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죽어 봐, 오벨리아(2)
3년간 힐켄테데를 그토록 지켜 왔음에도 에크하르트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
그것은 힐켄테데의 입양아인 그를 원로들 전체가 인정하지 않은 탓에, 그가 힐켄테데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힐켄테데의 핏줄과 혼인이라도 했다면 에크하르트의 위치는 금세 공고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전 힐켄테데 대공은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손이 귀한 힐켄테데에는 방계도 없다.
그래서 오늘- 오벨리아는 그 방계가 될 작정이었다.
“바실리스크의 독을 마시고 살아남은 자는 그 고통에 머리칼이 새하얗게 샌다지.”
오벨리아는 붉은 눈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네 생김새를 이 제국에 모르는 자가 있나? 겨우 그깟 말로 방금 나누던 이야기의 본질을 흐릴 생각이라면….”
그러나 실은 허무맹랑한 말이다. 오벨리아는 그것을 지적하며 화를 내는 에크하르트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 누가, 내가 바실리스크의 독을 마시고도 살아남았다고 생각할까? 그보다는 나를 닮은 전 대공의 핏줄이 있었다는 게 더 가능성이 클 텐데.”
오벨리아의 얼굴은 시종일관 담담하고 진지했다. 바실리스크의 독은 극독이다. 그래서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중죄를 면치 못했다.
그런 독을 굳이 구하여 스스로 마셨다는 것은 범인이 상상하지 못 할 일이었다.
“…하, 하하! 너… 또, 날 이용했군.”
에크하르트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그러기 위해서 오벨리아는 알렉산드로가 힐켄테데의 사변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일 테니까!
“네가 바실리스크의 독을 마시고 살아남지 못해도 내가 복수를 하게 하려던 참인 거야!”
에크하르트가 한없이 더러워진 기분으로 소리쳤다.
저 똑똑한 여자가 이 상황에서 왜 스스로에게 불리한 내용을 직접 발설하나 했더니, 그 또한 그녀의 복수 방법 중 하나인 셈이었다.
에크하르트는 방관자인 오벨리아가 밉더라도, 직접적인 원인일 알렉산드로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다.
설령 그 과정에서 그녀의 복수까지 대신해 주는 게 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이 망할 여자가 끝까지 날 이용해?”
에크하르트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식으로 나오는 오벨리아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좋아, 그럼 어디- 내게 효용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어 보든지.”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의 손에서 바실리스크의 독이 담긴 병을 홱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뚜껑을 직접 열어 다시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죽어 봐, 오벨리아.”
에크하르트가 어디 한 번 해 보라는 듯 말했다.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지는 극독이다. 그는 이 고통을 그녀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벨리아의 손은 떨리지도 않고 그 병을 꽉 쥐었다.
“기꺼이.”
오벨리아가 망설임 없이 제 입으로 맹독을 가져갔다.
“미친 건…!”
그에 경악한 것은 에크하르트였고, 담담한 것은 오벨리아였다.
“그렇지만- 나는 살 거야, 에크하르트.”
독을 마시기 전, 마지막까지 덧붙이는 말이 지독히도 오벨리아다웠다.
꿀꺽.
얼마 되지 않는 독은 달콤한 꿀처럼 쉬이 오벨리아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커흑!”
그리고 곧바로 오벨리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쿵.
오벨리아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맹독이 온몸의 내장을 태웠다. 쿨럭, 그녀의 입에서 연신 피가 역류하여 흘러나왔다.
까드득, 까드득. 고통으로 인해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지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벨리아는 결코 에크하르트에게 살려 달라고 빌지 않았다.
“지독한 여자 같으니…!”
에크하르트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곳에 오를 뻔했다 바닥으로 치닫고도 저 여자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허윽… 윽….”
꽉 깨문 오벨리아의 입술에서 점차 신음이 흘러나왔다. 더는 비명을 참을 힘조차 남지 않았음이라.
이대로라면 오벨리아 카테리안느는 죽는다.
“젠장!”
그것을 알고 있는 에크하르트가 욕을 짓씹으며 품에서 해독약을 꺼내 들었다. 힐켄테데 대공으로서 받는 위협이 많아 늘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바실리스크의 실질적인 해독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해독약을 먹는다고 하여 오벨리아가 살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방금 분노하여 오벨리아에게 죽어 보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것과 달리- 에크하르트는 그녀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까지 하여 누군가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그 누구보다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네 말대로 살아, 오벨리아 카테리안느.”
바닥을 나뒹구는 오벨리아를 안아든 에크하르트가 해독약을 입에 머금었다. 계속 피를 토하는 탓에, 오벨리아가 스스로 약을 삼킬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의 손이 오벨리아의 턱을 잡아 입을 열게 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에크하르트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어린 날부터 그는 황족들처럼 모든 독에 내성이 있었으므로 미량쯤이야 견딜 만하리라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오벨리아의 두 눈은 이제 막 뒤로 넘어갈 듯 의식조차 흐릿해 보였다. 그 상태로 두 입술이 맞닿았다. 알싸한 극독의 향과 해독제의 쓴맛이 어지러운 입맞춤이었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벨리아는 살아남았다.
