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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29. 화해? (30/93)

신데렐라의 눈물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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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화해?

둘의 냉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둘의 사이는 온 궁에 퍼졌다. 시녀들은 수군거렸다. 황태자비가 왜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부터 도대체 황태자가 무엇을 했기에 저렇게 되었냐는 소문까지.

궁은 소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하루에도 온갖 추측이 떠돌았고, 귀족들은 난리였다. 회의 때마다 황태자비를 바꾸느니 마느니 이야기가 나와 황제는 골치가 아파 머리를 짚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대체 귀족파들이 어떻게 황태자비의 탈출 시도를 알아챈 거지? 그리고 어떻게 징벌의 궁에 들어간 사실을 안 거야?

황제는 귀족파들이 수상했으나 그것을 추궁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황족이 자신의 의무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는 게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황제의 암묵적인 허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귀족들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라이넨에게 큰 타격이 가겠지. 결국 황제는 라이넨을 불러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둘의 사이가 이렇게 모두에게 퍼졌는지 추궁했다.

“…….”

라이넨은 침묵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그 또한 이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일이 많아져 바빠진 사이 아내가 유산을 했고, 궁을 떠나 도망쳤다는 것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아내가 그를 이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는지도 알 수 없었다.

라이넨 또한 루카민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외면을 당한 것이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에게 떠오른 표정을 보며 저놈도 영문을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황제 또한 카니벨라가 왜 갑자기 떠나겠다고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다고 하니까 냅다 그렇게 하라고 한 것에 불과했다.

황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부자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후우…… 물러가거라.”

“네.”

그는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궁으로 들어와 집무실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카샨이 품에 가득 서류를 안고 들어왔다. 카샨은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이야.”

“무슨 일이지?”

“백성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졌어.”

“무슨 소문인데?”

“보는 게 좋을 거야.”

카샨은 제일 위에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갑자기 배에 나타난 황태자가 순식간에 묘령의 여인을 데리고 사라졌는데 그 사람이 황태자비다. 그런데 그 황태자비가 알고 보니 대륙에 있는 자신의 연인을 보기 위해 그 배에 탔다고.

라이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짜 말이 안 된다. 카니벨라는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라소니 왕국의 궁에 유폐되다시피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다른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탈출을 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라이넨은 카니벨라에게 이런 더러운 소문이 붙어 있다는 사실조차 불쾌했다. 누군가가 이런 소문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분노를 유발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바쁜 시기에 갑작스럽게 이런 소문이 돌아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모의 냄새가 나는군……. 혹시 귀족파의 소행인가?”

“조사해 볼게.”

“부탁한다.”

카샨은 누구보다도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단 카샨에게 이 일을 위임했다. 그리고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그의 손에서 땀이 나고 환청이 들렸다.

<……넨! 위험해!>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이것을 아직 떨쳐 버리지 못했다. 죽은 어머니와 형이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마마마, 행복은 왜 이리 멀기만 할까요…….”

그는 중얼거렸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늘 들려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며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일어났다. 너무 방에 박혀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바람이나 쐐야겠다.’

그는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의 직속 시종과 시녀들이 따라 나왔다. 그는 적당한 장소에서 그들을 물리고는 생전에 자신의 어머니가 가꾸었던 정원 중 하나에 들어갔다.

“…….”

꽃향기가 풍겨 왔다. 그리고 바람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듯 불었다.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이번에도 작년처럼 그 정도 규모로 해서 출발하면 되겠군.’

떠나기 전까지는 한 달 정도가 남았다. 그는 재빨리 서류를 처리하고 전날에는 카니벨라를 만나 대화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   *   *

징벌의 궁에 갇혔지만 카니벨라의 일상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냥 예전처럼 책을 읽었다. 또한 예전과 달리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집요하게 찾아오는 레이를 끊임없이 신경 써야 했다.

“이제는 네 처소로 돌아가는 게 어때.”

“전하…….”

“난 벌을 받고 있는 황족이야. 아니, 이제는 황족인지도 잘 모르겠군.”

“…….”

