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아그네스 카테리안느(9)
“……하. 대체 어디부터 뭘 어떻게 지적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알렉산드로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그네스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무시하는 태도가 선명했다.
“뭐……?! 지금 알렉, 네가 나한테 이럴 때…….”
“황후가 되고 싶으면!”
알렉산드로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그네스에게 입을 닫으라는 노골적인 신호였다.
“황후의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
“언제는 내가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다며!”
아그네스가 기가 차다는 듯 소리쳤다.
그녀는 당연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네가 오벨리아와 달라서 좋다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는가.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손바닥 뒤집듯이 변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겨우 몇 달 만에 이렇게 태도를 바꿀 줄이야.
아그네스가 이를 악물며 더 따지려 들 때였다.
“오벨리아를 봐!”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말로 무의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오늘 에크하르트의 옆에 있던 오벨리아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고아했기 때문이다.
바실리스크의 독을 마셔서인지 창백해진 낯빛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가녀리고, 인세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오벨리아의 티룸이 잘 되는 것은 비단 그녀가 머리를 잘 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벨리아는 누가 봐도 예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이상향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손끝 하나만 까닥여도 우아함이 흘렀다.
오벨리아가 예법을 익힐 적에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조차도 신경 써 가면서 익힌 덕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저절로 사람들의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오벨리아는 자신이 노력한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어서, 자신이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는지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늘 남들이 보기에도 질릴 만큼 완벽해지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대체로 사람들로 하여금 질투가 아니라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니까 오벨리아의 티룸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 원인에는 전략을 잘 짠 것 외에도, 그녀 자체의 매력도 존재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시종일관 역시 힐켄테데의 핏줄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라고 속닥거렸다.
그에 반해 황실은 유능한 황태자비를 잃고 기껏 들이려는 게 아그네스냐며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게 실상이었다.
아그네스야 소문을 섬세하게 물어다 줄 유능한 측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신경 쓸 일도 없겠지만, 알렉산드로는 아니었다.
그는 힐켄테데와 황실이 비교당할 때마다 자존심이 상해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나랑 그년을 비교하는 거야?”
아그네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람이 속으로 생각했더라도 내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에게 자신이 만만하기 때문에, 그가 이딴 말도 쉽게 꺼낸다는 것을!
“년, 년 거리지 마. 품위 없이 그게 뭐야.”
알렉산드로가 한숨을 푹 쉬며 아그네스를 핀잔했다.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만, 그는 제 말이 그다지 틀리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그네스는 이 황궁의 시녀보다도 예법에 서툴렀다.
그에 반해 오벨리아는 어떤가.
비교되지 않으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비교당하는 게 싫으면 비교당하지 않게 행동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황후가 될 사람보다 한낱 대공비가 더 예법이 뛰어나다는 게 말이 돼?”
이왕 이렇게 된 거, 알렉산드로는 대놓고 불만이었던 점을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입 밖으로 내뱉어 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참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예법 선생을 붙여 줄 테니까, 처음부터 다시 배…….”
“알렉산드로!”
듣다 못한 아그네스가 소리를 내질렀다.
분에 찬 그녀가 씩씩거리며 알렉산드로를 매섭게 노려봤다.
“너나 잘해! 내가 왜 대공비랑 비교당하는데! 네가 황후 자리에 올려 주지 못하니까, 내가 정부일 뿐이니까, 그래서 사람들한테 만만하게 보인 거잖아! 그것뿐이야?”
아그네스는 모든 것을 알렉산드로의 탓으로 돌렸다.
그녀는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니,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여겼다.
“네가 힐켄테데 대공과 반목하면서 매일 그 자식한테 무시당하니까, 네가 무능하다고 생각해서 남들도 황실을 우습게 보는…… 꺄악!”
그 순간, 알렉산드로의 두 손이 아그네스의 어깨를 낚아채 그녀를 밀어붙였다.
강한 힘에 아그네스의 다리가 휘청거렸으나, 억지로 붙잡힌 덕에 그녀는 주저앉을 수조차 없었다.
“말조심해, 아그네스 이멜리언.”
알렉산드로가 아득아득 이를 갈았다.
무능.
그 단어가 그의 자존심과 열등감을 깊이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네가 잘하면 될 일이야. 알았어?”
알렉산드로가 대답을 강요했다.
그가 꽉 쥔 어깨가 욱신거려, 아그네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대답해, 아그네스 이멜리언.”
그러나 한 번 눈이 돌아간 알렉산드로의 눈에는 그런 것쯤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끝까지 아그네스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아, 알았어.”
결국 아그네스는 그 강요에 이기지 못해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녀의 턱은 굳게 악물렸다.
오벨리아와 자신을 먼저 비교한 게 누구인데.
