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사형
란시엔은 곧장 들어오는 보고를 받았다.
“루카민 기사단장이 아직 살아 있다?”
“그런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정황상 그를 죽인 사람은 그자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서류를 펄럭거렸다. 그곳에는 레칸트의 생각과 사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맞는 말이군.”
그리고 나머지 사람과 달리 그냥 단순히 실종 후 사망 처리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실력자가 아직도 살아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자가 일단 어디에 있든 이곳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지.”
“생각하신 방법은 있습니까?”
“지금 생각 중이야.”
루카민은 신중하면서 은밀하다. 지난 3년간의 행적이 전혀 걸리지 않은 점에서 더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저 남자를 유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왜 숨어서 다니는 걸까?”
“예?”
“만약 어떻게든 죽은 자 처리되었더라면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굳이 카니벨라의 곁에 붙어서 그렇게 움직였을까?”
“그건…….”
그녀의 의문에 레칸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 역시 루카민이 카니벨라의 조력자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으나, 왜 루카민이 그렇게 행동했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알지 못했다.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리 정체를 캐기 위해서일까?”
루카민은 전 여왕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기사였다. 그렇기에 미제 사건으로 처리된 화재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정말 알고 싶을 터였다. 그러나 자신과 카니벨라의 상황 때문에 숨어서 할 수밖에 없을 테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유인해서 없애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체를 은밀하게 흘리는 게 어떨까?”
그녀의 말에 레칸트가 깜짝 놀라서 뛰었다.
“그건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저희의 정체가 만반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나 또한 그러한 위험성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자가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위험 부담을 져야 했다. 그리고 루카민은 충분히 위험한 자였다. 그녀는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걸리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놈이 가지고 있던 충성심이 진짜였다면 분명히 걸릴 것이다.”
그녀는 확신했다. 은근슬쩍 화재 사건의 범인을 흘린다면 그자는 반드시 이곳에 올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잡아서 죽여 버리면 된다.
“일단 그 말대로 해 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걸린 싸움은 절대 피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자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을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 * *
루카민은 생각보다 쉽게 잡혔다. 정보를 슬쩍 흘리니 바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왕비를 찾아간 것이 큰 문제였다.
‘안 돼. 만나기 전에 왕비를 먼저 죽여야겠어.’
안 그래도 왕비는 요즘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차를 마셨음에도 정신이 깨어난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루카민이 왕비와 접촉해 버린다면 위험했다.
“먼저 가서 왕비를 죽여.”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단쿤을 시켜 왕비를 암살했다. 그리고 루카민과 마주치게 해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재빨리 뮤일라와 군사들을 데리고 왕비궁을 습격했다.
“꺄아악!”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사이, 병사들이 숫자로 밀어붙여 루카민을 제압했다.
“네가 감히 왕비를 죽인 것이냐?”
그녀가 시킨 대로 뮤일라는 위엄 있는 표정으로 루카민을 추궁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자를 옥에 보내도록. 사형시켜야겠다.”
뮤일라의 말에 루카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때, 그녀는 자신을 쏘아보는 루카민의 시선을 느꼈다. 속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내가 누군지 알아차린 거야?’
그녀가 아무리 평소에는 대담해도 자신을 죽일 기세로 뿌리는 살기에까지 담담할 수는 없었다. 몸이 살짝 떨렸다.
“뭐 하는 건가? 끌고 가!”
꼼짝 못 하던 병사들은 뮤일라의 성화에 재빨리 루카민을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질질 끌려가면서도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빨리 죽여야겠어.’
저자가 심문 중에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카니벨라가 어디에 있는지는 토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간수들을 자신의 사람들로 가득 채웠다.
“카니벨라 공주가 어디에 있는지 반드시 털어놓게 만들어.”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귀족들은 루카민이 왕비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증거가 명확한 상황에서 함부로 변호했다가는 함께 죽을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쉽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아직도 털어놓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녀는 골치가 아팠다. 몇 달째 심문했다. 그런데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그는 절대로 카니벨라의 행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한번 가 보지.”
“죄송합니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어딘지 안내나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털옷을 챙긴 후 지하 감옥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 처참한 모습의 루카민이 있었다. 그녀는 비웃음을 잔뜩 머금었다.
끼이익!
감옥 문이 열렸다. 그의 눈이 다시 불타올랐다.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살기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그는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예의는 집어치운 것이냐?”
“네가 공주라서 그렇다는 말이라면 집어치워라. 내게 넌 단 한 번도 공주인 적이 없다.”
