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첫 임무
“제 첫 임무는 무엇입니까?”
카니벨라의 고저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슌카린은 훈련이 잘되었음에 만족했다. 그곳에 있는 교관들이 간부가 주목하는 인재라고 더 신경 써서 훈련시켜 준 것 같았다.
“오자마자 임무라니,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빨리 실질적인 S급 조직원이 되고 싶었다. 허울뿐인 간부 자리는 필요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실적을 쌓아야 했다.
‘실적을 쌓아야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레마이의 정신은 그녀를 바꾸지 못했다. 그녀는 암살자로서 사고하게 되었지만, 아레마이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걸 굳이 티내서 저들의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슌카린?”
그래서 더 아레마이에 감화된 것처럼 행동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빨리 임무를 수행하고 싶다는 그녀의 기세를 느낀 슌카린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얇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암살 의뢰서였다.
“제가 죽여야 하는 자는 이자입니까?”
“그래.”
그녀는 꼼꼼하게 서류를 읽으며 대상자의 정보를 외웠다. 그리고 과감하게 태워 버렸다.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며 그들은 암살자로서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임무,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기대하지.”
그녀는 곧장 조직원들에게 지급되는 물품들을 챙겼다. 암살용 복장, 맹독 및 해독제, 단검, 지도, 간단한 식품 등을 작은 가방에 챙겨 맸다. 그리고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임무를 완수하면 반드시 이 조직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레미우스 왕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달려갔다. 숲을 가로지르며 그녀는 예전에 도망 다닐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불안하고 또 불안했었다. 언제까지 복수를 위해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정체가 들킬까 불안하고, 이 조직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까 불안하고, 아이와 함께 살지 못할까 불안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걸 숨기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여러 잡념이 머릿속으로 스쳤다. 그러나 말은 부지런히 그녀를 목적지로 안내해 주었다.
‘찾았네, 엘라우스 백작.’
레미우스 왕국의 백작 위를 가지고 있는 자이자 자신의 영토 백성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는 자였다. 수확의 70%를 세금으로 걷거나, 농민들을 갖은 방법으로 자신의 노예로 만들거나 자신의 첩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악질이었다. 이자를 보니 아레마이의 행위가 정의롭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원한으로 인한 죽음으로 위장해야 한다고 했었지?’
그녀는 후드를 쓰고 하루 종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관찰했다. 병사들이 세금을 내지 못했다고 한 가족을 몽둥이로 때리고 있었다. 어느 쪽에서는 술에 취한 기사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주 가관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절망이 가득했지만 그 반면, 눈에는 증오가 번들거렸다. 그녀는 생각보다 쉬워진 임무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일이 생각보다 쉬울 것 같아 다행이라니. 그녀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경멸의 웃음이 머리를 울렸다.
‘일단 일이나 해결해야겠어.’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가 맑아졌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백작의 자택 주변을 돌며 어떻게 작전을 수행해야 할까에 대한 여러 수를 떠올렸다.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야 할까, 백작의 방은 어디일까, 혹여 변장해야 한다면 누구로 변장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밤이 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여관에서 나와 곧장 지붕을 날았다. 달이 없고, 구름이 가득 낀 깜깜한 밤이었기에 그녀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야.’
그녀는 순조롭게 저택의 뒷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리 봐둔 개구멍으로 들어가 난간에 밧줄을 던졌다.
끼이익. 백작의 방 창문이 열렸다. 마치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허…….”
루카민이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만들어 준 기사의 자세는 불과 1년 만에 무너졌다. 그녀는 어느새 누가 뭐라 해도 암살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자신이 정말 우스웠다.
또한 이런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만약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딴생각을 하는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아직 안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들키면 곧장 죽을 터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계속해서 드는 잡념을 지워냈다.
‘정신 차려. 여기서 꾸물거리면 안 돼.’
그녀는 혹여 사람이 지나가는 거 아닌가, 다시 한번 밑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안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침대가 보였고, 거기서 백작과 백작 부인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걸어가 조용히 단검을 꺼냈다.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잡히는 감각이 좋았다. 그녀는 검을 치켜들었다. 일말의 망설임이 그녀를 잠시 동안 멈추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녀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암살을 하기 위한 기계가 되었다고 한들, 결국 본질은 사람이었다.
‘젠장…….’
그래서 무서웠다. 이것은 대련도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이 섬뜩한 물체로 사람의 육신을 조각내는 것이다. 아무리 이자들이 쓰레기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무서웠다.
“해야 해.”
그녀는 세뇌에 가깝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손이 아플 정도로 검을 세게 쥐며 백작을 찔렀다.
푹!
