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전쟁 발발
레미우스 왕국이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몇 년 사이, 루미니르 제국과 시스티아 왕국 사이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던 그들이 마침내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작은 시스티아 왕국에서 일어난 전염병 때문이었다. 어떤 원인 모를 전염병이 생겼고,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루미니르 제국 사람들이 그 전염병을 퍼뜨렸다고.
실제로 그 근원지가 왕국에 주도하고 있는 루미니르 제국의 상단과 가까운 곳이었기에 신빙성이 있었다.
그 소문으로 인해 사람들은 분노했다.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저 나쁜 놈들이 자신들을 이렇게 고통스러운 전염병으로 죽게 만든 것인가.
또한 자신들은 계속해서 죽어 가는 것에 비해 루미니르 제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그 소문을 더욱더 사실처럼 느끼게 했다. 그들의 뻔뻔한 저 얼굴은 사람들의 분노를 더 부채질했다.
실제로 그 병이 루미니르 제국 사람들에게는 면역이 되어 있어 운 좋게 걸리지 않은 것이지만 그런 사실 따위는 현재 그들에게 아무렇지 않았다. 어떻게든 저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야 했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퍼진 소문으로 인해 루미니르 제국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은 금세 번졌다. 마을 안은 곧 폭발할 것처럼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걸 감지한 루미니르 제국 파견자들은 시스티아 왕국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마을 주민들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범죄는 왕국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수도까지 타고 올라온 전염병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곡소리처럼 울려 퍼졌고, 병원에는 자리가 없어 밖에서 임시 병실을 만들어 환자들을 치료해야 했다.
이 기회를 노린 강경파들은 왕에게 강력하게 주장했다.
“저 해악들을 죽여야 합니다!”
“루미니르 제국을 정복하자!”
한쪽에서는 환자들이 신음하고, 한쪽에서는 전쟁을 하자며 성토했다. 왕족들은 강경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전쟁 준비를 하라.”
순식간에 군사들이 모집되었다. 사람들은 저 빌어먹을 루미니르 제국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말하며 너도나도 군에 자진 입대하였다. 순식간에 많은 수가 모였고, 왕은 우리가 이제 대륙의 기상이 되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저 잔악무도한 루미니르 제국 놈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와아아!”
그렇게 시스티아 왕국은 루미니르 제국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백작님, 급한 소식이 있습니다!”
레미아치 백작은 늦은 밤 갑자기 들어온 하인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잠자는 시간에 들어와 이러는 것인가. 그는 짜증 난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 위에 가운을 입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 이것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인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대충 닦아 냈다. 그는 침대 옆 서랍 위에 있는 안경을 쓰고는 서류 내용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
서류가 형편없이 구겨졌다. 말도 안 된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갑자기 저들이 왜 이러는 거지? 그러나 여러 번 읽어 봐도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시스티아 왕국이 루미니르 제국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이게 사실인가?”
“네, 밀정들이 전한 사실입니다.”
레미아치 가문은 그 어느 곳에 진출할 수 있다. 그러나 딱 한 곳이 예외였는데 그곳이 바로 시스티아 왕국이었다. 대대로 앙숙인 그들이 절대 레미아치 가문의 진출을 허용할 리가 없었다. 적들에게 기밀 정보를 유출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시스티아 왕국에는 밀정들을 보내어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소 달랐다. 이번에 유달리 소식이 늦었던 이유가 바로 빠져나오는 것이 요원하여 그랬던 것이다.
‘전쟁이라…….’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백작은 곧장 궁에 서류 요약본과 사람을 보내 황제에게 긴급 소집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보냈다. 그리고 그 역시 레미아치 가문의 제복을 입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다녀오겠네.”
그리고 그는 곧장 황궁에 도착했다. 황제가 곧장 긴급 소집을 하였는지 회의장에는 귀족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자신의 옆에 앉은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제국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그런 불안한 소리는 하지 말게.”
“황제 폐하께서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셨네. 그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만.”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황제 쪽 귀족들은 침묵하는 그를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모두들 긴급 소집에 응해 주어서 고맙군.”
그 말과 함께 황제가 등장했다. 모든 귀족들이 일어나 황제에게 인사했다. 황제는 곧장 상석에 앉아 입을 열었다.
