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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93화 (93/136)

93화. 불청객(7)

다음 날, 힐켄테데의 타운하우스로 황후의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보통 즉위식 이후 일주일 안팎으로 티 파티를 열기는 하지만, 소란이 일었던 것을 생각하면 하루 만에 티 파티를 열기로 결정한 것은 다소 성급한 태도였다.

“……무슨 꿍꿍이지?”

오벨리아는 초대장을 살펴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신성 제국과 사이가 틀어지게 생겨 자중해도 모자랄 판에, 바로 다음날 초대장이라니.

황실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선황이 황실 내부의 사람을 최근 들어 싹 바꿔 버린지라, 기껏 들여 놓은 첩자가 소용없어진 터였다.

물론, 에크하르트가 다시 사람을 들여 놓기는 했으나 그들이 중요한 정보를 빼낼 위치에 가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터였다.

“가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황궁 내부의 이들을 단번에 갈아치울 만큼 큰일을 벌이려는 거 같은데…… 예감이 좋지 않아.”

에크하르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황궁에서 일할 고용인을 뽑는 과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었다.

평민인 하녀와 하인부터, 귀족들 중에 선발하는 시녀와 시종까지 그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황궁은 고용할 자들의 신상과 집안, 주변 사람, 그들의 평판 등 무엇 하나 빠짐없이 세세히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드는 품이나 비용 또한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데 선황은 그런 번거로운 일을 굳이 감행한 것이다.

앞으로 황실에서 벌일 일이 정말 비밀에 비밀을 기하지 않을 일이고서야, 굳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선황이 일을 벌인다면…… 아마 그 목표는 높은 확률로 너일 거다, 오벨리아.”

에크하르트의 얼굴에 염려가 가득했다.

선황의 눈에 지금 누가 가장 눈엣가시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더 이상 황실의 사람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현 황제인 알렉산드로보다도 황실의 치부를 더욱 잘 알고 있는 존재.

에크하르트의 말대로, 그건 오벨리아뿐이었다.

“그렇지만 황후가 처음으로 여는 티 파티야.”

“그깟 황후가 불만을 표시해 봤자 힐켄테데에 아무 영향도 없어.”

오벨리아의 말에 에크하르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현재 황후의 입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상황이나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귀족들은 아그네스가 추기경에게 제대로 된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귀족들에게는 아주 대단한 논점이었다.

전대 모든 황후가 신성 제국의 축복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하물며 옆 왕국의 왕비조차도 르 카르디에를 믿는 나라 사람이라면 축복을 받으며 즉위했다.

심지어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해 줬던 대신관은 얼마 전 추기경으로 추대되었다.

이것은 에크하르트가 물 밑 작업을 통해 그 대신관을 지지했기 때문이지만,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 모든 이들이 받는 축복을 아그네스만이 못 받은 게 되는 것이었다.

즉, 아그네스는 즉위 초장부터 이미 우습게 보인 상태라는 의미였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오히려 아그네스는 북부를 꽉 휘어잡은 대공비에게 잘 보이는 게 맞았다.

물론, 이번 일이 없었다고 해도 황실이 그런 작은 일로 힐켄테데에게 트집을 잡을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나도 겨우 아그네스가 내게 뭐라고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다만…… 아무래도 거기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있으니까.”

현재 황궁에 심어둔 힐켄테데의 첩자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이상, 정보를 모으려면 황궁에 들어가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황궁의 외궁이야 귀족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내궁에는 아무리 힐켄테데라고 할지라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오벨리아는 그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웠다.

“네 안전이 우선이야. 황궁에서 힐켄테데의 사람도 줄어든 판국에, 그들이 마음껏 수작 부릴 수 있는 티 파티에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어.”

아그네스로부터 온 초대장에는 가문의 안주인들, 혹은 영애들만이 파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즉,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의 곁에서 그녀를 지킬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에크하르트 또한 이렇게까지 오벨리아의 뜻을 막으려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우선 오늘 황궁에서 열리는 회담에 다녀와서 생각하자.”

아그네스의 티 파티는 이틀 뒤였다.

오벨리아는 에크하르트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드물게 아주 단호했다.

“오벨리아, 이번만큼은 내 의견을 들어줘.”

간혹, 에크하르트의 직감은 귀신처럼 들어맞을 때가 있었다.

힐켄테데가 무너진 이후, 그 감 하나가 그를 살리는 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줬던가.

에크하르트는 제 직감을 상당히 믿는 편이었고, 이번 따라 불길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알겠어.”

