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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새로운 동료 (71/93)

70. 새로운 동료

란시엔은 관광을 가장한 사찰을 하러 간 사이 카니벨라가 사라진 것을 알고 머리끝까지 분노했다. 그녀가 처참한 모습이 되어 자신의 앞에 나뒹구는 것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이제 드디어 그년이 죽는 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나 했는데!

“또 그년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단 말이냐?”

란시엔은 카니벨라가 자꾸만 자신의 손아귀에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분노했다. 그런 그녀의 살기에 모두들 몸을 사렸다. 그리고 그건 간부라고 해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조심해야 했다. 카니벨라가 탈출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입을 잘못 놀렸던 슌카린이나 고문 담당자였던 칸나는 속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어디에 갔지?”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더니 데리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갑자기 빛이 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다수의 말이기에 믿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지만 란시엔은 황당하기만 했다. 무슨 그런 기적이 다 있느냐는 말이다. 갑자기 위기의 순간에 뿅 하고 사라진다니?

란시엔은 검지로 서류를 톡톡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회의장은 침묵에 빠졌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시카온이 손을 들며 발언했다.

“목적지는 한 곳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맞다. 아마도 루미니르 제국 황실이겠지.”

시카온의 말에 란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니르 제국 모든 곳에 그들이 있지는 않으나 현재 수색하고 있음에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 이유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초조함에 입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매우 난감했다. 황실은 그들이 절대 침투할 수 없는 요새였다. 그리고 만일 카니벨라가 그곳에서 어떠한 방법이든 간에 황제를 만났다면 아마 카니벨라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유출되었을 것이다.

‘젠장, 간부 승인 요청서를 제대로 봤어야 했어…….’

간부는 철저히 란시엔의 승인으로 인해 결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레신카는 회의를 해야 한다고 시간을 버는 척하며 그녀에게 카니벨라를 간부로 추천한다는 서류를 보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바빴던 그녀는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채 도장을 찍었다.

조직원들을 믿었으니까.

그렇게 결국 참사가 터졌다. 란시엔은 그런 자신의 실수를 전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만회하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이 유산을 목숨 걸고 지켜야 했다.

일단 유출된 정보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이라도 수습해서 적들이 어떻게 나올지 대비해야 했다. 그녀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진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 궁에서 나오게 할 방법이 있을까?”

“황태자가 저희 손에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이용해서 여기에 오도록 유인하면 됩니다.”

“유인?”

“그 여자는 아마 반드시 황태자를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카니벨라는 보기와는 달리 책임감이 강했다. 자신으로 인해 남이 피해 보는 것을 싫어했고, 그랬기 때문에 큰 악인이 아닌 이상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현재 황태자가 납치되어 있는 상황에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어디로 올지 그걸 알아야겠어.”

루미니르 제국에서 라소니 왕국으로 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산맥을 타는 거겠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복잡했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어느 방향으로 올 것인가? 어디에 매복해야 습격할 수 있을까?

“산맥에서 통하는 길목 중에 가장 최단기간 안에 라소니 왕국으로 올 수 있는 길은 어디인가?”

그 말에 간부들은 지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레신카가 소리쳤다.

“여기입니다!”

*   *   *

라소니 왕국으로 출발할 때가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레마이와의 싸움은 시작되었고, 여기서 지면 란시엔의 야욕에 대륙 전체가 먹힌다.

카니벨라는 다른 건 다 봐도 그 꼴은 정말로 보기 싫었다.

“이제 출발할 거야?”

“응, 넌 다 챙겼어?”

그녀는 간단한 여행자 복장에 검 한 자루, 암기, 독가루, 그물, 활과 화살, 해독제, 지도, 여분의 옷 등 여러 가지를 챙겼다. 라이넨은 내용물들을 보며 그녀가 암살자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이제 출발하면 돼.”

“라이지는 보러 갈 생각 없어?”

그는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고 있을 거야. 그러니 그냥 갈래.”

“……그럼 이제 가자.”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의 모습이 귀여웠다.

“어둡네.”

“그래서 오히려 움직이기 좋아.”

