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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탄신 기념 무도회 (2) (22/93)

21. 탄신 기념 무도회 (2)

라이넨이 맞이한 황태자비는 귀족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라이넨의 생일 기념 연회가 사실은 그의 신붓감을 찾기 위한 연회였다는 것을 모르는 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황태자파는 라이넨의 권력을 더 탄탄하게 하기 위해 영애들을 차출했고, 귀족파는 라이넨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의 딸들을 회장에 보냈었다. 그 이외 다른 곳에서도 왔으나 했으나 결국 라이넨은 일주일 동안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모두를 발칵 뒤집어 놓을 발언을 터트렸다. 나는 아무도 신부로 맞이하지 않겠다!

그들은 모두가 다 충격에 빠졌다. 이미 저 발언을 한 것만으로도 라이넨은 정치적 부담을 떠안았다. 황족의 말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공적인 발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는 오명을 썼다.

그로 인해 귀족파는 득세했다. 그들은 약속도 지키지 않는 황족이 어떻게 차기 황제가 되어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냐고 말하며 신랄하게 그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황태자를 라이부스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물론 황태자파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반박했다. 아직 라이부스는 어린 데다 연회는 또다시 열면 되고, 그때 황태자비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도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그들이 싸우는 사이, 라이넨이 사고를 쳤다.

갑자기 웬 출신도 불분명한 여자를 황태자비랍시고 앉혀 놓은 것이다!

백성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으나 황궁의 사용인들을 통해 귀족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그 사실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양쪽은 모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황태자파는 갑작스러운 라이넨의 혼인에 당황했고, 귀족파는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라이넨이 약속을 지켰으니 더 따질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왜 어째서 혼인을 비공개로 처리하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에 귀족파는 곧장 황태자비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라이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국 안건 회의실에서 그 점에 대해 콕 집어 물었다. 황태자비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일부러 그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니냐고.

<내가 어떤 사람을 데리고 왔는지는 거기 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때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만?>

그러나 라이넨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그들의 공격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 황태자비가 자신의 정치적 약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면 돌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는 황태자파는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입지에 방해가 되는 황태자비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이기에 그렇게 싸고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그 황태자비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답답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도대체 황태자비에게 무엇이 있기에 그렇게 숨기고 드는 걸까?

그리고 그건 제국 공신 가문의 가주인 입실롯 후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그는 은밀하게 라이넨의 집무실에 들어가서 소문의 그 황태자비의 양아버지 역할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전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게 이 모든 일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없으십니까?>

<난 자네를 믿네. 비에 대해서 알려 하지 말게. 내가 모든 걸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려 주게. 내가 자네를 버리게 만들지 말게.>

후작은 아들만 셋이었다. 그래서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노래를 하고 다녔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딸이 생길 줄은 몰랐다.

“후작,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아는 것이 있습니까?”

“전하께서 후작에게 귀띔해 주신 것이 있습니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휴…….’

후작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황태자파 귀족들은 자꾸 그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자신도 모르는 일인데 자꾸만 물어보니 머리가 아팠다.

황태자파 귀족들이 혼란스러움에 웅성거리고 있는 사이, 2황자 라이부스를 지지하는 귀족파들이 큰 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황제 폐하께서 황태자 전하께 너무 너그러우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13년 전 사고 때문에 너무 물러지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결정을 바꾸실 때가 되셨습니다.”

“2황자께서도 요즘 수많은 성과를 보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황태자의 자리가 바뀔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2황자 전하만큼 황좌에 어울리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닥치시오! 황태자 책봉은 어디까지나 황제 폐하의 뜻. 그걸 어찌 당신들이 결정할 권리가 있단 말이오.”

“요즘 황태자 전하께서 웬 여자에게 정신을 못 차리고 계신다는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황제 폐하께 이 제국을 물려받으실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황태자파와 귀족파가 격렬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 공신 가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들 역시 그 말이 다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하나였다.

‘마법 계승’.

