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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귀환 (59/93)

58. 귀환

라이넨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카샨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가 저런 웃음을 지을 때는 무조건 상대방을 곯려먹으려고 생각했을 때니까.

“그래서? 말이나 해 봐.”

“먼저 카니벨라, 네게 할 말이 있어.”

“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

그녀의 의욕 넘치는 말에 그는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 도대체 저들에게 얼마나 원한이 있으면 이렇게 작전만 짜는 데도 좋아할까.

“너도 간부라고 했으니 회의장에는 들어가는 거지?”

“그렇지.”

“그럼 그때 나랑 친해지지 못했다고 해. 어떤 식으로 과장하든지 좋아. 그렇다면 저들이 분명히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할 거야. 그럼 그때 절대로 반대하지 마.”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이넨은 저들의 반응을 예상한다는 것인가?

“아마도 예상컨대 납치일 거야. 만약 아무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네가 말하도록 해. 저들도 아마 찬성할 거야. 딱히 방법이 없으니.”

“……!”

그건 저들이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아마 그를 납치해서 협박이라도 하면 루미니르 제국을 점령하는 것에 있어 좀 더 쉬워질지도 몰랐다.

“라이넨!”

“걱정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아레마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야! 그런데 널 어떻게 그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할 수가 있단 말이야? 절대 안 돼!”

그는 그녀의 걱정에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절대 잡힐 생각은 없었다. 그는 손까지 저으며 말했다.

“물론 실제로 납치되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렇다면……?”

“대역을 써야지.”

그때서야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왔다. 그 대역으로 간 사람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저 라이넨이 무사하다는 이유로 안심하다니.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는 대역이 어떻게 해 주느냐에 따라 달렸어.”

“흠…….”

라이넨의 작전은 나름 괜찮았다. 그렇지만 저들이 대역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저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저들이 화가 나서 먼저 루미니르 제국에 선전포고를 할 수도 있고.’

이미 루미니르 제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는 아레마이의 수중에 있는 상태. 자신들은 뒤에 숨은 채 다른 나라들을 내새워 대륙 전체를 전쟁으로 물들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다른 교란 작전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 역시 이 작전에 투입시켜 줘.”

“뭐?”

“난 그 조직의 간부야. 라이넨 너보다는 조직에 대해 아는 게 많고 핵심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어.”

그 말에 카샨은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 말했다.

“저들이 네 말대로 할 거라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대역이라는 걸 알아차릴 거야. 그 전에 내가 배신해서 저들의 시선을 잡아 놓으면 돼.”

“배신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을 텐데?”

“고문당하기 전에 나오면 돼. 그리고 저들의 기밀 정보 몇 가지만 가지고 나올게. 분명히 우리의 일에 있어 도움이 될 거야. 불안하다면 구출할 사람만 몇 명 뽑아 놓으면 되는 거고.”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가 위험에 처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날 믿어 줘, 라이넨.”

“……알겠어. 그렇지만 너 역시 내가 보호해야 할 내 백성이야. 그러니 무리하지는 말아 줘.”

“고마워.”

그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작전은 시작되었다.

*   *   *

카니벨라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있을까 하는 염려에 그녀는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네 생각대로 되었어.’

저들은 라이넨의 예상과 단 하나도 다르지 않게 움직였다. 앞으로 저들이 계속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준다면 아레마이를 무너뜨린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지도 몰랐다.

‘미행은 없다.’

집까지 오며 수상한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안심하며 문을 열었다. 마리가 튀어나와 그녀를 껴안으며 말했다.

“루시. 어디 갔다 이제 왔어요?”

사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나갔기에 마리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안함에 머리를 살짝 긁었다.

“미안해요. 잠시 할 일이 있어서.”

“걱정했잖아요.”

“다시 한번 미안해요. 이제 갈까요?”

지금은 깜깜한 밤이었다. 마치 야반도주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마리와 루카스는 그녀에게 아무런 의문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을 믿어 주는 그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라이지는 제가 안고 갈게요.”

“고마워요.”

마리와 루카스는 양손에 짐을 가득 들었다. 그녀는 집 밖을 나오며 다시 한번 주위를 경계했다. 그리고 은밀하게 라이넨이 있는 영주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루, 루시 여긴 영주님이 사시는 곳 아닌가요?”

“제 일행이 여기 있어서 가는 거예요.”

“그래도…….”

마리는 목적지를 알자 깜짝 놀라 짐을 떨어뜨릴 뻔했고, 루카스는 숨을 참았다. 그녀는 그들을 안심시켰다. 여기서 멈췄다가 아레마이의 눈에 띄거나 인질이 되면 안 되었다.

“자, 어서 가요.”

그렇게 뒷문에 도착하자 카샨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껄렁한 자세이기는 했지만 양쪽 다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사람들입니까?”

“예.”

카샨은 마리와 루카스를 쳐다보다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라이지를 쳐다보았다.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라이넨과 닮은 아이였다.

