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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납치 (60/93)

59. 납치

라이넨이 출발을 선언하자 마차와 황실에서 파견된 호위 기사들, 순례에 함께했던 인원들이 차례로 출발했다.

“작전은 다 기억하고 있겠지?”

라이넨은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자신의 대역에게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주신 임무를 반드시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그렇게 달린 마차는 해가 뜨자 멈췄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수선해진 틈을 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종이를 찢고 사라졌다.

그 이후, 귀환은 재개되었다. 그때, 계속 행렬을 따라오던 검은 실루엣이 사라졌다. 그 그림자는 곧장 어떤 한 건물에 들어갔다.

“황태자는? 갔어?”

“네, 갔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우리가 나서야겠네. 도구들 챙겨.”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 라이넨을 잡기 위해 제국에 침입한 조직원 중 2/3가 투입되었다. 일행들은 복장을 하고, 독, 그물, 검, 신호탄, 갈고리 등을 챙겼다. 그리고 말에 올라탔다. 떠난 황태자를 따라잡으려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절대 이번 일에 에이니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도록.>

<왜?>

<일단 납득한 듯 보이지만, 혹시라도 따라오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에이, 걔가 바보야?>

<부정적인 감정이란 건 언제든지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

<에이니를 너무 못 믿는 거 아냐? 하지 말라고 했으니 하지 않겠지. 그리고 에이니가 그 황태자를 죽일 것이라는 증거는 있어?>

<증거는 없지만 감정이란 건 그만큼 치명적이다.>

“슌카린 이놈은 겁이 너무 많다니까. 에이니가 바보도 아니고 조직의 명을 거부하겠어?”

“부대장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건 겁이 많은 거야. 슌카린 이놈은 그냥 지가 겁쟁이인 거 포장하려고 나한테 자꾸 시켜 먹어.”

“그 말 그대로 부대장께 해 드리죠.”

“야,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 나보고 간부직에서 잘리라고?”

“그래 달라는 의미 아니셨습니까?”

“아니거든!”

레신카는 자신에게 말대꾸하는 조직원에게 꿀밤을 한 방 먹여 주고는 라이넨보다 더 앞장서 습격 장소에 자리를 잡기 위해 출발했다.

“후발대는 내일 따라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레신카의 뒤를 따라 제법 인원들이 출발했다. 이미 황태자 일행이 떠난 지 하루가 흘렀다. 따라잡기 위해서는 부단히 달려야 하고, 호위 기사들을 뚫기 위해서라면 많은 인원들이 필요했다.

절반이 넘는 인원이 떠나자 지부는 텅 비어 버렸다. 그곳에서 후발대원들은 짐을 점검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그때, 한 조직원이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단장.”

“왔어?”

“선발대, 출발했습니다.”

“알려 줘서 고마워.”

단장의 정체는 바로 카니벨라였다. 그녀 또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의 부대에 있던 조직원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진짜 가실 거예요? 부대장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어지는 법이잖아.”

“전 모릅니다. 저한테 나중에 다 덮어씌우지 마세요.”

“넌 내가 그렇게 경우 없어 보이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녀는 그 조직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차를 내밀었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마시고 가.”

“네, 감사합니다.”

그녀가 내민 차에는 맹독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색무취하여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지옥의 가루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독은 섭취 후 5분만 지나도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독이었다.

“윽……!”

고통을 견디지 못한 조직원은 결국 쓰러졌다. 그녀는 재빨리 그 조직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얼굴 가죽을 뜯어내어 자신의 얼굴에 덮어썼다. 이 모든 것은 10분 이내에 이루어졌다.

그녀는 쓰게 웃었다. 자신은 이미 악마가 되었다. 목적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체를 처리해야 해.’

그렇지만 감성적인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그녀는 시체를 지부 뒤에 있는 우물가에 버렸다. 너무 깊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잘 쓰지도 않았기에 그 시체를 발견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이 사람의 목소리가 가늘었던가.’

그리고 그녀는 그 조직원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보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벽한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게 된 그녀는 조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잠을 자거나 놀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스트레칭을 하며 후발대로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그때, 한 남성이 들어와 말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그 말에 게임을 하던 조직원도, 잠을 자던 조직원도,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조직원 모두가 다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그들에게 주의사항을 잠깐 말해 주고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임무, 성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죽음만 있으리.”

“네, 알겠습니다!”

모든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말을 타고 선발대가 출발한 장소로 향했다. 그녀는 적당히 뒤에서 말을 몰았다. 너무 앞장서서 간다고 눈에 띌 필요는 없었다.

“이번 임무 완전 쉽겠지?”

“쉬우면 선발대에서 다 해결하지, 우리한테까지 내려오겠냐.”

“뭐 어때. 그저 체면치레일 수도 있지.”

“넌 그럼 빠져.”

