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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50화 (50/136)

50화. 되돌아온 폐태자비(6)

바실리스크의 독은 대륙 위에서 금지된 독으로, 알렉산드로 또한 황실의 보고에서 빼내 오지 않았더라면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선황제는 사람을 시켜 보고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뒤져 보게 하느라 이제야 제 아들을 부른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알렉산드로의 입매가 삐뚤어졌다.

어쩐 일로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께서 그를 책망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잠자코 넘어가시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꿍꿍이가 있던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속이 상했을 아들을 굳이 잡진 않는 것인가 잠시나마 기대했던 스스로가 지나치게 바보 같았다.

“왜요, 제가 폐하께서 친자식보다 아끼셨던 사람을 죽였다니 애통하십니까? 화가 나세요?”

알렉산드로가 빈정거리듯 물었다.

선황은 유독 이전부터 오벨리아를 아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들인 알렉산드로도 받아본 적 없는 애정이었다.

“멍청한 놈.”

선황제에게서 노골적인 경멸의 어조가 터져 나왔다.

화낼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한심하게 여기는 표정이 적나라했다.

“부황께서는…!”

알렉산드로가 울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남들 앞에서는 냉철한 군주인 그가 유일하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두 상대가 오벨리아와 선황제였다.

“네놈은 어찌 이리 어리석어!”

선황제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의 어조가 상당히 짜증스러웠다.

“내가 카테리안느가 마냥 예뻐 그들과 잘 지냈겠느냐!”

흔히들 북부에 힐켄테데가 있다면 수도에는 카테리안느가 있다고들 한다.

개국공신.

수도 없이 황후를 배출한 명문가.

귀족들의 절대적인 수장.

모두가 카테리안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힐켄테데가 좀처럼 수도의 정치에 참여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황제가 그 치세에 빛을 보느냐 마느냐는 카테리안느에게 달렸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역대 정치판은 카테리안느가 황제파이냐 귀족파이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다.

단순히 카테리안느만이 대단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카테리안느는 천부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고, 대대로 많은 귀족가가 그들을 따랐다.

힘에는 또 다른 힘이 따라오기 때문인지, 온전히 카테리안느의 재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카테리안느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선황제는 그것을 알았을 뿐이었다.

“죽일 거였으면 깔끔히, 흔적도 남겨 두질 말았어야지!”

쾅!

말을 하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 듯 선황제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알렉산드로는 다른 의미로 놀라 눈이 커졌다.

선황제가 오벨리아의 목숨을 아쉬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카테리안느 공작을 죄도 없이 죽이고, 그 가문의 계승 과정에 네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귀족들이 안다면 이번 네 치세는 그대로 끝장이다.”

한차례 숨을 씨근덕거리다가 가라앉힌 선황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도 어리석다, 멍청하다 했더니 정말 이렇게 굴 줄이야.

그러나 그런 선황제의 태도에도 어쩐지 기분이 나아진 알렉산드로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어차피 오벨리아는 자신이 카테리안느라는 걸 밝힐 수 없습니다. 갇혀 있던 폐궁도 전소하고, 그녀의 시중을 들던 이들도 모조리 처리했으니까요.”

자신에게 8년간 헌신한 황태자비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알렉산드로의 치부였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오벨리아에게는 이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냉궁에서 빠져나오면서 증거가 될 만한 건 모조리 불탔다.

게다가 마지막 증거가 될 바실리스크의 독은 힐켄테데와 거래를 하면서 오벨리아가 마셔 버렸다.

그녀가 진실을 밝혀 알렉산드로를 단번에 끌어내릴 수 없는 이유였다.

증거도 없이 황제를 모함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데다, 도리어 전 황태자비가 현 황제를 배반하고 죽음을 위장해 힐켄테데가 되었다는 누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에 관한 소문을 퍼트려 알렉산드로의 평판을 깎는 정도로 감수하기에는 너무 큰 위험이었다.

물론,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는 것도 힘이 필요한 일이었으니 당시 모든 것을 잃은 오벨리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라이너스 카테리안느를 반드시 공작 위에 올려라.”

한참을 침묵 끝에 선황제가 명령했다.

“그리고, 오벨리아 카테리안느와 에크하르트 힐켄테데를 처리해.”

알렉산드로의 두 눈이 또 다시 커졌다.

오벨리아는 그렇다고 쳐도, 선황제가 에크하르트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말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에크하르트 힐켄테데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습니까?”

알렉산드로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고 말았다.

힐켄테데의 사변 당시, 모든 황위 계승자들이 그렇게 믿고 일을 행하지 않았던가.

“어리석은 것들….”

선황제는 제 자식들이 했던 만행을 떠올리며 미간을 확 찌푸렸다.

