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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67화 (67/136)

67화. 아그네스 카테리안느(6)

라이너스는 카테리안느 저택이 불탄 탓에, 수도에 임시 저택을 구하여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저택은 허점이 많았다.

우선, 입이 무거운 카테리안느의 고용인들이 모조리 죽어버렸으니 고용인들을 전부 다 다시 들여야만 했다.

게다가 구조가 복잡했던 카테리안느 저택에 비해 새로 구한 저택은 그 구조가 단순하여, 침입자가 내부를 파악하고 도주하기에도 쉬웠다.

그리하여 이 과정에서 에크하르트는 라이너스의 저택에 손쉽게 자신의 사람을 심어 넣을 수 있었다.

“아그네스 이멜리언이 백작가에서부터 데려온 시녀가 비밀리에 라이너스 카테리안느의 저택을 찾았다더군.”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아그네스가 라이너스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중요한 약점이었다.

알렉산드로가 안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사실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는 건가?”

“그래, 아그네스 이멜리언이 황제에게서 받아내는 돈을 모두 라이너스 카테리안느가 벌이는 사업에 들이고 있는 모양이야.”

“그 돈이야 카테리안느에는 별것 아니니… 아그네스를 사업에 끼워주는 대신, 라이너스가 그녀에게서 황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고 있는 거겠네.”

알렉산드로는 마냥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에 눈에 띄는 사업을 벌였더라면, 라이너스와 아그네스는 진즉에 알렉산드로에게 들켰을 터였다.

정보 또한 그랬다.

아그네스가 라이너스에게 건네주는 정보는 대체로 소소한 것일 터였다.

“아직은 알렉산드로가 눈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의 일이겠어.”

“그들이 벌이는 사업의 규모를 키울 생각인가?”

오벨리아의 말이 떨어지자마, 에크하르트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네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가야만 했다.

단 한 번의 추락이 아그네스는 물론 알렉산드로에게 또한 치명타가 되어야 하니까.

지금이야, 냉정하게 말하자면 곤란해질 경우 알렉산드로가 아그네스를 팽해버리면 끝이었다.

어차피 정부일 뿐이니까.

그러나 아그네스가 황후 자리에 앉는다면 말이 달라졌다.

“마침 힐켄테데에 숨겨진 상단이 있다. 그곳의 상단주를 그들에게 접근시키겠다.”

“되도록이면 투자금이 큰 사업이어야 하는데….”

오벨리아가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보다 더 큰 빚더미를 떠안게 될 만한 무언가.

라이너스와 아그네스가 그런 사업을 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있나?”

오벨리아의 표정을 살피던 에크하르트가 물었다.

그녀는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서도, 무언가 걸려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철광석. 그거면….”

오랜 침묵 끝에 오벨리아가 입을 열었으나, 곧 다시 말끝을 흐렸다.

철광석은 현재 제국에서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철도 사업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망치게 되면 아무리 카테리안느라고 해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돈뿐만이 아니라, 나라에서 크게 홍보하고 있기에 입소문도 대륙 전역을 시끄럽게 할 만큼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수도 인근의 몇몇 철도는 이미 완성되어 시범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

혹시라도 철도에 들어간 철광석에 문제가 있을 경우, 괜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것.

“방금 했던 말은 못 들은 셈 쳐줘. 괜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아.”

오벨리아가 작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그녀가 라이너스를 보며 생각한 게 있었다.

절대, 그처럼은 되지 말자는 것.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 했으나, 그것은 오벨리아에게 한정된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타인을 희생시킬 권리 따위 없었다.

오벨리아는 그 사실을 라이너스를 보며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이 안 다치게 하면 된다.”

오벨리아가 드물게 놀란 얼굴로 에크하르트를 쳐다봤다.

“내가 해결할 테니, 넌 네 계획대로 해.”

에크하르트는 담담히 오벨리아를 마주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물론, 가장 문제인 건 따로 있었다.

그가 저렇게 말할 때면, 이제 그녀는 굳이 더 묻지 않고도 믿음이 간다는 것이었다.

오벨리아는 한숨을 삼켰다.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상대는 별다른 생각도 없을 텐데 그녀는 왜 자꾸만 이러는지.

“그럼, 부탁해.”