“그런 나를 보필하겠다는 건 너 스스로도 출세의 길을 버리겠다는 것과도 같다. 안 그래도 평민인 네가 더 이상 피해 보는 것을 보고 싶지 않구나.”

“전하…… 전 결심을 굳혔어요. 전하를 계속 보필하고 싶다고요.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그녀는 왜 레이가 이토록 자신을 돌보는 것에 대해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순수한 호의는 믿지 않았다. 레이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마마마께서 말씀하셨지.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사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에오라의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가족관계, 집안 사정, 성격 등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이름이 ‘레이’라는 것만 알 뿐.

게다가 에오라는 그녀가 징벌의 궁에 갇힌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징벌의 궁에 갇히면 징벌의 궁 담당 사용인들과 황족 이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레이는 어떻게 시선을 피하는지 매일매일 궁에 찾아왔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게 좋겠지.’

레이를 지켜보는 그녀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그런 그녀의 날카로운 기세를 느끼지 못한 듯 레이는 향을 피웠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머물던 곳에 비해서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향을 피워 보았습니다.”

“그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그녀는 어디선가 맡아 본 것만 같은 냄새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묘하게 익숙한 냄새였다.

향이 올라가자 레이는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와 다른 눈빛이었다.

“전하, 할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전하는 저를 믿으십니까?”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왠지 믿고 있다고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입이 제멋대로 열렸다.

“……믿는다.”

“그럼 저와 거래 하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거래에 응해 주신다면 전하를 여기서 나가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탈출 시도야 자신의 전속 시녀였던 레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실패한 탈출을 시켜 주겠다고?

코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황제와 짜고 쳤는데도 실패한 탈출을 네가 무슨 수로 시켜 줄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입은 이번에도 멋대로 열렸다.

“하겠어. 어떻게 하면 되지?”

그러자 레이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녀는 묵묵히 들었다. 막무가내 같으나 나름 체계적인 계획이었다.

“전하께서는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대신 나중에 제 소원 하나를 들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도록 하지.”

그녀의 대답에 레이는 만족한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은은한 향냄새가 방 안에 가득 퍼졌다. 그러자 레이는 향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향이 독합니다. 30분 후에 문을 닫으시면 됩니다.”

그녀는 내심 향이 좋다고 생각했다. 뭔가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것 같은 냄새였다. 몸이 구름 위를 부유하는 것 같은 충족감. 그러나 레이는 더 이상 피우면 시녀들에게 발각될 수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레이는 문을 열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레이가 사라지자 그녀는 창틀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탈출할 수 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황족을 기만한 죄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독이 든 성배였다. 실패하면 죽는다. 그러나 성공하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이 황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게 비록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살게 할지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해. 그럼…… 이제 화해를 해야겠지?’

이번 작전의 핵심은 바로 라이넨과의 화해. 그녀가 승낙한 순간, 작전은 시작되었다.

라이넨은 여느 때와 같이 서류 결재에 한창이었다. 눈이 아파 눈을 매만지다 창문을 보니 저 멀리 징벌의 궁이 보였다.

“…….”

그녀가 있는 곳은 너무나 멀었다. 그는 퍼져 가는 노을에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리면서도 카니벨라가 있는 곳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보고 싶군.’

평화로운 장면이었다. 북부의 산사태 해결, 둘 사이의 유언비어 해결, 황족 묘 방문 절차 및 수행원 선정까지 그는 너무나도 바빴다. 그런 가운데 생긴 짧은 휴식 가운데서도 그녀는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서 묘한 슬픔을 느껴야 했다. 이 좋은 풍경을 나 혼자서 보고 있다니.

그러나 이윽고 들린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뜨렸다.

“무슨 궁상이야.”

묘하게 떨떠름한 목소리, 카샨이었다. 그는 더운 듯 팔을 걷어붙인 채 손으로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여름이었다.

“그냥 노을이 아름다워서 보고 있던 것뿐이다.”

“웃기고 있네. 너 지금 그 여자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그는 피식 웃었다. 오랜 지기는 그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 말마따나 그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특히 마지막에 싸우면서 헤어졌기에 더했다.

