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 탄신 기념 무도회 (1) (21/93)

20. 탄신 기념 무도회 (1)

“황제 폐하 탄신 기념 무도회?”

에오라는 화장대에서 카니벨라의 머리를 빗겨 주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머리는 어깨까지 길어져 있는 상태라 관리가 필요했다. 에오라는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혼신의 힘을 다해 빗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는 그녀에게 곧 있을 황제 탄신 기념 무도회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네, 이번 무도회는 황제 폐하의 50번째 탄신일을 기념해서 열리는 것으로 아마 대륙의 온 귀족들이 다 몰려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탄신 기념 연회라…… 참여 안 할 수가 없겠군.”

그녀는 귀찮았다. 일단 자신에게 몰릴 수많은 시선이 싫었다. 라이넨은 혼인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상 이번 연회가 그녀의 데뷔 무대인 셈.

그렇지만 그녀는 춤도 제대로 추지 못하는 데다가 여러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그녀를 두고 이득이나 따질 것이 분명하니 그런 싸움터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리고 주객전도가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라이넨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당해야 할 텐데 그날은 황제의 탄신 기념 연회였다.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어야 할 그런 연회였던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가야겠지?’

이 황제 탄신 기념 연회 참여는 자신이 제시했던 조건. 그러니 그녀는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똑똑.

그때 라이넨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에오라와 레이는 그녀의 명에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곧장 화장대에서 일어나 티 파티용 식탁에 앉았다. 또한 그는 서류 몇 장을 가지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이미 들었겠지만 곧 있으면 황제 폐하의 탄신 기념 무도회가 있어. 그리고 거기서 널 보이게 될 거야.”

“그렇구나.”

말의 요지는 비록 그곳에서 처음 그녀를 선보이는 곳이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라이넨의 혼인 상대라고 하지만 그날은 엄연히 황제의 탄신일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황제를 주목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그곳에서 그녀의 양아버지가 될 사람도 소개해 줄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웬 양아버지?”

“귀족파들은 아마 네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약점으로 끊임없이 네 자리를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 이렇게 신분이 생겨 버리면 아무도 네게 자격이 없다느니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을 거야. 명분이 없으니까.”

“…….”

“그리고 ‘루시아’에게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줘야지.”

“그렇구나.”

그녀는 그때서야 자신의 양아버지가 될 자가 궁금해졌다. 이미 친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기에 누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라이넨이 데리고 올 사람이니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입실롯 후작이라는 자였다. 카샨이 속해 있는 레미아치 가문처럼 제국 4대 공신 가문 소속이니 황태자파 귀족들의 중심에 서 있는 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들의 수장이라는 것이 좋았다. 자신을 들임으로써 이미 정치적으로 부담이 생겼기 때문이다. 귀족파들이 그를 물어뜯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미안해. 내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네게 이런 부담을 주지는 않았을 텐데.”

“괜찮아.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난 널 사랑했을 거야.”

“넌 언제까지 날 감동시킬 거야?”

그녀는 그의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미안했다. 본래 황실의 행사는 황후 혹은 황태자비 등 황궁의 안주인들이 준비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온전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현재 황후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연회 준비는 라이넨에게 떠맡겨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괜찮아. 네가 준비하려 했으면 아마 황후가 널 못마땅하게 여겨서 또 뭐라고 했을 게 분명해. 그러니 그럴 바에는 내가 준비하는 게 훨씬 나아.”

“넌 날 항상 배려하네. 그런데 난 그렇게 해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 그녀 때문에 더 바빠졌으니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야, 괜찮아. 그러니까 자꾸 미안하다고 하지 마. 오히려 낯선 곳에 갇혀 있게 만들어서 미안할 뿐이지.”

“이건 보호잖아.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 그리고 범인을 찾고 내 온전한 신분을 되찾으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잖아.”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그런데…… 연회라면 춤을 춰야 하지 않아? 나 춤 못 추는데.”

“그럼 내가 가르쳐 줄까?”

“네가? 바쁘지 않아?”