섬뜩한 소리를 내며 검이 백작의 심장을 갈랐다. 피가 그녀의 복면에 튀고, 침대 시트를 잔뜩 덮었다. 그 축축함 때문인지 백작 부인이 눈을 떴다. 백작 부인은 소리를 질렀으나, 그녀의 손바닥에 의해 막혔다.
“읍읍!”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백작 부인의 심장을 갈랐다. 부르르 떨던 백작 부인은 침대 밑으로 쓰러졌다. 역시 피가 강처럼 흘렀다.
“…….”
작은 검 한 자루가 만들어 낸 참상이 그녀의 눈에 적나라하게 비쳤다. 두 사람의 피는 침대 시트를 더럽히며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옷에 잔뜩 묻었다.
정말이지 비정상적인 풍경이었다. 방 안에 가득 찬 피 냄새에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앗아갔던 그때의 사건이 떠올랐다.
‘윽.’
검을 든 그녀의 손이 떨렸다. 이 지독한 광경은 그녀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움직여! 움직여!’
그런 그녀의 간절한 외침이 그녀의 굳은 몸을 깨웠다. 사람이 몰려오기 전에 나가야 했다. 그녀는 재빨리 왔던 방법 그대로 탈출했다. 그리고 미리 봐두었던 곳에 불을 질렀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금세 저택을 잡아먹었다.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불꽃은 그 누구도 쉽사리 끌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여기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붙잡힐 수도 있었다.
곧장 은신처를 향해 달려온 그녀는 짐을 챙겨 재빨리 사라졌다. 어둠을 이용하여 말을 밤새도록 달렸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저 먼 곳에서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보일 때 즈음,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힘없이 말에서 내린 그녀는 속에 있던 것을 모두 토해 냈다.
“웩!”
그러나 먹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라 속에서는 신물만 올라왔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다 비틀거리며 옆에 있던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흐를 것 같이 눈앞이 뿌옇게 되었다. 루카민은 그녀에게 절대 함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그랬다. 아무리 그 사람이 악인이더라도 멋대로 판단해서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안해.”
루카민은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 당시 그녀는 설마 사람을 죽일 리가 있겠냐고 태평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손에 피를 묻혔다. 마치 온 손이 오물로 더러워진 것 같은 느낌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키지 못했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미움에, 슬픔에, 미안함에 그녀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 * *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이 저택에 불을 지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지?”
엘라우스 백작 영식이 길길이 날뛰었다. 잠깐 여행을 하고 온 사이, 부모님은 살해당하고, 집은 홀라당 다 타 있었다. 그는 간신히 저택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그것은…….”
“당장 찾아서 내 눈앞에 데리고 와!”
생존자들은 길길이 날뛰며 분노를 표출하는 그의 말에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마당에 결정적으로 굳이 귀찮게 일을 더 늘이고 싶지 않았다. 저택 복원을 위해 공사할 시간도 모자랐다.
“이번 사건 말이야, 영지민들이 한 거 아니야?”
“나도 들었어. 평소에 불만이 많다고 들었는데.”
“백작님이 도대체 뭘 하셨다고 그런 짓까지 해?”
“은혜도 모르는 것들이네.”
그리고 그사이, 레미우스 왕국에 오래전부터 침입해 있던 아레마이 조직원들이 이상한 사실을 날조해서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 말은 꽤 신빙성이 있어 그대로 백작 영식에게 전달되었다.
“뭐? 감히 벌레 같은 것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살해하고 내가 사는 집에 불을 질렀다고?”
그렇게 화를 내던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
“그것들을 지금 당장 다 잡아 와 죽여. 감히 내게 대항하다니!”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불과 연기가 치솟았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사람을 내리치는 소리, 사람의 살을 가르는 소리, 울음소리가 하루 종일 영지를 뒤덮었다. 거리에는 절망이 가득 찼다.
그리고 선을 넘은 영주 가족의 억압과 살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영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농기구들을 들고 소리쳤다.
“이대로는 참을 수 없다!”
“맞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저 망할 귀족들을 쳐 죽이자!”
“죽이자!”
그렇게 순식간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몇몇 사람들의 연설에 홀린 듯 넘어가 이미 홀라당 타버린 저택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분노에 가득 찬 그들의 눈에서는 광기까지 흘렀다.
“덮쳐라!”
“문을 열자!”
“저것들이 왜 저러지?”
“성문을 못 열도록 막아!”
문을 열려고 필사적으로 붙은 영주민들과 문을 열지 못하게 막으려는 병사들 간의 사투가 이어졌다.
“끌어내라!”
“저놈을 쳐 죽여!”
그리고 저들의 반란에 무서워 도망치던 백작 영식을 잡았다. 그들은 침을 뱉고, 욕을 하고, 돌을 던졌다. 그들은 백작 영식을 쳐 죽였다.
그렇게 한 영지 안에서 시작한 반란이 온 나라를 뒤덮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