‘빨리 화해하고 싶은데…….’

“어차피 전부 다 막바지 아니야. 오늘 서류는 내가 결재해 줄 테니까 가서 그 여자나 보고 와. 지금 너 보니까 꼬리 흔드는 강아지 같다.”

“…….”

“그거 다 그 여자가 먼저 연락한 거야. 그러니까 가서 이야기나 좀 해.”

카샨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기쁘지만 차마 그걸 티 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아, 빨랑 가!”

카샨의 부추김에 그는 그녀의 궁으로 향했다. 그는 이게 꿈이라면 절대로 깨지 않기를 바라며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예전과 같이 환하게 웃음 짓는 카니벨라였다.

“왔어?”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꿈이 아닌가 싶어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그를 가볍게 안고 여러 말들을 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에 온 힘을 쏟아야 했다.

“지금 이게, 꿈이 아니지?”

“아니야. 너와 난 현실 가운데 있어. 그러니 나를 만져 봐. 느껴지지 않아?”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 따뜻한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는 비로소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고마워. 나를 다시 받아 줘서.”

그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웃어 주었다. 그래서 더 감격스러웠다.

그는 아직도 그녀가 화를 낸 이유를 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로도 좋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 그것만으로 괜찮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 또한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느껴지는 박동과 따뜻한 체온에 그는 드디어 안심했다. 긴장이 풀리자 과도한 일로 인해 혹사당했던 몸이 피로함을 토해 냈다. 그는 다소 졸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나를 미치게 만드는데?”

그녀의 그 말에 반쯤 나른하게 눈을 감고 있던 그의 눈이 확 떠졌다. 뭔가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것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잠이 확 깼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야?”

“무, 무슨 소리야?”

“왜 그런 표정을 지어?”

그녀는 그의 부끄러움 어린 표정이 귀엽다고 말하며 그의 곁에 누웠다. 그리고 그를 껴안았다. 그는 그녀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꼈다.

아, 지금 여기서 흥분하면 난 짐승인데. 화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다면 아마 실망할 텐데! 제발 여기서 이러지 말라고!

그러나 그런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별개로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흥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모든 것이 느껴져 그는 미쳐 버릴 노릇이었다. 그는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풋!”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 너무 청아한 소리였다. 그의 욕망이 절정에 차올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그녀는 그의 욕망을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그러나 그 말이 고삐가 되어 그의 이성을 무너뜨렸다. 그는 나지막이 선언했다.

“이건 분명히 네가 시작한 일이야.”

“당연하지. 그렇고말고.”

그렇게 철저히 동상이몽의 밤이 시작되었다.

*   *   *

날이 밝았다. 커튼이 없어 창문 사이로 바로 햇빛이 비쳤다. 눈을 먼저 뜬 것은 라이넨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기 모습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이불을 말고 누워 있는 카니벨라의 이마에 키스하였다.

“다녀올게.”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자고 있던 카니벨라의 눈이 떠졌다.

“…….”

그녀는 곧장 방 옆에 딸려 있는 작은 욕실로 가서 몸을 씻었다. 온몸이 아팠다. 어제의 밤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흉터가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욕조에 물이 가득 넘쳤다. 수증기가 욕실에 가득 차 후덥지근했지만 그녀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냥 오직 어젯밤, 자신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키스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철저하게 계산된 눈빛과 계산된 말투, 그리고 행동까지. 모든 것은 작전에 따른 연기일 뿐이었다. 감정은 일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를 철저하게 기만했다.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이용했다. 그랬기에 증오 가운데서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어제 확실히 느꼈다.

‘라이넨은 아직도 날 사랑한다.’

몸짓, 말투, 행동 그 모든 것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쾌락 가운데서도 그녀를 배려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런 그의 행동에 당장에라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아니,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은 지금, 그녀는 레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이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오늘부터 라이넨이 궁에 없다고 하니 탈출에 수월하겠지.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몸을 씻고 난 후 욕실에서 나와 몸을 닦았다. 그리고 간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와 동시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비전하, 레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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