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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120화 (120/136)

120화. 피날레를 위하여(2)

오벨리아가 엘라사나에게 아그네스의 궁에 남아 달라고 한 이유는 하나였다.

아그네스가 준비한 독을 자신이 아는 독으로 바꿔치기 위해서.

그리고 엘라사나는 오벨리아의 바람대로, 아그네스가 숨겨 둔 독약병을 찾아내 그 안의 내용물을 가루다의 불씨로 바꿔치기했다.

그러니까 결국 오벨리아가 각혈한 것은 지금까지 해 오던 치료의 일환에 불과했다.

“사일러스가 센티스를 붙여 준 이유가 있었네.”

사일러스가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 에크하르트에 대해 알아내는 동안, 오벨리아를 전담하게 된 센티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독과 약에 잘 아는 신관이었다.

그래서 센티스는 가루다의 불씨가 평범한 독처럼 보일 정도의 희석 농도도 알려 주었다.

알렉산드로가 속을 모조리 태운다는 가루다의 불씨에 당하고도 피를 토하는 정도로 멀쩡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가루다의 불씨를 해독할 수 있는 독은 없었다.

게다가 현재, 황실에서는 알렉산드로가 당한 독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맞지 않는 해독제들을 알렉산드로에게 들이 붓고 있었다.

그것은 알렉산드로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고, 그가 깨어나는 데 더더욱 걸림돌이 될 터였다.

그리고 알렉산드로가 깨어날 즈음이 되어도, 에크하르트가 황궁 안에 심어 넣은 의원이 그의 완전한 회복을 막아 줄 터였다.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가 알렉산드로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사일러스가 오벨리아를 치료하고 에크하르트의 뿌리를 찾으려면, 그들이 직접 신성 제국으로 와 주어야만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네가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정말로 지금 당장 가도 괜찮겠나, 오벨리아?”

사실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는 짐을 꾸려 북부가 아니라 신성 제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오벨리아가 독에서 깨어나지 못한 척하는 이유기도 했다.

그녀와 그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다면, 황실에서 주인의 자리가 빈 힐켄테데를 노리려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분간 오벨리아의 건강을 핑계로 북부의 힐켄테데 성에 칩거하는 척을 할 예정이었다.

“내 수하에게 계속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에게 신경 쓰라고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나라도 가까이 있는 게 더 안심이 가지 않겠어?”

그것에 대하여 에크하르트가 걱정 어린 태도로 오벨리아에게 물었다.

현재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라이너스와 함께 있지 않던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녀의 걱정도 커지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론체스터 제국과 신성 제국, 두 나라는 현재 이 대륙 위에 존재하는 단 두 개의 제국답게 모두 땅덩어리가 매우 컸다.

그런 땅을 가로질러 두 제국의 수도에서 수도까지 가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당장 돌아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에크하르트는 오벨리아를 대신하여 자신이 론체스터 제국에 남겠다고 할 정도였다.

제 부모를 아는 일보다, 그녀의 마음을 더 살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오벨리아가 거절했지만.

“에크하르트, 당신이 직접 와야만 당신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잖아.”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가 세운 계획대로라면, 그의 신분이 신성 제국에서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아무리 힐켄테데가 론체스터 제국 내에서 영향력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힐켄테데의 사람들은 결국 론체스터 제국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론체스터 제국의 사람이라면 쉬이 할 수 없는 행동을 실행에 옮길 예정이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약하시지 않아.”

오벨리아가 단호하게 말을 덧붙였다.

라이너스의 저택 내에 있는 힐켄테데의 첩자가 전해 준 바에 의하면,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밥도 꼬박 챙겨 먹고 잠도 푹 자고 종종 산책도 나가면서 스스로를 잘 챙기고 있다 들었다.

오벨리아는 그것으로 걱정을 접어 두기로 했다.

어머니는 심지가 곧은 분이셨다.

잘 견디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한, 쉬이 꺾이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니 오벨리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 네 어머니시니까.”

에크하르트가 심각했던 얼굴을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자신이 유독 오벨리아를 유리 다루듯이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실은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벨리아가 이 정도로 괜찮다고 한다면, 진짜 괜찮은 것이었다.

“그럼 곧바로 신성 제국으로 가도록 하지.”

에크하르트가 마부석의 벽을 노크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천천히 달리던 마차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시바삐 도착해야만 했다.

***

“로빌로트, 어머니는 뭘 하고 계시지?”

요즘 라이너스는 로빌로트에게 제 어머니의 일과를 보고 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대부인께서는 산책하고 계십니다.”

현 카테리아느의 부기사단장, 로빌로트의 말에 라이너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라이너스는 이미 한 번 제 감시를 뚫고 빠져나갔던 어머니를 믿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구금했다지만, 오벨리아와 일리어스가 합심하여 그들의 어머니를 빼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시도할 만한 게 아닌가?

