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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실을 향하여 (12/93)

11. 진실을 향하여

한편, 카니벨라를 태운 호박 마차는 맹렬히 달려 수도를 벗어났다. 그리고 외곽의 숲에 멈춰 섰다. 그녀는 곧장 마차에서 내렸고, 펑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다.

타고 있던 마차, 드레스, 구두, 액세서리 등 모든 것이.

라이넨이 사 주었던 옷 역시 왜인지 모르지만 사라졌다.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라소니 왕국에서 떠나올 당시에 있었던 작은 배낭이 다였다. 그녀는 재빨리 배낭을 메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지?’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숲 한가운데였다. 날은 매우 어두웠고, 맹수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즉시 그녀는 나무 위로 올라가 별을 바라보았다. 루카민의 충고가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검술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중에서는 오지에서 생존하는 방법 또한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일주일 동안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느라 루카민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녀는 루카민에 대한 미안함을 삼켰다. 충성스러운 부하이자 아버지인 그가 현재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눈을 팔다니.

“하하…….”

그러자 라이넨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일주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행복에 넘쳤던 그날들. 새로운 것들을 체험하고 즐기며 배워 가고, 또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갔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도주했을 당시 그가 지었던 표정도 떠올랐다.

애원, 배신감, 절망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눈동자에서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한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담고 있는 어둠에 그녀는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작정 그와의 미래를 꿈꿀 처지가 아니었다. 꼬마와의 약속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일주일 동안 그녀가 느낀 것이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휴식이었다.

각박하고 힘든 현실을 잠시 동안이라도 피할 수 있는 안식처.

그러나 휴식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만약 그곳에 계속 안주해 버린다면 그녀는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떠나왔다. 어머니를 죽게 만든 범인을 찾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삶의 목표였다. 도저히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모습은 계속해서 그녀를 붙잡았다. 간절하게 뻗는 손이 자꾸만 떠올랐고, 그의 눈동자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라이넨…….”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라이넨에 대한 수많은 생각이 피었다가 졌다. 그래서 상념을 지우기 위해 떠올라 있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떠오르는 것까지 바라보았다.

아침이 되자 풀냄새가 나고 동물들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햇빛은 눈부시지만 상쾌했다. 한숨도 자지 못한 것치고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나무에서 내려와 몸을 풀었다.

“출발해 볼까?”

그녀는 해의 방향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낮에는 최대한 걸을 수 있는 만큼 계속 걸었다. 그리고 밤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자신을 보호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마을이 가까워져 왔다. 그녀는 후드를 덮어쓰고 마을에 진입했다. 제법 큰 마을인 듯 사람이 많았다. 경계심이 일었다.

혹시 후드를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꽤 많아 안심이었다.

“신분증, 주시겠습니까?”

루미니르 제국은 신분증을 가지고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생활화된 곳이었는데 그것은 국경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여관 같은 이런 작은 시설까지 확산이 되어 있었다.

‘그 꼬마가 아니었으면 정말 어디에서도 정착 못 했을 것 같은데?’

그녀는 꼬마가 만들어 준 신분증을 가지고(정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며 주었다.) 여관 주인에게 보여 주었다. 주인은 신분증에 ‘예의 하얀색 돌’을 갖다 대었고, 삑 소리와 함께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여관 주인의 인사치레에 간단히 고개만 끄덕인 그녀는 방으로 올라왔다. 방은 낡았지만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여관 문을 잠그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여러 날 동안 산을 타며 제대로 자지 못하고 경계했더니 잠이 솔솔 왔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잠을 잔 그녀는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배가 고파 가지고 있는 돈으로 대충 밥을 때우고 여관 서비스를 이용해 목욕도 했다. 묵은 때가 씻겨나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가방을 뒤져 여관에 들어서기 전 샀던 마을 지도를 꺼냈다.

“음…….”

그녀는 이 마을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규모가 있다 보니 관광객 및 낯선 사람이 많아 일일이 모두의 얼굴을 기억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마을의 큰 규모에 알맞게 정보 상점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이곳에 온 이상,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 할 때였다. 3년 전부터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했으나 정보가 적어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안에 있는 모든 정보 상점들이 레미아치 가문의 수중이라는 것이었다.

‘레미아치 가문은 정보력에 있어서는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정도라지.’

게다가 그 가문은 제국의 4대 공신 가문이다. 그녀가 조사하는 것이 혹여나 제국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진실을 알기도 전에 그녀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정보를 잘 수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머리를 굴렸다. 레미아치 가문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안전하게 어머니의 사건에 대한 진실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일단 모습을 바꾸자.’

그녀는 그 즉시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단발로 잘랐다. 금발 머리는 눈에 너무 튀었다. 게다가 긴 머리는 귀족들의 특성. 반면에 평민들은 머리를 관리할 시간이 없었기에 그녀는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게다가 다행히 그 꼬마가 그녀의 이름을 ‘마리야 어마리’가 아니라 단순히 ‘마리야’라고 해 주었다. 그녀는 그 꼬마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신분증도 있으니 신원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겠지.’

“어서 오십쇼.”

그녀는 곧장 상점으로 들어갔다. 파리만 날리는 곳에 웬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험상궂은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당당히 말했다.

“혹시 신입을 맞이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남자는 그녀의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보았다. 신입 채용 공고를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신입 맞이할 생각 없냐고?

그러나 남자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이 근처에 있는 수많은 상점과 달리 이곳은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 이곳은 수도와 멀어 정보전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혹시 몰라 만든 지부에 불과했다.

그래서 수상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 남자는 의문이 들었다.

‘꽤 귀찮게 되었네.’

