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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누군가의 죽음 (2) (86/93)

85. 누군가의 죽음 (2)

라이넨의 외침에 병사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며 적들을 향해 뛰어갔다. 거칠게 충돌하며 공방을 주고받는 병사들을 기사들과 라이넨은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서로를 죽이기 위한 날카로운 파공음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승리는 그토록 가혹한 조건 위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검이 서로를 향해 휘둘러지고, 그 공격이 서로를 꿰뚫었다. 죽고 또 죽었다. 피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주인을 잃어버린 방패와 검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미 죽은 자의 비명 소리가 처절하게 공기 중에 흩어졌다.

“저들은 우리의 적이다, 반드시 승리하자!”

“제국의 승리를 위해!”

병사들은 잘 싸우고 있었다. 왕국군의 협력에도 밀려나지 않았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전투를 지속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대단했다.

검이 휘둘러지고, 창은 서로를 찔렀다. 오늘 역시 루미니르 제국군은 승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때 단쿤이 소리쳤다.

“밑을 터뜨려라!”

그 말에 조직원들이 검은색 무언가를 품에서 꺼내 바닥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순식간에 터지며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큰 구멍이 생겼다.

“으아악!”

폭발에 휘말린 사람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카니벨라가 놀라서 소리쳤다.

“설마 폭탄?”

그녀는 놀라서 말 위라는 사실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구멍이 생기며 적군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제약이 생겼다.

“저게 뭐지?”

모두 당황했다. 폭탄으로 인해 순식간에 전황이 뒤바뀌었다. 단쿤은 당황한 적들을 보며 비웃었다.

“이것이 바로 아레마이가 개발한 폭탄이다.”

아레마이는 일찌감치 시스티아 왕국의 무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스티아 왕국을 점령한 후 그곳에 있는 연구자들과 아레마이 파견자들을 데리고 적은 인원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무기가 빛을 발했다. 처음으로 폭탄의 위력을 보게 된 루미니르 제국의 군사들은 당황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순식간에 저렇게 큰 구멍을 만들 수가 있는 거지? 저들이 만들어 낸 대규모 폭발에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구멍이 깊어 저 안에 빠지면 살아나올 수가 없었다.

‘아마 이게 끝이 아닐 거야.’

그녀 역시 저 폭탄이 실험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익숙하지 않은 무기에 이미 아군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것은 공격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걸 증명하듯, 조직원들은 계속해서 폭탄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들의 눈에서 희망이 생겨나고 있었다.

사기가 적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녀는 전쟁을 통해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명을 내려, 라이넨!”

그녀는 라이넨에게 소리쳤다. 지금 여기서 패배하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었다. 그 말에 그는 소리쳤다.

“전원, 출격하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한꺼번에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아레마이 조직원들은 코웃음을 쳤다. 저들은 이 무기의 위력을 앞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인가?

“독을 풀어라!”

어제와 같이 독이 전장에 풀어졌다. 그걸 예상한 사람들은 미리 해독제를 먹었으나, 아쉽게도 양이 부족했다. 병사들에게까지 모두 지급되지 못했다.

“버텨라!”

“여기서 이기면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다!”

다행인 점은 어제와 같은 극독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정신력을 한껏 끌어올리고는 조직원들과 왕국군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병사의 창이 조직원의 배를 찔렀고, 조직원의 암기가 병사의 심장에 박혔다.

전장은 난폭함으로 가득했다. 카니벨라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다. 그녀는 조직원들이 던지는 암기를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그들의 급소를 찔렀다.

“웃기지 마.”

그녀는 장검 하나를 가지고 적들을 무차별적으로 베어 넘겼다. 피가 대지를 적시고, 그녀의 온몸에 튀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사신처럼 누볐다. 조직원들은 그런 그녀가 두려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녀가 의도한 바였다. 도망치던 조직원들은 사전에 아레마이가 만들어 놓은 구멍에 빠졌다.

“바보들.”

