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랑, 꽃피다
결국 라이넨은 날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욕정을 떼어 놓기 위한 달밤 체조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국정을 보기 위해 씻고 집무실로 향했다.
“음?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습니까?”
카샨은 좀비처럼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라이넨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밤새 뭘 한 거야?’
격렬한 첫날밤을 치렀다고 하기에는 그가 너무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그의 성격상 그 여자랑 잤다고 하면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없는데.
그러나 그는 그런 카샨의 의문을 해결해 줄 새도 없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카샨은 밖에 있던 측근들에게 지시했다.
“오늘 웬만한 서류는 다 나한테 돌려. 최종 결재가 필요한 것만 전하께 올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샨 역시 라이넨의 옆에서 정보국 및 라이넨의 보좌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한참 동안 졸던 라이넨이 눈을 떴다. 평소보다 서류의 양이 적었다.
“음?”
“너무 피곤해 보여서 내 선에서 처리할 것은 다 처리했어. 여기에 있는 것들이 네 최종 결정이 필요한 서류들이고.”
“아, 고마워.”
라이넨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들을 읽고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카샨에게 말했다.
“혹시 한 황족을 위한 전용 도서관은 못 만드나?”
“만들 수야 있지. 왜? 혹시 그 여자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냥 내가 선물로 주려고 하려는 거야. 그리고 얻다 대고 그 여자야. 이제 황태자비라서 너보다 엄연히 신분도 높은 사람인데.”
“네, 네, 그렇구나. 네, 알겠습니다.”
그가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자 카샨은 움찔하며 말을 돌렸다.
“알겠어. 뭐,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야.”
“그래, 알겠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돈이 꽤 되니 사비로 만들면 될 터였다. 그리고 초대 황제가 만들어 놓은 여러 마법 물품들이 있었다. 그중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주면 되겠지.
그는 처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서류를 결재했다. 카샨은 저것도 중증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여기서 끝이다.”
“네? 알겠습니다.”
평소에 일 중독이나 다름없던 라이넨이 여섯 시가 되자 퇴근 선언을 한 것이다! 상사병에 걸렸을 때도 서류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그 라이넨이!
카샨은 놀랐지만 재빨리 휘하 측근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또 언제 마음이 바뀌어 일을 해야 한다고 폭탄을 날릴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놀라든 말든, 그는 재빨리 밖으로 나와 황제가 있는 궁으로 향했다.
“또 무슨 일이냐?”
요즘 따라 자신을 자주 찾는 아들을 보며 황제는 반가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놈이 또 뭘 요구하려고 온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족 전용 도서관을 짓고 싶습니다.”
“이미 도서관이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또 갑자기 도서관이란 말이냐?”
대륙 정세, 역사, 경제, 제왕학, 마법(모든 황족은 아님) 등 각종 여러 분야를 탐독해야 하는 루미니르 제국의 황족이었기에 그들을 위한 도서관은 매우 컸다. 궁 한 개가 오로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웬 또 도서관?
“그 도서관은 황족들 모두가 쓸 수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제가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을 위한 전용 도서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황제는 그 말에 라이넨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황태자비를 위한 전용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미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실 거라고 믿고 진행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아들놈은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하러 온 것이다!
“끄응…….”
황제는 고민했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기에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 즉시 고서나 여러 분야의 책들을 대륙 전체에 걸쳐서 주문했다. 그리고 인부들을 모아 황태자비궁 옆에 작은 도서관을 하나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온 궁에 퍼졌다. 황태자가 책을 좋아하는 황태자비를 위해 전용 도서관을 짓고 있다!
시녀들은 황태자비가 부럽다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졸지에 그 주인공이 된 카니벨라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설마 저번에 책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한 그 말에 도서관을 만든다고 하는 건가?
‘에이, 설마.’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 사실을 부정하였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틀린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사람 한 명을 찾자고 신전과 짜고 가짜 신탁을 제국 전체에 돌렸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신탁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지?’
이때까지 혼인이 진행되고, 또한 궁에 적응한다고 신탁과 신변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그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궁으로 들어왔다. 마침 라이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그녀는 그의 볼에 짧게 키스를 했다. 그는 기분이 좋아 그녀를 꼭 껴안았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
“아니, 심심했는데 네가 와서 좋아.”
결혼을 하고, 그와 말을 놓으며 좋아진 점이 있다면 그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사라졌다는 것과 애정을 거리낌 없이 받을 수 있다는 것.
늘 사람들의 미움 가운데서 살던 그녀에게 있어 그는 생명의 샘물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해 주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황제와 황후 그리고 라소니 왕국 등 그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이때까지 누려 보지 못했던 사랑을 주었다.
그녀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뭔가를 더 해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그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신탁에 대한 이야기, 위장 죽음과 위장 신분에 대해 물었다.
