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 31. 밝혀지다 (32/93)

2부 - 31. 밝혀지다

한편, 카니벨라를 레미우스 왕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한 호위대는 발칵 뒤집혔다. 기사단장 루키에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해야 했다.

데리고 가야 할 공주는 납치라도 당한 것 같은 흔적만 잔뜩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주를 지켜야 할 병사들은 전부 잠에 취해 온 곳에 나자빠져 있었다.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그는 호통을 지르며 그들을 당장 깨웠다. 그리고 재빨리 공주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흔적은 절벽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단장님, 흔적이 이곳에서 끊겼습니다.”

“젠장!”

누가 봐도 카니벨라는 이곳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장소가 문제였다. 절벽 밑에는 한 해에만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는 악명의 계곡이 있었다.

그러니 공주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루키에르는 입술을 깨물고는 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부단장에게 말했다.

“에이린, 이 사태는 내가 직접 보고해야 할 성질의 것이니 너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수색을 계속하도록.”

“예, 단장님.”

그렇게 말한 그는 재빨리 말에 올라타고는 쉬지 않고 라소니 왕국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왕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이상입니다.”

그는 모든 일을 설명했다. 그런 그의 말을 들은 여왕은 울음을 터뜨렸고, 왕비는 진노했다. 사랑하던 아이가 그렇게 죽어 버리다니.

‘이상하군.’

그러나 란시엔은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체면이라도 살리기 위해 최상의 것들을 준비했었다. 딸린 기사나 노예들만 해도 수십. 어떻게 대규모의 인원이 투입되었는데 어떻게 공주가 사라질 수 있었을까?

그녀는 루키에르의 빠른 말을 복기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건 카니벨라 그년을 잡으면 다 해결될 문제다.’

그녀는 루키에르를 불렀다. 이런 일에 단쿤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자를 이용해서 카니벨라를 찾고, 자신의 모든 의문을 해소할 작정이었다.

“언니를 찾아와 줘.”

“하지만 공주마마는…….”

“아직 네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부탁할게.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부탁할 사람이 없어.”

“여왕 폐하께는…….”

“내가 부탁할게. 일단은 언니를 찾는 게 우선이야.”

카니벨라가 실종되었다는 걸 알면 레미우스 왕국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루키에르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제 목숨을 걸고 해내겠습니다.”

그는 란시엔에게 기사의 맹세를 하고는 일어났다. 란시엔은 성문까지 따라 나와 그를 배웅해 주며 위장 신분증을 건네주었다.

“반드시 공주마마를 찾아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에 올라탔다. 말은 경쾌하게 달리며 성문 밖으로 벗어났다.

그는 카니벨라가 어디로 갔을까 고민하였다. 그러나 그 산맥은 루미니르 제국, 레미우스 왕국 둘 모두로 통하는 곳이었다. 쉽사리 결정할 수가 없던 그는 일단 레미우스 제국으로 향했다.

‘루미니르 제국은 신분 확인이 철저한 곳이고, 왕국으로 귀환하는 것은 부담이 클 테니 이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행상인 신분으로 들어온 그는 카니벨라가 있을 법한 모든 곳을 뒤졌다.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보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군. 정보 상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어.’

대륙 전체에(시스티아 왕국 제외) 지부를 두고 있는 레미아치 가문이었기에 의뢰했다가 자칫 약점만 내주고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라소니 왕국이나 레미우스 왕국이 뭘 하든 제국이 뭔가를 알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시끄럽군.’

그는 수도에 있는 정보 상점으로 직행했다. 머리가 제대로 손질되지 않아 지저분한 남자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그를 맞이하였다.

“무슨 일로 오셨는가?”

“카니벨라 공주 실종 건.”

“오호…… 그 공주는 이미 죽었지 않나?”

“시체라도 찾아야 하는 게 내 명이라서.”

그러자 남자가 그를 이모저모 훑어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사단장까지 파견시켜서 찾다니 어지간히 급한가 보군.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공주는 여기에 없어. 애초에 여기에도 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말 그대로야. 그 여자는 실종된 그 장소에서 죽었다고 봐야 해. 왜냐하면 그 어디에도 들어갔다는 흔적이 없거든.”

“……!”

상인의 말을 듣고 그는 경악하였다. 카니벨라 공주가 죽었다니! 그는 믿을 수가 없어 상인이 들고 있던 서류를 빼앗듯이 받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카니벨라 공주, 레미우스 왕국에 가는 도중 실종

그러나 네오스 계곡 쪽에서 소식 끊김

신원불명 시체가 루미니르 제국 쪽으로 흘러감. 신원 조회 결과 카니벨라 공주임이 드러남]

루키에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죽었다니. 그래서 그는 현장을 그려 놓은 그림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완벽했다. 여자의 옷차림이나 모습, 물건들까지 정말 카니벨라였다.

“…….”

그는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돈을 내밀고 여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 전서구가 보였다. 그는 편지를 펼쳤다. 발신자는 란시엔이었다.

‘레미우스 왕국 측에서 카니벨라 공주를 내놓으라 하니 이대로 수습하고 귀국하라…….’

그는 완연한 더위를 내뿜고 있는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시간이 많이 지나기는 했다. 그때는 봄이었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빨리 귀환해야겠어.”

