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훔쳐간 자리(8)
어머니의 질문에 오벨리아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차마 어머니의 앞에서 복수를 위해 스스로 독을 집어먹고 머리가 새하얗게 셌다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 안색도 영 좋지 않구나. 설마, 어디 아픈 거니……?”
오벨리아를 살펴보던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대번에 제 딸이 지나치게 말랐다는 것을 눈치챘다.
단순히 마음 고생을 하여 마른 정도가 아니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응?”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자신의 자식들을 너무나 많이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제 딸의 상태가 현재 좋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알아 버렸다.
“어머니, 그게…….”
오벨리아가 말끝을 흐렸다.
혀끝에 무게추라도 달린 것처럼 혀가 무거워 움직이지 않았다.
자꾸만 오벨리아가 대답하지 못하자,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얼굴이 점차 질려갔다.
“비아, 오벨리아, 우리 딸, 너 설마…….”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손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늘어졌다.
“아니지……? 응……?”
바실리스크의 독은 대륙 전체에서 소지가 금지된 것이었지만, 오래된 가문의 보고에는 종종 존재했다.
황실에 그것이 존재하듯, 카테리안느에 또한 바실리스크의 독약이 담긴 병이 있었다.
공작 부인은 카테리안느의 살림을 전부 관리하는 안주인이었고, 그렇기에 바실리스크의 독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확히 바실리스크의 독을 먹고 살아남은 사람의 증상 중 하나가 머리가 새하얗게 세는 것이라는 점도 기억했다.
“오벨리아, 내 딸, 딸아,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 주렴…… 응?”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곧이라도 무너질 듯이 오벨리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녀는 목이 졸린 사람처럼 숨이 턱 막힌 것도 같았고, 바다에 잠겨 속에 물이 꽉 찬 사람처럼 울음에 목소리가 눌린 것 같기도 했다.
겨우겨우 눈물만은 참은 채로,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재차 물었다.
“바실리스크의 독을 먹었니……? 아니지……? 아니라고 해…… 제발!”
“……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오벨리아가 차마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수그렸다.
스스로 독을 집어먹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된 딸.
그런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 오벨리아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절규하며 무너졌다.
겨우겨우 버티던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소나기가 오듯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아……. 아아…… 아…….”
퍽, 퍽.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자신의 가슴을 때리는 소리가 아프게 방안을 울렸다.
그녀는 스스로를 때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둘째 아들을 진즉에 내치지 않은 대가가 막내딸의 죽음인 것이다!
오벨리아가 다급히 그 손을 잡아 제지했으나, 공작 부인은 그 손을 내치고 계속해서 제 가슴을 퍽퍽 때렸다.
“아아아…… 아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마치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말도 되지 못한 비명과 절망만을 토해냈다.
눈물을 계속해서 쏟아내던 공작 부인이 돌연 숨을 들이켰다.
“헉……. 허억……!”
“어머니!”
오벨리아가 놀라 제 어머니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 순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두 눈이 내리 감겼다.
***
의원인 셀리아가 말하길, 그나마 다행히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갑자기 눈물을 너무 많이 쏟아 탈진한 것이라고 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벨리아는 잠든 어머니를 울 듯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시녀가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옷을 갈아입힐 때, 오벨리아는 제 어머니의 가슴에 푸르게 든 멍을 발견했다.
공작 부인이 스스로가 미워 만든 멍이었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던지 멍은 인정사정없이 나 있었다.
그 흔적이 오벨리아의 가슴 속에도 그보다 더한 멍을 남긴 것 같았다.
그래서 오벨리아는 제 어머니가 누운 침대 옆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다.
똑똑똑.
“……오벨리아, 너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
문밖에서 에크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오벨리아는 언제까지고 어머니의 옆을 망부석처럼 지키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네가 그렇게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곁을 지키느라 한시도 쉬지 못한 걸 나중에 아시면, 그 또한 마음 아파하실 거다.”
어느덧 문을 열고 들어온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를 가볍게 채근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쉬어야만 했다.
오늘 지나치게 긴장을 많이 했던 데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혼절하면서 놀란 탓에 오벨리아의 안색은 극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곁에 있어 드려야 하는데.”
오벨리아가 마른 제 어머니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일으켰다.
“카테리안느 경을 비밀리에 여기로 불렀다. 내 사람들이 외부에 들키지 않게 데려오고 있어.”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를 제 쪽으로 돌려세워 두 눈을 마주보며 차분히 그녀를 설득했다.
“그가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곁을 지킬 거다. 부인께서도 아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으실 테고.”
