벽하게 어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자코 입술을 깨무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입술을 슬쩍 만지며 미소 지었다.

그런 그의 웃음에 그녀의 말은 막혔다. 중요한 그 말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가만히 있자 자신의 말을 승낙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합시다.”

‘아니요, 저는 이제 가야 해요…….’

그러나 그의 그런 설렌 표정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신부로 맞이할 것이라는 그의 환한 표정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녀는 ‘카니벨라 루 라소니’다. ‘마리야 어마리’가 아니다. 사라져야 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후회했다. 욕심부리지 말걸. 그냥 그가 보고 싶다 하더라도 그냥 모든 것을 묻어 버리고 사라져야 했었다.

그녀는 그가 홀 중앙으로 들어가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다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드레스와 구두가 거치적거렸지만 무시하고 정원까지 뛰었다. 정원에 도착하자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유리 구두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마지막을 예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 신었던 유리 구두였다. 정말이지, 이 구두는 드레스와 보석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흐…….”

울음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끝이 닳아 버릴 정도로 구두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이윽고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

어떻게 그녀의 위치를 알았는지 마차가 바로 그녀의 앞에 달려왔다. 그녀는 재빨리 탑승했다. 그렇지만 문을 제대로 닫기도 전에 말들이 달리기 시작해 그녀는 순간적으로 발을 헛디뎠다.

“앗!”

그 때문에 구두가 떨어졌지만 주울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마차는 앞을 향했다. 그녀는 답답함에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별도 없이 달만 떠 있었다. 그녀는 저 달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너무 짙지만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저 그림자만큼의 짙은 슬픔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어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그때, 라이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가 자신의 말을 타고 그녀의 마차를 쫓아온 것이다!

“여긴 어떻게……?”

“왜, 그대가……!”

그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녀를 향해 손을 간절하게 뻗었다.

제발 가지 마. 나를 잡아 줘. 어디로 가는 거야!

슬프고 간절한 그의 애원이 눈빛으로, 숨소리로, 공기로 타고 그녀에게로 흘러갔다.

순간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안 된다. 나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으나, 함께할 수 없어.

그 꼬마와의 조약,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향한 행방과 복수, 자신이 도망쳤으니 곧 시작될 뮤일라 일가의 추적까지. 그녀가 해야 할, 그리고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미안해. 난 당신을 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녀는 밝은 곳에 있는 그가 자신이 있는 이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외면했다. 고개를 돌리며 창문을 닫아 버렸다.

당신 같은 빛나야 할 사람은 내 안에 들어오면 안 돼.

“마리야……!”

그의 절망 어린 목소리에 가슴에 상처가 나는 듯하였다. 나를 보며 그런 표정을 짓지 말아 줘요.

그때 그가 입술을 깨물고는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성문을 닫아라!”

그의 명에 경비병들이 성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며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그때, 달리는 말들의 등에서 하얀 날개가 돋아났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마차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는 낭패 어린 표정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진 마차를 보며 소리쳤다.

“안 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