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131화 (131/136)

131화. 마침내, 드디어, 완벽히(2)

정말이지, 끔찍한 난산이었다.

“아아아아악!”

급하게 꾸려진 산실 밖으로는 내내 아그네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중간에 한 번 얼음꽃 차 때문에 유산될 뻔했던 아이였던 데다가, 채 달수도 채우지 못한 채로 태어나는 아이였다.

이 때문인지 아그네스는 24시간을 꼬박 진통을 앓았다.

산파들도 중간에 지쳐 몇 번이나 교체되었고, 몇몇 산파는 결국 아그네스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리라 여겼다.

그렇게 모두가 아이가 사실 이미 죽은 게 아니냐며 숙덕숙덕하던, 끔찍한 하루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으아아앙……!”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마침내 알렉산드로의 첫째 딸이 태어났다.

***

알렉산드로는 아그네스가 그렇게 쓰러져 버린 뒤, 산파와 의원들에게 그녀를 맡겨 놓고 제 집무실로 돌아와 버렸다.

그는 이제 아그네스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좀처럼 일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서 쓰러지던 그녀가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알렉산드로는 제가 일을 벌인 주제에 집무실로 도망 온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그네스와 제 아이가 자신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게 생겼으니까.

그 후, 그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그네스의 궁으로 향했다.

황제가 아이를 보러오자 산파가 아이를 씻겨, 부드럽고 따뜻한 천에 감싸 산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알렉산드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아이를 안아 보게 되었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고.”

알렉산드로는 어쩐지 한참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한때, 아이는 나중에 또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죽일 뻔했던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자 마음이 이상해졌다.

어정쩡한 자세로 산파가 건네 준 아이를 안아 든 알렉산드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한참을 아이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아이의 어미는 어떻게 됐지?”

한참 후, 그의 어정쩡한 자세 탓에 아이가 불편하게 뒤척일 즈음에야 알렉산드로는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 물었다.

막 태어나서 쭈글쭈글한 아이는 피부도 발갛고 누구를 닮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아그네스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그가 아그네스에 대해 묻는 순간, 산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것이…….”

알렉산드로는 뒤늦게, 자신의 부관이 산실에 가 보지 않아도 되겠냐고 묻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은 지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산실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알렉산드로가 불길하게 차오르는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빨리 말하라.”

“아무래도, 황후 폐하께서는…… 원체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셔서…….”

알렉산드로가 재촉하자, 우물쭈물하던 산파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드실 듯합니다.”

“무슨……!”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격하게 반응했다.

그러자 산파가 놀라서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 아이를 안고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으아아아앙!”

알렉산드로의 움직임에 놀란 아이가 대번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퍼뜩 놀란 그에게서 산파가 재빠르게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랬다.

그리고 그때, 바로 옆방에 있던 산실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황후 폐하……!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여기서 정신을 놓으시면 아니 됩니다!”

그 소리들에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뛰다시피 하여 산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짙은 피 냄새가 몰려왔다.

그가 주춤주춤, 아그네스가 눕혀진 침대로 다가갔다.

그녀는 알렉산드로가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할 만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죽은 자와 같아,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확인하듯이 아그네스를 불렀다.

“……아그네스.”

그렇게 제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아그네스가 눈을 떴다.

눈앞이 가물가물하여, 알렉산드로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어떻게 낳았는지조차 명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아그네스.”

알렉산드로가 채근하듯이 아그네스를 불렀다.

그녀가 뭐라고 입술을 달싹달싹했다.

아그네스가 가까이 오라는 듯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그녀의 입 가까이 귀를 가져갔다.

“살고, 살고…… 싶어…….”

아그네스가 그 한마디를 중얼거린 순간……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툭, 떨어졌다.

그대로 감긴 그녀의 눈은 두 번 다시 떠지지 않았다.

“아그네스……?”

알렉산드로가 놀라 홱 아그네스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의 부름에도 그녀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오십시오, 폐하……! 황후 폐하의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의원이 놀라 달려왔다.

알렉산드로가 아그네스에게로 다가왔을 때처럼, 똑같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의원들이 아그네스에게로 달려들어 무언가의 행동을 하는 동안, 알렉산드로는 그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뒤…… 의원들이 마침내 아그네스에게서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한 의원이 알렉산드로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황후 폐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독하게 살아온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허무한 죽음이었다.