“오늘 긴급 소집을 한 이유는 바로 시스티아 왕국 때문이라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 폐하,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긴말할 필요 없이 설명해 주겠네. 레미아치 백작, 일어나게.”
황제의 말에 그는 일어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날부터 시스티아 왕국에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 범인으로 루미니르 제국 사람들이 지목되어 살해당했다고.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저들이 제국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
회의장은 침묵에 잠겼다. 도대체 왜 갑자기 왕국에 전염병이 퍼지고, 그 범인으로 제국민들이 지목되었는가?
제국과 왕국은 앙숙이지만 개인 간의 왕래는 막지 않았다. 실제로 제국 안에도 시스티아 왕국민 일부가 거주하고 있었다(물론 신분증은 다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서로의 나라에 있는 백성들은 절대 건들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그것을 깨버린 것이다.
그것도 정말이지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이유를 가지고.
“그럼 저들이 지금 이곳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도대체 왜……?”
너무나도 황당했다. 퍼뜨릴 전염병도 없고, 시스티아 왕국을 신경 쓸 시간도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런 짓을 한다고 오해하느냔 말이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깔끔하기까지 한 단언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심각한 상황이었다. 물론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길 자신이 있다. 군사력, 전술, 경험 등 모든 것이 왕국보다 더 뛰어났다. 그러나 전쟁은 정말이지 달갑지 않다.
전쟁을 하면 자신의 사병들을 잃게 된다. 자신도, 자신의 아들들도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영지는 황폐화될 것이고, 전쟁 명목으로 세금을 많이 거둬들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물론 자신의 병사들을, 백성들을 사랑하는 귀족들도 많았다. 그들은 시스티아 왕국으로 인해 가족을 잃어야 할지도 모르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들의 심정을 아는 황제는 레미아치 백작에게 물었다.
“지금 저들의 상황은?”
그들의 물음에 지도를 펼친 백작이 한 지점을 가리켰다. 국경까지 3일 정도 걸리는 지점이었다.
“3일 후, 저희 국경선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허어.”
모두가 탄식했다. 그러나 백작은 단언했다.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피하고 싶은 귀족들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카리스마 있지만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황제였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백성들이 그곳에 나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건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
황제는 고민에 빠졌다. 전성기 때라면 자신의 마법으로 간단하게 적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규모의 전쟁으로 번지지도 않을 것이고.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는 현재 지금 약했다. 몸이 늙었고, 기력이 많이 쇠했다. 사실,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직접 나서고 싶지만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곧장 마력을 실어 귀족들에게 명했다.
“지금 당장 명한다. 북쪽 국경 지대에 황실 기사단을 보내라. 그리고 귀족들은 의무적으로 사병과 전쟁에 참여할 자들을 차출하여 북쪽으로 향하라.”
“네, 알겠습니다!”
귀족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황제는 혹시라도 일부 귀족들이 내뺄 수도 있을까 염려되어 모든 가문에 황명을 내렸다.
황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귀족들은 사병들을 추출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하여 후계자를 집에 남겨 두고 모두 다 전쟁터로 향했다.
* * *
황제는 라이넨의 방 문 앞에 섰다. 얼마 만에 보는 아들인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은 황태자비의 죽음 이후 정식으로 앞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은 방에서 해결했고, 카샨 외에는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황제는 그제야 황태자비가 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황후와의 상의 끝에 시간을 두고 아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그러나 지금과도 같은 비상 상황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슬픔을 곱씹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황제는 들려오는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커튼을 걷으며 어두컴컴한 방을 밝혔다. 창문 너머로 새까맣고 앙상한 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징벌의 궁이 보였다.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라이넨의 목소리는 지극히 건조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황제는 긴말은 하지 않고 곧장 서류를 내밀었다.
탁!
“시스티아 왕국과의 전쟁이라…….”
“네게 지휘를 명한다.”
“제게 말씀이십니까?”
그는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이번 기회에 공이나 쌓아서 복귀하길 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삶의 목적을 두 번이나 잃어버린 그에게 쉽사리 의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네 자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라.”
“……!”
그런 그를 언제나 움직였던 것은 책임감이었다. 황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용했다.
그리고 그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맙구나.”
“…….”
황제의 진심에도 그는 침묵했다. 그저 일어나서 굳어 있던 몸을 풀기만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거라.”
바야흐로 제국과 왕국의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