그래서 오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크하르트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방금 든 생각에 대하여 깊게 되짚어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오벨리아의 드레스 위로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녀가 다급히 손수건을 얼굴에 가져다댔다.

코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그다지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았는데 머리가 띵했다.

아, 죽어간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당장 신관을 부르겠다.”

에크하르트가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말했다.

그는 이제는 오벨리아의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만,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행할 뿐이었다.

“겨우 이거 가지고 체임벌린 백작을 부르긴 좀 그런데. 각혈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피곤했던….”

“오벨리아.”

에크하르트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오벨리아를 불렀다.

그는 이럴 때 더는 그녀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소용이 없더라도 진찰을 받아. 적어도 상태가 덜 나빠지게, 그리고 네가 덜 아프게 도와줄 테니까.”

신관은 신성 제국에서 모두 작위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타국의 귀족이라고 하여 제멋대로 오라가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오벨리아에게 이상이 있을 때마다 사일러스를 불러댔는데, 그건 모두 그가 신전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이런 말을 하면, 힐켄테데에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테지만.

“힐켄테데 대공 전하와 대공비 전하를 뵙습니다.”

저번과 똑같이, 에크하르트가 연락을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일러스가 도착했다.

마치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새였다.

솔직히 이쯤 되니 오벨리아도 알아차렸다.

그가 사일러스를 신성 제국에서 일부러 불러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그것을 따져봤자 에크하르트는 앞으로도 이렇게 굴 것 같았다.

“그럼 난 나가 있겠다.”

사일러스가 처음 오벨리아의 진찰을 봐준 이후, 에크하르트가 진찰을 받을 때 나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점만큼은 다행이었다.

사일러스와 둘만 이야기할 시간이 생기니까.

“체임벌린 신관, 아직도 진척이 없나?”

오벨리아가 일전에 사일러스에게 부탁한 일은 좀처럼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에크하르트와 신성 제국의 고위 귀족 간의 연관성.

그녀가 그 추측에 대해 꽤나 확신을 가진 것에 반해,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벨리아는 초조했다.

그녀가 죽기 전에, 에크하르트에게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만 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신전에서도 극비에 다루는 정보인지라, 아직 알아내질 못했습니다.”

신성 제국에서 최고 권위 기관은 당연히 신전이었다.

그런데 신전에서까지 막고 있다면, 사일러스 혼자서는 빠르게 알아내기 힘들 터였다.

오벨리아가 초조함을 감추려 차를 들이켰다.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일러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보다 오늘은, 대공비 전하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나에 대해서?”

바실리스크의 독에 이미 침범당한 몸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 따위,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일러스 또한 지금까지 오벨리아에게 해줄 수 있던 것은 그녀가 덜 고통스럽도록 진통제를 처방해주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오벨리아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사일러스를 쳐다봤다.

“저도 바실리스크의 독을 먹은 사람은 실제로 처음 본지라, 치료 방법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일러스의 목소리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그가 힐끔힐끔 눈치를 보자, 오벨리아가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사일러스는 말을 이었다.

“…서역에 이독공독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게 뭐지?”

황후가 되기 위해 온갖 학문을 익혀온 오벨리아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독으로써 독을 공격한다는 말입니다. 즉… 독성이 있는 약물로 오벨리아님의 몸에 잔존하는 독성을 누르는 것이죠.”

생소한 말에 오벨리아는 잠시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러니까… 체임벌린 신관의 말은 독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사일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놓았다.

“가루다의 불씨라고 불리는 독을 아십니까? 먹으면 속을 모조리 태워버린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약병에 든 것은 그 독을 희석시킨 것이고요.”

사일러스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자신이 전혀 없어 보였다.

환자에게 정학하지도 않은 치료법을 이야기하려니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신전의 서고 속 옛 문헌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용을 잡아먹는다는 가루다처럼 이 불씨가 바실리스크의 맹독이 가진 한기를 없애버린다더군요.”

그러나 사일러스는 오벨리아에게 가루다의 불씨를 먹었을 때 드러날 부작용과 후유증을 말해줄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만 그것은 두 독을 섞다보니 알게 된 것으로, 둘 다 워낙 강한 독이라 실제로 사람에게 실험해본 적은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어쩌면….”

잠시 말을 멈춘 사일러스가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나으실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오히려 두 가지 독에 의해 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설명을 마친 사일러스가 약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벨리아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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