사방에서 폭탄이 터졌지만 그녀는 저들이 초조했기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황은 다시 균형이 잡히고 있었다.

그때, 단쿤이 나타나 아군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건 동시에 그녀에게 있어 신호였다. 이번이 바로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이번에 반드시 간부들을 죽인다.’

그녀는 마음을 다졌다. 저기에 아레마이를 지탱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저들 대부분이 전투를 할 줄 모르고 지금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다.

‘저 호위들…… 내 상대가 되지 않아.’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스스로를 독려한 그녀는 검을 집어넣고 다시 활을 꺼냈다. 그리고 어지러운 전장에서 적들을 상대하는 척하며 활을 간부들에게 겨누었다.

“윽!”

제일 먼저 키슌이 가격당했다. 화살이 그의 목을 관통하였다. 힘없이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간부들은 놀라 당황했고,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으아악!”

그다음으로 수이카와 시카온이 희생양이 되었다. 각각 눈과 심장에 화살을 맞은 그들은 쏟아지는 격통과 화살에 발려진 독으로 인해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그들의 개죽음을 본 칸나가 소리쳤다.

“에이니!”

그리고 말을 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은 그녀의 오른손에 감겨들었다. 칸나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넌 죽었……!”

“너 바보니?”

그녀는 왼손에 쥐고 있던 화살로 칸나의 이마를 찔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칸나는 동공이 풀렸다. 독으로 인해 입과 코에서 피를 쏟아 낸 칸나는 그녀를 원한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널, 널 가만두지……!”

“그 말은 내가 할 소리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거칠게 채찍을 끊어 냈다. 저들의 죽음은 이토록 쉽고, 무가치했다. 그녀는 그들의 허망한 죽음을 비웃으며 뒤돌아섰다.

“거기 서라!”

그때, 단쿤의 목소리가 들리며 뒤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활을 버리고 양손에 단검과 장검을 교차해 공격을 막았다.

“윽!”

그러나 단쿤은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공격을 바꿔 그녀의 옆구리를 베었다. 그녀는 그걸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낙마해 버렸다.

“마마!”

마침 그걸 옆에서 목격한 루키에르가 그녀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위에서 날아오는 단쿤의 공격을 피하느라 루키에르에게 응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루키에르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검을 날렸다.

“이런!”

루키에르의 괴력에 밀린 단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둘은 동시에 덤볐지만 단쿤은 재빨리 일어나 주변에 떨어져 있던 검 하나를 주워 그들의 공격을 저지했다.

“……!”

둘은 양쪽에서 각각 덤볐지만 단쿤은 여유롭게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오히려 힘을 주어 압박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손이 꺾이며 단검을 놓쳤다.

“젠장.”

그뿐 아니라 단쿤은 순식간에 그들에게 반격했다. 한쪽 검으로는 카니벨라의 허벅지를, 다른 쪽 검으로는 루키에르의 팔뚝을 베었다.

그녀는 옆구리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그걸 놓치지 않은 단쿤은 그녀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때, 루키에르가 재빨리 그 공격을 막아 냈다.

“비켜라, 이 성가신 것!”

단쿤이 성가셔하며 루키에르를 상대했다. 그녀는 루키에르가 시간을 번 사이, 재빨리 품을 뒤졌다. 암기 하나가 남아 있었다.

“죽어라!”

그녀는 단쿤의 눈을 향해 암기를 던졌다. 그러나 단쿤은 루키에르를 상대하고 있으면서도 암기를 재빨리 쳐냈다. 오히려 힘으로 루키에르를 압도하고 있었다. 루키에르의 검이 부서지고 있었다.

루키에르는 당황했다. 그사이 단쿤의 다른 검이 루키에르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루키에르!”

“마마…… 사셔야 합니다.”

“……!”

‘마마께서 사셔야 그 여자를 향한 복수가 완성됩니다. 부디 저를 대신해서…….’

