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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혼인 (17/93)

16. 혼인

그렇게 거래는 성사되었다. 라이넨은 카샨에게 부탁해 카니벨라의 거취가 결정될 때까지는 저택에서 머물 수 있게 해 달라고 협조를 부탁했다. 카샨은 한숨을 쉬었지만,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아바마마께 허락을 받아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죠.”

카니벨라는 카샨이 지정해 준 손님방에 머물렀다. 늘 똑같은 풍경은 그녀에게 지루함과 동시에 평화로움을 안겨 주었다.

‘언제 이렇게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더라……?’

늘 뭔가에 쫓기는 인생. 사고 당시에는 사라진 기억에도 불구하고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어린아이 연기를 했을 때는 혹여나 누구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군이 생겼다. 자신의 곁에서 안정을 주고, 또한 어머니를 죽인 범인까지 찾아 주겠다고 했다. 특별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도 좋은데 그 사람이 그녀의 숙원까지 이루어 준다고 하였으니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라이넨은 그녀에게 있어서 휴식처다. 그리고 안정감과 특별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자신을 위해서 대륙 끝까지 쫓아올 수 있는 남자가 바로 라이넨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확연히 느껴지는 행동의 온도 차까지.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까칠한 그였지만 자신의 앞에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대하는 듯이 행동한다. 그런 걸 보고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누구세요?”

“카샨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카샨이 들어왔다. 문을 닫은 그는 곧장 그녀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적으신 계약서입니다. 보시고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약서는 카니벨라와 라이넨이 혼인 및 혼인 유지를 위한 조건을 담은 계약서였다. 그녀는 ‘카니벨라’와 ‘마리야’라는 존재를 죽여 달라, 혼인을 비공개로 처리해 달라, 그리고 라소니 왕국 화재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리고 라이넨은 앞으로 영원히 혼인 관계를 유지할 것, 사이좋게 지낼 것, 그리고 ‘절대로’ 혼인 파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미 그의 서명은 있었고 그녀는 카샨이 주는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휘갈겼다.

“조만간 혼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황제 폐하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시니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카샨의 시선을 무시했다. 애초에 저런 시선은 익숙했고, 저런 악의는 귀엽기까지 했다. 게다가 저런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라이넨이라는 주군의 앞길을 막은 사람이요, 라이넨을 이성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황족은 약점이 없어야 하고,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차기 황제로서 큰 약점을 가지고 된 셈이니 그 부분이 걱정되어 그러는 거겠지.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표정이 다 드러나네. 어설퍼.”

시작부터 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못내 피곤했다. 자신이 의도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카샨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러한 행동에는 익숙하다. 그녀는 적이 많았고,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연기를 했다. 그랬기에 저 정도는 그냥 귀여운 수준이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빨리 뭔가가 결정이 났으면 좋겠는데…….”

*   *   *

“네가 말하는 조건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아느냐.”

황제는 카니벨라와 혼인을 하기 위해 라이넨이 제시한 조건들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혼인을 비공개로 하고, 외부에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제국 창립 기념일, 황제 탄신일, 추수 감사 기념 연회만 참여한다?”

황족이 수행해야 하는 행사는 그것보다 훨씬 많다. ‘카니벨라’와 ‘마리야’라는 그리고 황족이라면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대신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황제는 어이가 없어 서류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설명을 원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라이넨은 설명 대신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굳이 황태자비가 모든 대외 활동들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리 우리 제국이 특수한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황족으로서 백성들에게 보여야 할 것은 있는 법이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루미니르 제국은 일찌감치 황태자를 정한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리 귀족들이 반대하고 날뛰어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황위 싸움이 없는 편이었다.

게다가 상대편에서 항상 황태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으니, 황위 싸움이라고 할 것도 없이 시시하게 끝나곤 했다. 그래서 항상 궁의 사용인들은 황위 싸움을 하나의 소소한 ‘이벤트’로 인식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상대편인 라이부스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머리를 이용하여, 행정적인 탁월함을 발휘했다. 황제는 그가 발표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였고, 그를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는 라이넨에 대한 어떤 지지 입장도 밝히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로 인해 라이넨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으나 침묵을 택하였다.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가 황궁과 유리된 것처럼.