“우습군, 네가 그렇게 말하든 말든 세상이 그리 인정하고 있는데 말이지.”
그녀는 세상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근데 네가 뭔데 감히 그것을 부정하려고 드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지? 비웃으려고 왔다면 꺼져라.”
“드디어 네 처분이 결정 났어.”
“사형이군.”
“어머, 잘 알고 있네?”
“잡혀 온 시점부터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담담한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이놈이 내 수하였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이런 지조를 가지고 있는 자가 카니벨라의 부하라는 사실이 정말이지 아까웠다.
“궁금한 것이 있어.”
“무엇이든 대답해 줄 의무는 없다.”
“카니벨라는 어디 있어?”
그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계속되는 질문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말했다.
“어디 있냐고.”
“나도 모른다.”
“뭐?”
“모른다고. 진즉에 연락이 끊겨서 나도 모른다.”
그녀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그녀는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쓸모가 없군.”
“…….”
“일어나지.”
“아마, 공주마마께서 네게 복수하실 거다.”
“……뭐라고?”
“하시는 일마다 네 앞길을 막으실 것이고, 네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이룬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실 것이다.”
“하하하, 절대 그럴 리 없어.
“난 믿는다.”
“그 믿음이 이뤄지길 기대하지.”
그녀는 싸늘하게 웃었다.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그의 눈빛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패배자의 말 따위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루카민 타키라이는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춥지만 유난히 밝게 해가 뜬 날, 그의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는 오직 뮤일라와 란시엔이 앉아 있는 그곳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죄인, 루카민 타키라이. 왕궁에 은밀히 잠입하여 왕비 전하를 암살한 죄로 참수형에 처한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입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힘이 없어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한이었다.
그사이, 담담한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죄인을 사형하라!”
그 한마디로 인해 그는 사형되었다. 그리고 그의 목은 잘려져 왕궁 위에 걸렸다. 백성들은 나라의 반역자라고 그를 욕하며 잘린 머리를 향해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었다.
그녀는 그런 광경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저게 결국 죄인의 말로다. 잊어서는 안 된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도록.”
레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루카민의 정보통을 모두 처리했다는 내용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덮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레칸트를 보며 입꼬리를 올린 그녀는 이내 웃음기를 지운 채 말했다.
“너희가 또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무엇입니까?”
“일단 나중에 말해 주도록 하지.”
그 말과 동시에 루키에르가 들어왔다. 그는 그녀에게 부복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나긋하게 말했다.
“루키에르 기사단장.”
“네, 마마.”
“기사단장, 우리는 반역자를 사형시켰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이 나라는 불안정하지. 그래서 인재 양성이 필요해. 지금의 너는 라소니 왕국 최고의 기사. 그러니 기사들을 양성해야 해.”
루카민이 죽고 난 후, 그는 명실상부 라소니 왕국 최고의 무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본래 그의 것이 아니었기에 딱히 내키지 않았다.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면서도 불안했다.
“북부 국경 쪽의 군사들을 단련시켜 줘.”
“…….”
“할 수 있는 사람은 너 말고 없어. 네가 이 나라를 사랑한다면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에게는 딱히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라소니 왕국은 군사력이 강한 곳이 아니지만 국경 부근은 언제나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나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기에 그것을 잡아 줄 실력자가 필요했다.
그는 크고 작은 전쟁에 동원되었기에 작전을 짜는 것에도 능숙하고, 위치가 위치인 만큼 그곳의 체계를 잡아 나가는 것도 쉬웠다. 그렇기에 그녀의 부탁이 부당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제 한 몸…… 라소니 왕국을 위해서 희생하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루키에르는 란시엔이 뽑은 최정예 기사들을 데리고 북부 국경군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 떠났다. 그런 그의 행렬을 보며 그녀는 뒤에 있는 단쿤에게 말했다.
“준비되었는가?”
“예.”
“며칠 후면 저들은 카시르 왕국의 옛 땅으로 가게 될 것이다.”
카시르 왕국이라는 말을 하며 그녀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카시르 왕국의 망령이었다. 늘 자신의 왕국을 그리워하는 자였다.
“아바마마…….”
그녀는 창문 밖으로 휘날리는 눈발을 보았다. 매우 춥고 추운 날이었다. 곧 저들은 이 추운 눈밭에 눕게 되겠지. 그러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성벽에 달려 있는 루카민의 머리에 가게 되었다.
“제법 예리한 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괜찮아. 필요한 일이었다.”
루카민이라는 골칫거리가 하나 사라졌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였다. 그렇게 6년 동안 멈춰 있던 유언이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