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훈련
카니벨라는 기지개를 켰다. 근 한 달 동안 계속 대기만 하다가 떠나게 되었다. 그녀는 제일 먼저 마리네 집으로 향했다.
“어머, 루시. 벌써 가요?”
“그렇게 되었어요. 저희 딸 잘 부탁드려요.”
라이넨과 그녀 사이에 난 아이는 딸이었다. 그녀는 딸의 이름을 라이지라고 지었다. 짓고 나니 라이넨과 이름이 비슷해 바꿀까도 해 보았으나, 친부모 밑에서 크지 못할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생각에 가만히 놔두었다.
“언제까지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1년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가 어느 계절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다녀와요. 아이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제가 친엄마라는 것도 알지 못할 텐데요, 뭘. 괜찮아요.”
그녀는 싱긋 웃었다. 마리는 그 웃음이 아련함과 처연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고 있는 아이의 작은 손에 그녀의 손가락을 넣어 주었다. 그녀는 그 포근한 감촉에 웃음이 나왔다.
“그럼 다녀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그리고 그녀는 짐을 가지고 지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슌카린과 레신카가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로……?”
“조직원이 가는 길인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왔다.”
“잘 다녀오세요.”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태운 마차는 달리고 달려 숲에 도착하였다. 울창해서 아무도 발을 들일 것 같지 않은 깊은 숲. 이곳은 아레마이가 몇 년 전에 발견하여 터를 닦아 훈련소로 만든 곳이었다.
‘마치 군대와도 같군.’
그곳은 엄격한 분위기와 빡빡한 일정을 자랑했다. 그녀는 조용히 서서 그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든 훈련을 견디러 왔는가, 제군들이여!”
낯선 남자가 자신을 총교관이라고 소개하며 우렁차게 연설을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어마어마한 기세에 긴장했다.
“지금부터 아레마이의 정식 조직원이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 무조건 버텨서 이겨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이겨 내지 못하면 너희들은 죽는다.”
저건 진짜다. 훈련 중에 죽거나 산짐승에 죽거나 시험 중에 죽을 수도 있다. 또한 탈영을 하게 된다면 곧장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교관들 외에도 느껴지는 기척이 꽤 있었다.
‘탈영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조심해야 하겠는걸.’
그녀가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설명은 이어졌다. 훈련은 대략 1년. 순위가 높을수록 빨리 실전에 투입되었다.
<에이니, 조기 퇴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훈련 기간이 줄어들고 또한 임무에 빨리 투입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명목상의 S급이 아니라 진짜 S급이 될 수 있죠.>
오기 전에 레신카가 해 주었던 충고가 생각났다. 그녀가 노리는 건 조기 퇴소, 즉 1등이었기에 절대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간단하게 오래달리기만 하고 숙소로 이동한다.”
그렇게 시작된 오래달리기. 그녀는 긴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맹렬하게 달렸다. 그리고 1등으로 들어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1등을 하려면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겠어.’
그녀는 담담한 표정을 한 채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행보를 내심 주목하고 있던 총교관은 생각을 달리했다. 단순한 낙하산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 나름의 능력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묘하게 절도 있는 걸음걸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기사 같지 않은가.
‘루카민 타키라이의 동생이라고 하더니 얼추 할 줄 아는 건가?’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며 루카민은 지금 동생이 암살자가 된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다소 기대되는 신입 조직원을 받은 것 같아 남자는 앞으로 그녀가 보여 줄 활약들이 기대되었다.
* * *
훈련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뒤처지지 않았고, 독한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해냈다. 그러자 훈련 동기들은 그녀를 인외의 존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힘들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훈련 강도는 올라갔지만 그녀는 지치지 않았다. 그녀에겐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루카민에게 검을 배웠을 때 겪었던 훈련 강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를 보필할 때와는 달리 검술에 한해서는 절대 타협이 없던 루카민이었다. 그는 엄한 선생님이었고, 모셔야 할 주군이라고 절대 봐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체력 한계의 끝까지 몰아붙였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경험이 받침이 되어 이 지옥 같은 훈련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네가 생각나는군.’
애써 잊고 지냈던 루카민이 생각났다. 루카민이 죽었던 그 춥디추운 겨울이 지나 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여름이 되었다. 벌써 반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녀는 그의 부재를 오랜만에 체감하였다.
그녀의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루카민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어쩌면 루시아라는 이름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루카민의 흔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루카민은 어디에 있을까 바라보았다.
그러나 강렬한 태양 빛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쉬고 있자 훈련이 끝났다는 선언이 들려왔다. 그녀는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루카민.’
살아 있었을 때나 죽은 뒤나 루카민은 여전히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뵐 낯이 없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지옥 같은 훈련 과정을 버티다 보니 기사의 정신은 많이 흐려졌다.
물론 그녀는 기사가 될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다. 그녀는 그저 루카민이 함께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서 검술을 배운 것뿐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게 잘 맞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루카민은 정석적인 기사답게, 기사로서의 검술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그런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기사처럼 걷고 검을 휘둘렀다. 곧고 공정한 검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암살자가 그런 식으로 할 수는 없지…….’
