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61. 란시엔 (1)
란시엔 본인이 가진 기억의 시작은 어린 자신이 꽃을 주는 장면이었다. 화사한 꽃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며 물을 주는 모습. 그리고 언제나 자신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아버지까지.
나름 행복하다고 하면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불행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카시르 왕국 출신이라는 것이다. 카시르 왕국은 대륙의 5개 나라 중 가장 약한 나라였다. 라소니 왕국이나 레미우스 왕국보다 더 약한 나라.
그래서 언제나 약소국의 서러움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그렇기 위해 역대 모든 왕들은 왕국을 발전시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력한 나라를 세울 위대한 왕을 뽑기 위해 왕위 경쟁도 치열했다.
왕자든 공주든 왕의 재목이라면 그냥 닥치는 대로 왕좌에 오르기 위해 형제자매를 죽였고, 란시엔 역시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원치 않았지만 왕국의 후계 자격 1순위였다. 정치, 제왕, 무역, 회계, 역사 등 모든 부문에서 뛰어났고, 경연 때는 항상 1등을 차지했다.
그랬기에 그 당시의 왕 이카소 루넨 카시르는 그녀를 일찌감치 왕세자로 점찍어 두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형제자매들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아바마마께서 자신을 왕위로 점찍어 놓았다고 한들, 그녀가 원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어린아이였다.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순수하고 순진한 어린아이.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이 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녀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은 하루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이복 언니들의 장난으로 인해 경연 때 드레스가 다 뜯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온몸이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형제자매들, 아버지, 후궁들, 그리고 귀족들 앞에 서 버렸다. 그녀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슬퍼했다.
그러나 그녀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 사이 그녀는 암살자를 맞이했다. 암살자는 그녀의 목을 졸랐고,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고통에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커…… 억! 크흐……!”
그녀는 거칠게 저항했다. 몸을 비틀고 남자의 팔을 손톱으로 긁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목을 더 확실하게 눌렀다. 순식간에 눈앞이 희미해지고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
마침 그날에 독을 바른 단검을 베개 밑에 두고 잤었다. 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남자의 눈에 띄지 않게 단검을 꺼낸 후, 남자의 팔에 찔렀다.
“크윽!”
남자는 급격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손을 뗐다. 그사이 그녀는 침대에서 벗어나 엉금엉금 기어 나갔다. 남자는 당황해서 그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 있어?”
그녀는 침대 밑에 숨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꿈만 같았다. 잠에 빠진 사이에 갑자기 가해진 엄청난 압박과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차가운 사신과 같던 눈……. 온몸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독이 통할 때가 되었는데……!’
그래서 간절히 독이 빨리 통하기만을 기도했다. 다행히 남자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은 뻣뻣해지고 입에서는 거품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엉금엉금 기어가 남자의 앞에 섰다.
“크윽……!”
단검을 들고 있는 손과 다리가 떨렸다. 그렇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살기 어린 시선에 그녀는 남자를 힘껏 찔렀다.
남자에게서 뜨뜻한 피가 튀었다. 온 얼굴에, 흰 잠옷에 피가 젖어 가는 동안 그녀는 얼어붙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내, 내가 사람을 죽였어!’
단검이 파르르 떨며 그녀의 발 앞에 떨어졌다. 그녀는 생명을 거두어간 저 차갑고도 역겨운 금속에 도저히 시선을 둘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 금속에 의해 생명을 빼앗긴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이곳은 동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순진하기만 해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꾸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쳐서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비척비척 밖으로 걸어 나갔다. 시녀들은 피투성이가 된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때까지 한 번도 지어 본 적이 없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 당장 치워.”
저들이 알고 있는 순진하고 착한 란시엔 루넨 카시르는 죽었다.
* * *
그 뒤로 그녀는 이카소에게 자신 또한 이 왕위 싸움에 뛰어들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이카소는 항상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표정을 짓던 딸이 걱정되었다. 혹시 이번 일이 그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왕위를 제가 물려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바마마께서는 저의 참전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굳은 결심을 한 딸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말리지는 않으마.”
“아바마마께서는 그냥 저를 응원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마.”
그 이후 그녀는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전에는 다소 설렁설렁 보던 것들도 완벽하게 해냈다.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기세에 다른 왕족들은 불안해졌다.
“넌 이번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니?”
“내가 절대 이 싸움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건드린 것은 이미네 님이셨죠.”
“뭐라고?”
“전 깨달았어요. 이건 전쟁이에요. 그리고 이 전쟁은 제가 원치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난 내 앞을 막고 있는 당신들을 모두 부숴 버리리라. 그리고 당신들이 그렇게 닿고 싶어 하던 그 자리에 서리라.
그렇게 선전포고를 한 이후, 그녀는 제거할 왕족들의 순서를 정했다. 굴복시킨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무조건 적을 섬멸하겠다는 생각뿐.
그렇게 뮤일라의 가문을 중심으로 지지 세력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저들을 죽였다.
“믿어 주세요! 전 절대 아닙니다!”
