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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진짜 가족 (52/93)

51. 진짜 가족

“이모 배고파.”

그들이 나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 때였다. 카니벨라는 두리번거리다 한적한 식당에 들어왔다.

“여기가 숨은 맛집이에요.”

황족인 라이넨의 입맛에 맞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옆에 아이를 앉히고는 재빨리 주문을 했다.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 주었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기에 라이넨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처음부터 그의 눈을 사로잡았던 기묘한 여자. 카니벨라와 닮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과거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여자였다. 그런데 남의 아이를 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돌보는 그녀를 보며 그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맛있어?”

“응!”

누가 봐도 모녀의 모습으로 보이는 그들의 식사를 지켜보며 그는 어영부영 밥을 먹었다.

“제가 계산할게요.”

“부자이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렇게 말하며 그는 식당 주인에게 값을 지불했다. 주인은 그에게 굽신거리면서 돈을 받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딱히 목적지를 정해 놓은 게 아니었기에 그들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왔다. 여러 곳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닭꼬치가 5브론!”

“맛있는 솜사탕 있습니다!”

“저글링 구경 오세요~”

“연극 <사랑은 울지만, 그대를 떠나지 않는다!> 공연을 오후 2시부터 시작합니다! 다시없는 기회!”

연극 이야기에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저 연극은 두 사람의 첫 데이트 때 보러 갔던 연극이었다. 둘은 기묘한 기억에 사로잡혔다.

“보러 갈까요?”

“그러지.”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 깨끗했던 시절, 아직 순수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절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데.’

그녀는 불쑥 올라오는 절망감에 피식 웃다 옆을 돌아보았다. 라이넨과 라이지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누가 봐도 부녀지간이네…….’

그녀는 턱을 괴며 피식 웃었다. 그러던 그녀는 몸을 살짝 떨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나는 쓰레기구나.’

그녀는 아레마이에서 벗어나고 싶고, 라이지와 함께 살고 싶다. 물론 라이넨을 위한 일도 맞지만 궁극적으로 그녀는 과거도, 현재도 그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맞는 일일까?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라이지와 대화하던 그는 문득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지금부터 ‘사랑은 울지만, 그대를 떠나지 않는다!’ 연극을 시작하겠습니다!”

주위가 어두워지며 배우들이 연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고, 그는 그런 그녀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웃던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까지 함께 슬퍼졌다. 꼭 안아 주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짐들을 덜어내 주고 싶었다.

‘내가 왜?’

그는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왜 저 여자의 모습에 일일이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 하고 있는 건가? 아직 연극은 안 끝났다.’

그는 애써 연극에 집중했지만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연극이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붙잡으며 버텨야 했다.

“이제 나갈까?”

“응!”

그는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이미 연극은 끝나 있었다. 라이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에게 양팔을 내밀었다. 그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저씨, 재미있었어요?”

“그럼, 재미있었단다.”

아이는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는 그런 라이지가 귀여웠다. 그와 동시에 아이와 대화하는 동안은 저 여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초상화, 그려 보실래요?”

극장에서 멀지 않는 곳에 길거리 화가가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 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부녀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라이넨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그들을 이끌었다.

“누구를 그리려고 하시는가요?”

“이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두 사람을 화가의 앞에 앉히고 자신은 뒤에 섰다. 그러나 그는 홀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끌어 다른 의자에 앉혔다.

“너만 서 있게 할 수는 없다.”

“아, 네…….”

“두 분, 어떤 포즈를 취하실 건가요?”

그때, 화가의 말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화가는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그들을 보더니 포즈를 정해 주었다. 전형적인 가족의 포즈였다.

“자, 그리겠습니다. 이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참 어색했다. 예전처럼 그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침묵 속에서 사랑에 가득 찬 가족과도 같은 포즈로 앉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라이지를 안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이는 그러한 둘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얌전히 라이넨에게 안겨 있었다.

그리고 그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다 완성되었습니다!”

화가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을 내밀었다. 마치 인생의 역작이라도 그린 것처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화가의 모습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종이에 그려진 그들의 모습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정말이지 단란한 가족이었다. 그녀나 그나 웃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위엄 있었고, 그녀는 우아했으며,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

단란한 가족. 그녀가 어렸을 때 원했고, 라이지에게 선물해 주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것.