***

아그네스의 그 허망한 죽음 이후, 알렉산드로는 어쩐지 아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그네스는 황실을 기만하고 황실에 커다란 누를 끼친 죄인이었기에, 활실의 묘에 묻히되 황후로서 국장을 치르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장례식은 제대로 열리지도 않은 채, 아그네스는 조용하게 땅에 묻혔다.

그녀는 죽음의 마지막조차도 대단하지 못했다.

그 후 알렉산드로는 열차 운행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에 매달렸다.

그렇지 않아도 본래라면 한 달이 걸렸을 일을 일주일로 앞당긴 탓에, 일은 한없이 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아그네스가 갑작스러운 출산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간은 어느덧 벌써 이틀이 흐르고, 운행식까지 5일밖에 남지 않은 터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로는 현장에 직접 나가 기술자들에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5일 안에 철도 공사를 마무리 지어라.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 완벽해야 해!”

그러자 현장의 관리자가 뛰쳐나와 알렉산드로를 말렸다.

“아이고, 황제 폐하……! 일주일은 너무 촉박합니다. 그 시간 안에 모두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본디 한 달이 걸릴 일…… 억!”

그러나 알렉산드로는 관리자의 반발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관리자가 저를 설득하려 들자, 곧바로 관리자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다시 말해 보라. 방금, 불가능하다고 했나?”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가는 그대로 검에 베일 기세였다.

사색이 된 관리자가 다급하게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술자들 또한 안색이 질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은 관리자에게만 겨눠진 검이었으나, 누구 하나라도 안 된다고 했다가는 그 검이 저들에게 겨눠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대들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기술자들을 협박한 주제에, 관리자를 놓아 주며 알렉산드로는 마치 믿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날부터, 기술자들은 사실상 알렉산드로가 데려온 기사들의 감시 속에서 집에도 가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작업에만 몰두해야 했다.

그러다가 운행식을 앞둔 지 하루 전날, 기어코 기술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쓰러졌다.

“이보게, 리시오……! 정신 차리게!”

옆에서 작업하던 기술자, 크리스가 놀라 쓰러진 기술자를 안아 들며 소리쳤다.

그것을 발견한 기사가 의원을 불러 리시오를 데려가도록 했다.

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동료를 쫓아가려 했다.

그러자 기사가 다가와 크리스의 어깨를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어디를 가나. 빨리 일을 완성하라는 황제 폐하의 말씀을 잊었나 보지?”

기사가 사나운 목소리로 크리스를 압박했다.

그러자, 크리스가 울컥하여 외쳤다.

“방금 옆에서 내 동료가 쓰러졌소……! 그 동료가 걱정되어 따라가 보겠다는데, 그것 하나 하지 못하게 할 셈이요?!”

그러나 기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다시 앉아서 작업해.”

“이보시오……! 억!”

크리스가 재차 반발하려던 찰나였다.

기사가 인정사정없는 손길로 크리스를 바닥으로 내쳤다.

“당장 네 쓸모를 다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쓰러지는 건 네가 될 테니까.”

기사가 매서운 목소리로 크리스에게 경고했다.

그 압도적인 무력차이에 크리스의 입이 다물렸다.

그러나 그 속은 억울하고 분하여, 크리스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당장 일해!”

그러나 기사가 무서운 목소리로 재차 성을 내는 바람에, 크리스는 그 울분을 꾹 누른 채로 자리에 앉아 자신이 하던 일을 마저 해야만 했다.

그렇게 기술자들에게는 가장 잔인한 5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

아그네스가 죽었다.

황후가 승하했다는 비보를 접한 순간, 오벨리아는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왜 그러지?”

오벨리아가 이렇다 저렇다 하지 못할 표정을 짓고 있자, 에크하르트가 걱정된 듯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며 물었다.

오벨리아가 툭, 그에게 제 몸을 기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기분이 이상해. 아그네스 이멜리언이 죽었다니.”

자신을 죽이려고 독약병을 건네주기까지 했던 아그네스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 보니, 살아남은 것은 오벨리아였고 죽은 것은 아그네스였다.

“그럴 만도 하지. 어쨌든 죽음이니까. 하지만, 죽을 만한 죄를 저지른 이가 죽은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오벨리아의 등을 도닥이며 그녀를 달래 주었다.

오벨리아는 그 손길을 받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열차 운행식은 어느덧, 내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