“살려 주세요!”
“으아악!”
그들의 비명 소리를 앞에서 똑똑히 들으며 왕좌에 나아갔다. 자신은 절대 저렇게 최후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저들의 파멸을 지켜보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악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모습을 측근들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린아이가 생각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이었다.
사람을 죽일 때 온몸을 잘라 내고, 절벽에서 사람이나 마차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말에 흥분제를 넣어 사람이 밟혀 죽게 만들기도 했다. 온 장기가 녹아내리면서도 늦게 죽는 독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란, 란시엔 님. 이건 좀…….”
“이것이 저들에게 어울리는 최후다.”
“그렇지만…….”
“내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뜻인가? 저들은 나에게 더한 것을 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리했고.”
그녀는 그들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받은 그들은 자신이 그녀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 했다.
“이, 이 악독한 년! 내가 널 저주할 것이다! 네년이 죽을 때까지 저주할 것이야!”
특히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원흉들에게는 더 잔인한 복수를 선물했다.
“어떠세요? 제가 당신에게 준 선물.”
“다, 닥쳐!”
그렇게 마지막으로 악을 쓰며 남자들에게 처절하게 끌려가는 이복 언니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유린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잘 가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복 오빠의 처형식을 거행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독을 먹이는 것도 모자라 팔, 다리, 척추를 꺾었다. 그가 거품을 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그의 어미는 그 장면을 보다 결국 미쳐 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이복 오빠는 눈을 까뒤집으며 온 구멍에서 피를 쏟았다. 고통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그를 걷어차고는 말했다.
“왜 그러는지 말해 보라 하지 않았습니까.”
“…….”
“저는 제 말에 대답하지 않는 자가 싫습니다. 더 고통스럽게 뒈지고 싶으십니까? 원하신다면 들어 드리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독을 더 뿌려 넣었다. 더 들어간 독은 장기를 더 빠른 속도로 녹여냈다. 그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
그렇게 그녀가 기괴하게 웃던 사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이복 오빠가 죽었다. 그 즉시, 그녀는 오빠와 관련된 모든 가문을 몰살시켰다. 그녀의 명에 따라 형제자매들의 궁이 모조리 타 없어졌다.
그날 공식적으로 그녀를 제외한 모든 왕족들이 사라졌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후계자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 웃었다.
“괜찮으냐?”
“네, 괜찮습니다. 제 소원이 이루어진 날이지 않습니까.”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하나도 순수하지 않았다. 기괴함만이 가득한 비웃음에 불과했다.
“아가…….”
왕은 법적으로 왕위 싸움에 관여할 수 없기에 이카소는 한스러웠다. 순수함을 잃고 차갑게 변해 버린 딸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탓 같아서. 그렇지만 란시엔은 아버지를 탓하지 않았다.
“란시엔, 나의 아가야. 네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구나.”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나중에 너를 부를 터이니 당분간 요양하거라.”
“예.”
그렇게 자신의 궁으로 돌아온 그녀는 깜빡 잠들었다. 꿈에서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자와 마주했다. 꿈에서 한참 동안 허우적거리던 그녀는 튕겨나듯 깨어났다.
‘머리 아파…….’
꿈에서 자꾸만 마주하는 그때의 일 때문에 그녀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래서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 홀로 밤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남들에 비해 월등하게 똑똑해졌다.
그렇게 오늘 역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카소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바마마.”
“오늘 함께 갈 곳이 있어서 그런단다.”
이카소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후드를 씌어 주었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탄 그들은 빈민가에 도착했다. 그녀는 왜 그가 이곳으로 왔는지 궁금했다.
이윽고 마차는 한 허름한 지하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기 전 이카소가 란시엔에게 말했다.
“아이야, 네가 지켜 줄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난 네게 이것을 보여 주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없다. 그렇지만 비록 어둠 속에서 움직여도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군주로서 해나가길 바란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바마마께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의아한 표정에 입을 열었다.
“란시엔, 난 매일같이 후회한단다. 너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도록 내가 움직였더라면, 내가 진즉에 다른 형제들에게서 그런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개입했더라면 네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란시엔은 그런 이카소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티 없이 웃을 수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고작 1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바마마…….”
“난 내 선택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네게 내 뒤와 이 대륙의 미래를 맡기겠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여러 나이대를 가진 그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 카시르 왕국이 제국이 되기 위해 이들이 밑에서 움직인다는 것입니까? 아바마마께서 이들의 수장이시고.”
“그렇단다.”
현실적으로 루미니르 제국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버티고 있는 이상, 카시르 왕국이 대륙의 으뜸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물밑에서 인재를 모아 그들로 하여금 은밀하게 모든 나라를 전복할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계획을 들은 그녀는 설렜다. 이 아레마이라는 조직을 통해 대륙의 패권을 쥐고 이곳의 백성들이 제국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카소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열정에 전염되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눈을 반짝이는 딸을 보며 이카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며 마음을 회복하며 진정한 군주의 마음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데렐라의 눈물』 3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