아무리 어머니의 안전이 걸린 일이라고 해도, 오벨리아와 일리어스는 너무 조용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구금당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이 저택에 남기라도 한 것처럼, 식사와 잠, 그리고 약간의 운동과 취미까지 모두 부족함 없이 지속하고 있었다.

그들의 어머니가 담대하신 분이라고 해도, 아들이 자신을 구금했는데 보이기에는 너무 평이한 태도였다.

그래서 라이너스는 제 어머니가 얌전히 구금당해 있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쾅!

라이너스가 답답함에 책상을 내리쳤다.

“대체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지난날의 대화로, 라이너스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여겼다.

그래서 제가 구금을 해 놨으면서도, 어머니의 존재는 내내 빼지 못한 사랑니처럼 라이너스에게 거슬리는 것이었다.

“진정하십시오, 공작님. 대부인께는 주무실 때조차 감시가 붙는데, 뭘 어쩌시겠습니까.”

라이너스의 옆에서 로빌로트가 차분하게 그를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너스의 어깨는 분을 이기지 못해 들썩였다.

심지어 알렉산드로는 연회날 이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라이너스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똑똑똑

“공작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씩씩거리며 집무실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라이너스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의 안색이 대번에 나빠졌다.

그 손님이 누구인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키어스 상단주더냐?”

라이너스가 다소 긴장감 어리고, 어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

하인이 망설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즘 들어 더키어스 상단주가 찾아오는 날이면, 라이너스의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없다고 해!”

역시 하인의 예상대로,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진 라이너스가 버럭 소리쳤다.

하인에게 소리를 친 라이너스는 아까보다 훨씬 더 미친 사람처럼 제 집무실 안을 마구 돌아다녔다.

더키어스 상단주는 라이너스가 철광석 사업에 추가로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급히 돈을 끌어오기 위하여 돈을 빌린 자였다.

그리고 이 자는 최근 들어서 라이너스에게 빚을 갚기를 독촉하고 있었다.

아그네스가 황후의 인장을 찍어 준 보증서가 상단주의 손에 있었으나, 그녀가 폐위당하고 나면 그 보증서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이유였다.

더키어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라이너스는 지금 당장 더키어스에게 갚을 돈이 없었다.

애초에 그럴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가 이 일에 아그네스 같은 신뢰 안 가는 종자를 끌어들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라이너스는 또 억울해졌다.

그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이유 중에는, 어머니 탓도 있었다!

라이너스의 부모님은 무슨 일이 날 경우를 대비하여 대부분의 재산을 공동 명의로 해 놓으셨다.

그리하여 그가 공작이 된 이후, 어머니가 그에게 공작이 받아야 할 재산들을 물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너스는 더욱 곤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그러나 더키어스도 더는 물러나지 않았다.

하인이 노크하며 말을 전했다.

“공작님, 더키어스 상단주가 공작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라이너스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저택에 없다고 둘러대라고 한 게 벌써 며칠 째였다.

이런 핑계가 어디까지나 통할 리 없었다.

그 핑계는 이제 한계점에 다다라서, 상단주는 오늘 라이너스와 끝장을 볼 예정인 모양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라이너스가 발을 쾅쾅 구르며 욕을 짓씹었다.

철도 사업이라도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면 모를 텐데, 아그네스는 폐위 직전이지, 알렉산드로는 가사 상태에 빠져 깨어나질 못하지,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알렉산드로가 깨어나야 철도 사업을 빠르게 진행해 달라고 닦달이라도 할 게 아닌가!

이러니 더키어스가 저를 믿지 못하고 돈을 달라 저렇게 찡찡거리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돈을 줄 것을!”

라이너스가 자신을 재촉하는 더키어스에게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정작 더키어스에게는 대놓고 하지 못 할 말이었다.

‘천하의 카테리안느 공작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라이너스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분노했다.

분명, 제 아버지는 카테리안느 공작으로서 황제조차 어쩌지 못할 권력을 누리지 않았던가!

일리어스조차도 그 후계자로서 내로라하는 고위 귀족 가문의 가주들도 쉬이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자신만 이 꼴인지, 라이너스는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똑똑똑.

“공작님, 자꾸 피하시면 더키어스 상단주가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연락하겠다고…….”

하인이 난감함에 말끝을 흐렸다.

라이너스는 더키어스가 연결해 준 자잘한 투자자들에게도 돈을 빌렸었다.

그 당시에, 카테리안느로 살아온 라이너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다.

그런데 더키어스의 돈도 못 갚고 있는 판국이니 그 자잘한 금액들조차도 부담이 되어 다가왔다.

“……안 되겠어, 로빌로트! 당장 마차를 준비해!”

결국 이를 갈던 라이너스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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