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복수의 끝은 아름답지 않다(1)
“오벨리아, 잠깐……!”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를 말렸다.
그녀가 부관에게 말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딜 가려는 거야.”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를 붙잡고 물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답은 그의 예상과 같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남은 기술자들이라도 보호해야지. 알렉산드로가 모조리 죽여 버리기 전에…….”
오벨리아는 완전히 공황에 빠진 사람처럼 강박적으로 기술자들을 구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에크하르트가 막아서며 말했다.
“사람을 보내겠다. 그러니까 진정 좀 해.”
“어떻게 그래……!”
하지만 오벨리아는 차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죽는 거잖아, 그 사람들!”
오벨리아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에크하르트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에 그런 게 맞아.”
오벨리아가 에크하르트에게 기대며 무너지듯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자괴감과 죄악감으로 얼룩졌다.
“나는 어쩌면…… 일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사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오벨리아가 견디지 못하고 제 죄를 토해냈다.
사실 철광석으로 인해서 열차와 철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어쩌면 인명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쯤 전혀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계획을 세우겠다고 해도, 언제나 무슨 일이든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가 세워 둔 계획은 모조리 그들이 설계해 둔 대로 진행되었을 때만 완벽한 것이었다.
원래의 오벨리아라면 큰 사건을 일으킬 생각이었던 만큼, 갖가지의 변수에 대비하여 다른 대책을 세워 놨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고 그러지 않았다.
이보다 완벽하게 알렉산드로를 침몰하게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천천히 두고두고 그를 몰락시킬 여유 따위 없었던 거다.
복수심으로 두 눈을 가린 채, 모든 것을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다는 오만으로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를 외면하면서.
“오벨리아, 나를 봐라.”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를 자리에 앉히며,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죄인처럼, 혹은 죄인답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오벨리아와 억지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에크하르트의 목소리도 그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이성적인 척하려고 노력했어. 그런데 사실은 그게 전부 다 부질없었던 거야.”
오벨리아가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차마 에크하르트를 마주하기에도 부끄러웠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 누군가에게 자신을 이토록 보이기 부끄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사실 그건 어쩌면 오벨리아에게 있어 스스로에게 주는 당위성이었을 지도 몰랐다.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복수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알렉산드로의 얼굴만 봐도 피가 거꾸로 치솟아. 지금 당장이라도 그놈을……!”
알렉산드로의 이름 한 글자만 떠올려도 감정이 들끓었다.
오벨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 이유였다.
알렉산드로.
폐궁이 불탄 이후, 그 이름은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죽이고 싶다.
불행하길 바랐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게 추락하길 원했다.
살면서 살의를 느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세상에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그러모은다면, 오벨리아에게는 그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였다.
아, 누군가의 불행을 강렬하게 바란다는 것은 이런 심정이구나.
모든 것을 가지며 살아온 그녀로서는 처음 깨달은 마음이었다.
“지금도 미쳐 버릴 것 같아. 어떻게 그놈이랑 같은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지? 어떻게……!”
오벨리아의 가장 밑바닥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민낯.
그건 애써 그녀가 눌러 왔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복수해야 하니까.
이성으로 복수하지 않으면, 복수를 망쳐 버릴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기저에 존재한 것은 결국 지독한 감정이었다.
들끓는 감정이 제 만족을 위해 이성을 휘둘렀다.
그런 이성에 도덕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저버리는 것.
오벨리아는 늘 알렉산드로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녀는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이 그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래서 외면했어.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 같은 거, 사실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오벨리아의 목소리는 좀처럼 진정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서 결국 복수에 성공했다.
뒤처리가 남았으나, 아무리 기술자들을 죽여 없앤다고 할지라도 알렉산드로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 끝났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 오벨리아의 감정은 더는 이성이라는 겉껍질을 애써 두르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적나라한 감정이 드러나자, 그녀는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도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복수하기 더 쉽잖아.”
오벨리아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제 죄를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오늘, 그녀의 증오심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무고한 이들이 수도 없이 죽었다.