에크하르트가 잡은 오벨리아의 어깨로부터 닿아 느껴지는 그 온도가 지나치게 낮았다.
열이 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체온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 또한 문제이긴 매한가지였다.
에크하르트가 진즉에 그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제 자켓을 벗어 오벨리아의 어깨 위에 둘러준 후 앞을 여몄다.
“지금 네 체온이 상당히 낮아. 네가 쓰러져버리면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께서 또 다시 놀라 까무러치실지도 몰라.”
“……알았어.”
오벨리아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를 탓하던 어머니였다.
그런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앞에서 딸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결국 오벨리아는 에크하르트에게 부축을 받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불효한 딸로 인해 제 어머니가 너무 괴롭진 않길 바랐다.
***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을 오벨리아가 빼돌렸다.
라이너스는 카테리안느 저택에 돌아와 그 사실을 기어코 확인 사살 받고 말았다.
“멍청한 놈!”
연회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자존심을 완전히 구긴 알렉산드로는 기어코 라이너스를 따라와,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부재를 확인했다.
알렉산드로는 라이너스를 큰 소리로 비난하며 어깨를 씨근덕거렸다.
“그러니까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을 왜 저택 외부로 나가게 하느냔 말이야! 가둬 둬도 모자랄 판에……! 무엇하러 그깟 파티 따위를 계획해서!”
저택의 고용인들이 보고 있든 말든, 알렉산드로는 마구잡이로 라이너스를 비난했다.
단언컨대 라이너스는 제 부모에게도 고용인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식으로 취급받은 적이 없었다.
더없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그러나 라이너스는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얌전히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일리어스는 죽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공작 부인은 카테리안느의 가신들에게 신뢰가 두꺼운 사람이다.
그런 공작 부인이 오벨리아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오벨리아는 라이너스가 남매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족 중 라이너스를 용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 가족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 공작의 부재 시에 인정되는 공작 부인의 권리를 통해 공작위를 계승하는 정당한 절차를 밟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산드로가 황실 2기사단까지 카테리안느 저택에서 완전히 철수시켜 버리면, 더는 카티레안느의 가신들을 압박할 거리도 남지 않는 셈이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라이너스는 스스로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온 것을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런 이상, 적어도 원하는 자리만큼은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조차 없으니 어떻게 할 건가? 저번에도 공작저를 모두 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주의 인장을 찾지 못했다면서!”
알렉산드로가 신경질적으로 라이너스에게 소리쳤다.
알렉산드로의 눈에는 쓸모없는 것을 보는 듯 경멸이 담겨 있었다.
라이너스는 고개를 숙인 채로 비죽이 고개를 들려는 제 자존심을 꾹 내리눌렀다.
한때, 카테리안느의 앞에서 감히 한마디도 떼지 못할 무엇도 없는 7황자였던 주제에.
라이너스가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오벨리아를 잘 만나 황제가 된 주제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알렉산드로의 오만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당장 알렉산드로가 아쉬운 것은 라이너스였다.
“……다시 한번 저택을 뒤지면 인장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뒤지든, 두 번 뒤지든, 저번에도 그렇게 뒤졌는데 못 찾은 걸 어떻게!”
“벽 안쪽이나 바닥 같은 걸 뜯어보지는 않았으니까요.”
“도련님……!”
가만히 듣고 있던 카테리안느의 기사가 경악했다.
라이너스의 말은 즉, 카테리안느의 역사가 담긴 이 저택을 뜯어 부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는 라이너스의 말이 솔깃했다.
솔직히 알렉산드로는 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하나의 예술품 같은 저택이 거슬렸다.
황제도 아닌 한낱 귀족이 가지기에는 너무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지 않은가.
잠시 뜸을 들이는 척하던 알렉산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빨리 찾아내도록 해. 인장 반지만 찾아내면 내가 그대를 곧바로 카테리안느 공작으로 인정해 줄 테니까.”
알렉산드로의 말에 라이너스가 곧바로 기사와 고용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빨리 움직여! 벽이고 바닥이고 모조리 뜯어서 다 확인해 봐!”
라이너스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한 점도 없었다.
기사와 고용인들이 경악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라이너스가 순간 검을 빼들어 옆에 있던 기사의 목에 들이밀었다.
“한 놈씩 목이 잘리고서야 말을 들을 텐가?!”
라이너스의 협박에 눈을 크게 뜬 기사와 고용인들이 그제야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쿵! 콰직.
곧 저택 안이 벽과 바닥을 때려 부수는 소리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