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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의문 (15/93)

14. 의문

“젠장!”

라이넨의 외침에 옆에 있던 카샨이 말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좋지 않겠어?”

“…….”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 네게 있어서 그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도 네게 있어서 소중한 백성이야.”

“…….”

라이넨은 침묵했다. 알고 있었다. 왜 모를까. 저들이 그가 앞으로 황제가 되면 지켜야 할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명할 일이 있으면 불러.”

카샨은 그에게 그리 이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 카샨을 바라보던 라이넨은 점점 더 심해지는 증상에 얼굴을 찌푸렸다. 두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심장은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안색은 점점 더 까매지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측근들이 보다가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뭘 먹지 못해 몸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황궁의가 주는 약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었다. 홀쭉한 라이넨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샨은 한숨을 쉬었다.

백성들을 불안에 떨게 하면 안 되는 건 맞지만 저러다 라이넨이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는 차기 황제이자 백성들의 기둥이 되어야 할 사람. 그가 무너지면 제국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물론 이를 대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바로 라이부스였다. 그리고 그가 어느 정도의 성취를 보이자 귀족파들은 라이부스야말로 차기 황제감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그러나 라이부스는 나이가 너무 어린 데다가, 황제의 자리를 원치 않았다.

<카샨, 너는 형님이 하라고 하면 뭐든 하는 충신이지? 난 그렇게 믿고 있어. 부디 형님을 황제로 올려 줘. 난 저들이 말하는 것에 단 한 톨의 관심조차도 없으니까.>

평소에 열두 살밖에 안 되는 꼬맹이지만 늘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니는 라이부스를 보며 속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으나, 그때 그가 지었던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그는 진심으로 황위에 관심이 없었다.

카샨은 라이부스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라이넨 저놈을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

“일단 수도에 귀환하자. 너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이미 다 지쳤어. 조금이라도 쉬고 난 다음에 다시 찾자고.”

“……안 돼.”

“아니, 지금 너 더 이러다간 진짜 죽을 거 같거든. 그 여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들, 우리한테는 네가 더 소중해. 넌 차기 황제야. 네가 무너지면 끝이라고.”

“…….”

카샨은 억지로 밀어붙였다. 라이넨은 말투와 표정에서 친구의 걱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난 후에 다시 찾으러 가자.”

“……알겠다.”

라이넨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황제의 도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은 꽤 소요되었고, 살고 있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그를 보며 백성들이 불안해하던 것도 맞았으니까.

그는 할 수 없이 귀환 길에 올랐다.

“지금부터 수색을 잠시 중단하고 수도로 돌아간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달려온 결과, 불과 일주일 만에 수도로 귀환할 수 있었다. 부하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그는 내심 자신 때문에 고생했던 부하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오늘은 여기서 해산이다 푹 쉬고 내일 다시 궁으로 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그는 궁으로 돌아갔다. 열리는 성문을 보자 그녀의 마차에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며 순식간에 문밖을 통과했던 일이 생각났다.

“젠장.”

생각만 해도 매우 뼈아픈 일이었지만 애써 참았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고, 어떻게든 그녀를 찾아낼 테니까.

“다녀왔습니다.”

그는 궁으로 귀환하자마자 황제를 알현했다. 황제는 못 본 사이에 더 야위어 버린 아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티 내지 않고 쉬라고 말하며 그를 물렸다.

“전하, 일단 오늘은 쉬셔야 합니다. 황제 폐하의 명이십니다.”

그가 방에 들어오자 상사병을 진단하였던 황궁의가 다가와 약을 내밀었다. 그는 쉬는 것이 다소 내키지 않았으나 몸의 한계는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할 수 없이 약을 먹고 잠에 빠졌다.

*   *   *

그렇게 수도를 향해 나아가던 카니벨라는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내가 왜 도망치고 있는 거지?’

황실과 신전에서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일 수도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일 잘못을 한 일이 있다면 라이넨을 기만한 것뿐.

물론 그것도 충분히 잘못된 일이지만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하며 사람을 찾는다고?

이상했다.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그래서 그녀는 마을로 귀환하기로 했다. 이미 그녀가 떠나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도도 이틀만 더 걸으면 도착할 정도로 코앞이었고. 그렇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결심하자 행동은 빨랐다. 그녀는 재빨리 짐을 싸서 가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숲은 울창하여 가끔 길을 잘못 들기도 하였지만 길눈이 밝았던 그녀는 곧장 제대로 된 길을 다시 찾았다.

