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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계승 의식 (92/93)

91. 계승 의식

카니벨라와의 혼인이 온전하게 축하받기 위해서는 군중의 지지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카니벨라에게는 아레마이 조직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이넨은 카니벨라에 대한 소문을 풀었다.

“그거 들었어?”

“뭔데?”

“이번 황태자 전하의 신부 말이야!”

“누군데?”

“아레마이 단원이었는데 황태자 전하를 너무 사랑해서 조직을 해체시키는 데 앞장섰다고 하더라.”

“뭐? 정말이야?”

“엄청난 사랑이네!”

“그런 사람이라면 아레마이 조직원 출신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난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전에 출정식 할 때 전하를 옆에서 호위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바람을 잡으면서 소문을 내자 그녀에 대한 좋은 여론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니벨라와 라이넨의 혼인 준비가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런 아들의 혼인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 하루빨리 아들에게 마법을 계승해 줘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대륙 전체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는 황제밖에 없다. 황제는 때가 지나면 자신의 후계자에게 마법을 계승해 주고 거기에 따른 지식을 부여해 준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마력의 증발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차기 황제가 즉위하면 그 황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의 마력을 쏟아부어 제국 전체에 결계를 형성한다. 그 결계는 제국의 기반이 되고 그것을 이용해 타국의 침략, 전염병 등을 막아 낸다.

현 황제는 선천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마력과 계승 받은 마력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제국 역사상 가장 강한 황제로 평가 받았다. 그런 그 또한 나이가 들며 몸이 약해졌다.

‘이제 때가 되었어.’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 오직 마법 계승만이 남아 있었다. 황제는 교황을 불렀다.

“폐하, 이제 때가 되신 것입니까?”

“그렇다네. 저 모자란 아들에게 마력을 물려줄 때가 되었어.”

“제가 전하의 계승 의식을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폐하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교황은 기뻤다. 상처받은 아이에 불과했던 라이넨이 드디어 황제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의 반려를 만나 상처를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나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네.”

“그런데 어쩐 일로 부르신 것입니까? 의식은 신전에서 하기에 굳이 저를 부를 필요는 없으실 터인데…….”

“내 몸이 거의 움직여지지 않는다네. 지금 상태로는 신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폐하, 괜찮으신 것입니까?”

“빈말로도 괜찮다고는 못 하겠군.”

황제는 얕은 기침을 했다. 피가 섞여 나왔다. 교황은 상태가 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력을 뽑아 달라고 부탁하시려고 부르셨군요.”

“그렇다네. 이렇게 내가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내 대에서 마법의 명맥이 끊기고 말아.”

교황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해 심장 안에 있던 황제의 마력을 뽑아냈다. 황제는 이때까지 자신을 감싸고 있던 활력감이 사라지자 몸이 더 무거워졌다.

“하루빨리 황태자 전하를 부르셔야 합니다.”

“내일 올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네.”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아침, 라이넨은 신전에 방문하였다.

‘여긴 정말 오랜만이군.’

그는 건물이 주는 익숙함이 퍽 반가워 오랜만에 오는 신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이가 좀 된 신관들이 그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표정이 죽어 있던 아이는 활력 넘치는 어른이 되어 신전에 다시 찾아왔다.

“신께서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시사, 신의 은총을 받기를.”

“고맙군.”

그렇게 한창 인사를 받고 있던 도중, 교황이 나타났다. 그는 오랜만에 본 교황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교황 역시 그에게 웃어 주었다.

“일단 안으로.”

“그러지.”

그는 직감적으로 오늘이 마법 계승의 날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말없이 따라갔다.

“멈춰 주십시오.”

교황은 자신의 서재로 그를 안내했다. 그리고 책장에 나열되어 있는 책 중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제목을 세 번 쓰다듬고 그 밑에 있는 빨간색 책갈피 줄을 당겼다.

그러자 쿠궁 소리가 나며 책장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동굴같이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이곳으로 가면 되는 것인가?”

“예,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황이 앞장섰다. 그는 동굴이 너무 어두워 발을 내딛기가 힘들었다.

“근데 너무 어둡지 않나?”

“거기 도착하면 횃불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굳이 밝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박타박.

들리는 것은 발소리밖에 없었다. 그렇게 걸어가자 비밀 통로가 보였다. 교황은 능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돌로 된 원탁이었다. 원탁에서는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신어(神語)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원탁에서 나는 은은한 빛이 어두운 지하를 밝혀 주고 있었다.

‘이래서 횃불 같은 게 필요 없었던 거군.’

“원탁의 왼쪽에 서십시오.”