‘이 아이가 정말 라이넨의 딸이라고?’

“카샨?”

“아, 그래. 가시죠.”

카샨은 그들을 이끌고 라이넨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황실 기사들이 라이넨을 호위하기 위한 대형을 맞추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왔어?”

“응.”

그들이 눈을 맞추고 있는 사이, 라이지가 라이넨을 보고 반가움을 표했다.

“아저씨!”

“잘 지냈어?”

“아저씨, 보고 싶었어요.”

“아저씨도 우리 라이지가 보고 싶었지.”

부녀는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고 있었다. 마리는 카니벨라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루시, 혹시 저분이 라이지의 친아버지인가요?”

“네, ……혹시 놀라셨나요?”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서 그런 거예요. 몇 년 만의 재회입니까. 이 사람이 이런 거에 좀 약해서.”

옆에 있던 루카스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마리는 남편의 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팔꿈치로 옆구리를 쳤다. 루카스는 끙끙거렸다.

“이번에 반드시 셋이서 함께 살기를 바라요.”

마리는 줄곧 품고 있던 소망을 내뱉었다. 친부모에게서 자라지 못한 아이가 얼마나 불쌍한가. 자신들이 애정을 주고 있어도 어쩐지 거짓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도, 카니벨라에게도 늘 미안한 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그녀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한참 아이와 놀고 있던 라이넨과 준비를 끝낸 카샨이 다가왔다.

“준비 다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가야 할 때로군.”

“네, 가셔야 할 분들은?”

그녀가 마리와 루카스를 가리켰다. 라이넨은 아이를 그들 옆에 내려 주었다. 가야 할 때를 안 아이는 울먹거리며 카니벨라와 라이넨에게 말했다.

“이모랑 아저씨는, 우리랑 같이, 안 가?”

“우리는 곧장 따라갈 거야.”

“같이 가고 싶은데…….”

“도착하면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려는 아이를 안아 주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짐을 들고 있는 마리 부부를 쳐다보았다.

“이쪽으로.”

카샨은 그들을 큰 원이 그려진 곳으로 안내했다. 마차들과 거리가 먼 곳이었기에 부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루시? 이게 무슨…….”

“이분과 가시면 돼요. 절대 해칠 사람은 아니에요.”

“자, 지금부터 주의 사항에 대해 설명해 드리죠.”

안타깝게도 카샨은 남들을 안심시키는 재주는 없었다. 그들의 두려운 표정은 눈에 보이지 않은 건지 그는 그냥 자신의 할 말만 줄줄 내뱉었다.

“절대로 제 손을 놓아서는 안 되고, 이 원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육체가 분리될 수 있으니까요.”

협박 아닌 협박에 부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샨은 출발하겠다는 말만 하고는 원 한가운데에 종이를 찢어 흩뿌렸다. 그러자 종이가 닿은 곳에서부터 빛이 나서 그들을 집어삼켰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뜨니 카샨과 마리네 가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정말이지 그녀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본 ‘기적’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가 볼게.”

지켜야 할 사람들이 사라지니 움직임에도 자유를 찾았다. 당장 움직이려 하는 그녀에게 그는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어제 카샨이 한 거 봤지?”

“아, 그 ‘기적’?”

“그래. 이 종이를 찢으면 네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 이건 참고로 황궁으로 가.”

혹시나 그녀가 위험에 처하면 바로 찢을 수 있게 그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안심되지 않아 그는 그녀의 양손을 꽉 잡았다.

“카니벨라, 부디 위험한 일은 하지 마.”

“…….”

“네가 그곳에 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넌 모를 거야.”

혹시나 다시 찾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릴까 그는 불안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그녀의 시체를 보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간신히 다시 찾은 그녀는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래.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사실 그녀는 감히 장담해 줄 수 없었지만 그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재빨리 사라졌다. 그는 그녀가 사라진 곳을 계속 쳐다보다 영주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전하, 짐은 다 정리되었습니다. 이제 저녁 만찬만 먹고 출발하시면 됩니다.”

“그렇군.”

그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만찬이었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그는 말없이 먹으며 귀환해서 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레마이를 부수고, 마법 계승을 받고, 카니벨라와 라이지의 처우에 대해 황제와 의논하고…….

“입에 맞으셨는지요.”

“아, 자작. 정말 맛있었다네. 앞으로도 영지를 잘 통치해 주기 바라네.”

“네, 감사합니다.”

자작은 자기 나름대로 백성을 사랑하는 영주였기에 그는 대단히 만족했다. 앞으로 이곳을 떠올리면 좋은 기억만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마지막을 잘 장식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카니벨라를 다시 만난 곳이니까.

“이만 일어나겠네.”

“네, 전하께서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가든, 따라가겠습니다.”

“고맙네.”

그는 일어나 마차에 올라탔다. 영주 일가 모두가 나와 그를 배웅했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카니벨라가 떠올랐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출발하도록.”

그의 말에 마차가 황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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