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복수의 끝은 아름답지 않다(3)
알렉산드로는 제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누구보다 선황제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그토록 권력욕이 많은 알렉산드로였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분명, 권력의 정점에서 이를 놓지 않고 있는 선황제의 존재란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선황제만은 무너트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금처럼 내내 억눌려 살았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이었다.
알렉산드로는 선황제를 쳐서 권력을 빼앗기보다, 선황제에게 인정받아 권력을 물려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당신이 쓸모없는 자식이라 취급하던 자신이, 당신이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증명하길 원했으리라.
그리고 오벨리아는 선황제가 알렉산드로를 직접 끌어내리도록 만듦으로써, 알렉산드로의 마지막 바람조차도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이럴 거면 날 낳지를 말았어야지!”
알렉산드로가 선황제를 향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황제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질 뿐이었다.
“애초에 너 같은 걸 낳으려고 네 어미를 안은 게 아니었다. 그건 우연에 불과했지.”
선황제의 말은 더없이 무정했다.
그는 정말로 알렉산드로에게 일말의 정도 없었던, 생물학적 아버지에 불과했다.
“뭐……?”
알렉산드로가 순간 넋을 잃고 반문했다.
선황제의 말은 잔인하다 싶을 만큼 거리낌이 없었다.
“그게 당신이 할 말이야……?”
선황제는 그래도 알렉산드로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황제였던 그가 원하여 알렉산드로의 어머니를 안았다.
그랬기 때문에 알렉산드로가 태어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선황제의 말은 그가 얼마나 무치한 권력자인지를 증명했다.
“네 어미도 그렇지. 왜 너 같은 걸 가져서는…….”
선황제는 아무렇지 않게, 알렉산드로의 어머니까지 모욕했다.
그 말에는 오벨리아와 다른 이들의 표정까지 굳을 지경이었다.
황제로서 자기가 원하는 여인을 안아 놓고, 인제 와서 알렉산드로의 어머니에게 모든 탓으로 돌리다니.
이토록 뻔뻔할 수가 없었다.
“하……. 하하…… 하하하!”
그 후안무치한 행태에 넋을 놓고 있던 알렉산드로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일순 실성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하하!”
“쯧, 미치기라도 한 건가. 빨리 끌고 가라!”
선황제는 그런 제 아들을 향해 일말의 동정심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알렉산드로를 끌고 가라고 기사들에게 명령했을 뿐이었다.
“예, 선황 폐하.”
선황제의 명령을 들은 기사들이 알렉산드로를 양쪽에서 붙들었다.
알렉산드로는 마치 모든 기운을 소진한 사람처럼 그 기사들에게 이끌려 터덜터덜 걸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가 선황제의 옆을 지나치던 순간이었다.
“……내 인생이 망가진 건 전부…… 당신 같은 아버지를 둔 탓이야.”
작게 중얼중얼하던 알렉산드로가 갑자기 안광을 번뜩이며 선황제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커헉……!”
알렉산드로가 순식간에 기사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빼앗아 바로 옆의 선황제를 베어 버렸다.
선황제가 단말마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알렉산드로가 모두 포기한 것처럼 굴었기에, 느슨하게 그를 잡고 있던 모든 기사가 경악하여 소리쳤다.
“선황 폐하!”
그러나 오벨리아는 찰나에 선황제가 아니라 알렉산드로를 가리켰다.
“당장 알렉산드로를 잡아……!”
어느덧 알렉산드로가 검을 높이 치켜들어 자신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그 검이 파고들려는 때, 재빠르게 움직인 에크하르트가 알렉산드로의 목 뒤쪽을 내리쳤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의 심장 위 피부를 얕게 파고들었던 검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그의 두 눈이 감겼다.
털썩.
알렉산드로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
에크하르트가 무릎을 굽혀 알렉산드로의 목에 손을 대 맥박을 확인했다.
“살아 있다.”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에게 안도하라는 듯 말을 전했다.
그녀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자, 어느덧 다가온 에드먼드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재빠르게 달려간 일리어스가 황궁의를 데리고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에크하르트가 오벨리아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다 끝났어, 오벨리아.”
비로소…… 모두 끝이었다.
***
선황제는 즉사했다.
황궁의가 빠르게 도착한 편이었음에도, 알렉산드로가 하필 목 옆쪽을 베었기 때문에 선황제는 살아날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는 자신에게 겨누었던 검이 파고든 깊이가 가볍게 베인 정도에 불과해서, 간단한 치료 후 곧바로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일련의 사태에 대한 귀족들의 논의가 이어졌다.
선황제가 죽고, 알렉산드로는 폐위되었다.
공식적으로 아그네스가 낳은 아이는 출산 과정 중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황위를 계승할 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한참의 언쟁 끝에 결론이 정해진 뒤에야, 오벨리아는 에크하르트와 함께 지하 감옥으로 갔다.
“하, 여기까진 웬일이지?”
어느덧 깨어나 있던 알렉산드로가 오벨리아와 에크하르트를 보자마자 빈정거리는 어투로 물었다.
