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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녀를 찾아라! (14/93)

13. 그녀를 찾아라!

라이넨이 카니벨라를 찾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녀가 갔을 만한 곳을 죄다 조사해 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카샨의 동생이 운영하는 수도의 정보 상점을 이용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오랜만이군. 거두절미하고 내가 원하는 정보만 내놓도록.”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카샨은 불평이 가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동생이 알 리가 없다는 그런 의미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라이넨은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카니벨라 공주에 대한 정보는 사실 그리 크게 많지는 않습니다. 6년 전에 어린아이가 되었다, 이게 진짜 다입니다. 저희 형님이 능력이 없어서 못 찾으시는 게 아니라 진짜 정보가 없는 겁니다.”

라이넨은 진짜 너무 얇아 부채로 써도 될 정도의 서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한 국가의 공주인데 이렇게 정보가 적을 수가 있나?

‘의도적으로 누가 차단한 건가…….’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먼저 그는 자신이 봤던 그녀에 대해 자세히 생각을 했다.

그녀는 총명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온몸에서 생기가 흘러넘치는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온몸에서 우아함과 고귀함, 기품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어린아이라는 거지……?’

그는 생각난 의문에 대해서는 나중에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따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카샨의 동생이 놔준 지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찾으시는 분이 본래 레미우스 왕국으로 가려다가 중간에 실종되신 분이라고 하셨죠?”

“그렇다.”

“그렇다면 절대 그쪽이나 라소니 왕국 쪽으로는 안 갔을 겁니다. 라소니 왕국이라면 자신의 용모에 대해 아는 사람이 파다할 것이고, 또 레미우스 왕국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히 감수하려고 할까요?”

라이넨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절대 라소니 왕국이나 레미우스 왕국 쪽으로는 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추론이 가능한 것이었다.

“아마 그분은 지금 루미니르 제국 안쪽에 머물러 있거나 시스티아 왕국 쪽에 가셨을 것 같네요.”

“시스티아 왕국은 절대 아닐 거야. 지금 거기 머무는 도적들이 국경 밖으로 나갔다 하면 습격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다녀서 지금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거든.”

카샨이 말을 덧붙였다. 시스티아 왕국은 루미니르 제국의 앙숙. 그리고 국경 지대에는 허구한 날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었다. 그곳을 여자 혼자 뚫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제국 안에 있다는 선택지였다.

“그럼 아직 제국 안에 있겠군. 어딘지 짐작 가는 곳이 없나?”

“그게…… 후보지가 너무 많습니다. 그분께서 신분증을 가지고 계시다면 범위가 제국 전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속이 편할 것입니다.”

“적당히 규모 있는 마을, 그리고 관광객 및 낯선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곳. 여기만 집중적으로 찾아.”

“형님, 어째서입니까?”

“뻔하고 당연한 거지. 사람이 많이 드나든다면 그만큼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비중이 낮아지니까 당연한 선택이겠지.”

라이넨은 그런 카샨의 추리에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왜 진즉에 알지 못했지?”

“……미안하다.”

카샨은 라이넨의 따가운 눈초리를 애써 피하며 말했다.

“그럼 후보지는 총 12개. 그런데 다 수도에서는 멀어. 네 개인행동이니 군사를 파견할 수도 없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말에 라이넨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거기 있는 여자들, 다 잡아 와야지. 그럼 알 수 있을 거야.”

*   *   *

카니벨라가 있는 마을까지 라이넨의 이름으로 내려오는 공문이 날아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정보 계열에서 일하던 그녀는 남들보다 빨리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공문에는 금발 머리에 파란색 눈을 가진 신녀의 등장 소식과 함께 그녀가 지내는 마을을 포함하여 총 12개의 마을에서 거주하는 모든 처녀를 잡아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거 원, 이미 봤구먼.”

“…….”

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오늘따라 남자의 눈에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긴장감이 상점을 타고 흘러내렸다.

“난 네가 금발 머리라는 걸 알고 있어.”

그건 정말 우연이었다. 급한 일 때문에 여관에 왔던 남자는 문틈으로 그녀가 금발 머리를 염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의심이 풀린 마당에 더 캐기에는 찜찜했기에 굳이 추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남자는 그녀가 신분이 확실하기는 하지만 여행객인 데다가 무엇인가를 숨기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시험을 했던 거고.

“가문에서는 어떤 여자라도 잡아 오라고 하셨지만…… 난 딱히 널 잡아갈 생각이 없어. 어차피 내 실력으로는 널 이길 수 없고.”

“무슨 소리죠?”

“너, 검사잖아. 그것도 꽤 실력 있는.”

그녀는 놀라서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내가 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그러나 처음 봤을 때 자신의 살기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과 언뜻 봤던 굳은살을 보며 남자는 오래전에 그녀의 실력을 예측했었다. 그리고 그때, 남자는 그녀를 해하기 위해 움직였더라면 자신이 도리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에게서 피어오르는 살기에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난 널 이길 수 없다니까.