“내가 인정하지 않은 자식 따위 내게는 없다.”

선황제가 냉정하게 말했다.

알렉산드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니라는 건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지 그 의중을 명확히 알기 힘든 모호한 말이었다.

“이 이상은 네 녀석이 굳이 알 것 없다.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제대로 황제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둘 다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니까.”

선황제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알렉산드로는 선황제의 입을 굳게 닫게 만든 그 무거운 비밀이 무엇인지 후에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이 힐켄테데에 저지른 짓을 오벨리아가 알고 있어. 분명 그것으로 힐켄테데와 거래를 했을 거다.”

그러나 이어지는 선황제의 말에 다른 상념은 알렉산드로의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오벨리아가 그걸 어떻게…!”

알렉산드로가 놀라 홱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내 자식들이 벌이는 일을 내가 몰랐으리라 생각했더냐?”

선황제가 쯧 혀를 차며 대답했다.

“무려 힐켄테데가 일을 당했는데도 조용했던 게 순전히 네 녀석들의 능력이었을까.”

선황제는 교묘하게 자신이 에크하르트를 살렸다는 한 가지 사실은 빼놓았다.

괜한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힐켄테데의 사변 때 에크하르트를 살리지 않았겠지만, 제 아들의 어리석음으로 이미 늦어 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내가 오벨리아를 시켜 일을 묻게 만들었다.”

알렉산드로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선황제의 말투에서 또 다시 그의 자식들보다 오벨리아를 높게 취급하는 듯한 뉘앙스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쯧, 오벨리아 카테리안느가 내 자식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알렉산드로는 저를 두고 대놓고 하던 선황제의 말을 기억했다.

선황제는 늘 제 자식들을 아쉬워했다.

그런 그의 눈에 찬 것은 오직 오벨리아뿐이었다.

선황제가 알렉산드로를 황위 계승 후보로 다시 생각하게 된 것 또한, 오벨리아가 알렉산드로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오벨리아 카테리안느는 황가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절대 살려 두면 안 돼.”

그러나 선황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 아들의 심정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네, 반드시 처리하도록 하죠.”

그리하여 선황제는 알렉산드로가 아까보다 어두워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

티룸 또한 어쨌든 차와 디저트를 파는 곳이니 나라에서 상업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이 허가는 의외로 쉽게 떨어졌다.

하긴, 오벨리아의 티룸이 딱히 불법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허가 건으로 질질 물고 늘어져봤자 힐켄테데에서 소송이라도 하면 황실의 체면만 또 구겨지는 셈이었다.

그리하여 티룸은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다.

<엘라이스트>

그 간판이 수도의 가장 비싼 거리 한복판에 솟아오른 3층 건물에 내걸렸다.

그리고 문을 연 첫날, 그곳에는 오로지 힐켄테데의 연회 날 주었던 초대장을 가진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엘라이스트에 찾아온 사람들의 생각은 아마도 반반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 힐켄테데가 얼마나 대단한 티룸을 만들었을까 하는 기대와 뭐 그래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의 그런, 말로 하면 사소하지만 작지 않은 차이를 가진 생각.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고 온 자든, 엘라이스트의 건물 1층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서 몰랐으나, 전면이 유리창으로 된 건물은 안에서는 밖이 잘 보였다.

오벨리아가 황가에서 소유한 여름 별장 중에 이런 방식으로 설계된 것이 신기하여 기억해 뒀다가 티룸에 적용한 것이었다.

특수한 광물을 유리에 발라 바깥 표면의 반사율을 높이는 식이었는데, 이 광물이 나는 광산은 제국에서도 대단히 한정적이었다.

그것을 3층 건물 전체에 바르다시피 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상업 거리 한복판에 온실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냈다는 점이었다.

기둥과 걷는 길을 따라 심어 놓은 꽃과 덩굴줄기들이 조화로워 그 자체만으로도 화사한 분위기를 내게 했다.

건물 바닥면에 전반적으로 온수가 흐르게 하여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온실은 귀족이라고 하여 아무나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환경을 조성하는 것부터 관리하는 것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했고, 심지어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생명력이 질기지도 못했다.

그러니 어지간히 부유한 귀족이 아니고야 정원은 몰라도 온실은 가지고 있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개인의 저택도 아니고 거리 한복판에 만들어냈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그 엄청난 광경에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때, 갑자기 서버가 다가와 오벨리아에게 속닥였다.

“오벨리아님,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가게 앞에… 황제 폐하께서 와계십니다.”

오벨리아의 한쪽 눈썹이 순간 높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무슨 수작을 부리러 온 건지 벌써 의심이 들었다.

“알았어. 내가 나가 볼게.”

그렇지만 피할 생각은 없었다.

오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티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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