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 반격의 시작 (58/93)

57. 반격의 시작

카니벨라는 라이넨에게 그 이외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안타까워졌다. 그녀 또한 원해서 그 조직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원해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저는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일단 내일은 예정대로 만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채 창문을 열고 그 아래로 사라졌다. 그는 그녀가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고.

그때, 카샨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믿어도 될까?”

“안 될 건 또 뭐야?”

“찝찝하다고. 그리고 네가 말한 작전도 찝찝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거에 그놈들이 속겠어?”

“다들 괜찮다고 고개 끄덕였으면서 왜 그래.”

“일리는 있는데 찝찝하다는 거지. 들킬까 봐 겁나기도 하고.”

“그게 최적이다.”

“그저 전하께서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뷰이트는 그저 그의 말에 지지할 뿐, 불만 사항을 내비치지 않았다. 카샨은 결국 자신만 악역이 된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었다. 신하는 주군을 보호해야 하는 건데 이놈은 그냥 전하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이 소리밖에 못 하는 놈이었다.

“어휴, 난 모르겠다.”

“작전대로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어. 일단 다 끝났으니 난 자러 간다.”

“전 일단 에리칼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겠습니다.”

“그래, 카샨 쪽으로 황제 폐하께도 말씀드릴 테니 알아낸 것들이 있다면 그쪽으로 보고하도록.”

“네, 대신 제 수하를 여기에 남겨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

그들은 곧장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아레마이라…….’

자신이 정말 무능하게 느껴졌다. 이 땅에서 살아 숨 쉬는 백성 한 명, 한 명이 다 그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조직이 있는데 이때까지 그 존재조차 몰랐다니.

카니벨라가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지 않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일궈온 제국. 눈을 돌리면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삶을 영위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들의 모습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 모든 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

아레마이의 신념이 어떠하든 그는 절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한 몸을 던져서라도 반드시 막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카니벨라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의 야욕을 빨리 알 수 있게 되었다. 저들이 앞으로 행동할지 대충 예상도 갔다. 조력을 받아 저들을 무너뜨리고 나면 반드시…….

‘일단 저들이 우리가 뿌린 미끼에 걸리기만 한다면…….’

저들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다.

라이지는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하자 라이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함께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제 마리를 설득해 잠시 동안이라도 황실의 보호를 받게 했다.

<어머, 루시. 무슨 일이에요?>

<마리는 절 얼마나 믿죠?>

<루시,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나쁜 걸 시키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물어보고 싶어요.>

<저야 루시를 믿죠. 루시가 원하는 거라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럼 제 말을 따라 주세요. 내일은 가게를 닫아 주세요. 저와 함께 갈 곳이 있어요.>

<네?>

<루카스와 함께 짐을 싸요. 그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 은밀하게 저희 집으로 와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알겠어요. 루시를 믿을게요.>

마리는 의문이 가득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시 봐도 마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인데도 그녀를 믿고 카페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 대신, 뷰이트의 수하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온 라이넨과 라이지의 손을 잡아 주며 아이에게 말했다.

“라이지, 오늘은 아저씨랑 놀고 있어. 이모는 엄마랑 일이 있어서 시간이 없거든. 괜찮지?”

“응, 괜찮아!”

그녀는 마지막이니 부녀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말했다. 라이넨은 그녀의 말에 퍽 기뻐하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두 사람이 사라지자 곧장 마리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커튼이 다 쳐져 있어 어둡고 짐이 가득해 어수선했다.

“아, 루시. 어서 와요.”

“갑자기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루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믿어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마리가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집을 팔거나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들고 가 버린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옷과 패물, 유아용품들만 챙겼다.

“챙겨도, 챙겨도 끝이 없네요.”

“제가 있잖아요.”

그녀는 회의 시간에 늦지 않게 재빨리 짐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마리네 가족을 일단 자신의 집에 데려다준 후, 조직의 지부로 향했다.

“오랜만이야, 에이니.”

“칸나, 저도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뭐, 몇 명은 오지 못했어.”

“그럼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한다.”

뭔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도 전에 나타난 슌카린은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어떻게 되었지, 에이니?”

“죄송합니다, 슌카린.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황태자는 제 예전의 모습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도 말조차 잘 하지 않더군요.”

“의외로군. 네가 황태자를 사로잡지 못했다니…….”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그녀는 죄송한 척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도 이러한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니다, 너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나저나 어찌한다.”

복잡해진 상황에 모두들 생각에 잠겼다. 손가락을 두들기는 슌카린의 모습에 답답해진 칸나가 말했다.

“슌카린, 너도 생각나는 게 없어?”