“괜찮아. 이미 준비는 막바지고 아바마마의 도장만 있으면 되거든.”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라이넨이 카니벨라의 춤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녀는 순간 뭔가에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애써 무시했다.

‘괜찮겠지?’

황태자는 바쁘다. 황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나가야 할 수도 있기에 검술도 익혀야 했다. 제국의 안위를 결정하는 회의에도 참여해야 했고, 또한 늘 서류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라이넨은 늘 바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그는 일을 하러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밤이나 되어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자기 전에 둘은 서로의 하루에 대해 대화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데이트 코스를 짜왔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그가 충분히 무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춤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내가 짐을 더 떠 얹은 기분인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제국은 인재가 많은 곳이었고, 그녀의 춤 예법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그녀는 그의 바쁜 일정에 일조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널 가르쳐 주는 게 마음에 편하고 좋아. 다른 남자가 네 손을 잡는 것을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춤이다 보니 접촉을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남자들이 추는 춤을 익힌 여자들도 있기는 했지만 수가 적고 황궁까지 오기에는 시간도 촉박했다. 그래서 결국은 남자 선생을 불러야 하는데 라이넨은 그럴 바에는 자신이 잠을 덜 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절대 다른 사람의 손길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대화하는 것도 싫다. 그녀는 그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온전히 그의 품 안에 안긴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처음 갖게 된 그의 사람. 오로지 자신에게만 허락된 사람. 그는 그녀를 독점하고 싶었다.

그녀는 알까? 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단둘이서 어디론가 도망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아무도 없이 정말 둘이서만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렇게 세상과 유리된 채 하루하루 함께하고 싶다는 것을.

그는 이런 자신의 마음이 집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짙고도 농밀한 욕망이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이런 자신의 마음을 그녀가 알고 있을까?

이미 그녀가 어렴풋이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그는 그녀가 자신의 이런 면까지도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풋! 다른 사람한테 지도받았으면 난 지금처럼 이렇게 붙어 있지도 않을 거야.”

그가 그녀를 향한 사랑이 넘쳐흐르듯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선생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열성적으로 배우지도 않을 것이고, 길게 수업하려 하지도 않았겠지. 그것은 오로지 춤 선생이 라이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이 기뻤다. 그래서 그녀에게 열심히 제국식 춤과 무도회 예법도 가르쳐 주었다. 6년 전 사건으로 인해 고립되었던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 그녀는 그런 그의 배려가 고마워 열심히 배웠다.

그렇지만 춤은 쉽지 않았다. 검술을 배웠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유연한 그녀였지만 춤 하나는 정말 젬병이었다. 왜 자꾸 스텝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발을 밟아 버리는 건지.

“미안해. 괜찮아?”

게다가 그녀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아무리 신발이나 피부가 튼튼하다 하더라도 아프고 자국이 남을 것인데 라이넨은 그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괜찮아. 정말이야.”

오히려 그는 그녀를 위로해 주며 이마에 키스를 해 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키스는 정말 좋은데 이러다가 발이 남아나지 않겠어!

그녀는 그런 그의 발을 더 밟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연습했다. 그렇게 그런 시행착오 끝에 그녀의 춤 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네 발의 감촉도 좋은데.’

그의 작은 욕망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연회 당일이 되었다. 그녀는 수많은 시녀들에 의해 치장을 받았다. 몸을 씻고 화장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배고파.’

그러나 그녀는 시녀들의 치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빨리 이 모든 과정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각종 분내를 맡으며 화장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윽…… 숨 막힌다.’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꽉 맨 코르셋, 밑이 퍼지는 하늘빛 드레스와 다소 수수해 보이지만 단아하면서도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달린 귀걸이와 반지, 그리고 강한 향수 냄새 때문에 그녀는 토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 목걸이는 안 빼 가서 다행이야.’

라이넨이 준 ‘기적’의 목걸이가 다행히 치장과 잘 어울렸기에 시녀들은 거기까지 건들지는 않았다. 이것 덕분에 그녀는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으로 있을 수 있었다.