암살자는 어둠 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기사에서 암살자로 바뀐 지 오래였다.

“황자 전하는?”

“그놈은 성문 앞에서 우리 기다리는 중이야.”

그 뒤로 둘은 라이부스와 몰래 합류하였다. 라이부스는 둘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에게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라이넨이 그를 째려봤으므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출발하죠.”

어두웠지만 문제는 없었다. 목적지는 서쪽이었다. 어둠은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하였지만 임무를 위해 지도를 자주 봤던 그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어둠을 친구 삼아 부지런히 달렸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낮에는 여관 등에서 잠을 자고 밤에 이동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괜찮나? 혹시 힘든 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녀 본인이야 이곳저곳에서 굴렀기에 환경이 어떻든지 버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귀한 환경에서 자라온 형제가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그들은 잘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스스로 알아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관에 가면 방을 잡고, 노숙을 해야 하는 날에는 잘 곳을 물색하고, 땔감을 잔뜩 구해 와 모닥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황실의 수업 시간에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수업도 있는 건가요?”

“그럴 리가. 그저 우린 네가 하는 모습을 따라 한 것뿐이라고.”

다소 진심 어린 물음에 라이부스는 그저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그녀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힘들지는 않으시죠?”

“어, 괜찮아. 적응 다 했어.”

그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숙소의 질이 어떻다는 둥,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자지 못하겠다는 둥, 음식이 맛이 없다는 둥 별별 소리를 다 했더라면 기절시켜서라도 황실로 다시 보내려고 했으니까.

그녀는 라이부스의 대답에 씩 웃었다. 그리고 불빛에 의존하면서 다시 지도를 보았다. 대륙 전체가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그녀의 눈길이 산맥 쪽으로 향했다.

‘아마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야.’

란시엔의 성격상 아레마이는 벌써 그녀를 잡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 똑똑한 아이라면 이미 적들이 구출을 위해 라소니 왕국에 침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없애 버리기 위해 조직원들을 파견했겠지.

‘어느 산맥으로 습격할까?’

이제 국경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국경을 넘으면 곧장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카이셔스 산맥이다. 그 산맥 어디에 잠복해 있을 것인가?

이것은 복불복이었다. 이쪽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에다가 암습에 익숙하지 않은 루미니르 제국 황족들(이미 황태자가 일찍이 정해지는 루미니르 제국은 다른 왕국들과 사정이 많이 달랐다)을 끼고 있는 몸이었다.

그랬기에 아무리 적은 숫자가 습격해 오더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고전을 넘어서 전멸할 수도 있었다.

‘신중해야 해…….’

그녀는 한참 동안 지도를 바라보다가 한 지점을 콕 집었다.

“여기로 가자.”

그렇게 여러 날을 걸어 그들은 국경선을 넘고,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험한 곳은 일부러 피했다. 적들이 매복하기에 알맞은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길이 잘 닦여 있는 곳을 선택했다.

“이쪽으로 가죠.”

그러나 그들의 행적은 이미 읽힌 상태였다.

‘빨리 단장께 보고해야 한다.’

조직원은 레신카에게 그들의 행적에 대해 보고했다. 레신카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 들어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전원, 위치로.”

레신카의 말에 아레마이 조직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카니벨라 일행의 뒤를 은밀히 따랐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노숙을 위해 침낭을 깔고, 모닥불을 만드는 카니벨라와 황족들을 보며 그는 신호를 위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눕는 순간 습격을 개시했다.

“쳐라!”

조직원들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나무 위에서, 땅 아래서, 풀숲 사이에서 공격을 가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카니벨라는 소리쳤다.

“일어나!”

그녀는 재빨리 모닥불부터 껐다. 라이넨과 라이부스가 재빨리 검을 들고 일어났다. 달빛에 의지하여 그녀는 검으로 위에서 덤벼드는 조직원의 목을 쳤다.

“으아악!”

그 비명 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듯, 조직원들은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무기와 무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숲을 울렸고, 피비린내가 풍겼다.

“이거 먹어!”

