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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79화 (79/136)

79화. 더 높이(5)

철광석 사업.

그것은 론체스터의 귀족이나 상인이라면 누구나 뛰어들고 싶어 할 만한, 미래지향적이고도 성공이 보장된 사업이었다.

당연히 카테리안느도 이에 참여를 하고 있었다.

다만, 죽은 카테리안느 공작이 그 일을 라이너스에게 맡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라이너스는 일의 진척이 어디까지 되었는지는커녕, 카테리안느가 그에 관하여 무엇을 소유하고 있고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라이너스는 제 아버지를 죽어 공작위를 차지했고, 그로 인해 어머니의 미움을 사 가문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승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택 내부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을 가주의 비밀 방은 라이너스가 저택을 전소시킴으로써 그 안에 있던 것들과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결국 라이너스는 카테리안느의 겉껍데기밖에 차지하지 못한 셈이었다.

비록,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카테리안느와 철광석 사업을 하고 싶다고?”

그렇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철광석 사업에 관하여 큰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라이너스로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찾아온 상인 앞에서 오만한 척 다리를 꼬고 있으면서도 실은 속으로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다행히도 카테리안느 공작의 앞이라서인지, 상인의 태도는 대단히 공손했다.

그게 라이너스의 허영심을 속 깊이 채워 주었다.

라이너스가 이런 태도로 타인을 대해도, 그 상대는 그에게 아무런 불만도 표출할 수 없지 않은가!

“이번에 저희 상단에서 철광석 광산을 하나 매입하려고 하는데, 카테리안느 공작님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상인은 시종일관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였다.

의례, 대다수 이들이 죽은 카테리안느 공작에게 보이던 모습이었다.

“도움이라…….”

라이너스가 일부러 말 끝을 늘어트렸다.

철광석 광산은 매입을 하는 데도, 그것을 채굴하는 데도 나라의 허가가 필요했다.

아무리 큰 상단의 상단주라고 할지라도, 귀족 가문 소속이 아닌 이상 일개 상인으로서는 대체로 그것을 손에 넣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상인 또한 카테리안느를 찾아온 것이었다.

“정확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들어보고 정하도록 하지.”

“카테리안느 공작님께서 허가를 받는 일만 해결해 주신다면, 광산의 이익에 대한 20%를…….”

쾅!

상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이너스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카테리안느가 고작 그 20%를 먹자고 굳이 힘을 써야 할 만큼 궁핍해 보이던가?”

라이너스가 미간을 찌푸린 채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티를 냈다.

그러자 상인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대꾸했다.

“그……그게 아니오라, 상단을 걸고 하는 투자인지라 그정도 수익이 없으면 저희도 힘들어질 듯하여…….”

“투자금이 얼마나 드는지 말해. 허가와 함께 그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우리가 대주도록 하지. 대신, 이윤 배분은 거기에 맞춰서 해야 할 거야.”

라이너스의 말은 그야말로 날강도 같은 짓이었다.

철광산 사업은 투자하면 반드시 이윤을 보게 되어 있었다.

그런 것을 물어온 건 상단 쪽인데, 결국 그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겠다니.

그것이 날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 하오나 공작님…….”

그러니 상인이 당황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토를 달면 그대가 이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알겠네.”

라이너스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의 태도에서 제 말을 따르지 않으면 상단의 사업을 방해하겠다는 협박이 드러났다.

“공작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상인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라이너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상인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뒤, 그는 따로 로빌로트를 불러들였다.

“저 상인의 뒷조사를 해 봐. 그리고 신원이 확실하다면, 저 상인이 사들이고자 하는 광산이 어딘지 알아내.”

상인에게는 애석하게도, 라이너스는 애초에 상인과 협력할 생각 따위 없었다.

철광석 광산은 현재 나와 있는 매물이 없어서 그렇지, 있다면 누구나 노릴 만한 것이었다.

그런 노다지를 왜 굳이 양분해 먹는단 말인가.

라이너스가 서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기회에 철도 사업 쪽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면, 알렉산드로도 두 번 다시는 라이너스와 카테리안느를 무시하지 못 하리라.

***

“라이너스 카테리안느는 정말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카테리안느 가에 접근하게 시킨 상단주의 보고를 읽으며 에크하르트가 혀를 찼다.

어쩌면 이토록 오벨리아의 예상대로인지, 참으로 뻔했다.

“라이너스는 아마 아버지가 일리어스 오빠에게 철광석 관련 사업을 맡기셨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철광석 사업의 특성상, 광산을 직접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철광석의 채굴이나 관리를 위하여 쉴 새 없이 광산을 방문해야 했다.

그러니 그게 아니어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카테리안느 공작이 직접 맡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라이너스는 일리어스가 그 일을 맡았으리라 추측했던 것이다.