“신탁은 얼추 마무리가 되었어. 예전부터 신탁에서 봉사하고 싶어 하는 영애가 있어 그자를 신녀로 내세웠어. 그 세력은 우리 쪽 사람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녀도 황궁에 머물며 지금의 황위 싸움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러자 의아해졌다. 루미니르 제국은 황위 싸움이 거의 없는 편인데 저들은 왜 싸우는 걸까?
그러나 그 의문을 풀 새 없이 그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리고 ‘카니벨라’와 ‘마리야’의 신변 정리는 다 끝났어. 애초에 내가 도장 하나만 찍으면 죽은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할 점이 없을 거야.”
그러나 그는 그녀의 용모 때문에 언제든 정체가 드러날 것에 대해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그녀의 모습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처럼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가 좋겠지. 그는 초대 황제가 쓰던 마법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네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목걸이야. 그걸 차고 있는 한, 그 모습 그대로 유지가 될 거야. 그럼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는 그 목걸이가 있으면 굳이 귀찮게 염색을 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네 위장 신분에 대해서는 지금 회의 중이야. 카샨과 정하고 있으니 조만간 어떤 가문의 양녀가 될지 정해질 거야.”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늘 투덜거리며 못마땅한 기색을 풍기던 카샨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쯤 또 이를 갈고 있겠군.
그렇지만 어차피 이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카샨은 인재다. 자고로 인재는 이럴 때 쓰여야 하는 법이었다. 그녀 역시 사람 굴리기를 좋아하는 왕족 출신이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오자마자 이런 것만 물어서.”
“그래, 꽤 서운했다고. 나는 이토록 함께하기를 기다렸는데 내 아내께서는 일 이야기만 하다니.”
“미안해. 그럼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당연히 그래야지.”
그는 씩 웃으며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는 곧장 그의 부름에 따라 들어온 시녀들의 빠른 손길에 의해 외출용 드레스로 갈아입어야 했다. 그는 어리둥절한 그녀를 이끌고 마차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오늘 데이트는 거리에서 하는 거야?”
“요즘 별로 못 나갔잖아. 네가 답답해할 것 같아서.”
그는 그녀가 연기를 하는 동안 궁에 줄곧 갇혀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부터 종종 데이트 장소로 궁 밖을 택했다. 그리고 그건 그녀로서도 환영이었다. 어차피 황궁 생활은 황태자비 자격 수업, 독서를 제외하고는 할 것이 전혀 없는 지루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외국인이라는 점,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황가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용인들의 배척이라는 점까지 합쳐져 그녀는 라이넨을 제외하면 황궁에서 마음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라소니 왕국 때도 마찬가지였기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앞일을 생각한다면 꽤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라이넨과 놀 때였다.
최근 그는 그녀의 전용 도서관 건축 막바지가 되어 각종 서류와 씨름한다고 바빴기 때문에 얼굴도 자주 보지 못했고, 이렇게 둘이서 나올 기회도 별로 없었다.
“상쾌하네.”
그녀는 어느새 시원해진 바람을 맞으며 웃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끈했던 저녁 공기는 어느 순간부터 시원해져 여름용 드레스를 입으면 추울 정도였다.
마차는 달리고 달려 한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그는 오늘은 오페라를 보러 왔다고 설명했다.
“오페라?”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다르지만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자부할게.”
그의 깐깐한 예술적 취향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기대했다. 그리고 오페라는 그의 장담대로 예술이었다. 음악은 웅장하고, 애절하고, 가슴을 울렸다. 그녀는 곧장 오페라 그 자체에 매료되었다.
초대 황제의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는 왜 이 이야기가 최고의 이야기인지 몸소 증명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그녀의 공감을 이끌어 낸 부분은 황제가 관을 쓸 때까지 겪었던 고난의 이야기였다.
황제는 제국을 세우기 전, 대립하던 세력에 의해 죽을 뻔했다. 그들이 일으킨 화재로 인해 친구를 잃은 것이다. 그녀는 흠칫했다. 그녀 역시 어머니를 화재로 인해 잃었다. 정말이지 비슷하지 않은가.
“진짜 재미있었어.”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리자마자 그녀는 손뼉을 치며 탄성을 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 배우들이 퇴장한 무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감정에 취해 있을 수 있도록 가만히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네가 추천한 건 날 실망시키지 않아!”
그녀는 그렇게 내내 흥분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함께 걷고 있던 그에게 말했다. 고맙다고. 그녀가 방방 뛰는 걸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는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어떠신가요? 제가 선택한 오늘의 데이트에 만족하셨나요?”
“물론이에요.”
“제가 준비한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답니다.”
“또 있어?”
“그럼.”
그는 그녀와 천천히 걸으며 다음 장소로 안내했다. 골목길을 지나니 그녀의 눈에 바람에 휘날리는 수많은 꽃들이 눈에 보였다. 라이넨의 어머니를 위해 황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정원이었다.
