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추적
루키에르는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은 명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주군 앞에서 당당하게 보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란시엔의 부름에 긴장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란시엔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녀는 그저 그의 고생을 치하했다.
“수고했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네가 원해서 찾지 못한 것도 아니고 괜찮아.”
“……아닙니다.”
그녀는 루키에르의 감정 저 밑에 깔려 있는 상심을 건드렸다. 이번에도 넌 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다면 네게 부탁을 해도 될까.”
“무슨 일입니까? 무엇이든지 반드시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해. 이번에 카니벨라 공주를 납치했던 자가 있지? 그자를 찾도록 해.”
“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과를 내겠습니다.”
그녀는 싱긋 웃었다. 이자는 너무나도 단순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용하기에는 딱이었다.
“밖에 나가면 너를 도와줄 자가 있다. 그자와 함께 진행해 보도록 해.”
“예, 감사합니다.”
루키에르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란시엔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자 예쁘게 생긴 초록 머리의 남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칸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예, 제가 바로 란시엔 공주마마의 명을 받고 당신을 도울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레칸트에게 악수를 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런데 묘하게 단단한 손이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레칸트 가문은 처음 들어봅니다.”
당연했다. 레칸트 가문은 타 대륙에 있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 조작하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 기본이었다. 실제로 레칸트 가문이 정보를 다루기는 하였으니 완전한 거짓말은 아닌 셈이었다.
“저 먼 지방에 있는 자그마한 가문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수도에 처음 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번에 공을 세우면 중앙에 진출할 수 있을 테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번화가에 나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레칸트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저택에 들어갔다. 보고서의 사본을 펼친 레칸트는 이내 날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시작해 볼까요?”
그 말에 루키에르는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론이 나올 때였다. 루키에르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에 대해 말했다. 레칸트는 중간에 질문이 있으면 물어보고, 기록을 해 가며 말에 경청하였다.
“…….”
레칸트는 생각에 잠겼다. 오랜 기간 웅크려 있던 카니벨라 공주가 움직였다. 그렇다면 그 조력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러나 조사 대상은 쉽게 좁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력자 후보는 최소 3~6년 전에 실종된 귀족으로 한정 지으면 됩니다.”
“실종된 귀족?”
“카니벨라 공주가 어린아이가 된 것이 언제죠?”
레칸트는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하였다. 루키에르는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다. 라소니 왕국의 백성이라면 6년 전 화재 사건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러나 환하게 빛나는 초록빛 눈을 보자 아무런 의문을 제시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6년 전 사고 이후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3년 전이었죠.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쳤기 때문입니다.”
“오호.”
“적어도 그때가 되어야 조력자가 등장했을 겁니다. 평화로울 때야 굳이 그런 게 필요하지 않죠.”
“그런데 왜 귀족입니까?”
하나를 알면 둘을 알아야 하건만, 이 기사는 좀 멍청한 거 같다. 레칸트는 속으로 혀를 차며 정답을 말해 주었다.
“라소니 왕국에서는 2년 이상 실종자 처리된 사람은 최종적으로 사망 처리됩니다. 그게 법도입니다.”
“……!”
“그러니 실종 시기가 사고 때와 겹치는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그렇군요.”
루키에르는 이 법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 그의 기세를 눈치챘는지 레칸트는 말했다.
“제가 귀족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단 제일 먼저 조력자가 되려면 적어도 카니벨라 공주와 안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공주에게 접근하기 가장 쉬운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시녀나 시종들……?”
“맞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귀족!”
“방금 기사단장께서도 실종 관련 법안을 처음 들은 눈치이던데 귀족인 기사단장도 모르는 것을 평민들이 과연 알까요?”
“…….”
“당연히 모릅니다. 백성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1년에 얼마의 세금을 언제 내느냐 이 정도만 알고 있겠죠. 아니면 세금을 내지 않았을 시 받게 되는 처벌에 대해서라든지.”
“그렇군요…….”
루키에르는 그런 레칸트의 추리력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레칸트는 여기서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 범인은 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귀족들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고위자제들이라면 이런 법에 대해 술술 꿰고 있을 가능성이 크죠. 그러니 범인은 이걸 필시 알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귀족이면서 동시에 실종된 지 2년이 훌쩍 넘은 사람. 루키에르는 단번에 대상을 특정한 레칸트를 보며 감탄하였다. 과연 란시엔이 데리고 온 사람다웠다. 란시엔 공주는 완벽주의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희망을 얻은 루키에르는 레칸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모든 시녀 및 시종들의 명단을 조사하면 됩니까?”
“그런 셈이죠.”
“감사합니다. 그럼 어떻게 조사를 나누면 될지…….”
“일단 기사단장께서 자료를 주시면 제가 그것을 세부적으로 조사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마음이 급해진 루키에르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떴다. 그런 그를 보며 레칸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디 우리가 잘 이용할 수 있는 착실한 말이 되어 달라고…….”
레칸트의 도움으로 단서를 찾은 루키에르는 먼저 탐문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카니벨라 공주의 최측근들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시녀장에게 가 시녀들의 명단을 받아 왔다.
‘이건 뭐, 시녀들 중에서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군.’
시녀들은 정말로 많았다. 특히 실종자 및 사망자까지 함께 달라고 하니 서류가 방 하나를 다 채울 정도였다. 일단 그는 현재 카니벨라 공주의 궁에 소속되어 있는 시녀들은 전부 뺐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쌍하군. 시녀들에게까지 방치되는 공주라니.’
