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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첫 전투 (80/93)

79. 첫 전투

이틀 후, 출정식이 앞으로 다가왔다. 라이넨은 사용인들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착용했다. 저번 전쟁에서도 입었지만 이번에는 다소 느낌이 달랐다. ‘진정한 적’을 무찔러야 해서 그런가…….

“왜 나까지 갑옷을 입어야 해?”

그때, 카니벨라가 투덜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본래처럼 가볍게 무장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가볍게 일축했다.

“너 역시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나중에 네가 드러나게 되었을 때 활약상이 있어야 사람들이 욕을 안 해.”

정확하게는 카일라가 그에게 제안했던 것이지만.

<공주를 대중 앞에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마음껏 활약하게 두십시오. 그렇다면 백성들은 공주의 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카니벨라는 그런 라이넨의 의도는 알지 못했다. 그저 갑옷이 불편하다고 투덜거릴 뿐.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코를 꼬집었다. 그녀가 평소에 잘 보여 주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나가자.”

“그래.”

그녀는 그와 함께 성문을 나갔다. 몰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햇빛 아래서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녀는 라이넨의 뒤에 서서 그를 돋보이게 함과 동시에 호위의 역할을 맡았다.

‘어디서 아레마이의 습격이 있을지 모른다!’

저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겠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녀는 그가 멈추자 두 걸음 뒤에서 멈췄다. 광장에는 수많은 병사들과 기사, 그리고 그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가족들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자 두려움에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앞에 있는 라이넨의 모습이 든든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제국민의 자랑을 위협하는 적들을 무찌르러 간다.”

그는 타고난 지배자였다. 연설을 잘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루미니르 제국의 백성이라면 열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우리를 위협하는 적들을 물리치자!”

“와아아!”

큰 함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녀는 그 광경에 압도되었다. 이들과 함께 있다면 라소니 왕국 정도야 손쉽게, 아니 아레마이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일부는 혹시 모를 기습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남겨 놓고 가지만.

그래도 그녀는 숫자와 기세에 있어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래, 우리는 할 수 있을 거야.’

“출정한다!”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 전쟁터로 향했다.

*   *   *

루미니르 제국과 라소니 왕국 사이에는 카이셔스 산맥이 있었다. 대략 50만의 군사가 한꺼번에 산맥을 넘어가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기에 그들은 배를 이용했다. 1천 척이 훨씬 넘는 큰 배들이 동시에 라소니 왕국을 향해 진격했다.

바다 공기는 짭조름했다. 카니벨라는 자신의 조국으로 향하는 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라소니 왕국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이상하군.’

자신을 슬프게만 만든 조국이 사라진다는 것이 기쁜지, 아쉬운지, 슬픈지 잘 모르겠다. 그냥 멍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직접 본다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아마 자신은 이 나라가 전부 불타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느낄 것만 같아 무서웠다.

“무슨 생각을 해?”

“이상하지. 내 조국이 없어진다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괜찮아. 그저 넌 이곳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어서일 거야.”

“그런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아레마이가 만든 비극 이후 그녀에게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언제나 맞고 무시당하던 기억뿐.

“그래. 이제 진짜로 괜찮을 거 같아.”

그녀는 이제라면 그 아픈 기억들을 씻어 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는 한번 씨익 웃어 주고는 주변의 기사들에게 명했다.

“하선할 준비를 해라.”

“네,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하선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들의 무기를 점검하였다. 서서히 라소니 왕국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활을 쏘아라.”

그의 명에 병사들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있던 사람들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으아악!”

“엄마!”

“살려 주세요!”

아무 죄 없는 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역시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라소니 왕국은 가장 많은 아레마이 단원들이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두의 목표는 라소니 왕국의 멸망이다.

“하선하라!”

일사불란하게 달려가는 기사들과 병사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적들을 무참히 쓸어 나갔다. 피가 흘렀고, 그 피가 바다로 흘러갔다.

“저들을 다 죽이란 말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곳의 영주가 병사들을 파견해서 싸워 나갔지만 애초에 숫자도 밀렸고, 기세부터 달랐다. 제국의 병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비명 소리,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저기 적들의 수장이 있다!”

“죽여라!”

“전하를 지켜라!”

라이넨을 지키기 위해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딱히 호위가 필요 없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최강의 전력인 카니벨라가 절대 검이 스치지도 못 할 정도로 완벽하게 엄호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적들이 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검을 쓸 수 없는 상황에는 암기를 던졌다. 그녀의 암기는 적들의 심장, 목, 머리에 적중했다. 라이넨은 그런 그녀가 있기에 안전하게 싸울 수 있었다.

“이야압!”

챙!