물론, 라이너스의 짐작은 어긋나서 실질적으로 철광석 사업을 맡은 것은 오벨리아였지만.

그러고 보면 라이너스는 제 여동생을 참 드문드문 보는 구석이 있었다.

일리어스만 없으면 자신이 공작이 되었을 거라고 확신하는 점이 딱 그랬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일리어스가 없었다면 오벨리아는 카테리안느를 위하여 제 사랑을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카테리안느의 철광석 사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비공식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 카테리안느가 공식적으로 철도 사업에 손을 댄 건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비하면 30% 정도에 불과해.”

나머지 70%를 고스란히 잃게 생겼으니, 라이너스로서는 조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심지어는 많은 성과를 올리던 사업들이었고, 일리어스 오빠가 그것을 해냈다고 여기고 있을 테니 어떻게든 손해를 메꾸고 싶었겠지.”

“그런데 그 광산을 넘겨도 되겠나?”

상단주가 매입하려는 광산은 오벨리아가 차명으로 사둔 것이었다.

“괜찮아, 그 광산에서 나는 철광석은 일반적인 것들이랑은 좀 다르거든.”

그 광산에서 나는 철광석을 오벨리아가 마냥 묵혀 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용한다면 철도 사업에 큰 지장을 끼치게 될 터였다.

설령 발견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광산을 비싼 가격에 사들인 이상 카테리안느에 큰 손해를 입히게 될 터였다.

어차피 그 비용은 나중에 라이너스에게서 카테리안느를 되찾으면 오벨리아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메꾸면 그만이니, 결국 책임은 온전히 라이너스의 책임이 될 것이지만.

“매입 비용은 라이너스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편이 났겠군.”

오벨리아의 말에 에크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왕이면 아그네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녀에게 사업에 커다랗게 투자할 만한 돈은 없을 테지만, 필요하다면 자금을 끌어 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특히 그것이 황실의 것이라면 대환영이었고.

“마침 황후 후보들의 경연을 드디어 시작한다고 하니, 때를 맞추는 게 좋겠어.”

오벨리아가 에크하르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드디어 알렉산드로가 황후 후보 경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첫 평가 항목은 ‘황후 후보들의 사교계 인지도였다.

이때를 위하여 레베카를 아그네스에게 붙여 놓았으니, 레베카가 잘해 줄 터였다.

“그거에 대해서 말인데…….”

에크하르트가 순간 망설이며 머뭇거렸다.

오벨리아가 멈칫했다.

그녀는 요즘 그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바짝 긴장하고는 했다.

그래서 사실 저번부터 에크하르트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묻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지속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니,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그녀도 인정해야만 했다.

“말해, 저번부터 할 말 있었잖아.”

티가 나지 않게 깊게 심호흡한 오벨리아가 결연한 눈으로 물었다.

에크하르트가 뭐라고 하든 담담하게 굴 생각이었다.

그에게 선언한 대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접을 생각이었으니까.

“아그네스와 라이너스에 관한 일이다.”

그렇지만 꽤 긴 침묵 끝에 이어진 에크하르트의 말은 일순 오벨리아가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대체 뭘 기대했던 거야. 아니,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벨리아가 괜히 속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에크하르트는 그와 그녀 사이 일에 대하여 말을 꺼낼 생각이 없었는데, 괜히 홀로 무언가 헛된 상상을 지속했던 거 같아 괜히 민망스러웠다.

복수에만 집중하자고 해놓고서는 스스로가 그랬다는 게 오벨리아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오벨리아? 열이 나는 건가?”

에크하르트가 걱정스럽게 오벨리아에게 물었다.

그가 건너편에서 몸을 일으켜 테이플 사이로 그녀에게 훌쩍 다가왔다.

여전히 오벨리아에게 닿는 일은 조심스러웠으나,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난 이후 에크하르트는 이처럼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는 꽤나 망설임이 없어졌다.

“……열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앉아 있어.”

그런 에크하르트를 오벨리아가 한 손으로 막으며 도로 앉혔다.

붉어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얼굴이 붉은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나한테 할 말이 뭔데?”

오벨리아가 다급하고 조금은 까칠하게 재차 말했다.

지금만큼은 저 남자가 이런 부분에 대하여 눈치가 없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아픈 거라면 바로 말해라.”

에크하르트는 오벨리아의 만류에 도로 자리에 앉으면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달라진 점 중 또 하나였다.

에크하르트는 마음껏 제 걱정을 표출했고, 오벨리아는 그런 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에크하르트의 말에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던 그런 자잘한 생각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게…… 라이너스 카테리안느가 아그네스…… 카테리안느의 환영회를 연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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