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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105화 (105/136)

105화. 주인(10)

“카테리안느 경의 말이 옳습니다, 폐하.”

일리어스의 말에 힘을 싣듯이, 에드먼드가 입을 열었다.

“황후 폐하의 결백을 밝히셔야지요.”

알렉산드로의 즉위 초반에 황제와 반목하던 것과 달리 그간, 에드먼드는 조용했었다.

그런 에드먼드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으니 시선이 쏠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황후 폐하께서 매관매직으로 문제가 된 판에, 더한 문제가 일어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에드먼드의 말은 즉, 아그네스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귀족들은 그에 대하여 다들 동의했다.

알렉산드로를 제외한 회의장의 사람들은 모두 한데 모여 짜 오기라도 한 것처럼, 황후를 위한 것인 양 굴면서 증인을 들여야 한다고 주청했다.

“……증인을 들여라.”

결국, 알렉산드로는 무거운 허락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오벨리아가 들여올 증인이야 뻔한 일이었다.

아그네스가 따로 불렀다는 거리의 의원.

그는 증인이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로가 그 의원을 찾았을 때, 이미 의원은 자취를 감춘 뒤였기 때문이다.

오벨리아가 아니고서야, 그 의원에게 누가 손을 썼단 말인가.

그래서 그 의원일 경우, 알렉산드로는 거리 의원의 말 따위를 어떻게 믿겠느냐며 잡아뗄 예정이었다.

테네이스의 죽음에서도, 이멜리언 백작가를 처리했을 때도 그랬듯이.

그러나 오벨리아가 들여온 증인은 거리의 그 의원이 아니었다.

“엘라이던 루커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루커스 자작!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엘라이던의 등장에 알렉산드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라이던은 아그네스를 비밀리에 진찰하던 황궁의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홱, 오벨리아를 돌아봤다.

알렉산드로는 아그네스를 진찰할 때마다 일부러 엘라이던을 비밀 통로로만 돌아다니게 했다.

그래서 시녀들이나 시종들조차 엘라이던이 아그네스의 주치의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오벨리아가 어떻게 정확히 엘라이던을 증인으로 불러냈단 말인가!

게다가 엘라이던은 연고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엘라이던을 들일 때, 알렉산드로는 그가 오벨리아와 얽힐 일이 단 하나도 없음을 당연히 조사했다.

즉, 엘라이던에게는 오벨리아에게 도움받을 점도, 도와야 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알렉산드로가 어떻게 엘라이던의 등장을 예상했겠는가.

“폐하, 진정하시고 루커스 자작의 증언을 들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에크하르트가 차분하게 흥분한 알렉산드로의 행동을 끊어놓았다.

황제가 회의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완벽히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가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어떤 귀족도 반발하지 않았으니 누가 봐도 이 자리에 알렉산드로의 편은 없었다.

모든 중앙 귀족이 보고 있는 판에, 알렉산드로도 더는 흥분할 수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면서 엘라이던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황제가 발언하라는 이야기를 도통 하지 않자, 오벨리아가 나서서 엘라이던에게 물었다.

“루커스 자작, 황제 폐하께 그대가 아는 대로 고하세요.”

오벨리아가 알렉산드로를 향해 삐뚜름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말은 그에게 고하라고 하였으나, 사실 엘라이던이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렉산드로가 모를 리 없었다.

애초에 엘라이던에게 아그네스를 진찰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알렉산드로였으니까.

“제가 당시에는 이멜리언 영애였던 황후 폐하를 진찰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봄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름을 지나, 가을 초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이미 그 때 임신을 한 상태셨고요.”

이미 아그네스가 임신을 진단 받은 지 최소 4~5개월이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황후 폐하의 방을 수색하시면, 복대가 있을 겁니다. 점차 불러오는 배를 숨기기 위하여 배를 압박하고 다니셨으니까요.”

연이어서 엘라이던은 자신이 황궁의 약재실에서 가져간 약재들의 기록을 꺼내 놓았다.

“이것은 그간 제가 비밀리에 황후 폐하께 처방해드린 약들입니다.”

당연히 그 약재들은 모두 임신을 안정시키고 태아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만약 여기까지였다면, 엘라이던이 약재를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고 우길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이것은 황후 폐하께서 그간 제게 대가라며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나 엘라이던이 황후의 패물을 내놓는 순간, 그런 변명들은 모조리 무의미해졌다.

황후에게 진상되는 귀금속들은 모조리 장인의 각인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고, 그것들을 기록 하에 철저히 관리했다.

전담 시녀들이 매일 같이 귀금속이 상하지 않도록 관리했으니, 귀금속이 돌연 사라졌다면 분명 누구든 눈치를 챘을 터였다.