라이넨은 첫째라는 점 때문에 계승 대상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만일을 위한 ‘임시 계승자’일 뿐이었다.

마법 계승, 이것은 황제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유일한 후계자에게 계승하는 힘이다. 이 마법을 계승할 시 이때까지 쌓았던 초대 황제들의 지식과 마력이 후계자의 것이 된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황제로 즉위한 후, 제국 전체를 감싸는 결계를 만들어 죽을 때까지 관리한다.

이것이 바로 루미니르 제국이 대륙 제일의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대부분의 귀족은 알지 못한다. 초대 황제가 죽기 전 마력의 존재를 감추라는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존재는 황제, 황후, 계승 당사자, 교황, 황제의 수석 시종, 그리고 제국 4대 공신가문의 가주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물론 카샨의 경우 정보국장임과 동시에 레미아치 가문의 후계자이기에 예외다).

그랬기에 루미니르 제국은 딱히 황위 계승 싸움이 없었다. 마법 계승자는 초반에 정해 놓고 시작한다. 또한 상대편에서 납득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이 있기에 상대는 커가며 자연스럽게 후계자를 비호한다.

게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전에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던 상대편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계승자가 마법으로 그들을 다 처참하게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 불문율처럼 황태자가 정해지면 상대 쪽에서 나서서 황태자를 지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라이부스 황자가 너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라이넨 역시 대타였고, 라이부스 역시 딱히 뒤처지는 점이 없었다. 신체적인 능력이야 아직 라이부스가 어리기 때문에 밀리지만 그거야 성장하면서 따라가면 될 것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귀족들은 마법 계승에 대해 모른다. 또한, 라이부스가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그를 황태자로 올리면 안 되냐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세력이 점점 커져 위협이 될 정도였다.

물론 세력 자체는 라이넨 쪽이 훨씬 컸다. 일단, 이쪽에는 4대 공신 가문이 모두 존재하는 데다가 발언권이 센 귀족들은 대부분 그의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라이넨이 여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업무마저 나 몰라라 내팽개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언제든지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점이다.

게다가 마법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신체와 제국을 위한 봉사, 황제로서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라이넨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 여자와 제국을 선택하라는 조건이 들어왔을 때 그 여자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로 황태자를 바꿔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걱정이 된 것이다. 후계자가 라이부스로 바뀌면 라이넨은 죽어야 하기에.

특히 카샨이 속해 있는 레미아치 가문의 수장, 레미아치 백작은 걱정스러웠다. 아들을 통해 들은 것이 많기도 했고, 정보 가문의 수장인 만큼 보이는 것이 많았다.

‘상황을 한번 살펴봐야겠군.’

그렇게 귀족들이 한창 말싸움을 하고 있을 때, 황족이 등장하는 나팔이 울려 퍼졌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황족들의 등장에 절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흘끗 소문의 그 황태자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여쁜 꽃과도 같은 얼굴, 단아함이 흘러넘치는 몸짓과 예법, 고상한 모습까지. 귀족파들은 그녀에게서 흠집을 낼 만한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완벽했다. 그들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황족들이 단상에 있는 옥좌로 향했다. 황제는 제일 앞에 있는 자신의 옥좌에 앉았다. 황후가 그 옆에 앉았고, 라이넨과 카니벨라는 그 뒤에 앉았다. 황제는 자신들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짐이 이 세상에 나온 날이다. 이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여, 나의 탄신일에 와 준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표하며 오늘 하루 자네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바라겠네.”

그리고 곧장 웅장한 노래들이 울려 퍼졌다. 귀족들이 줄을 서서 황제에게 진상할 품목들을 가지고 왔다.

“황제 폐하, 이건 레미우스 왕국에서 가져온 차이옵니다.”

“이건 저 먼 대륙에서 온 광물입니다. 철보다 더 튼튼한 재질을 가지고 있는…….”

“라소니 왕국의 꽃차…….”

“항구 도시에서 나온 특산품…….”