“일전에는 내가 내 시녀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오늘은 네가 네 아버지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구나.”
오벨리아가 그런 알렉산드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가 발끈하여 대꾸했다.
“그런 인간은 아버지라고도 할 수 없어!”
“너도 살아 있는 네 자식을 죽은 걸로 취급했잖아?”
그러나 오벨리아가 말을 잇자, 알렉산드로는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이를 악물며 말을 덧붙였다.
“너를 진즉에 죽였어야 했어.”
오벨리아가 그런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넌 나를 안 죽인 게 아니라, 못 죽인 거야.”
오벨리아가 한 걸음 철창으로 다가갔다.
에크하르트는 그녀가 위험할까 봐 순간 움찔했으나, 오벨리아를 막지는 않았다.
“넌 나를 죽이기에는 멍청하고, 사람 볼 줄도 모르면서…… 동시에 이기적이고 탐욕만 많지.”
“지금 내가 무능하다는 이야기나 하러 온 건가?”
알렉산드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족쇄에 손발이 묶여 있는 몰골로는 단 하나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 넌 무능해. 그 주제에……!”
오벨리아가 순간 철창 너머로 손을 뻗어 홱, 알렉산드로의 멱살을 잡아챘다.
“악……!”
쿵!
그 바람에 하나로 된 족쇄에 두 발이 묶여 있어 제대로 걸을 수 없던 그의 얼굴이 철창에 부딪혔다.
“감히 내 것들을 앗아가?!”
오벨리아가 마침내 온전히 알렉산드로에게 제 분노를 드러냈다.
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몸은 치솟는 화를 채 억누르지 못한 탓이었다.
“네까짓 게……! 조안나를! 마리아를! 내 궁인들을! 내 아버지를……!”
오벨리아의 어깨가 분노로 들썩거렸다.
그녀의 가슴이 거친 숨을 내쉬느라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가 또다시 미친 것처럼 웃었다.
“하하하……! 하하……! 오벨리아, 그건 네가 선택한 거잖아?”
알렉산드로의 말에 오벨리아의 몸이 굳었다.
그것을 보며 그가 즐겁게 말을 이었다.
“전부 다, 네가 날 사랑해서 만들어진 비극이라고.”
자신이 어리석게도 알렉산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
그 말은 오벨리아가 늘 생각해 오던 것이었다.
자신이 알렉산드로를 원하지만 않았더라면.
그 명제는 늘 커다란 죄책감이 되어 그녀의 목을 죄어왔다.
“말은 바로 해야지.”
그때, 에크하르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그의 손이 오벨리아의 두 어깨를 붙들며 그녀를 지탱했다.
“알렉산드로, 모든 건 네가 오벨리아의 사랑에 빌어먹은 주제에 그 은혜도 모르고 몰염치하게 군 탓이 아닌가.”
“……뭐?”
이번에 표정이 굳은 것은 알렉산드로였다.
“네 주제에, 오벨리아가 아니었으면 황제는커녕 그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었을까.”
에크하르트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렉산드로의 표정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난 내 힘으로……!”
“정말 모두 네 힘으로 이루었다면, 네 인생에서 오벨리아가 빠지자마자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겠지.”
에크하르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야……!”
말문이 막힌 알렉산드로가 대뜸 목소리를 높여 에크하르트의 말을 부정하며 소리 질렀다.
그제야, 오벨리아의 머릿속에 이성이 돌아왔다.
“그래, 너를 택한 것은 내 인생에서 내가 저지른 최악의 잘못이었지.”
오벨리아가 팔을 올려 자신을 잡은 에크하르트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그의 온기가 죄책감에 목이 졸려 숨쉬기도 힘들던 그녀의 숨통을 트여 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네가 나를 배반한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알렉산드로, 지금부터 론체스터에 일어날 모든 일은 너 때문인 거야.”
에크하르트의 도발에 씨근덕거리던 알렉산드로가 크게 움찔했다.
알렉산드로가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다.
“론체스터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지금부터 론체스터는 귀족원이 대리하여 통치하게 될 거야.”
오벨리아가 조금 전까지 내도록 이어졌던 회의의 결과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게 무슨……!”
알렉산드로가 무조건 화가 나서 선황제를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선황제가 죽고 나면, 황위를 지킬 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그러면 아무리 폐위된 황제라고 할지라도 귀족들은 알렉산드로를 쉬이 어쩔 수 없을 터였다.
알렉산드로는 자신이 선황제를 베었기에 분명히 기억했다.
그는 정확히 제 아비의 목을 베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선황제가 살아 있다면 귀족원이 대리하여 통치하는 것도 이상했다.
선황제가 의식이 있다면 귀족원에 휘둘릴 리가 없었으니까.
선황제가 혹시 숨만 붙어 있는 상태던가?
알렉산드로의 안에 의문이 샘솟았다.
왜냐하면, 오벨리아가 귀족원이 ‘대리’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결국, 어쨌든 황위에 앉을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곧, 그 의문을 오벨리아가 해소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