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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전쟁과 승리 (42/93)

41. 전쟁과 승리

출정식 같은 거창한 것은 없었다. 그건 이미 치러졌고, 라이넨 또한 원치 않았다. 그는 그저 이 제국을 수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말은 부지런히 달려 북부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전쟁의 시작이고, 그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이 되었으니까.

‘이번 전쟁이 끝나면…….’

언제나 이 자리에 큰 미련은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 때문에 마땅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된 형님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시 책임을 진다.’

그렇게 다짐했다. 황제는 그에게 절대 차기 황제 자리를 동생에게 넘길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렇기에 그는 형님을 대신해서 부끄럽지 않은 황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은 이번 전쟁에서 이기자.’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말이 멈췄다. 그는 자신에게 인사하는 자들을 대충 보낸 후 성문 위로 올라갔다. 저 너머로 적들의 막사가 보였다.

‘나름 자신감이 있는 건가……?’

대충 이번 전쟁에 대해 가늠해 보던 그는 회의장으로 내려갔다. 귀족들이 앉아 있었다.

“현 상황에 대해 보고하도록.”

그의 말에 임시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라이문타 후작이 현재 상황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어제 이곳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한 결과, 아군 측 사상자 245명, 적군 측 사상자 대략 570명으로 추정됩니다.”

“저쪽의 지휘자는?”

“첫째 왕자입니다.”

“지휘 스타일은?”

“기존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지휘를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기존처럼 싸워도 무방했다.

“방식은 어떤가?”

“되게 공격적입니다. 성을 빼앗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합니다.”

“지금까지 총 2개의 성을 빼앗겼습니다.”

“그곳들은 주요 성문은 아니었지만…… 이곳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뚫리는 순간, 북부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이때까지는 비등비등하게 빼앗고, 되찾고, 뒤로 물러나고, 앞으로 진격하며 서로 엎치락뒤치락했다면 이제는 달랐다. 이번에는 절대 져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여기서 지면 위험해진다.

황제가 건재했었더라면 이 전쟁은 쉽게 끝났을 것이다. 마법 한 방 날리면 끝이니까. 그렇지만 황제는 이미 그가 카니벨라를 만났을 때부터 서서히 쇠약해지고 있었다.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황제는 전쟁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게 퍽 아쉬웠으나 할 수 없었기에 라이넨은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저들의 막사를 보며 말했다.

“일단 군사를 나눈다.”

“예?”

그의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모두 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한 곳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군사를 나누자니?

그러나 라이넨은 자신이 있었다. 저들이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빠른 속도로 승리를 쟁취할 묘안이 있었다. 그의 설명에 모두들 집중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승마술이 뛰어난 자들을 선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다.

시스티아 왕국은 루미니르 제국에 비해 모든 것이 밀렸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앞서는 것이 있었다.

바로 무기술. 저들은 화약을 가지고 있었다. 저 화약으로 인해 지난 전쟁에서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는 저들의 이점을 없애 버려야 했기에 라이넨은 정예병을 꾸렸다. 그리고 화약을 다 제거하기 위해 저들의 막사를 기습하게 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적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화약을 모두 잃게 되었다.

“전하, 돌아왔습니다.”

“잘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회의에 들어갔다. 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든 복수하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경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아마 저희들을 어떻게든 성 밖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것입니다.”

“이번 습격으로 인해 많은 자들이 죽었으니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면 기습을 하거나.”

“기습?”

“이번 습격으로 인해 병력이 3분의 1이 죽었다고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기습을 한다는 건가?”

라이넨은 의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기사가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저들에게 첫째 왕자가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저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전하입니다. 그러니 전하를 어떻게든 하려 하겠지요.”

“납치라도 한다는 것인가?”

“전 그저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평소 과묵하지만 절대 틀린 말은 하지 않던 자이기에 라이넨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들이 원하는 의도대로 해 주는 척이라도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피식 웃었다. 그는 현재 군을 지휘하는 총지휘자다. 그런 총지휘자를 잡아서 협상하는 척하면서 뒤통수라도 치려 하는 것인가? 저들의 어이없는 망상에 그는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군.”

자신들이 믿고 있던 모든 장기들이 사라진 지금이기에 쓸 수 있는 가장 저급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패색이 짙은 전쟁에 어떻게든 이기려고 덤벼드는 저들이 진심으로 우스웠다.

“그렇다면 의도대로 움직여 줘도 나쁘지 않겠어.”