암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정직하게 해 봤자 일찍 죽는 지름길로 갈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기사의 정신을 버리고 있었다. 이래서는 나중에 루카민을 볼 낯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결코 바꾸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입맛이 씁쓸했다.
‘미안해. 난 네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변명밖에 없었다.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그에 대한 죄책감은 훈련이 막바지로 들어가면서 더 심해졌다.
실습 훈련에 들어가면서 대련 중 독을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에 따라 조기 퇴소를 하기 위해 비겁한 방법으로 이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훈련생들이 죽어 갔다.
‘끔찍해.’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아무런 제지는 없었다. 암살자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의뢰를 해내야 하고, 감정을 지워야 훌륭한 암살자로 거듭나는 것이니까.
어차피 아레마이는 선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조직도 아니고,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이루면 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역으로 저런 수단이라도 써서 이기는 것이 강함의 척도가 되곤 하였다.
‘이제 내 차례네.’
카니벨라는 일어나 검을 다듬었다. 그리고 품에 있던 해독제를 마셨다. 대련 상대가 어떤 더러운 수를 쓸지 예상하지 못하기에 뭐든 대비하는 것이 좋았다. 해독제가 식도를 넘어가며 쓴맛이 났다.
훈련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그녀의 대련은 이 지옥 훈련의 얼마 없는 볼거리 중 하나였다.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오늘은 너를 이겼으면 좋겠군.”
“제발 그러기를 바라지.”
늘 그녀에게 대련을 청하는 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밀려 늘 훈련 순위 2위(매일 훈련 성과를 가지고 순위를 매긴다. 하루에 한 번씩만 하기 때문에 성과에 따라 늘 바뀐다.)인 자였다. 대련 상대는 자신이 정할 수 있는데 저자는 자꾸만 그녀를 지목했다.
아무리 거절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와 대련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압도적인 실력 차로 이겼다. 그렇게 남자는 그녀에게 매일 패배했다.
“오늘 내가 이기면 다시는 나한테 대련 신청하지 마.”
“그러도록 하지.”
그녀는 자신의 주 무기인 장검 대신 단검을 쥐었다. 암살자가 주로 쓰는 검이 단검이기도 하고, 이걸로도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인다면 다시는 자신에게 알짱거리지 않을 것이다.
“시합 시작!”
그녀는 대련이 시작되자 갑자기 단검을 검집에 넣고 품에서 물 폭탄을 꺼내 던졌다. 경기장을 빛내던 횃불이 죄다 꺼지고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그러나 암살자는 어둠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상대방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단검을 꺼내 앞으로 뛰어올랐다.
챙!
검과 검이 맞붙었다. 상대는 당황했다. 기세는 그녀에게 있었다. 애초부터.
“……비겁한 수다.”
“암살자는 본래 비겁한 자들이야.”
상대가 힘으로 검을 떨쳐 낸 동시에 그녀는 발로 상대의 명치를 쳤다. 상대가 물러서는 동시에 그녀는 품 안에 있던 다른 단검들을 던졌다. 그녀를 향해 달리던 상대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다.
둘 다 어둠에 익숙했지만 찰나의 움직임이 그들의 승부를 갈랐다. 갑작스러운 단검 세례에 움찔한 상대에게 그녀는 순식간에 발로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고 위에 올라가 목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항복!”
그와 동시에 횃불에 불이 붙고 결투장의 풍경이 비쳐들었다. 다른 훈련생들은 그녀의 압도적인 솜씨에 열광했다. 그녀는 자신의 무기들을 품에 넣었다.
“비겁한 수다!”
“원래 암살자는 비겁하다고 했잖아.”
“그럼, 이건 무효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상대는 날뛰었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기도 전에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한 채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그녀는 싸늘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아니, 넌 이미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미 승부는 결정 났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 계속 그런다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나도 모르겠군.”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것 같아도 훈련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하고, 점수도 늘 자신을 앞질렀다. 그녀의 강함은 자신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앞으로 너를 다시는 건들지 않겠다.”
“그 약속, 꼭 지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에서 떠났다. 환호성은 계속 이어졌지만 그녀는 표정 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며칠 후, 조기 퇴소자들의 퇴소일이 되었다. 그녀는 1등인 만큼 훈련생들 앞에서 대표 선서를 해야 했다.
“지금 있는 조기 퇴소자들은 우리 조직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죽을 때까지 대장을 보필할 준비가 되었는가?”
“네!”
“어떠한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아레마이를 배신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네!”
그녀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아레마이를 배신할 자신이 있었지만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1등 조기 퇴소자 에이니, 대표 선서 실시!”
“실시!”
퇴소식이 끝나자 그녀는 아레마이에서 지급한 마차를 타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지부 앞에서 내리자 슌카린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이 그녀를 마중 나와 있었다.
“1등으로 조기 퇴소했다 들었다. 축하하네.”
“축하해.”
“이제 저와 함께 활동하시는 거네요.”
모두들 그녀를 반겼지만 특히 레신카는 앞으로 자신과 활동하게 될 그녀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압도적으로 훌륭한 점수를 낸 그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인사치레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건조하게 되물었다.
“제 첫 임무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