카니벨라는 황제에게 진상하고 있는 귀족들을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지루함을 느꼈는지 옆에서 라이넨이 귓속말을 하였다.

“이게 끝나면 곧 춤을 출 수 있을 거야.”

“기대되는데요, 스승님.”

그때, 그녀의 양아버지인 입실롯 후작이 황제에게 진상하고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황태자비마마,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이리 얼굴을 보니 좋은걸요.”

귀족파들은 혀를 씹었다. 불분명한 신분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으려 했는데 라이넨은 이미 그에 대한 대비책을 다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자신 있게 판단은 나중에 해 보라고 말한 것이다.

한발 늦었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이를 갈았다. 눈 가리고 아웅 이긴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그녀를 내쫓을 명분이라는 게 사라진 셈이다. 불분명한 출신은 공신 가문의 양녀라는 것으로 덮어 버린 셈이었다.

그사이, 진상이 끝나고 춤을 출 시간이 되었다. 그에 맞게 음악이 바뀌기 시작했다. 경쾌한 음악에 따라 황제와 황후가 손을 잡고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제 일어나자.”

라이넨의 손길에 그녀는 웃으며 그와 함께 나왔다. 그리고 그가 장난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레이디, 나와 함께 춤을 추시지 않겠습니까?”

“언제든지.”

둘은 홀 중앙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전히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라이넨은 카니벨라를 부드럽게 리드하였다. 그들은 음악에 맞춰 부드럽게 돌았다. 딱 달라붙은 드레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유연하게 움직였다.

음악에 맞춰 그들의 몸이 가까워졌다. 그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이제는 내 발을 밟지 않아도 돼서 긴장 안 하는데?”

“이미 오래전에 졸업했어.”

그들의 경쾌한 춤은, 아름다운 모습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선남선녀였고, 마치 하늘이 맺어 준 인연처럼 잘 어울렸다.

“으윽……. 너무 잘 어울려!”

“아니야, 난 인정할 수 없어!”

“안 돼! 황태자 전하는…….”

그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에 귀족 영애들은 애꿎은 부채를 부수거나 손수건을 물어뜯었다. 그런 영애들의 모습을 슬쩍 보며 그녀가 말했다.

“당신, 인기남인데.”

“그래도 내 눈에는 너밖에 안 보여.”

“당연한 소릴 하네.”

그러나 그들이 울부짖거나 말거나 그와 그녀는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시간 나는 때 마다 틈틈이 함께 춤 연습을 했지만 파티용 드레스와 제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둘은 빙글빙글 돌며 서로를 향해 사랑을 속삭였다.

“너 오늘 너무 멋져.”

“사랑해.”

“나도 사랑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혼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날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좋아서 그들은 서로에게 더 깊이 빠져들었다.

“이제 갈까?”

“그래.”

서로에게 사랑 고백을 하다 보니 벌써 음악이 끝났다. 그가 그녀의 손등에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댔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잘 만들어진 조각품과 같이 빛났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흑흑, 황태자 전하…….”

“저, 저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음악이 다소 발랄하게 바뀌었다. 나이가 어린 귀족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사람들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 오니까 뭔가 기분이 좋아져. 널 처음 만난 곳이라서 그런가?”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첫 만남 장소는 테라스 위에서였다. 그러나 이 정원도 시원함을 내뿜고 있었고, 둘만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설렘을 유발했다.

“좋다. 비밀 장소야?”

“정원사가 나만을 위해서 만들어 준 정원이니 그 말도 맞겠지.”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정원은 황제의 명으로 정원사들이 전 황후만을 위해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꽃을 매우 좋아해서 제국 곳곳에 정원을 만들어 놓고는 했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사랑의 고백을 했던 곳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벌써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1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때가 종종 있어.”

“그만큼 나와 보낸 시간이 좋았던 거 아니야?”

라이넨의 말에 카니벨라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본래는 이곳을 걸으며 대화를 하려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불가항력이야.”

“뭐?”

“만약 내가 계약을 어기게 된다면 그건 바로 네 탓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안아 들고는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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