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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황제의 마지막 마법 (87/93)

86. 황제의 마지막 마법

“전쟁에서 지다니…….”

“간부들도 다 죽었습니다.”

루미니르 제국의 간자들 중에서는 이번 전쟁에 참여한 자들도 있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머물고 있던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제국군의 승리와 함께 수도로 귀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입술을 뜯었다.

“그럼 우리끼리라도 해야 할까요?”

“할 수 있습니까? 저희는 지금 인원이 적다고요!”

“그렇지만 대장은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부흥할 수 있어! 안 그렇습니까?”

“……그래야지.”

대장을 찾아서 어떻게든 다시 아레마이를 일으키자. 그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력을 불려왔던 아레마이가 이렇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대장이 사라지고, 전쟁에서도 지자 아레마이는 지는 해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륙 정복은 정말 달콤한 꿈이었다. 그것은 이미 거의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대장을 찾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다시 꿈을 꿀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럼 침입은 오늘 밤이다.”

“자정이 되기 전에 여기서 다들 모이세.”

“그러도록 하지.”

그렇게 아레마이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었다.

“쓸데없는 발악을 하는군.”

아레마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국 역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카샨은 아레마이가 제국에 넘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에리칼과 협력하여 제국의 온 귀족들에게 조직원들을 심어 놓은 참이었다.

대부분은 아레마이와 접촉하지 않았으나, 몇몇 가문이 아레마이 조직원들에 의해 죽거나 그들에게 협력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얼마나 꼭꼭 숨기고 있는지 접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괜히 힘 빼게 하고 있어…….’

그렇지만 아레마이 조직원의 경우 얼굴을 전부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 귀족으로 변장한 경우야 괜찮았지만 측근으로 침입한 경우에는 진짜 얼굴을 알지 못하니 매우 난감했다.

일단 그는 그 사실을 라이부스와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귀족 회의라도 소집하라는 것이냐?”

“네, 그러는 것이 좋겠어요.”

“고맙구나.”

라이부스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은 황제는 카샨과 뷰이트에게 적당하게 자료를 조작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전쟁에 참여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하위 귀족들과 어떻게든 전쟁을 피했던 자들, 그리고 아레마이 조직원들이 참여하였다.

“황제 폐하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이유는 아십니까?”

아무도 황제의 소집에 대한 이유를 몰랐다. 그리고 그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황제 폐하 입장하십니다!”

시종의 목소리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황제는 자신의 밑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귀족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회의장에서 가장 높이 있는 옥좌에 앉아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조작된 자료를 내밀었다. 귀족들은 경악했다. 루미니르 제국이 아레마이를 정적으로 선포한 지 거의 석 달이 다 되어 가는 차였다. 그런데 그 전부터 아레마이에게 협력하는 귀족들이 있다는 정보가 나온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살려 주도록 하겠다.”

황제의 말에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 안에 아레마이 조직원들이 있다는 소리인가? 파문이 일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은 아레마이와 일절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이유와 증거를 대도록 하라.”

-이제 어떡하죠?

-괜찮다. 황제는 아직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

-작전은 그때 말했던 것처럼 오늘 밤에 실행한다.

안에 있던 간자들은 수신호로 대화를 나눴다. 황제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오늘 반드시 대장을 구해 내야 했다. 궁 안에 사용인의 수가 적은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어디냐.’

황제는 눈을 굴렸다. 조직원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찾아야 했다. 그러나 어찌나 꼭꼭 숨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카니벨라의 말에 따르면 수신호를 한다고 하던데 그들의 수신호가 정확하게 뭔지 모르니 그것이 문제였다.

“폐하,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러나 귀족들을 계속 붙잡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회의를 마쳤다. 회의에 수확이 없는 것을 본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괜찮습니다, 아바마마. 저들은 이런 회의를 했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낄 거예요.”

그리고 분명히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겠지.

황제는 그런 아들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저들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틀림없이 무리할 것이다.

“그럼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라이부스의 확신 어린 태도에 황제는 아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라이부스는 라이넨과 다른 의미로 믿을 만한 아들이었다.

“그 가족과 사용인들을 기사들의 숙소에 데리고 가거라.”

“명 받잡겠습니다.”

황제의 전속 시종은 그 즉시 모든 사용인들을 기사들의 숙소로 안내했다. 마리와 루카스는 무슨 일인지 몰라 혼란스러웠지만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라이지가 마리에게 안긴 채 중얼거렸다.

“엄마, 우리 어디로 가?”

“우리 라이지를 지켜 줄 수 있는 기사님들에게로 가.”