원래 카니벨라는 시녀들에게 사랑받는 공주였다. 그러나 그녀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자, 그들은 바로 뒤돌아섰다. 게다가 보필할 때 너무 막 대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여서 제삼자인 그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적인 감정을 섞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얼추 분류하고 나니 방 하나를 채우던 양이 그의 키까지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팔랑팔랑.
방 안은 온통 종이 넘기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는 공부 머리가 아니었기에 머리가 아팠지만 시녀들의 인적사항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사람은 딱히 없었다.
‘피로하군.’
기록에는 없지만 시녀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같은 게 있을까 싶어서 그쪽을 찔러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시녀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고, 시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떠들어 댔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시종들을 걸러내는 것도 비슷한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렇지만 이쪽도 딱히 소득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기사들인가. 제1 기사단…….’
그는 마음이 복잡했다. 제1 기사단은 그가 동경하던 기사 루카민 타키라이가 단장으로 있던 기사단이었다. 그 당시 다른 기사단은 여왕이 내린 다른 임무를 수행하거나, 사건의 범인을 찾거나, 훈련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있던 상태였다.
그랬기에 그 사건 당시에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것은 1 기사단이었다. 그때 여왕과 공주를 호위하다가 대다수가 죽었고, 부기사단장이 배신자임이 밝혀져 기사단 전체가 해체되었다.
모두가 사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고, 루카민을 비롯한 일부가 실종되어 잠시 동안 수배되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는 사실 1 기사단 사람 중 하나가 조력자라고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확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 기사단의 경우는 워낙 분명하게 사망자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루카민 기사단장을 비롯한 몇몇 실종자만 조사하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카니벨라 공주의 조력자로 의심 가는 사람의 명단을 정리하여 레칸트에게 전달했다.
“여기 있습니다.”
“오, 고맙군요. 이 사람들이 의심되는 사람들입니까? 생각보다 적군요.”
“아무래도 대부분이 확실하게 사망자로 명시되어 있거나 공주의 측근이 생각보다 적어 범위를 좁히기에는 수월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하도록 하죠.”
그렇게 루키에르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레칸트는 인적사항 보관소로 향했다. 그를 수상한 눈으로 보던 직원은 란시엔이 준 추천서를 가지고 오자 아무 말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정황상 1 기사단 소속이 조력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시종들은 아무런 연관성이 보이지 않았고, 실종된 시녀들은 아무리 봐도 카니벨라 공주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보고서에 쓰여 있는 그들의 일화에서는 딱히 느껴지는 게 없었다.
‘시녀들은 절대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군.’
그 당시, 조금이라도 사건과 연관이 되었던 시녀들의 가문은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가문이 사라지거나 중앙 자리에서 밀려 나갔다. 그런 그들이 과연 카니벨라를 도울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이후로 카니벨라는 어린아이 행세를 시작했다. 거의 감금과 같은 생활을 하며 조직의 암살자들에게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그러한 감시를 뚫고, 위험을 감수하고 저들이 그녀를 만나서 함께 일을 도모하려고 할까?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렇기에 그랬다. 기사들의 경우, 피해가 가장 심했다. 루카민과 일부 기사들의 실종과 습격으로 인한 사망과 배신자의 등장으로 기사단 전체가 몰살당했다. 그 여파는 그들의 가문에까지 미쳐 3대가 다 멸족되어 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게다가 기사들은 시녀들과는 다르다. 궁 안에서만 움직이는 시녀들과 다르게 기사들은 은밀한 임무를 받는 경우에는 궁의 아무도 모르게 나갔다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만약에 살아 있고, 은밀하게 공주의 궁에 들락날락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이자가 ‘그’를 죽였다는 건데…….”
‘그’는 뛰어나다고 말해도 부족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검사였다. ‘그’를 공격했던 사람은 두 사람으로 추정된다고 했었다. 정황상 한 명이 카니벨라 공주라면 다른 사람이 바로 그 조력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그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이 1 기사단 중에서 있을까?
아마 있다면 루카민 타키라이, 에이스, 라폰 정도가 다였다. 루카민은 라소니 왕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기사였고, 에이스와 라폰은 루카민의 제자로 스승과 마찬가지의 실력자들이었다. 검술 대회에 나오면 승리가 당연할 정도의 실력자들.
특히 에이스는 부기사단장으로 추천 받았으나 서류 작업하는 것이 싫어 이라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이 세 사람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해야겠군.’
그렇게 결심한 그는 한참 동안 서류를 펼쳐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는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왕국의 정보력이 이렇게 떨어질 수가 있는가!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수하들에게 이 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내려 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단 이틀 만에 정보를 가지고 온 그들은 그에게 정보를 내밀었다.
팔랑팔랑.
그는 재빨리 서류에 있는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실소를 터트렸다.
“허허……. 이게 사실인가?”
“네, 단장님.”
부하가 부복하며 말했다. 서류에 적혀져 있는 것은 에이스의 경우는 가족이 전염병으로 몰살, 타 대륙으로 떠났다고 되어 있었다. 이 이후의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그녀도 죽었거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라폰의 경우에는 우연히 사형장에서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본 후 미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범인은 루카민 타키라이밖에 없었다. ‘그’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인 동시에 기사단 소속, 그리고 실종자였지만 사망자로 처리된 사람.
“찾았다!”
이자가 바로 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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