“절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간단해. 시간을 벌어 줄게. 너, 여차하면 날 죽이고서라도 빠져나갈 생각 맞지? 그런데 난 이래 봬도 지부장이란 말이야. 내가 죽으면 곧장 가문에서 조사가 들어갈 텐데 그러면 진짜 돌이킬 수 없어.”

“왜 저의 도주를 도우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굳이 네가 알 필요가 없어. 그냥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도망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여기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다. 남자의 꿍꿍이가 뭔지 몰라 찝찝했지만 일단은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녀는 재빨리 머물던 여관으로 돌아와 짐을 쌌다. 그리고 은밀하게 뒷문으로 나가 마을 뒤편에 연결되어 있는 숲을 향해 뛰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숲은 그녀의 인기척을 가려 주었다.

여러 달 동안 이곳에 살았다 보니 이 근처 모든 지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달리는 그녀의 다리는 거침없었다.

‘무엇 때문에 황실과 신전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찾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대한 도망가야 해.’

그러나 당장 이 마을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황실과 신전의 이유 모를 추격은 계속될 것이었다. 무엇이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국 대대적으로 방을 붙였으니 저들은 절대로 포기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루미니르 제국이 아무리 넓어도 제국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라소니 왕국은 그녀의 용모를 아는 자가 파다하고 레미우스 왕국도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녀의 탈출로 인해 국가 간의 조약도 깨진 상태.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스티아 왕국은 루미니르 제국과 철저한 앙숙인 국가. 그곳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차라리 중심부로 들어간 후, 항구 도시로 빠지는 게 좋겠어.’

오히려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간다는 선택이었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

그리고 신탁은 정확하게 금발 머리에 파란색 눈을 가진 ‘여인’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머리는 현재 금발 머리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염색이 풀려 들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사내라면 아마 똑같은 용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싹둑!

그녀는 사내 행세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그녀는 재빨리 남아 있는 머리카락까지 싹둑 잘라 버렸다. 어깨 즈음에서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은 더 짧아져 지저분한 더벅머리로 변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그녀는 곧장 발걸음을 돌려 수도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중간중간 숲에서 먹을 것으로 자급자족하며 이동했다.

많은 날이 지나갔다. 수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마 며칠 후이면 도착할 것이다.

저벅저벅.

그녀의 발걸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워 더욱 이동하기 편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동하다 저녁이 되자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때와 비슷하네.’

라이넨과 헤어지고 난 뒤 마을에 처음 갈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와 다른 건 좀 더 상황이 긴박한 것뿐.

‘수도에 가면…… 정보를 더 수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도망칠 때는 추적 사실에 집중하느라 이러한 상황이 ‘왜’ 생겼는지는 미처 알지 못한 상태였다.

황실과 신전이 어째서 신녀를 찾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대책도 세울 수 있겠지.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 되니 평소에는 맹렬히 돌아가는 머리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하루빨리 수도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이제 일주일만 더 가면 수도야.’

그녀는 미리 만들어 놓은 횃불로 지도를 살펴보았다. 루미니르 제국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지도였다. 남자가 그녀에게 직접 건네준 것이었다. 그녀는 그 지도를 참고하여 빠른 기간 안에 숲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올 때까지 그녀는 나무 위에서 눈을 붙였다. 아침이 되고, 적은 양의 빛이 그녀의 눈을 비추었다. 그녀는 몸을 푼 후, 다시 수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떠난 사이, 머물렀던 마을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하였다.

“저희 마을에는 진짜 이 사람들이 다입니다.”

마을의 영주는 남작이었다. 그는 군사들에게 명하여 마을에 있는 모든 처녀들을 라이넨의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러나 라이넨은 무심하게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진짜, 여기에 신녀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이 있었던 적이 없는가?”

“단연코 진짜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전하!”

남작은 작은 마을(영지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았다.)이지만 이곳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주민들을 아꼈다. 그 상황에서 다짜고짜 황태자가 와서 신녀 수색을 핑계로 여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자 미칠 지경이었다.

보아하니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하던데 여기에도 신녀가 없으면 마을 전체를 몰살시킬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라이넨의 표정이 안 좋고 살벌하였다. 옆에서 카샨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진짜 이 짓도 할 게 안 되네.’

신녀의 본래 정체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법의 존재를 밝힐 수 없기에 신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둔갑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표면적인 이유’ 때문에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황실과 신전 입장에서는 마법에 통하지 않는 사람이 적이 되면 안 되기에 신녀를 제거하거나 같은 편으로 끌어들였다. 표면적으로는 보호를 위해 찾고 있다고 공표했기는 했지만.

그러나 황제나 교황, 그리고 카샨과 같은 라이넨의 최측근들은 이 신녀 사태의 전말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바로 라이넨의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임을!

자기가 한눈에 반한 여자를 찾겠다고 이런 막장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참 동안 남작을 족치던 라이넨은 한숨을 쉬며 사람들을 해산시키고는 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상을 쿵 치며 외쳤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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