그는 교황의 말대로 행했다. 원탁 앞에 서자 묘한 기운이 그의 몸을 감쌌다. 뭔가 상쾌하면서도 가벼운 느낌. 이것이 바로 정순한 마력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교황은 유리병 하나와 성수가 들어 있는 크리스털 와인 잔을 들고 원탁의 오른쪽에 섰다. 교황들은 대대로 마법 계승자들의 계승을 돕는 자들로서 이 계승 의식 장소를 비밀리에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아바마마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황제 폐하께서는 이곳에 오실 여력이 되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마력은 챙겼으니 의식은 치를 수 있습니다.”

황제는 그가 황태자 순례를 치를 때부터 이미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는 운신조차 힘들 정도라니……. 그는 황제가 왜 마법 계승을 지금 시점에서 하려 하는지 깨달았다.

교황은 원탁 위에 와인 잔을 놔두고 그 안에 황제의 마력을 넣었다. 성수와 마력이 섞이며 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넋이 나갔다.

“이제 마시면 됩니다.”

교황은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마셨다. 그러자 마력이 그의 몸에 휘몰아치며 안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걷어 내며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다. 온몸의 기운을 정갈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만 같군.’

그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부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온통 흰 곳이었다. 라이넨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보이는 흰 벽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교황과 함께 있었는데 혼자서 덩그러니 이 이상한 공간에 남아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때, 그는 문득 느껴지는 낯선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여자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여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나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험자’ 중에 열이면 열마다 다 그렇게 행동하던데 그럼 너 역시 자격이 있는 건가?”

그런데 그 여자의 얼굴이 뭔가 낯익었다.

“설마 나이티 님?”

“오? 나를 알고 있니?”

“예,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숙녀의 모습을 한 나이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그때 만났던 꼬마 모습의 나이티를 떠올리며 말했다.

“최근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이티 님께서 제게 마력을 압축해서 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밖에 있는 내가 그런 적이 있다고? 내 호의를 받다니 넌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시험은 시험이야. 네가 자격이 있는 자인지 확인해 봐야지.”

“무슨 자격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 계승 자체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런 것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걱정 마. 그저 내 마력을 받아서 이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자격만 가지고 있으면 돼.”

“예?”

마력은 악용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초대 황제였던 나이티는 이곳에 자신의 사념체를 남겨 놓고 후보자의 자질을 시험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면 그때서야 최종적으로 그 ‘시험자’의 안에 본래 내재되어 있는 마력을 해방시켜 준다.

그렇게 계승 받은 마력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력이 합쳐져 최강의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대 황제는 이때까지 즉위했던 모든 황제 중에서 마력 양이 가장 높고 정순한 자였다. 그런 자의 앞에서 통치할 자격을 증명하라니. 그는 난처함에 그녀를 황망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괜찮아! 난 사념체라서 본체보다 안 강하다고.”

“……그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겁쟁이를 봤나.”

“소중한 것이 생기니 잃을까 봐 무서워졌습니다. 자연스럽게 겁쟁이가 되더군요.”

나이티는 그것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을 잃을까 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걱정한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지. 너 역시 내가 주는 시험을 그렇게 생각해 보라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별로 안 어려워. 그냥 지금 네 안에 있는 마력으로 어떤 것이든 만들어 내면 돼.”

그는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아 흩날리고 있는 벚꽃 잎을 생각했다. 그러자 황제에게서 받은 마력이 그의 안에서 꿈틀대더니 순식간에 벚꽃 나무와 그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잎을 만들어 냈다.

“호오, 너 대단한 재능인데?”

그는 눈을 떴다. 눈앞에 자신이 만들어 낸 절경이 보였다. 그는 입을 벌렸다. 나이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자, 봐 너도 할 수 있잖아.”

“……그렇군요.”

“그럼 이제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자. 내 사념이 유지될 날도 얼마 안 남았어.”

나이티는 초대 황제의 증거 ‘뮤알의 지팡이’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환한 빛이 나오며 그 위에 금빛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마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력이 마치 주인을 향해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처럼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그에게 재롱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그게 너무 귀여워 피식 웃었다.

“이렇게 주인을 좋아하는 마력은 처음 보는데? 너희 아버지도 안 그랬다고.”

“제가 아바마마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라는 말씀이십니까?”

“말하자면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나이티는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다시 빛이 발하며 그의 전신에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겨진 문양 안에 마력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문양은 또 그의 안에 스며들었다.

그는 한결 가벼워지는 몸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언제 만날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기회가 있겠습니까?”

“없지. 사실상 네가 마지막이 될 거란다.”

그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곧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빛이 그의 전신을 덮치더니 그는 순식간에 현실 세계로 튕겨져 나갔다.

“윽.”

“괜찮으십니까?”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을 받쳐 주고 있는 교황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충만한 마력이 그의 온몸을 돌고 있었다. 이때까지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 이상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전하께서는 제국 황제의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고맙군.”

이제 온전한 황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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