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왕국에 도착하다
“마법이라는 그런 무한한 힘이 있다면 왜 아레마이를 막지 못하는 것이지?”
카니벨라는 아까부터 궁금했다. 나이티에게는 기적의 힘인 마법이 있는데 왜 아레마이를 막지 못하는 것인지.
“아이야, 나는 인간이 아니란다. 그리고 난 인간 세계에 함부로 개입할 자격이 없어.”
“루미니르 제국 건국이라는 큰 개입을 하지 않았나?”
“내가 제국을 건설할 때 당시에는 이 정도의 마력을 가지지 못했었으니까.”
나이티는 예전에 큰 사고를 쳤다. 그 대가로 마력의 대부분을 봉인당한 채 살던 곳에서 쫓겨났다. 그 당시 그녀에게는 머물 곳이 필요했지만 주위에 있던 인간들은 이지를 가지지 못한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들과 투쟁하면서 루미니르 제국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점점 풀려나는 자신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력을 받기에 가장 합당한 그릇을 가진 자식에게 마력의 절반을 주며 당부했다.
<절대 아무에게도 마법에 대해 발설하지 마라.>
마법은 무적의 힘이지만 그 힘을 받는 사람은 무력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력이 허공에 흩어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은밀하게 마법을 계승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 역시 수차례 개입하고 싶었지만 내 존재 자체가 인간 세상에서는 인외의 존재로 취급당한단다. 내가 개입하면 그에 따른 더 큰 시련이 이 대륙에 닥칠지도 모르지.”
마법은 큰 힘이다. 그러나 이 큰 힘으로 인간 세상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 큰 힘을 가진 무언가가 이 대륙을 산산조각 낼 수도 있었다. 나이티는 여기서 지금 자신의 눈을 맞추고 있는 아이와 후손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바마마께서…….”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이유는 몸이 쇠약해졌기 때문에 너무 큰 마법을 쓸 시에는 죽을 수도 있단다.”
“아바마마께서 그렇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이미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 강대한 마력을 지탱할 몸은 쇠약해져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황태자 순례를 당겼다. 빨리 계승을 받고 황제가 되기 위해.
그러나 지금 아레마이라는 큰 변수 때문에 미뤄졌다. 그가 계승을 받아 버리면 제국을 지키는 결계 유지를 위해 움직일 수 없게 되니까.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그저 작전대로 가는 게 우선이겠군요.”
“너희들의 작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란다.”
황제에게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고, 아레마이가 이 대륙을 점령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릿속이 뒤엉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이티가 말했다.
“가끔은 쉬어 주는 것도 좋단다.”
그렇게 말하며 나이티는 마법으로 그녀를 침실로 옮긴 뒤 바로 재웠다. 그러나 라이넨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다.
“넌 가지 않느냐?”
“전 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무엇을 말이니?”
“이번 여정에서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 카니벨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라이넨은 카니벨라 혼자서 알스카를 구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실력을 어느 정도 들었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마침 자신의 검술 실력이 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습격 때가 되니 그는 우왕좌왕했다. 오히려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수준이었다. 적들이 암기를 던지고, 독을 뿌려대는 것을 보며 그는 그녀에게 수없이 구출 당했다.
그녀는 혼자서 싸우려면 충분히 싸울 수 있었으나 그 때문에 부상을 당할 뻔했다. 죽을 뻔했다.
그는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다. 애초에 루키에르를 일행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와 라이부스를 지키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그를 배려해 말해 주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이야…….”
다소 갑작스러운 고백이었지만 나이티는 그냥 말없이 라이넨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그 슬픈 감정이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아이야, 넌 존재만으로 저 아이에게 위로가 되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자책할 필요가 없어.”
“그렇지만 도움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구나.”
나이티는 그렇게 말하며 솥에서 끓고 있는 액체를 병에 담았다. 그러자 액체는 순식간에 굳으며 돌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걸 집어 든 그녀는 손으로 감싸 안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었던 돌은 순식간에 백색이 되었다.
“이 안에 내 마력을 응축했단다. 던져서 깨뜨리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 된단다. 네 것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또 마력 자체는 얼마 되지 않지만 앞으로의 여정에 있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감사합니다…….”
“아니란다. 너의 그 마음만으로 그 아이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었을 거야.”
그는 나이티가 건네는 3개의 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나이티는 자러 들어간 라이넨의 모습을 보면서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운명의 아이들아, 너희는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극복해 갈 것이란다. 수없는 이별과 오해 속에서도 너희의 사랑은 더욱 크게 피어난 것처럼. 그러니 이번 일도 반드시 이겨 내야 한단다.’
하늘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이제 새벽이었다. 나이티는 이제 얼마 보지 못하는 세상을 자신의 눈에 담았다. 오늘따라 별들과 달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거룩하신 아버지. 부디 저 아이들의 결말만이라도 보고 그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소서.’
아침이 되었다. 나이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종이 4장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들은 나이티의 행방이 궁금했지만 이제 시간이 없었다. 카니벨라는 종이들 옆에 놓여 있는 편지를 뜯었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를 배웅할 시간이 없구나. 대신 이 스크롤들을 전하마. 아마 후손 아가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야. 이 스크롤을 찢으면 즉시 라소니 왕국의 수도 근처로 이동되니 부디 이것이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잠깐 어디에 간 모양이군요.”