“머리가 짧아 묶을 수가 없어 머리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고 루비로 만들어진 장미꽃이 박혀 있는 머리띠를 그녀의 머리에 끼워 주었다. 시녀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일어났다. 그녀는 그만큼 예뻤다.

“끝났습니다.”

그녀는 다 끝났다고 하는 소리가 그렇게 행복한 말인지 몰랐다. 거울을 볼 틈도 없이 주저앉은 그녀는 시녀들이 다 물러가고 나서야 안정을 찾았다.

“그래, 이게 바로 자유지.”

그녀는 준비 과정에 너무 질려 거울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웠다. 순간 머리가 눌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머리야 빗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누워 있었다. 숨통이 트였다.

“휴, 피곤하다.”

그녀는 연회 경험이 별로 없었다. 어렸을 적이야 어머니를 따라서 몇 번 참여했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그녀는 어느 연회가 있든지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런 것 자체가 어색했고 피곤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연회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장 잠들었다.

똑똑.

그때 작게 노크 소리가 들려 오며 라이넨이 들어왔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다.

하얀 얼굴, 내려간 눈꼬리와 오뚝한 코, 붉은 입술은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걸친 모든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녀에서 여인이 된 그녀의 싱그러움은 쳐다보지 않으면 죄가 될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모습에 황홀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이 앞으로 자신과 평생 함께할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

“…….”

그가 너무 열렬하게 쳐다봤던 탓일까, 곧 그녀의 눈이 떠졌다. 그의 황금색 눈과 그녀의 갈색 눈이 마주쳤다.

“안녕?”

그가 인사했다. 그는 그녀의 본래의 눈 색이 보고 싶었다.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보다 더 푸르고 광활한 하늘을 품고 있는 눈동자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목걸이를 풀어냈다.

“앗.”

그녀가 작게 놀람의 소리를 내었으나 상관없었다. 이미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보이는 순간 그는 매료되어 버렸으니까. 난 평생 저 눈동자가 품고 있는 바다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랑해.”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목을 껴안으며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그는 그녀의 말에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는 볼에 짧게 키스했다.

“예뻐.”

그녀는 그의 달콤한 말에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여기서 시작한다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제했다. 그러나 그게 그를 자극하였다. 그는 마치 맹수가 물어뜯듯이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앗!”

그녀가 놀라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는 갈증이 난 듯 재빨리 혀를 그녀의 입술에 넣었다. 그녀가 놀라 그의 목을 더 세게 껴안았다. 너무나도 꿈같아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흐읍!”

그녀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가 잠시 동안만 입술을 뗐다. 그러나 그녀의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보자 그는 다시 격한 욕망에 휩싸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저돌적으로 입술을 부딪쳐왔다.

혀와 혀가 입 안에서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타액이 거칠게 섞이고 그 안에서 그들은 쾌락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더 갈증이 났다.

더, 더, 더. 너를 느끼고 싶다.

그는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모든 것을 취하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 대신 볼을 만지며 더 세게 부딪혀왔다. 드레스가 구겨졌다. 화장이 지워졌다. 그러나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그 행동에 놀라 그의 옷을 꽉 움켜 주었다. 시종들이 입혀 주었던 카키색 제복이 그녀의 손길에 무참히 구겨졌다. 그의 넘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황족을 상징하는 어깨띠도 바닥에 떨어졌다.

똑똑.

노크 소리가 그들의 격정적인 시간의 끝을 고하였다. 카샨이 둘의 몰골을 보고 경악하여 소리쳤다.

“이제 곧 입장해야 하는데 그런 짓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카샨은 재빨리 사람들을 불렀다. 시녀들은 재빨리 그녀의 입술과 얼굴에 다시 화장을 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다시 빗겨 주고 머리띠를 똑바로 씌웠다. 드레스를 다시 펴고 혹여나 떨어진 보석이 있는지 확인하였다.

또한 라이넨의 담당 시녀들도 그의 구겨진 옷을 정리하고 떨어진 어깨띠를 다시 걸쳤다. 그리고 황가를 상징하는 브로치의 위치를 다시 고정하고 머리를 올렸다.

“입장하겠습니다.”

이제 진짜로 연회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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