망설이던 오벨리아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에크하르트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강권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건 오벨리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나온다는 건,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결국 오벨리아는 아그네스의 티 파티에 불참하기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란 법이 있을 리 없었다.

***

오늘 열리는 회담의 안건은 신의 대리자가 섰어야 했던 자리에 선황이 올라선 것이었다.

실질적으로는 론체스터 황실의 잘못에 대하여 신성 제국이 그에 관한 보상을 논하는 자리인 셈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회의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예그리나는 발언권을 얻어 입을 열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논의하기 전에…… 우선 다른 것부터 말을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예그리나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알렉산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오벨리아 쪽을 힐끔 쳐다봤다.

신성 제국 일행은 지난 밤 힐켄테데의 타운하우스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예그리나가 오벨리아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을지, 그는 불안함이 치솟았다.

“론체스터 제국에서 황비를 들이려고 하셨다던데, 그 사실이 정말입니까?”

그 순간 장내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이 예그리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증명했다.

“보시다시피, 우리 론체스터 제국은 황후 한 사람만을 두고 있소.”

다른 이들의 침묵 속에서 알렉산드로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즉, 어찌 되었든 불발한 일이니 굳이 트집을 잡지 말라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예그리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사실 이미 회담에 오기 전에 미리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이미 론체스터 제국 내에 빼곡히 소문이 돌았었더군요.”

예그리나의 시선이 연이어 라이너스를 향했다.

“심지어…… 황비라는 직위에 대해 먼저 언급하신 게 무려 카테리안느 공작님이시고 말입니다.”

라이너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 당시, 라이너스가 그런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카테리안느 공작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라이너스가 그 당시 그가 카테리안느 공작의 신분으로 그런 발언을 했단 것이 가장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카테리안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론체스터 제국에 불러오는 방향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국에서도 론체스터의 귀족을 꼽으라고 하면 카테리안느를 가장 먼저 이야기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카테리안느가 유구한 황제파의 수장인 것은 유명한 일이었으니, 얼마든지 황제의 뜻이 그랬다고도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는 이 일의 앞뒤 정황을 모두 알아야겠습니다.”

예그리나가 알렉산드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즉, 라이너스의 발언에 대해 그 뒤에 황제인 알렉산드로가 있었냐고 묻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망설였다.

만약 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정말로 국제적인 문제가 될 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문제였다.

황제가 예그리나가 말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면, 오랜 황제파인 카테리안느를 희생시키는 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가장 최측근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는 황제를 어떤 귀족이 믿겠느냔 말이다.

알렉산드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당시 사촌 누이였던 아그네스를 너무나 아끼는 마음에 저지른 불찰이네. 교황 성하께서 원하신다면, 내 따로 신성 제국에 사죄의 뜻을 전하도록 하지.”

그 순간, 라이너스가 돌연 자신의 탓을 하고 나섰다.

예그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라이너스가 먼저 나서 잘못을 청하면, 황제는 아무 손해도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추기경, 그대는 지금 감히 론체스터 제국의 황제를 추궁하고 있군.”

그러나 라이너스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예그리나의 태도를 흠잡았다.

“지금 문제는…….”

“만약 내가 아니라, 황제 폐하의 뜻이셨다면 어쩌려고 했지?”

예그리나가 반박하려 했으나, 라이너스는 그녀가 입을 열도록 두지 않았다.

“설마 감히, 론체스터 제국의 황제 폐하가 내리신 결정에 반박하려 했나? 추기경 따위가?”

“추기경 따위라뇨……!”

“그럼! 그대가 지금 이 제국의 황제 폐하보다도 높은 곳에 있다는 말인가? 누가 보면 우리가 신성 제국의 속국이라도 된 줄 알겠군!”

예그리나의 입이 꾹 다물렸다.

르 카르디에의 교리를 펼친다는 이유로 신성 제국이 전 대륙에서 우위를 점해 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성 제국과 론체스터 제국은 같은 제국으로서 동등한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너스가 저렇게 대놓고 나오면 예그리나도 난감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라이너스가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고 황제는 결백한 것처럼 만든 상황에는 더더욱.

“그러면 어제 있던 일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결국 예그리나는 말을 돌렸다.

신성 제국과 론체스터 제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론체스터의 귀족인 힐켄테데가 예그리나의 편을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벨리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말이야 단순히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했으나, 그에 대한 보상은 실상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라이너스가 저렇게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알렉산드로를 도울 줄은 몰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게 끝이 아니었기에 예그리나의 말은 이어졌다.

“론체스터 제국의 선황 폐하께서 신의 대리자만이 올라서야 할 자리에 서 계시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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