“싫거든?”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도 조직원들은 장난을 쳤다. 저들은 이번 임무에 대해 전혀 긴장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저런 자들이 제일 먼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오늘 이후에 저들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든, 말은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이내 선발대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이미 선발대는 라이넨 일행과 만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검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고, 죽음의 소리가 곳곳에 내려앉았다.

‘기사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뛰어나.’

역시 황실의 호위 기사였다. 실력이 뛰어난 자들로 구성된 만큼 적들의 공격에 잘 버티고 있었다.

아레마이는 대부분이 암살자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렇게 대놓고 싸우는 건 이점 하나를 포기한 채로 싸우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 후발대가 왔으니 상황은 바뀔 것이다.

애초에 선발대의 역할은 저들의 힘을 빼놓는 것에 있었다.

“적, 적들이 더 합류했습니다!”

“싸워라! 전하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아레마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싸움은 승기를 잡기가 매우 힘들었다. 후발대는 다짜고짜 독부터 풀어댔으니까. 사방이 독 가루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야, 미쳤어? 황태자까지 죽으면 어떡해?”

“전용 해독제 있으니까 괜찮아!”

“이기고 보면 되잖아!”

독에 중독된 기사들은 피를 토하며, 둔해진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싸워야 했다. 그러나 아레마이 단원들은 독 안에서 싸우는 것이 매우 익숙했다. 그러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칼을 휘둘러보지도 못하며 쓰러져 갔다.

“으아악!”

“크헉!”

“쿨럭!”

기사들의 입에서 흐르는 피가 온 숲에 가득하였다. 그녀는 그들을 돕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표면적으로는 아레마이에 속한 암살자들이기에 죽지 않을 정도로만 기사들의 여기저기를 찔렀다.

푹푹푹!

기사들이 고꾸라졌다. 이미 독을 잔뜩 들이켠 터라 그녀의 행동에 의심을 가지는 조직원들은 딱히 없었다. 아레마이는 착실히 승기를 가져가고 있었다.

“저들을 죽여라!”

“전하를 지켜라!”

그렇지만 단 한 명, 레신카는 그녀에게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레신카는 자신이 거느리는 모든 조직원들의 얼굴, 이름, 습관 등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절대 저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적들이 너무 많았다. 라이넨의 호위들은 그가 암살자들을 이끄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악착같이 막았다. 그들은 그의 앞을 막으며 검을 휘둘렀다.

‘쳇!’

일단 저 수상한 단원을 잡는 것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그는 단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갑옷 틈을 파고들었다. 기사들은 목을 부여잡으며, 손목을 잘리며 쓰러졌다. 피가 튀기며 그의 복면에 묻었다.

‘아, 더럽네.’

얼추 처리한 그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일단 주변을 확인했다. 어느새 조직원들이 황태자의 마차 마부를 죽이고 말을 몰기 시작했다. 마차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황태자는 멍청하게도 이 난전에 창문을 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문 닫게 해!”

아직 독은 사방에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창문을 잘못 열고 그 독을 마셨다가 황태자가 중독되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그가 워낙 크게 외친 터라 마차에 붙어 있던 조직원들이 마차에 강제로 밀고 들어왔다.

창문이 닫히기 전에 황태자의 당황한 표정이 보였지만 이내 사라졌다. 레신카는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작전의 성공할 것 같았다.

“몰살해라!”

그렇다면 이제 이곳에 있는 떨거지들만 다 없애 버리면 된다. 아레마이 조직원들의 사기가 올랐다. 그들은 기사들을 거칠게 베어 냈다.

‘자, 이제……!’

그녀는 사라지는 척하기 위해 일부러 레신카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레신카는 그녀를 봤다.

“너!”

그녀는 도망치기 위해 달렸다. 그렇지만 레신카는 뒤에서 검을 던졌다. 그녀는 날아오는 검을 반사적으로 쳐냈다.

‘이런!’

그러나 레신카는 당황하지 않고 다른 검을 꺼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 레신카의 검을 받아 냈다. 다른 조직원들은 갑작스러운 둘의 싸움에 어리둥절했다.

“뭐 해? 쟤 제압해!”

눈치를 보던 그들은 레신카의 명에 따라 한꺼번에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이쯤 잡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윽!”

한 조직원의 검이 그녀의 팔뚝을 스쳤다. 그녀는 신음 소리를 내며 검을 떨어뜨렸다. 모두가 힘을 합쳐 그녀를 잡고는 거칠게 무릎 꿇렸다.

“잘했다.”

이윽고 그녀를 향해 레신카가 다가왔다. 그리고 복면을 걷었다.

“에이니……!”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 다른 조직원들은 경악했고, 레신카는 한숨을 쉬었다.

“넌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임무에 있어서는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던 그녀였기에 레신카에게는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황태자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인가 싶어 실망도 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레신카는 그녀에게 말했다.

“널 간부 재판에 넘기겠어, 에이니.”

그리고 뒤를 돌았다. 누군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세게 쳤다. 그녀는 이윽고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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