그래도 그녀는 이 그림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이렇게라도 친아빠를 추억할 수 있게 되어 좋았으니까.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와, 이모! 예쁘다!”

“마음에 들어?”

“응!”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라이넨은 말없이 금화를 꺼내 화가에게 그림값을 지불했다.

“아, 아니 이렇게 비싸지 않습니다만…….”

“내 마음에 들어 그 값을 지불한 것뿐이다.”

“아이고, 그럼 감사합니다.”

화가는 단숨에 그림 10개 값을 받게 되자 싱글벙글했다. 그녀는 그런 화가에게 같은 그림 여러 개를 복사해 달라고 말하며 돈을 더 주었다.

이윽고, 셋은 각자 초상화 하나씩을 가지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고맙군.”

“아니에요, 저도 갖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한쪽 손을 잡고 있는 라이지의 모습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은 오랜만이군.’

솔직히 화가의 그림은 라이넨의 눈에 차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솜씨가 어떻게 그의 눈에 찰까. 그렇지만 그 그림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마음에서 무언가가 꽉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허전함이 사라졌다.

‘잠깐, 내가 방금 뭐라고……?’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이 했던 생각에 깜짝 놀랐다. 이런 싸구려 그림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네, 라고 말한 것이다.

“……!”

그는 불편해졌다. 자꾸만 자신을 침범하려 드는 이 여자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꾸만 거꾸러뜨리려는 이 여자가 정말 싫었다.

‘젠장.’

이 여자가 수상해서 온 것인데 그는 이 여자에게 반대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여자는 마치 늪과 같았다.

‘벗어나야 해.’

그는 급해졌다.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못 벗어났다가는 이 여자에게 평생 동안 휘둘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네요.”

그녀의 말에 그는 재빨리 말했다.

“그렇군. 시간이 늦었으니 난 이만 가 보겠다.”

그 후, 그녀가 뭐라 미처 대꾸할 새도 없이 그는 달려갔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그녀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옆에는 라이지가 있었고, 그는 이미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딱히 없는데.’

그녀는 그와 친해져야 하는 임무를 가진 동시에 그에게 루미니르 제국에 닥친 위험을 알려 줘야 했다. 그래서 그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자신을 믿게끔 해야 했다.

그렇지만 갑자기 그렇게 표정을 굳히게 만들 정도로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는 아이와 빨리 친해졌고, 함께 밥을 먹었으며, 연극도 재미있게 봤다.

“초상화 그린 게 그렇게 싫었나?”

남은 건 그것밖에 없었지만 금화를 지불할 정도라면 꽤 마음에 들었다는 것인데 왜 갑자기 저러는 걸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리네 가게로 갈까.’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해 그녀는 마리네 카페로 갔다. 사람이 많았지만 마리 부부는 그들을 반겨 주었다.

“마리, 제가 좋아하는 걸로 주세요.”

그녀는 늘 마시던 걸 주문하고 구석의 자리에 앉아 서비스까지 받으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자 일어났다.

“이모, 나 그 잘생긴 아저씨, 마음에 들어.”

“그래?”

다행이었다. 아이는 친아빠가 좋은가 보다. 그녀는 아이를 안으며 토닥거렸다.

“만약 그 아저씨가 다시 오면 말해 줘. 좋아할 거야.”

“응.”

모녀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었다.

라이넨은 쫓기듯 저택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혔다. 카샨은 그가 갑자기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밥 안 먹냐?”

“생각 없어.”

카샨은 한숨을 쉬었다. 저놈은 늘 저런 식이었다.

“그럼 나 혼자 내려가겠어.”

“그렇게 해.”

그는 침대에 누웠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졌고, 달빛만이 창문을 타고 방을 은은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내가 왜…….”

달빛은 그가 몇 시간 전에 받았던 초상화를 비추고 있었다. 평범한 가족 같은 그들의 모습에 그는 그것을 구겨 버리고 싶었다.

“…….”

그러나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의 손가락들이 벌벌 떨렸다.

“날 흔들지 마.”

미친놈처럼 날뛰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애써 초상화를 치워 버린 채 중얼거렸다.

“다시는 거기 가지 말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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