달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떠올라 있는 가운데 정원은 마치 별세계와 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그 아름다움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원은 고고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정원에는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등 많은 종류의 꽃이 잔뜩 피어 있어 눈을 즐겁게 했다. 또한 갖가지 향기를 내뿜고 있음에도 전혀 섞이는 느낌이 들지 않은 향기로운 냄새에 코가 즐거웠다.
“우와!”
게다가 꽃들 사이로 수많은 반딧불이가 날아다녀 장관을 연출했다. 마치 요정들이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녀는 이 장면을 눈으로 간직하기 위해 한참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밤 위로 떠올라 있는 수많은 별들과 그들이 비추는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그 위를 유영하는 수많은 반딧불이까지. 그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도 이보다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잊으면 서운하지.”
그녀가 꽃밭만 계속 쳐다보자 내심 서운했던 그는 그녀의 볼에 키스하며 자신도 함께 있다고 존재감을 주장했다. 그녀는 그를 가득 안았다. 그리고 말을 툭 내뱉었다.
“넌 내게 있어 구원이야.”
맞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 구원이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서 구원의 존재가 되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런 즐거움은 평생 겪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쏟으며 복수귀가 되어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평생 모르고 외롭게 살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그가 없던 예전의 삶이 어떠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핍박받으며 혼자 울고, 증오를 키우던 그때 그 시절은 이미 너무나도 희미했다.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시간을 속으로만 곱씹으며 떠나야만 했던 그때가 후회되었다. 만약 내가 떠나지 않고, 당신과 그때부터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우린 어떻게 함께하고 있었을까?
라이넨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 휴식처였고, ‘같은 사람’이었다. 둘은 같은 상실을 가지고 있었기에 반했고, 그녀는 그와의 모든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 했던 첫 키스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황홀함을 애써 등지고 떠났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이지만 그게 내심 아쉬웠다. 타협점을 찾았더라면 나는 떠나지 않고 조금 더 빨리 당신과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돌고 돌아 그들은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라이넨이라는 평생의 동반자를 얻은 지금, 그녀는 함께 걷고 있는 이 삶이 너무 좋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영원히 늙어가고 싶었고, 눈을 감더라도 함께 감고 싶었다.
단순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으로 선택했던 혼인이었지만 그것은 진심이 되었고, 그의 옆에서 진짜 황후가 되어 그의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 또한 되고 싶었다.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밝히고 뮤일라 일가를 끌어내고 나면, ‘루시아’라는 지금의 가짜 모습을 던져 버리고 당당히 온 세상에 ‘카니벨라’로서 그의 아내라고 밝힐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루카민도 함께 있겠지.
그녀는 문득 루카민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좋아할까?
<기억하십시오. 제 소원은 언제나 마마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복수에 사로잡히지는 마십시오, 그건 마마의 행복에 방해가 됩니다.>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보며 웃을 루카민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네 구원이라니. 정말 행복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아.”
라이넨이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 그녀는 꺄르르 웃으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그의 시선을 자신에게 맞췄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그녀가 가득 담겼다.
“라이넨, 난 지금 너무 행복해. 당신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네가 옆에 있어 너무 좋아.”
다소 과격한 방법이었지만 그가 자신을 찾아 줘서 그녀는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차갑지만 자신을 보면 사랑스럽게 되어 버리는 그 모습이.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사랑해.”
“뭐?”
“사랑한다고.”
그래서 그녀는 고백했다. 온 힘을 담아 고백했다. 지금 느끼는 이 사랑, 감격스러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면 이 짜릿함에 자신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사랑해, 라이넨.”
그녀의 말에 그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혹시나 꿈인 건 아닐까 싶어서. 불행하기만 하고, 늘 잃어버리기만 했기에. 그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겨 죽은 형과 어머니가 그녀를 보내 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이 사람은 형님이 주신 선물인가요?’
그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고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그의 표정마저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벌어진 입에 키스를 하였다. 짜릿함과 아찔함을 담아서.
“……!”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온몸에서 전류가 찌릿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 안의 짐승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숨결을 앗아가고 있는 그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숨을 빼앗았다.
둘은 상대의 모든 것을 탐하기 위해 둘은 열정적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혀와 혀가 맞물렸다. 격렬한 움직임에 저절로 얼굴이 빨개지고 숨은 거칠어졌다. 옷은 이미 구겨져 있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라이넨은 갈증이 났다.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더 하자고 아우성이었다. 그녀 역시 이 짜릿함에, 황홀함에 입술을 떼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입술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안으며 둘은 가만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랑해.”
카니벨라가 입을 열었다. 고고하게 달빛 아래 라이넨이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둘은 한동안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속삭였다. 이마에 키스하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볼에 키스하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입술에 키스하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영원히 함께하자.”
“그래.”
저 빛나는 달빛 아래 둘은 영원히 함께하자고 서로에게 맹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