즉, 엘라이던이 훔친 거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그네스가 엘라이던에게 입을 다무는 대가로 패물을 직접 주었다.

그것만이 답이었다.

쾅!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옥좌의 손잡이를 내리치며 분개했다.

저런 이유들 때문에, 알렉산드로는 혹시라도 자신으로 특정될 수 있을 만한 포상은 절대 엘라이던에게 내리지 않았다.

그가 엘라이던에게 내린 포상들은 모조리 금화로 환산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그네스가 일을 망쳤다!

알렉산드로는 그제야 오벨리아가 거리의 의원을 빼돌린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그네스가 그 의원에게 지불한 패물들을 증거품으로 입수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저는 분명히 얼음꽃 차가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째서인지 황후 폐하께서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셨습니다.”

엘라이던은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그네스가 독단적으로 일을 벌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엘라이던이 아그네스가 마실 얼음꽃 차의 양을 조절했다고 말하면, 그걸 누가 시켰냐고 귀족들이 물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그네스가 얼음꽃 차를 즐겨 마신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 있었으니, 그녀는 자발적으로 차를 마신 셈이었다.

황후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는 존재.

그게 황제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니 알렉산드로는 자신이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기 위하여 침묵했다.

오벨리아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심지어, 그 후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거리의 의원을 따로 불러 얼음꽃 차가 주는 영향을 중화시킬 방법까지 찾으셨던 모양입니다.”

알렉산드로가 침묵하지 않았더라면, 엘라이던은 황후와 작당하여 황손을 해친 죄로 벌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알렉산드로가 침묵하자, 엘라이던은 더욱 매끄럽게 입을 열었다.

“얼음꽃을 중화시키는 방법으로는 대체로 서역의 약초인 화화가 쓰이지요. 특유의 불에 그은 듯한 냄새가 있으니, 황후 폐하의 처소에 남아 있다면 찾기는 쉬울 것입니다.”

“황제 폐하, 지금 곧바로 황후 폐하의 궁을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리어스가 때를 맞춰 나섰다.

아그네스는 하혈한 이후 아이를 잃지는 않았으나, 현재 혼절한 이후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알렉산드로는 아그네스를 보호해야만 했다.

지금 그녀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하는 상태가 맞았고, 그것을 변명으로 들면 그만이었다.

“혹시 황제 폐하께서도 황후 폐하의 만행에 대해 아시면서도 힐켄테데에 기사들을 보내셨던 것은 아니겠지요.”

에크하르트가 눈매를 가늘게 뜨며 이런 식으로 말을 잇지만 않았더라면, 알렉산드로는 그래도 아그네스를 선택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거라면, 힐켄테데의 대공비를 겁박한 대가를 황실에 공식적으로 묻겠습니다.”

심지어 에크하르트의 말에 에드먼드가 맞장구를 쳤다.

“그게 부당한 일이었다면- 귀족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귀족원 또한 나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멜리언 백작을 죽인 일은 알렉산드로가 억지로 이유를 붙인 탓에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알렉산드로의 잘못을 기다리고 있음은, 알렉산드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아그네스의 행동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오벨리아를 잡아들이려던 행동은 정말 말 그대로 겁박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북부와 중앙 귀족들 전부.

그들을 적으로 돌리고 그들에게 책을 잡히는 순간, 알렉산드로는 자신이 재기하기까지 아주 힘들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제 권력인지, 아그네스인지를.

“……짐은 몰랐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알렉산드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보호했다.

“대공비의 누명을 벗기는 데 필요하다면, 황후궁을 수색하도록.”

사실상 오벨리아에게 씌워졌던 황후 시해 혐의는 벗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황후궁을 수색하겠다고 나선 것은, 기어코 아그네스를 처벌하고 말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알렉산드로는 그걸 알면서도 더는 상황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예, 폐하.”

일리어스가 알렉산드로의 명령을 받드는 척하며, 재빠르게 기사들을 시켜 황후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일리어스는 황후궁에서 복대와 화화의 잎이 담긴 약병을 찾아내 들고 왔다.

아그네스의 죄가 완벽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라 할지라도 황손을 해친 죄는 중죄입니다. 황후 폐하를 벌하소서!”

“황후 폐하를 벌하소서!”

모든 죄의 증거가 완벽히 드러나자마자, 귀족들이 앞 다투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알렉산드로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황후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죄가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황후궁에 유폐시키도록 하라.”

결국, 알렉산드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제 아이를 가진 여자를 자신의 손으로 버렸다.

참으로, 그다운 선택이었다.

오벨리아가 대처할 수도 없이 갑자기 뒤통수를 맞았듯, 아그네스 또한 그녀가 잠든 사이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아그네스의 몰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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