그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라이넨은 나이티가 어제 자신에게 나누어 준 마력석들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이티를 찾겠다고 시간 낭비 할 틈은 없었다.
“이제 라소니 왕국으로 가자.”
“그런데 이 스크롤들 찢었을 때 수도 한가운데에 나타나는 거 아니야? 그럼 잡혀 들어갈 텐데?”
“다행히 이 스크롤은 자신이 생각하는 곳에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거야. 그러니 그럴 걱정은 없겠는데.”
“흠…… 골목길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시선을 안 끌어요.”
루키에르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자.”
라이넨은 재빨리 땅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네 명이 모두 손을 잡고 한 장소를 떠올리며 스크롤을 찢었다. 그러자 빛이 나면서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게 무슨 느낌이야!’
전에 이동했을 때는 너무 아파서 이런 걸 느낄 틈도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생생했다. 땅의 구멍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를 위로 끄집어냈다. 그녀는 희한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골목길로 이동했다.
“끅!”
“괜찮아?”
정신을 차리니 라이넨이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일행 모두가 같은 골목길에 서 있었다.
“루키에르,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번화가로 나갈 수가 있지?”
“이 골목길은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걸으시면 됩니다.”
모두가 루키에르의 뒤를 따라 적막한 골목길을 걸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 공간. 그러나 카니벨라는 오히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라소니 왕국이었다.
그리고 라소니 왕국은 아레마이의 본거지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전부 조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최소한의 긴장감을 끌어올린 채 일행들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번화가입니다.”
그 말처럼 점점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수도군.”
“예.”
그들은 기지개를 켰다. 그때,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그녀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라이넨을 돌아보며 말했다.
“넨, 너에 대한 소문을 좀 수집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왜?”
“일단 그 알스카라는 사람이 너 대신 그곳에 있는 거잖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혹시 살아 있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지.”
“알스카가 형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극진히 대접하지 왜 죽이거나 하려고 해?”
“란시엔은 의심이 많아. 만일 그쪽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분명히 덫을 놓으려고 할 거야.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알스카라는 사람의 생명조차 보장하기 힘들어.”
“그리고 그자의 성격상 데리고 왔다는 사실까지 숨기려고 들 겁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작자이니까요.”
루키에르가 그녀의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란시엔은 확실히 은밀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동시에 의심이 많았다. 혹시라도 알스카가 어떤 꿍꿍이를 쓰려 한다면 곧장 눈치챌 것이었다.
그러니 혹시나 싶은 거지.
“형님, 혹시 그 알스카라는 자에게 소식이 왔습니까?”
“들킬 수 있으니 보내지 말라 하였다.”
“그럼 어쩔 수 없겠는데요?”
라이넨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고 했으니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지만 이 세상에는 ‘혹시나’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장 란시엔과 라이넨(알스카)에 대한 소문을 추적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한결같았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란시엔 공주님에게 애인이?”
“그럴 수가 있나. 공주님께서는 이 나라와 결혼하신다는 이야기까지 하실 정도로 이 나라만을 사랑하시는데.”
“공주님께는 어떤 남자를 붙여도 모자라지.”
“남자가 있다면 그놈이 매달려야 해. 그게 수지타산에 맞지.”
“공주님께 애인이 생긴다면 내가 먼저 그 남자를 죽여 버릴 거야.”
……오히려 란시엔에 대한 찬양만 잔뜩 들었다. 카니벨라는 기분이 더러웠다. 란시엔이 이미지 세탁을 어지간히 했다 싶었다. 란시엔의 실체에 대해 안다면 저런 식으로는 절대 말을 하지 못할 텐데.
“수확이 없네요.”
“이제는 직접 돌파할 수밖에 없겠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적진을 향해야 하다니. 암살자로서 정말이지 최악의 상성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움직일 수는 없어. 일단 오늘은 여기서 머물러야겠어.”
그들은 여관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정말로 작전을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그랬기에 마지막으로 무기들을 점검하고 실행 작전을 구상했다.
“갈 사람은 나 혼자로 할게. 다들 실력이 대단하지만 암살자로서 활동이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마마, 위험합니다.”
“네 덩치로는 금방 들켜.”
루키에르는 그녀의 단언에 시무룩해져서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때, 라이넨이 손을 들어 합류 의사를 표시했다. 그녀는 안 된다고 딱 잘랐지만 그는 단호하게 주장했다.
“내게는 나이티 님이 주신 비장의 수단이 있어. 그걸 사용하면 돼.”
“비장의 수단?”
“그래. 그게 있으면 너도 굳이 개구멍 찾아서 궁에 들어갈 필요가 없을 거야.”
“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백색의 돌들을 내밀었다. 반짝이는 돌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들어가는 것은 나와 라이넨 둘로 하자.”
“그렇다면 저희 둘은 무엇을 하시면 됩니까?”
“성문을 열어. 다 열 필요는 없고 대략 세 사람이 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건 자신 있지.”
성문 앞과 망을 보는 병사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라이부스는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그가 이제 그 길을 걷기로 온전히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지금부터 구출 작전을 시작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