신분도 확실하겠다, 자진해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수상하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게다가 은연중에 살기까지 내뿜고 있었다. 거기에 기가 눌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저 귀찮았다.

‘오호?’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내심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이봐, 아가씨.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거야?”

“정보 상점이잖아요. 레미아치 가문이 운영하는.”

“아가씨가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여기에 들어오려 하고자 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

“모든 것을 시작할 때 무조건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나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이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진득한 늪 한가운데에 있었다.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피가 묻을 그런 날카로운 복수의 길.

그런 그녀에게 순수라는 것은 저 별보다 더 먼 이야기였다. 남자는 그녀의 웃음에서 묻어나오는 싸늘함에 더더욱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찾아온 사람을 거부하기에는 명분이 없었다.

“그럼 네게 시험을 주지. 통과하면 정식으로 들어오는 거야. 대신 해내지 못하면 다시는 받아 달라는 소리는 하지 말기로.”

“그러죠.”

“이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어떤 방법으로든지 일주일 안에 그것을 보고서로 정리해서 내게 갖다주면 합격이야.”

그녀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내게서 무엇을 봤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 3일 만에 깔끔하게 보고서를 만들어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제 되었죠?”

“그래. 환영해.”

우여곡절 끝에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곳까지 오는 것에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진실을 추적할 때이다.

*   *   *

정보는 주로 귀족들이 이용한다. 귀족이란 자들은 정보라는 것에 대단히 민감해 자신이 먼저 무언가를 알지 못하면 좀이 쑤시는 인간들이었다. 게다가 정치 싸움에 있어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반면에 평민들은 애초에 정보를 다룰 수 있는 환경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그래서 이 허름한 정보 상점의 손님은 대부분 귀족들이었다.

사소한 신원 조사부터 나름 기밀이라고 취급되는 사건들까지. 그녀는 남자와 자신밖에 없는 이 정보 상점에서 일하며 여러 등급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기밀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는 동안에도 그녀는 남자의 정보 방 출입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녀는 이 의심 많은 남자가 진심으로 너무나 귀찮았다. 신분도 이미 확인되었고(남자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신분증 확인이었다.), 그 어떠한 수상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핵심적인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나 짜증이 났다.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도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만큼 음지에 숨어 있는 상대와의 대결이다. 그런 상대가 자신들의 정보가 떠돌도록 내버려둘까? 분명히 숨기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건 시간 싸움이었다. 저들이 모든 정보들을 다 없애 버리기 전에 조작된 정보라도 파헤쳐 봐야 한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남자는 자신의 곁에서 일을 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의뢰가 있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졸지에 혼자가 된 그녀는 파리 날리는 가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후드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다짜고짜 돈을 내밀며 황태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녀는 대놓고 수상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남자에게 자신의 ‘휴식처’를 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짜 안에 진실된 정보 몇 가지를 적당히 섞어서 남자에게 건넸다.

“여기 안에 있는 것 모두가 다 사실이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녀의 능청에 남자는 서류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남자가 사라지자 상점 주인이 들어왔다.

“무슨 일 있어?”

“웬 남자가 황태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묻기에 대충 아무 정보나 줬어요. 기밀은 건들지도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괜찮아요.”

남자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열쇠를 주었다. 기밀 정보들이 들어 있는 창고였다. 그녀는 그때서야 이 모든 것이 남자의 시험임을 깨달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그 이후 그녀는 기밀 서고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낮에는 상점에서 같이 일을 하고, 밤에는 자료 정리를 핑계로 기밀 서고에 틀어박혀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이것도 아니고…….”

라소니 왕국에서 일어난 6년 전의 사건들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다. 며칠간은 분류를 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고, 며칠간은 관련성을 따지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어?”

드디어 작게나마 흔적을 찾았다. 그녀는 빨려 들어가듯 서류에 눈을 맞췄다.

[라소니 왕국에 6년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화재가 일어났음. 그 사고로 인해 여왕이 죽고, 공주가 중태에 빠짐. 어떤 세력과 연관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음. 대부분의 관계자가 죽거나 실종되었음.

이상한 것은 그 당시 죽은 자들이 사고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라 마치 ‘살해’ 당한 것처럼 시신에 난도질이 나 있었음.

그 당시 제일 처음 화재 사실을 알린 사람은 바로 란시엔 현 라소니 왕국 공주였음.

사건의 배후로 아스트로 백작이 지목되었음.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사건 종료.]

란시엔이 매우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과거 란시엔은 카시르 왕국의 공주였으나 나라가 멸망당하고 그녀의 시녀로 강등되었다. 그런데 저 사건 이후,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단숨에 공주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서류의 내용처럼 란시엔이 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증거가 없었고, 무엇보다 란시엔과 아스트로 백작 단둘이서 어떻게 여왕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 당시 그녀가 기억하는 복면인들은 적어도 수십 명이었다.

‘게다가 어마마마께서는 아스트로 백작에게 사병을 허락지 아니하셨지.’

아스트로 백작은 카시르 왕국이 멸망하기 전, 조국을 배신하고 라소니 왕국에 투신한 이였다. 그래서 여왕은 한 번 배신하고 나온 자는 또 배신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백작을 경계하고 감시했었다.

‘어쨌든 란시엔이 너무 의심스러워. 루카민에게 편지를 보내야겠어.’

그녀는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암호로 죄다 필사했다. 둘만이 알 수 있는 암호였다. 그리고 여관으로 돌아와 전서구의 다리에 조심하라는 편지와 함께 자료를 묶었다.

곧장 어둠을 뚫고 날아가는 새를 보며 두 손을 꼭 모았다.

‘부디 이것이 진실로 향하는 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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