누가 누구에게 성질을 낸다는 말인가!
“한동안 궁에서만 지내면서 자숙해. 괜히 또 분란 일으키지 말고.”
아그네스가 대답하자, 그제야 알렉산드로는 홱 그녀를 놓아 주었다.
아그네스가 휘청거리든 말든 등을 돌린 그가 그녀의 방을 나가 버렸다.
“……알렉산드로!”
알렉산드로가 나가고 나서야, 아그네스가 악에 받쳐 그의 이름을 외쳤다.
힘이, 돈이, 권력이 필요했다.
그녀가 다급히 자신의 개인 시녀를 찾았다.
“당장 라이너스 오빠한테 연락해……!”
명령을 들은 시녀는 어느덧 익숙하게 임시 카테리안느 저택으로 향했다.
***
“오벨리아, 나한테 화난 게 있나?”
마차에서도 어색한 침묵만을 견딘 에크하르트가 결국 다시 둘만 남게 되자 오벨리아에게 물었다.
그녀가 도통 시선도 마주하지 않고 입을 떼지 않으니, 자신이 잘못한 게 있는 거 같은데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없어, 그런 거.”
오벨리아는 단박에 에크하르트의 말을 부정했다.
그렇지만 그는 도리어 거기서 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뭐 때문에 그런 말을 하냐며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오벨리아는 그저 단절을 원하는 것처럼 단호한 말로 대화를 끊어 버렸다.
“오벨리아.”
에크하르트가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언제든 오벨리아가 원하면 뿌리칠 수 있도록, 얹기만 한 듯 가벼운 손길이었다.
“에크하르트, 딱히 너와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사이는 아니잖아.”
오벨리아가 제 몸을 비틀어 곧바로 에크하르트의 손을 떨쳐냈다.
관계를 재단하는 날카로운 말.
그것에 에크하르트의 행동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네가 생각하는 우리가 무슨 사이길래.”
에크하르트는 미간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표정을 찌푸리거나 이 이상 가까이 다가가서 혹시라도 오벨리아가 자신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
“난 당신을 속였고, 당신이 쫓아 온 진실을 은폐했고, 그래서 당신에게 원수나 다름없는 존재고.”
오벨리아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았다.
순간 에크하르트는 왠지 모르겠으나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녀의 말이 틀렸는지, 맞는지 굳이 둘 중 하나에서 골라야만 한다면 후자 쪽에 가까운데도.
“그래서 당신은 날 미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근처에 두는 건 내가 힐켄테데의 딸로서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이지.”
에크하르트는 입 안쪽 살을 꽉 깨물었다.
언젠가는 그도 오벨리아를 그저 이용만 하겠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의 말을 그저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내가 당신이랑 함께 있는 것도 당신과 나의 복수 대상이 일치하기 때문이고.”
에크하르트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고 반박을 하고 싶은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복수가 끝나면 그 후에는 서로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로 살게 될, 아무것도 아닌 사이. 그게 당신이랑 내 사이야. 틀려?”
에크하르트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달린 검을 꽉 쥐었다.
전대 힐켄테데 대공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
오벨리아의 말이 옳았다.
그는 힐켄테데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오벨리아에게 최대한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복수하지 않고 모른 척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무언가 목에 칭칭 감긴 듯한 기분이 드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너는.”
한참의 무거운 침묵 끝에 에크하르트가 겨우겨우 하고 싶은 말 하나를 찾아 입 밖으로 꺼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 외에 뭐가 필요해?”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입은 곧바로 다시 다물렸다.
오벨리아는 그가 조금 전에 고민했던 바를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던 것처럼 굴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에크하르트의 목구멍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딱히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우리는 복수만 하면 그만이잖아.”
오벨리아가 에크하르트에게서 돌아섰다.
그녀는 그대로 찬바람을 날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굳게 잠군 오벨리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생각했다.
에크하르트가 자신의 말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더라?
상처받았던 것 같다.
겨우 자신 따위가 무엇이라고 그에게 상처를 줬는지.
그렇지만 오벨리아는 도저히 이렇게 하지 않고서 견딜 수 없었다.
에크하르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주제를 알아야지, 오벨리아.’
알렉산드로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그러게, 감히-.
감히, 당신을 시선에 담고.
감히, 당신에게 마음이 가고.
오벨리아는 정말이지 제 스스로가 염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에크하르트에게 더한 것을 바라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니 그녀는 그와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이미 흘러가기 시작한 마음은, 내버려 두면 둑을 무너트리는 홍수처럼 기어코 넘어가서는 안 될 곳으로 범람하고 말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오벨리아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녀가 시녀를 호출해 말했다.
“체임벌린 신관을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