그녀는 반드시 살아 달라는 루키에르의 간절한 눈빛을 보았다. 줄곧 무시하던 상대의 진심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 무언가 매우 후회스러웠다.

그렇지만 아직 적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또 다른 단검을 꺼내 단쿤에게 대적했다.

‘제발 좀 맞아라!’

그 단검에는 독이 발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상대가 공격에 맞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단쿤은 요리조리 그녀의 공격을 피하며 반대로 그녀에게 검상을 남겼다.

‘이번에 정말로 죽는 건가?’

그녀는 이번 일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로 많았다. 라이지와 함께 살면서 엄마라고 불리는 것, 그리고 라이넨과…….

그러나 그때, 웬 빛이 비치며 단쿤의 신형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괜찮아?”

그는 바로 라이넨이었다.

라이넨은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의 곁에서 싸우던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그를 지키던 기사들도, 귀족들도 죽었다. 그의 머릿속에 죽어 가던 라이문타 후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품 안에 있는 마지막 돌을 만지작거렸다. 나이티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게 이걸 준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지금이야말로 이 돌을 써야 할 때라고 직감했다.

“카니벨라!”

카니벨라를 공격하고 있는 단쿤의 모습에 눈이 뒤집혔다. 그는 욕을 하며 돌을 깨부쉈다. 그러자 전신에 힘이 넘쳤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산을 부수라고 하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았고, 바다를 가르라면 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단쿤에게 빛을 쏘아 보냈다.

“괜찮아?”

단쿤은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가 머리에 무기가 박혀 버렸다. 그러나 저놈의 생사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카니벨라가 먼저였다.

그는 그녀의 다친 곳을 치료해 주었다.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주먹을 쥔 채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가서 저놈들이나 다 죽여 버려.”

“그래.”

그는 그녀를 안전한 곳에 옮겨 주고는 적군들에게 돌아섰다. 먼저 가운데 있는 큰 구멍을 메웠다. 이로써 병사들이 운신하기가 좀 편해졌다.

“모두 싸워라! 승리를 쟁취하라!”

대부분의 간부들이 죽으며 다시 사기는 아군에게로 돌아왔다. 그의 외침에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쳤다.

“돌격!”

그의 의지에 병사들이 힘을 쥐어짜 냈다. 그는 검에 정신을 집중했다. 빛이 움직여 검에 휘감겼다.

“으아악!”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적군들의 몸에 검상이 새겨지고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그 벼락은 순식간에 아레마이 단원들과 왕국군들을 태웠다. 또한 땅 위에서 갑자기 식물들이 넝쿨로 자라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꽁꽁 묶어 땅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살려 줘!”

곳곳에서 공포에 가득한 적군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돌로 된 병사들이 나타나 적들을 학살하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는 돌풍이 불어 적들을 종이처럼 찢어 버렸다.

“이게 뭐지?”

병사들은 당황스러웠지만 이 기적이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더 힘을 낸 병사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휘감는 바람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 바람은 그들을 이끌며 적들에게 최선의 공격을 선사했다.

라이넨은 그 모든 것을 조종하며 검을 휘둘렀다. 검이 적을 베자 불꽃이 튀어 저들의 몸을 태웠고, 얼음이 저들의 몸을 얼렸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과 분노의 감정을 담았다. 그의 마법은 전장을 휩쓸고, 순식간에 전황을 압도했다. 그는 전쟁의 신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이 아닌 힘을 내는 그의 모습에 적군들은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쳐!”

“사람 살려!”

그러나 그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바람 형상의 화살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발사.”

그러자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가 그들의 몸을 찢어 버렸다. 살점과 피가 허공에 날아올랐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피는 다시 그의 무기가 되어 적군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군들에게는 승리를 선사했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전장을 지배하고 있던 그는 시간이 지나자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멍하게 승리의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카니벨라에게 다가갔다.

“이겼네.”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화창하고 따뜻했다. 그는 곁에 있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이제 우리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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