‘사람이 자꾸 들어오네.’

이상한 것은 본래 마을 사람들에게는 거의 금기처럼 여겨지는 이 숲에 자꾸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길이 복잡하여 사람들이 자주 실종되거나 죽기도 했던 숲이었기에 통행이 적은 곳이었는데 자꾸만 사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굳이 저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고 싶은 것이기도 했고, 저들의 표정에서 무엇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예감이 별로 안 좋은걸. 낮에는 이동하지 말아야겠어.’

당장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싶었으나 괜히 주의를 끄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큰 바위들 틈에 숨어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도대체 우리 딸아이가 지은 죄가 뭔지. 그놈의 금발 머리에 벽안이 무슨 그리 큰 죄라고.”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신녀가 나타나서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애초에 신전에서 왜 황실과 함께 신녀를 찾는 것인지 모르겠네. 아니, 황실에서 왜 신녀를 찾아?”

그녀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번 사건은 황실과 신전에서 결탁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통 예언은 매우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예언은 조금 이상했다. 대놓고 신녀를 예언한 데다가 생김새까지 비교적 정확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수상함이 조금씩 짙어졌다.

‘게다가 신녀를 찾는다고 해놓고 제국 전역을 뒤진 것도 아니야. 마치 특정한 사람을 정해 놓고 찾는 것 같은…….’

아예 열두 군데로 지정된 장소. 그 장소들의 특징은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있는 마을이지만 규모는 커서 여행자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그런 곳들이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이 신탁을 빌미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설마 나를 찾으려고 그러는 걸까?’

그래도 그녀는 섣불리 단정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마을에 가서 남자를 다시 만나는 게 먼저이다. 만나서 진상을 충분히 파악하고 난 다음에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 낮에는 최대한 나무 위에서 숨죽이고 사람들의 이동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달의 빛을 횃불로 삼아 움직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그녀는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마을은 적막했다. 그렇지만 누구와 마주칠지 몰라 그녀는 달빛이 비치지 않는 그늘을 벗 삼아 남자가 있는 정보 상점으로 향했다.

“오늘 영업 마감…… 아니, 네가 왜 여기에? 도망치라고 했잖아!”

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왜 다시 온 거야! 그러다 잡히면 어쩌려고. 그녀는 그런 남자의 말에 어깨만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 마을에도 황태자께서 왔다 가셨나요?”

“그래…… 그것 때문에 지금 일부 마을 주민들이 불안함에 마을을 떠나고 있어. 젠장, 내 주요한 고객들이…….”

“어차피 그 사람들은 이용 안 했었잖아요.”

“…….”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디 계세요?”

“그걸 왜 묻는…… 너 설마?”

“설마가 사람 잡죠. 예, 따지러 가려고요.”

남자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뭐라고? 황태자한테 따지러 간다고? 그러다가 네가 죽으면 어떡해!

그러나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이렇게 계속 쫓겨 다닐 수는 없어요. 어떻게든 결판을 지어야 해요.”

“근데 그걸 왜 네가 결판을 지어! 네가 황태자한테 뭐기에 그러는데?”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그 사람에게 저는 뭘까요?

“모르니까 따지러 가는 겁니다. 전 제가 왜 쫓겨야 하는 건지도 납득이 안 되거든요.”

“…….”

남자는 그녀의 논리에 말을 잃었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남자는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어 보였다. 이미 결단을 한 눈빛. 남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는 이미 수도로 귀환하셨어. 지금쯤이면 도착하셨겠네.”

수도는 여기서 한 달은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그러나 한 달은 너무 길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했다.

“일단 내가 수도까지 가는 마차를 구해 줄게. 이건 마차를 빨리 대여할 수 있는 차용증이야. 우리 마을에도 일단 있으니 이용하라고.”

“네,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뭘. 아, 그리고 그 머리 염색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마을 분위기 자체도 엄청 흉흉해서 금발 머리의 사람은 우리 안에서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있거든.”

“네, 주의할게요.”

그녀는 남자가 준 염색약으로 재빨리 염색을 하고 차용증을 마차 대여소에 갖다 주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마부와 함께 마차를 빨리 지급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수도로 향할 수 있었다.

‘내게 이유를 말해 줄 때까지는 떠나지 말라고요. 내가 당신한테 다 따질 거니까.’

그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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