무자비한 힘에 그녀의 검이 부서졌다. 그녀는 재빨리 발을 들어 적의 무릎을 찍었다. 적군이 주저앉은 사이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검을 잡아 목을 베었다. 피 분수가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

“…….”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끔찍한 광경. 그러나 아레마이가 대륙의 패자가 된다면 이것보다 더 끔찍한 광경이 만들어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적의 힘줄을 끊고, 고통에 자세가 무너질 때 심장에 검을 박았다.

그때, 한창 싸우고 있는 라이넨의 뒤에 누군가가 검을 쥐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소리쳤다.

“라이넨!”

그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품을 뒤졌지만 이미 암기를 다 던지고 난 후였다. 그녀는 욕을 하며 그에게 달려갔다. 그때, 곰 같은 덩치의 남자가 대검으로 달려오는 적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마마, 이곳은 제게 맡기십시오!”

루키에르였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게 맡길게!”

그녀 쪽에도 점점 적들이 달려오고 있었기에 이제는 루키에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루키에르는 라이넨의 쪽에 서서 든든하게 그를 지켰다.

“내, 내 팔이!”

거침없이 베어 내는 루키에르의 검술에 적들은 오줌을 지렸다.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을 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검은 절대 적을 놓치지 않았다.

“에, 에잇! 당장 저들을 죽이라 하지 않았느냐!”

영주의 외침은 너무나도 공허했다. 이미 처음부터 기세는 라이넨의 군대 쪽에 있었다. 절대 자신의 가족이 죽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은, 제국에 대한 자부심은 그들이 낼 수 있는 힘의 그 이상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이길 수 있다!”

“우와아아!”

공방은 더욱 거세졌다. 영주는 영지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병사들을 지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탈하려는 병사들의 수는 늘어났고, 도망치려 해도 목숨만 잃을 뿐이었다.

‘빨리 저 영주를 죽여야 하는데.’

영주는 도망치기 위해 슬슬 발을 떼고 있었다. 라이넨은 알고 있었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는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 최고다.

영주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의 검이 적들의 목숨을 가차 없이 빼앗았다. 그는 목과 심장을 찔렀다. 뒤를 돌며 거침없이 찌르는 그의 검격에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던 적들이 겁에 질렸다.

“으, 으아아…….”

그렇게 그는 루키에르의 호위를 받으면서, 적을 찔러 나가면서 영주에게 다가갔다. 영주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보며 겁에 질렸다.

“어, 어서 나를 지켜라!”

병사들을 시켜 자신을 에워싸게 했으나 그에게는 우스울 뿐이었다. 이미 적군의 상당수가 죽었고, 영주는 쓸데없는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너도 지휘관이라면 검을 들고 싸워라.”

영주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서 도망쳐서 살아도 뮤일라는 방어책이 뚫렸다고 하며 절대 그를 살려 놓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똑같은 것이었다.

영주는 검을 정자세로 들며 그에게 소리쳤다.

“내가 네게 죽음을 선사하겠다!”

“그런 오그라드는 소리도 할 줄 알다니.”

“닥치고 죽어라!”

“난 안 죽어.”

“이야압!”

그는 달려오는 영주의 검을 정면으로 받았다. 검이 맞부딪히며 청명한 소리를 냈다. 그는 찌르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막혔다. 몇 번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영주는 꽤 실력이 있는 기사였다.

그렇게 한참을 공방하던 그들은 서로에게 의도적인 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에게 있어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이넨은 재빠르게 검을 다시 들어 영주를 베어 나갔다.

“나를 이기려면 한참은 늦다, 애송아!”

“…….”

그는 말없이 싸웠다. 그저 이기는 것에 집중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자 했다. 절대 여기서 질 수는 없었다.

“윽!”

그때, 영주가 피 웅덩이에 발을 헛디뎠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 영주의 모습에 그는 직감했다.

지금이 기회였다. 그는 재빨리 영주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푸우욱!

검이 심장을 관통하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그는 동시에 검을 거칠게 빼냈다. 영주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몸은 움직임이 멎었다. 검이 손에서 스르르 떨어졌다. 영주는 눈도 감지 못한 채 쓰러졌다.

“끄어억…….”

그것은 적군에게 있어서는 재앙이었다. 순식간에 도주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라이넨의 군사들은 그런 자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다 죽였다. 그리고 그 처참한 현장에서 승리를 맞이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런 짓을 계속하겠지?”

“끔찍하다. 우리, 절대 이 일을 잊지 말자.”

아레마이를 없애 버리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죄가 없는 민간인들을 죽였다. 그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이고, 그것은 참으로 참혹한 광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카니벨라와 라이넨은 다짐했다.

앞으로, 절대 이 광경을 잊어버리지 말자고.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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