“결국 네가 이겼군.”
에크하르트가 지친 기색으로 침대 위에 잠든 오벨리아를 내려다봤다. 일주일을 내리 열과 고통에 시달린 그녀의 머리칼은 새하얗게 새어 있었다.
그대로 송장을 치우는 줄 알았는데, 큰 고비를 넘긴 뒤로 오벨리아의 숨이 고르게 변했다. 의원은 그녀의 정신력에 혀를 내둘렸고, 에크하르트는 정말이지 지독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안도했다.
그는 여전히 오벨리아가 미웠다.
알렉산드로를 옹호하여 힐켄테데의 사변에 관하여 무려 3년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여자였다.
밉지 않을 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지킨 남편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에서 목숨까지 이렇게 잃지 않길 바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서도 일주일이 더 지난 어느 날… 오벨리아는 눈을 떴다.
“…준비는, 다 됐어?”
그리고 에크하르트가 처음 들은 말은 이랬다.
오벨리아가 정신이 들었다는 의원의 말에 일하다 말고 그녀에게로 달려간 스스로의 꼴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내가 힐텐테데가 될 준비.”
오벨리아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직 복수뿐인 듯이. 그녀의 두 눈은 맹렬히 타올랐다.
그것은 전혀 죽다 살아난 사람의 것 같지 않았다.
그로 인해 미간을 찌푸린 것은 도리어 에크하르트였다.
“너, 죽다 살아난 건 알고 있는 건가?”
바실리스크의 독. 그것을 먹었으니 솔직히 말하자면 평생을 요양만 해도 부족했다.
그런데 오벨리아는 당장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힐켄테데에 입성하려면 인장 반지가 필요할 거야. 내가 말해 준 곳에 가 봤어?”
그러나 오벨리아는 에크하르트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는…!”
에크하르트가 울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가, 오벨리아가 환자임을 상기하며 다급히 목소리를 죽였다.
당장이라도 죽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파리한 낯빛으로 저런 말을 하는 그녀를 보자니, 대체 저 여자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짜증이 치밀었다.
“그건 이미 믿을 만한 수하를 시켜 찾아 놨으니, 괜한 염려는 집어치워.”
에크하르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벨리아에게 휩쓸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 그에게서 까칠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넌 네 몸이나 챙겨.”
에크하르트는 오벨리아가 덮은 이불을 일부러 목까지 끌어올렸다.
일어나지 말라는 표시를 노골적으로 한 셈이었다.
“널 위해서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때에, 네 허약해진 몸이 쓰러지면 피해가 올 테니 쉬라는 거야.”
에크하르트의 말투는 다정한 기색이 단 하나도 없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오벨리아에게는 먹혀든 듯 했다.
그녀가 그의 말에 수긍하듯 얌전히 자리에 누웠으니까.
“…그럼, 조금만 더 잘게.”
오벨리아가 마침내 에크하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죽다 살아난 몸이 사실 아까부터 피곤에 절어 있었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애써 붙잡아 뒀을 뿐이니, 눈을 감는 것은 오벨리아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할 만큼 빠르게 수마에 빠져들었다.
에크하르트는 어쩐지 오래도록 그런 오벨리아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
며칠 뒤, 힐켄테데의 저택에는 파란이 일었다.
죽은 전 대공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등장한 탓이었다.
즉… 그동안 끊겨 버린 줄 알았던 힐켄테데의 진정한 핏줄이 나타난 것이다!
그로 인해 힐켄테데의 가신들과 원로들이 모이는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북부에서 힐켄테데의 핏줄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실조차 손을 놓았던 척박한 땅.
그 위에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토대를 세운 것이 힐켄테데였다.
힐켄테데는 오래도록 이 척박한 땅을 보호하고 발전시켜 왔고, 그리하여 북부인들이 인정하는 그들의 지배자는 황제가 아니라 힐켄테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명맥이 끊긴 줄 알았던 힐켄테데의 핏줄이 살아 있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을 북부인이 어디 있겠는가.
힐켄테데 내에서 에크하르트를 지지하는 자들도, 지지하지 않는 자들도 모두 조마조마한 얼굴이었다.
모든 가신과 원로들이 모이니 곧 힐켄테데의 넓은 홀이 꽉 들어찼다.
그렇게 에크하르트로부터 부름을 받은 모두가 모이고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듯 또각또각거리는 높은 구두 굽의 소리와 함께 홀의 문이 열렸다.
“오벨리아 힐켄테데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오벨리아 힐켄테데라고 소개한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자리의 모든 이가 놀라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