그리고 그는 편지를 다시 펼쳐서 꼼꼼하게 읽었다. 편지 안에는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다 외울 때까지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침이 되어 왕을 알현할 시간이 되었다. 그는 란시엔이 가르쳐 준 대로 말했다.

“공주마마께서 원인 모를 병 때문에 갑자기 중태에 빠졌습니다. 저희 모두 그에 신경 쓴다고 미처 왕국과의 혼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레미우스 왕국과의 우선 교역권을 걸었다. 늘 교역권에 혈안이 되어 있던 그들이었기에 쉽게 협상은 체결되었다.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

이제 라소니 왕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한편, 란시엔은 뒤늦게 귀환한 부단장이 쓴 보고서를 보는 중이었다. 루키에르에게 한 번 들었던 이야기지만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글로 보는 것이 훨씬 편했다.

“딸, 나는 이제 자러 가도 괜찮을까?”

그때, 뮤일라가 잠옷을 입은 채 모깃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란시엔은 집중을 흩뜨린 어머니에게 짜증이 났다.

“가세요.”

뮤일라는 마치 벌레를 쫓듯 손을 휘휘 젓는 딸의 모습에 화가 살짝 났지만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란시엔이 무서웠다.

‘잘못했다가는 나도 죽을 수도 있어.’

예전에 란시엔이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뮤일라는 딸에게 밉보였다가는 죽을까 봐 두려웠다.

“그럼 갈게…….”

그리고 란시엔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재빨리 사라졌다. 란시엔은 그런 어머니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보고서로 눈을 돌렸다. 결재해야 할 서류는 한가득 남았지만 그녀에게는 이 보고서가 가장 우선이었다.

‘진짜 그년이 죽었는지 알 필요가 있어.’

루키에르의 기지로 시간을 벌었지만 카니벨라가 진짜 죽었다면 큰일이었다. 아무리 레미우스 왕국이 낙후된 곳이라도 라소니 왕국은 그보다 더 힘이 없는 나라였다. 뒤늦게 공주가 없다고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렇기에 카니벨라의 죽음이 확실시된 경우, 대체할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반대로 그녀가 살아 있다면 빨리 데리고 와서 혼인을 다시 시켜야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

보고서에는 기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부 잠들어 아무도 모르게 납치가 이루어졌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다. 또한 납치의 예상 시각과 경로, 수법, 각종 흔적들이 정리되어 그녀는 쉽게 사건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웬 모르는 남자가 와서 요리를 도와줬다…….”

그녀는 서류를 책상에 올린 뒤 손톱으로 콕콕 눌렀다. 그녀의 습관이었다. 어둠 뒤에 서 있던 단쿤이 나타났다.

“딱 봐도 그 남자가 수상하군요.”

“그건 나도 알아. 몽타주 같은 게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없군.”

“아쉽군요. 그 요리사가 살아 있었더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수상한 것은…… 이 흔적들이 마치 의도된 흔적 같단 말이야.”

“의도된 흔적이요?”

그녀는 복원된 마차 바퀴 흔적을 짚으며 말했다.

“병사들이 정확하게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는 모른다. 어느 시간에 전부 잠들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굳이 눈에 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마차를 끌어야 할까?”

“공주가 반항할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이 납치범이 비범한 실력자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뛰어나다고 말하기도 아까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 정도 실력자라면 공주를 제압하기도 편했겠지. 그냥 기절시키면 되니까.”

“흠…….”

“게다가 그 계곡 근처에서 부서진 마차 조각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정확한 경위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난 이게 자작극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단 말이야.”

그녀의 말에 단쿤의 표정도 묘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게다가 애써 밀어 넣었던 가설이 불쑥 다시 솟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신에서는 마치 두 사람이 공격한 것 같다는 소견이 있었지. 만약에 공격을 한 사람이 카니벨라와 납치범이라면……?’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카니벨라가 결국에는 제정신이었다는 것이고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년, 분명히 살아 있다.”

“하지만 루미니르 제국에서 이미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국이랑 둘이서 짜고 자작극을 벌였을 수도 있지.”

“그 여자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제국과 연결되었겠습니까? 전 억측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확실히 현 라소니 왕국의 실세는 란시엔이었다. 뮤일라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라소니 왕국의 모든 것이 그녀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카니벨라의 존재는 사람들 속에서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카니벨라가 루미니르 제국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황실이 바보도 아니고 무작정 공주라고 주장한다 해서 받아 줄 리도 없었다.

‘그럼 일단은 접어 둬야겠군.’

그녀는 표정을 찌푸렸다. 카니벨라가 건들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그렇다면 일단 납치범 쪽을 찾는 게 우선이다.”

“네, 그 기사를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자를 불러오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단쿤은 나타났을 때와 같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책상을 두드렸다.

‘넌 분명히 살아 있어…….’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믿었다. 분명히 카니벨라는 살아 있고, 제국과 관련 있다고 믿었다. 무슨 수를 쓴 것임에 틀림없었다.

“반드시 넌 내 손으로 없애 버리겠어.”

그녀의 손에서 서류가 구겨졌다. 그리고 그것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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