그녀는 조직원들이 혹시나 독을 이용한 공격을 할까 걱정되었다. 자신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으나 라이넨과 라이부스는 버티지 못할 것이 자명했다. 그녀는 재빨리 해독제를 그들에게 던졌고, 그들은 받아서 먹었다.

“크윽!”

검 소리는 계속 울렸다. 고작 3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동하게 적들과 맞서 싸웠다. 처음부터 독이라는 공격 수단을 막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라이넨과 라이부스가 예상보다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닌 것도 한몫했다.

라이넨은 덤벼드는 적들의 손목부터 먼저 찔렀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암기나 무기를 놓치면 그때 목이나 심장을 찔렀다.

푸우욱!

엄청난 소리와 함께 피가 튀겼다. 한편, 라이부스는 거침없이 적들을 베어 나갔다.

“으아악!”

그가 검을 휘두르면 적들의 손목이 날아갔다. 발목이 날아가고, 몸에 깊은 검상이 생기며 피가 터졌다. 그리고 목을 베면 그 목을 잡으며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을 상대한 적들이 쓰러지자 뒤에 있는 라이넨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상황이 좋지 않군.’

레신카는 생각보다 더 잘 버티는 카니벨라 일행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카니벨라야 조직에 있었을 때부터 에이스였지만 라이넨과 라이부스의 활약은 예상 밖이었다. 나름 B~B+급의 조직원들을 데리고 왔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나설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였다. 계속 저들을 저렇게 놔두면 자신의 부하들은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단검들을 꺼내고는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얍!”

라이넨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무언가를 황급히 막았다. 그러나 그 힘에 밀려 뒤로 넘어졌다. 그는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표정을 찡그렸고, 그사이 레신카가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때, 카니벨라가 난입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특기, 장검으로 레신카의 악력을 막아 냈다.

“넨, 비켜!”

“카니벨라…….”

“비켜 줘. 방해돼.”

그녀의 단호한 말에 라이넨은 재빨리 그 아래서 벗어났다. 레신카는 라이넨을 향해 나아가려 했으나 그녀의 검에 가로막혔다.

“더 이상은 못 가.”

“푸흡, 지금 네가 날 막으려고 하고 있는 거야?”

“난, 약하지 않아. 꽤 재미있는 마지막 상대가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덤벼들었다. 레신카는 단검을 엑스자로 교차하여 그녀의 검을 막아 냈다. 그리고 오른쪽은 그녀의 머리를, 왼쪽은 그녀의 심장을 노리며 공격했다. 그녀는 재빨리 물러났다.

“제법인데?”

레신카는 조직 안에서 가장 오랫동안 행동대장으로 활동해 왔다. 그랬기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단 한 번도 레신카를 제대로 이겨 보지 못했다.

‘역시 위험해.’

그녀는 긴장했다. 조무래기들이야 라이넨과 라이부스 선에서 정리한다고 하지만 레신카는 그녀가 반드시 상대해야 하는 자였다.

“다시 덤벼 봐.”

그들은 치열하게 얽혀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원래 레신카에 비해 근력이 부족한 데다가 고문 후유증이 남아 있었기에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기색을 알아차린 레신카는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녀는 레신카의 발길질에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그녀를 깔고 그 위에서 검을 내리찍기 위해 팔을 들었다.

“이제 넌……!”

그러나 그때, 그의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그녀의 허벅지만 한 둘레의 검으로 레신카의 목을 잘라 버렸다! 허물어지는 그의 몸이 파르르 떨며 경련했다. 그리고 피가 그녀의 얼굴에 잔뜩 튀었다.

주위가 침묵에 잠겨 들었다. 그러나 조직원들은 이내 도주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들을 재빨리 처리했다. 저들이 란시엔에게 가서는 절대 안 된다.

“넌 누구지?”

그녀는 모든 상황이 수습되자 거한의 남자에게 싸늘하게 물었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녀는 이유 없는 호의는 믿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의 말에 재빨리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전 레미우스 왕국에 갈 당시 마마를 모셨던 루키에르 마키아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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