“나라고 해서 모든 일에 대한 대체 작전을 생각해 놓지는 못한다.”

까칠한 슌카린의 반응에 칸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그 말을 해야 하나 싶어 망설였다.

그때, 수이카가 고저 없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자, 황태자 납치.”

“납치?”

가장 쉬운 방법이지 않는가. 조직원들은 그에 반색했다. 반면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우리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잖아?’

“괜찮네.”

그러나 그녀가 놀라던 수이카의 의견 하나에 회의장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러게. 황궁으로 들어가 버리면 성가셔지니까 조금 갔다 싶을 때 하자.”

“그런데 납치한 다음에 어떻게 할 건데?”

“마약을 먹이고 대장하고 혼인하게 하면 되지.”

“근데 지금 황실에는 이미 약혼녀가 있잖아. 어떻게 해?”

“괜찮아. 그 약혼녀 따위야 죽이면 그만이다. 그리고 마약에 절여 있으면 그걸 어떻게 알겠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보태 가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에 그녀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미 저들은 자신들이 깐 체스판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것을.

“그럼 습격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현재 이 안에 대기 중인 모든 인원들을 투입시킨다.”

현재 제국에 파견되어 있는 아레마이 인원은 대략 70명 정도였다. 그 사람들을 모두 투입시키자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반대 의견을 내밀었다.

“너무 많지 않을까요?”

“그자는 황태자다. 게다가 순례도 끝났으니 황실에서 호위하겠다고 인원을 대거 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수도 쪽에 파견된 인원들의 말을 들어 보면 꽤 많은 숫자가 온다고 하니 그 정도는 되어야 납치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카온의 말에 슌카린은 ‘거봐, 내 말이 맞지 않나?’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그 습격대에 끼워 주세요.”

“안 된다.”

“어째서죠?”

“이미 넌 너무 노출되었다. 그 남자가 네 행적을 파고들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 대기하고 있도록.”

“그 남자는 제 오라버니를 죽인 데 일조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그녀는 이곳에서 루카민의 동생인 루시아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충분히 원한을 가질 만 했고(실제로는 아레마이에게 있지만)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슌카린은 고개를 저었다.

“네 그 감정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자칫 황태자를 죽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건…….”

“봐라. 네 스스로도 확신을 못 하는데 어떻게 그 남자를 안전하게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썰렁한 분위기 속에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태 들어갔던 그 어느 회의보다 더 집중해서 들었기에 저들이 어디서 언제 라이넨을 습격할 것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럼 이만 해산하겠다.”

칸나는 자신이 봐야 할 서류가 잔뜩 있다고 투덜댔다. 시카온은 습격 장소 시찰을 위해 일찌감치 사라진 후였다. 수이카는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 위해 하품을 했고, 그녀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 곧장 밖으로 나갔다.

회의장에 남아 있던 레신카는 기지개를 켜고 있는 슌카린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이왕이면 에이니가 할 수 있게 해 주지 그래.”

“에이니가 저 남자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봤잖아. 혹시라도 황태자를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면서 날뛰면 곤란해.”

“나름 공과 사는 잘 구분하는 걸로 아는데.”

레신카가 내민 것은 라이넨과의 데이트 보고서였다. 나름 정갈하게 일정이 적혀 있는 서류를 보며 슌카린은 여전히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난 사람의 감정 따윈 믿지 않는다. 누가 에이니를 감시한 것도 아니고 보고서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지.”

서류로는 ‘나름 유혹했는데 먹혀들지 않았다.’ 라고 적혀 있어도 실제로는 계속 싸웠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슌카린은 그녀가 얼마든지 다시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켜 작전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레신카는 다른 건 몰라도 일적인 것에 관해서는 슌카린을 믿고 있었기에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 임무는 내가 하는 건가?”

“그래, 레신카. 이번 임무는 네가 제격이다.”

“푸핫! 그래, 이번에는 내가 하겠어.”

“부탁하도록 하지. 에이니는 내 쪽에서 잘 감시하도록 하겠다.”

“그래, 난 내일의 임무를 위해 간다~”

슌카린은 레신카가 나서는 만큼, 이번 임무 또한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것이 루미니르 제국을 점령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단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라이넨이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내가 생각한 것이 있는데…….”

라이넨은 은밀하게 속삭였다. 카샨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생각?”

“저들이 계획한 것을 박살 낼 수 있는 작전.”

“어떻게?”

“단순히 저들을 저지하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없지. 무너뜨려야 해.”

그건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저들을 무너뜨릴 방법이 있나? 그런 그녀의 의문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이것이 네가 저들에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반격이 될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