분명 그 일에는 오벨리아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고가 일어날 줄 알면서도 그것을 방치하고, 도리어 그로 인해 이득을 보길 원했던 사람이니까.
“오벨리아, 이제 날 좀 봐.”
오벨리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에크하르트가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내렸다.
“내가 그 사실을 몰랐을 것 같나?”
그렇게 말하는 에크하르트의 얼굴은 담담했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죄를 짓는 일이라는 거, 나도 알고 있었어.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모른 척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야.”
에크하르트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만큼은 그렇게 굴지 않아도 돼.”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의 뺨을 제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도 그녀와 같은 죄인이라고.
“……에크하르트.”
그리고 그제야 오벨리아의 시선이 에크하르트를 향했다.
인간이란 참 간사했다.
죄라는 것은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같은 죄를 지으면, 같은 총량의 죄를 각자 가질 뿐.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죄를 공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그나마 고개를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하여 죽은 이들에게 죄를 갚을 수는 없겠지, 아마 평생토록.”
목숨에 대한 죗값.
그것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벨리아.”
설령, 에크하르트나 오벨리아 혹은 알렉산드로가 죽는다고 해도 오늘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나와 함께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자.”
죽은 이들에게 죄스럽고, 그러면서 저들은 사랑놀이나 하며 잘 사는 게 누군가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에크하르트와 오벨리아는 살아 있었다.
살아서 져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가야만 했다.
“……에크하르트.”
오벨리아가 울 듯 웃었다.
그녀의 표정은 우는 것이라고도 웃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 사람이란 정말이지 간사하기 그지없었다.
방금까지 죄책감에 짓눌려 죽어 버릴 것 같았으면서도 연인의 말 한 마디에 숨통이 트이는 걸 보면.
그간, 복수에 미쳐 있었다.
감히 누군가의 희생도 외면할 만큼.
그 와중에 에크하르트를 사랑하게 된 건 차라리 기적에 가까웠다.
사실은…… 만약 에크하르트를 사랑하지라도 않았더라면, 오벨리아는 자신이 어디까지 갔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드디어 모든 게…… 끝이 나고 있었다.
***
다음날, 본래라면 어제 있던 참사에 대한 대책 회의가 열려야만 했다.
그러나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는 회의장에 보다 많은 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살아남은 기술자들과 귀족원의 귀족들이었다.
귀족원의 수장은 대체로 카테리안느의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일리어스가 카테리안느 공작의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황제에게 승계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카테리안느 공작의 자리는 공식적으로는 비어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귀족원의 수장 자리는 에드먼드가 맡고 있었다.
그리하여 회의가 시작되는 순간, 에드먼드가 귀족원의 모든 귀족을 대표하여 앞에 나섰다.
“저희 귀족원에서는 현 황제 폐하의 폐위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드먼드의 입에서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가 그토록 바라던 말이 떨어졌다.
황좌에 앉아 있던 알렉산드로가 대번에 손잡이를 쾅 하고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허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로가 말하기 무섭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인하겠다.”
알렉산드로의 고개가 뒤늦게 들어온 사람에게로 휙 돌아갔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불꽃이 확 튀었다.
알렉산드로가 이를 갈며 외쳤다.
“선황 폐하!”
“끌어내라.”
선황제가 손짓하자, 일리어스를 위시한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마치 이미 정해져 있던 것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지금 이게 뭐 하시는 짓입니까!”
알렉산드로가 배신감 어린 얼굴로 외쳤다.
단 한 번도 선황제에게 아버지로서의 무언가를 기대한 적 따위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황족으로서 그를 보호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 알렉산드로가 아니고서야 황좌에 오를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 선황제가 어떻게 귀족들에게 붙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놈이야말로!”
그 순간, 선황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퍽!
동시에 선황제가 입구의 장식장 위에 놓인 화병을 알렉산드로에게 집어던졌다.
“으윽!”
방심한 탓에 화병에 머리를 그대로 얻어맞은 알렉산드로가 휘청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황제가 분노한 채로 외쳤다.
“감히, 론체스터의 국고를 외국 사신들에게로 빼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