“우와, 정말?”

마리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레마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이제 정말로 아이에게 진짜 부모에 대해 말해 줄 때가 되었다. 속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에 마리는 쓸쓸하게 웃었다.

“여러분, 오늘 하루는 절대 여기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기사들의 숙소는 매우 넓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마리는 잠든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   *   *

아레마이는 자신들과 연관된 모든 귀족들을 끌어모았다. 모두들 소환에 응하기는 싫었으나, 오지 않으면 가족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에 올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것이오?”

“내일까지 폐하께 결재해야 할 서류가 있단 말이오!”

예전에 그들이 접근했을 당시에는 좋다고 협력했던 자들이 아레마이가 기울자 발을 빼려 하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것들.’

A+급 조직원인 남자는 그런 그들의 작태에 얼굴을 찌푸렸다. 저들은 지금 황제가 자신들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인가? 그는 그들의 불만을 전부 무시하고는 싸늘하게 일갈했다.

“지금 황제가 자네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도 하는 소리인가?”

“……!”

이미 황제는 어느 정도 증거를 잡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대놓고 아레마이 조직원들이 귀족 사회에 숨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에 귀족들은 겁에 질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들은 또 한 번 저들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대장을 구한다면 다시 아레마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만 대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난처하단 말이지.”

“그래서 자네들의 도움이 필요해.”

“황실의 지리가 그려져 있는 지도를 구해 와. 그렇다면 봐주지.”

귀족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황제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그런 지도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없다고 말하면 저들에게 먼저 죽을 판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 냈다.

“참고하지.”

그 후, 그들은 귀족들을 모두 물리고 작업복을 입었다. 이제 일을 할 시간이었다. 대장을 구해 내야 할 시간이었다.

“출발하자.”

그리고 그들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붕을 밟고 올라가던 그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성문을 넘어갔다.

‘이상한데?’

평소에 비해 사용인들이 더욱 적었다. 그리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도 그리 느끼고 있다.”

“돌아가야 할까요?”

“조만간 우리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일을 처리하는 게 좋아.”

그 말도 맞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느껴지는 수상함에도 불구하고 궁 안에 발을 들였다. 황궁은 참으로 넓었지만 후보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곳이 황제의 궁 지하.

정말로 침입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아레마이 조직원인 그들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들이 갈 수 없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고, 침입할 수 없는 곳도 없었다.

“황제궁으로 간다.”

그렇게 그들은 귀족들이 그려 준 지도를 참고하여 황제의 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웅장한 크기에 아침이 되기 전까지 수색해서 대장을 구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들어가자.”

손을 대자 문이 열렸다. 위화감은 더욱 짙어졌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라면 돌아다녀야 할 사용인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허공이 일그러지며 그 안에서 황제가 마치 산보를 하러 나온 것 같은 표정으로 나왔다.

“오래 기다렸다네.”

“뭐, 뭐라고?”

“너희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그렇게 말하며 황제는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금색의 밧줄이 그들 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순식간에 그들의 사지를 묶어 버렸다. 그리고 황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있던 장소에서 이동했다.

“대장!”

그리고 오게 된 황제궁의 지하 감옥에 사지가 묶인 란시엔이 잠들어 있었다. 황제는 그들의 그런 절망스러운 표정을 본 후 말했다.

“구하러 왔겠지?”

“…….”

그러나 그들의 침묵에도 개의치 않은 채 황제는 비웃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수치심이 일었다. 감히 우리의 상징인 대장을 저리 만들고 우리의 대의를 짓밟아 버리다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황제!”

“해 볼 수 있다면 해 보도록 해라.”

“뭐라고?”

“이미 너희들과 협력하던 귀족들도 잡아냈다. 너희가 성급히 움직여 준 탓에 일이 더 수월해졌군.”

그리고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자 그들의 눈앞에 자신들과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있었던 귀족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자들을 다 잡아낸 거지? 그리고 저자의 손에 감도는 저 푸른빛은 뭐고?

그러나 황제는 그들의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그들을 차갑게 바라본 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시종이 안경을 세우고는 말했다.

“자네들의 사형은 정확히 이번 겨울이라네. 추위에 좀 떨다가 그렇게 죽으라고.”

“……!”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겨울도 곧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비명을 질렀다.

“폐하!”

“잘못했습니다, 폐하!”

“한 번만 선처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러나 황제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냥 감옥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순간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

“폐하!”

“괜찮다네. 이미 예견된 일이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라이넨 그 아이가 빨리 내 뒤를 이으면 된다네.”

“……폐하.”

라이넨이 돌아오면 된다.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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