그런 라이부스의 침묵에 평소 라이넨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황가의 정책에 반대하던 귀족파들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붙었다.

그에 라이넨을 지지하는 황태자파가 격렬하게 귀족파들과 맞서 황위 싸움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불타올랐다. 그러나 황제와 황후가 라이넨이 차기 황제라고 강력하게 못 박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이건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황제의 이러한 걱정 어린 시선에 라이넨은 힘을 주어 말했다.

“제가 다 감당하겠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저를 그리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아무 말 말고 제게 맡겨 주십시오.”

라이넨의 시선을 보자, 황제는 아들이 자신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고 싶지 않다, 숨기고 싶다는 것을 눈치챘다. 황태자비라고 데리고 온 아이와 무엇을 한 것 같은데 말해 주지 않으니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네 알아서 하거라.”

항상 날카롭고 날이 서 있던 아들.

자신의 어머니와 형이 죽고 난 후에 웃지 않고 항상 어둡고 차가운 표정만 짓고 있던 아이.

그런 아들이 난생처음으로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원했다.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허락을 안 해 줄 수가 없지 않겠느냐.’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제 이 후폭풍을 어찌한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라이넨은 다소 밝아진 표정을 지었다. 황제는 그의 그런 표정을 보자 이것도 다 뜻이 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물러가겠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용건이 끝나자마자 곧장 사라졌다.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가 되어야 아들의 저 벽이 깨질 수 있을까?

그러나 황제가 한숨을 쉬건 말건,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당장 카샨의 저택으로 향했다. 마침 방에서 나오는 시녀가 보였다. 그는 시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영애(아직 정식으로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아 호칭은 영애)는 안에서 지금 뭘 하고 있지?”

“책을 읽고 계십니다. 이 제국에 대한 역사가 궁금하다고 하셔 가져다드렸습니다.”

“그래, 물러가도록.”

시녀가 물러가자 그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갖가지 책을 쌓아 놓고 읽고 있는 카니벨라가 보였다.

“이곳은 괜찮습니까?”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책을 덮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늦으셨네요.”

“아바마마와의 협상이 다소 길어져서. 여기는 지낼 만합니까?”

“괜찮습니다. 오히려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네요.”

그녀는 검술을 좋아하고 잘했지만 반대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 라소니 왕국에 있을 당시에는 어린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꿈에도 못 꿨는데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책을 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는 책을 읽는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황궁에 그녀만이 출입할 수 있는 전용 도서관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뗐다.

“아바마마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곧바로 혼인 준비에 들어가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혼인을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혹시 원하는 건……?”

“전 혼인 절차도 잘 모르는걸요. 하라고 하는 대로 하면 돼요.”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그녀를 안으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녀는 이마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도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날은 곧 올 거니까.”

날이 밝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 날이었다. 이제 황태자비라는 새로운 신분을 가지게 되어 긴장이 되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라이넨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 때문에 설렌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이동하시겠습니다.”

혼인 장소는 황궁 중에서 구석진 연회장에서 진행될 것이었다. 지금은 더 큰 연회장이 있어 잘 쓰지 않는 곳이었다. 다소 낡았기는 하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는 곳이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싫다는 의견 때문에 특별히 이번에만 개방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시녀들의 안내에 따라 연회장 근처에 딸린 방으로 이동했다. 방에 들어가니 시녀들이 그녀의 치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손길에 변신을 거듭했다. 향유로 몸을 씻은 다음, 거울에 앉히더니 화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종 향수 냄새에 정신을 못 차렸지만 거울 속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변화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각종 화장에 이목구비는 더욱 뚜렷해졌고, 듬성듬성 잘려 있어 거지를 연상시키던 머리카락은 차분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머리색은 갈색으로 염색되었다.

‘황제에게도 내 신분을 감출 생각인가.’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그녀의 용모가 아무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라소니 왕국의 공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왕국으로 송환하려고 할 터이니 굳이 귀찮게 밝힐 필요가 없었다.

단, 그녀는 라이넨이 이 중대한 사실을 나중에 황제에게 어떻게 알릴까 고민했다. 그녀가 이때까지 본 그는 똑 부러졌지만, 그녀 한정으로는 헤벌쭉 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러니 걱정이 되었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잘 채워 줘야겠지.’