그러나 그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제국의 미래이고, 자신들의 황태자였다. 그가 적진에서 잠시나마라도 나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전하!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저들의 인질이 되시겠다니, 말도 안 됩니다!”

모두들 들고일어났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해 주지 않으면 저들이 더 몸을 사릴 것이고 전쟁은 장기화될 것이다.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장기화될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병사들이다.”

“…….”

“아무튼 저들이 오늘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냐?”

“오늘은 아닐 것입니다. 저들도 지금 정신이 없을 테니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야 할 것입니다.”

“그럼 당분간 호위의 숫자를 좀 줄여야겠군.”

“전하!”

그들은 맹렬히 반대하였으나 지금으로서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딱히 대역으로 쓸 사람도 없고, 적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는 이쪽도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 그리 결정된 것으로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라이문타 후작에게 말했다.

“후작, 자네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하게.”

그리고 그는 후작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   *   *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시스티아 왕국군에서는 라이넨과 기사들의 예상대로 납치 작전을 감행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네들을 믿겠네.”

왕자는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자들에게 건투를 빌어 주었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역시나 적의 수장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한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무 사이를, 어둠 사이를 달려 라이넨이 있는 성에 도착하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고, 마침 보초병들이 교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들어간다.”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그 짧은 순간, 보초병들의 시선을 피해 성안으로 진입했다.

‘어디에 있지?’

흩어져서 찾아보던 그들은 호위병 2명이 서 있는 큰 방을 보았다. 저곳이 바로 황태자가 있는 곳이었다.

마침 저들도 서로와 잡담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재빨리 그들의 시선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수월한 이번 작전에 그들은 더욱더 의욕을 다졌다.

침대 위에 한 인영이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칼을 들었다.

“안녕히 가시게 황태자!”

그리고 칼을 찔렀다. 그러나 사람을 찌르는 것 같지 않았다.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에 한 남자가 이불을 걷었다.

“젠장!”

그것은 바로 이불 뭉치였다. 마치 사람처럼 보이게 위장을 한 것이다!

“보기 좋게 걸려들었군.”

고저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방문이 열리며 라이넨과 휘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 황태자?”

“그렇다.”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애초에 저들은 이 모든 것을 다 예상한 것이다!

“저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그렇게 말하며 라이넨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사들이 그들에게 쇄도했다. 그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반드시 여기서 살아서 나가야 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사이, 라이넨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그러나 애초에 숫자에서 밀렸던 그들이 적진 한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모두가 죽고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검을 던지며 항복을 외쳤던 자만 남았다.

“넌 왕자와 함께 죽는다.”

“……뭐라고?”

라이넨의 차가운 선언에 대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패하는 것도 모자라서 주군과 함께 죽게 된다고? 그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부하들은 다 죽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붙잡혔다.

“여기서 얌전히 있도록.”

품에 독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치욕을 당하기 전에 자결이라도 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떨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군의 막사 쪽에서 불이 치솟았다.

“성공했나 보군.”

라이넨은 비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라이문타 후작은 훌륭하게 그가 말했던 것을 해냈다. 저들이 황태자의 납치에 온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은밀하게 저들의 본거지를 습격한 것이다. 그는 여유롭게 후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뜰 때 즈음, 라이문타 후작과 군사들이 돌아왔다. 뒤에는 왕자를 데리고 온 채였다. 라이넨은 일행들, 포로들과 함께 여유롭게 성 밖으로 나왔다.

왕자는 그런 여유로운 그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설마…… 애초에 이 모든 것이 저놈들의 함정?’

라이넨은 자신을 밑에서 보며 벌벌 떨고 있는 왕자를 보았다. 그는 피식 웃었다. 형편이 없는 왕자로군.

“억울한가?”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왕자를 가리키며 그는 명하였다.

“왕자를 저놈 옆에 놔두어라.”

“네!”

그리고 그의 명에 따라 왕자는 이내 포로들 옆에 던져졌다. 그리고 곧 대장 습격자의 목이 허공에 날았다. 왕자는 자신의 목이 베여 나갈 때까지 겁에 질린 채 벌벌 떨었다.

“사, 살려 주세요.”

‘자존심도 없는 놈이군.’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매달리려 하는 왕자를 차갑게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는 겁에 질린 그 상태로 목이 잘려 죽었다.

“너는 이걸 가지고 왕에게 가라.”

그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항복했던 자를 시스티아 왕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자가 전한 왕자의 목을 보며 왕은 소스라치게 놀라 항복 문서를 보냈다. 그리고 막대한 양의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전쟁은 그리 싱겁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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