“이제 드레스를 입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일어나서 시녀들의 손길을 받으며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는 일제 노출이 없는 그러한 의상이었다. 그래서 내심 만족스러웠다. 황제와 황후 앞에서 노출을 굳이 감행하고 싶지도 않았고, 흉터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흉터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시녀들은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냥 말없이 코르셋을 조였고, 위에 드레스를 입혔다. 그리고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을 끼웠다. 그중 목걸이를 걸자 눈동자 색이 파란색에서 갈색으로 변했다.

‘이게 뭐지? 이것도 그 꼬마가 부리는 것과 같은 ‘기적’의 한 종류인가?’

그녀는 이곳에서 ‘마법’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보았다. 이게 설마 우연일까?

‘혹시 그 꼬마가 이 황궁과 연관이 있는 건가……?’

“다 되었습니다.”

그녀가 목걸이를 보며 의문을 가지는 사이, 준비는 곧장 끝났다. 머리 위에 면사포가 씌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시녀의 손에 있던 부케를 건네받았다.

“저희는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그들은 곧장 가지고 왔던 각종 치장 도구를 들고 퇴장했다. 드레스와 화관은 매우 예뻤지만 그걸 입은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런 식으로 혼인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솔직히 그녀 자신은 이렇게 초라한 혼인을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도망자 신세 아닌가. 게다가 흔히 말하는 웨딩드레스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라이넨에게 미안했다. 그는 그녀의 마음에 들어간 유일한 사람이자 휴식처.

그는 자신과의 혼인을 대륙 온 나라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루미니르 제국의 정치적 위치와 이때까지 봐 왔던 그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와의 거래 때문에 묶이게 되었다.

그는 그녀가 봤던 사람 중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소규모 혼인이 웬 말이란 말인가.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그저 빨리 끝내고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문이 열리며 그녀를 치장해 준 시녀가 들어왔다. 시녀의 말에 따라 그녀는 식장으로 향했다.

“여기 서시면 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신을 데리고 식장에 입장할 아버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없이 시녀와 함께 입장했고, 그런 그녀를 보며 다른 황족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에게 있어 라이넨은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지 못하는 그런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저기 오고 있는 저 영애 때문에.

특히 현 황후는 더욱 못마땅해했다. 과거, 현 황후는 라이넨의 친어머니인 전 황후의 가장 측근에 있던 귀족이었다. 전 황후를 온 마음으로 따른 만큼, 그녀는 마치 라이넨을 자신의 친자식처럼 여기고 있었고 애정을 쏟았다.

심지어 친아들인 라이부스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왜 네가 이런 초라한 혼인을…….’

아무도 모르는 그런 초라한 혼인식. 라이넨은 누구보다 축복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런 아이가 한낱 여자가 제시한 조건 때문에 친인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는 비공개 혼인을 하게 되었다.

황후는 신부에 대한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으나, 애써 표정을 숨기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냥 라이넨이 행복해하니 그거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자 했다.

그리고 황후의 옆에 앉아 있는 라이부스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카니벨라를 바라보았다.

‘형님…….’

카니벨라는 그들의 갖가지 시선을 느꼈으나 무시했다. 진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익숙했다. 그냥 그저 빨리 이 식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그녀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이 식장에서 유일하게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라이넨이었다.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황가의 제복이 아닌 단순한 혼인 예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인 양 온몸에서 빛이 났다. 행복을 담고 있는 황금빛 눈동자가 그녀의 눈에 담겼다.

그는 그녀가 다가오자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녀는 그의 손길에 기분을 갈무리하고는 교황을 바라보았다. 교황은 둘이 나란히 서자 나긋한 목소리로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영원의 키스로 둘을 부부로 선포한다.”

그는 작게 웃으며 그녀의 면사포를 젖혔다. 그리고 그녀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입술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의 혀가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점령했고, 그녀는 그의 매혹적인 움직임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

그녀는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이, 혀가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갑자기 호흡도 가빠졌고, 온몸에 거부할 수 없는 아찔함이 감돌았다.

“이제 두 분은 부부이십니다. 황태자 전하, 황태자비 전하.”

둘은 황제, 황후, 그리고 그의 이복동생 라이부스 앞에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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