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1-프롤로그 (1/107)



〈 1화 〉1-프롤로그

[잘있어. 오빠…….]

아무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아 계속 일을 쉬었다.
집이 이렇게나 넓고 조용했었나?
그때만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온갖 후회도 밀려왔다.
나는 어째서 그때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지키지 못했을까…….

반폐인처럼 지내다가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겨우 추슬렀다.
 때의 일에 관해 죄를 입증시켜 벌을 받게 해도, 그로 인해 많은 사과와 보상을 받았어도, 별로기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그 애가 편해질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생각만이 들었다.

많은 일이 지나고 나니 남은 것은 추억뿐이었다.
나는 집을 정리하면서 하나하나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있었다.

옛날에 그 애와 재미있게 했던 게임 패키지.
흔한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 그 중에서 성녀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가장 내 머릿속에는 깊게 남아 있었다.
판타지 세계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등장하는 성녀.
마지막에는 마왕을 물리치고 결국 용사와 이어지는 엔딩을 맞는 정석이라고 할 정도의 캐릭터다.

나는 이 캐릭터를 가장 좋아했다.
그 애가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굉장히 단순한 이유.

곧 옛 추억으로 그 게임을 하게 되었다.
지금에 비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그래픽.
그렇지만 게임 자체는 정말로 재밌다.
요즘 너무 양산형게임이 많은 탓인지, 더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용사(플레이어)를 조종해서 몬스터를 쓰러트리며 스토리를 진행해 나간다.
교회. 메르 교단 본부에 들러 성녀를 만나고 성검을 손에 넣는다.
성녀와 동료들과 여행을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마왕을 쓰러트린다.
엔딩에는 성녀와 결혼을 하여 행복하게 산다.

플레이 타임은 적지는 않지만, 나는 시간을 들여서 엔딩을 봤다.
하지만 마지막을 보고 나니 괜히 플레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생각이 다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용사였다면 이런 힘든 삶은 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지킬  있지 않았을까?

“바보 같네…….”

곧 자조하며 게임을 끄려던 나에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당신의 행동에 따라 진정한 해피 엔딩으로 향할 수 있게 됩니다. 2회차를 플레이하시겠습니까?] [Y/N]

“이게 뭐야?”

진정한 해피 엔딩? 2회차? 그런 것이 있었나?
아니, 그런 건 없었다. 아무리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당시에는 이런 건 없었다. 단지저 CG가 나오고 끝났을 뿐.
이것이 온라인 게임이라면 내가 모르는 사이 패치라도 했나 생각할 테지만, 이건 패키지 게임. 그것도 요즘은 유물 취급받는 CD로 돌리는 게임이다.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

이상하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도 나는 말없이 마우스에 손을 올리고 커서를 Y에 가져가고 있었다.
진정한 해피 엔딩.

진정한 해피 엔딩이 도대체 무엇일까?
모른다.
내 행동, 아마 플레이에 따라 결정이 된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진정한 해피 엔딩이 지금과 같은 괴로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뭐든 좋았다.
아니, 보고 나서 아까 같이 후회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게임이지만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조금은 마음이 나아질 것만 같았다.

[1회차 보상을 지급합니다.]
[지급 완료.]
[2회차 시작 지점을 선별.]
[가장 알맞은 곳에 선별 완료.]
[2회차를 시작합니다.]
[부디 최고의 해피엔딩을 보실 수 있기를 빕니다.]

그렇게 내가 Y를 누르면 그런 말들이 들려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여, 긴…….”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이상한 곳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으윽…….”

바싹 마른 목, 잔뜩 갈라진 목소리.
이상한 쓴 냄새가 코를 찌르는 풀 냄새가 진동한다.
심한 몸살에 걸린 것만 같이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이 너무나도 아프다.

“여기는 어디…….”
“리제! 정신이 든 거니!?”
“어?”

최악의 컨디션에 모르는 곳에서 눈을 떠서 어디인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하면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여성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다가왔고,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아! 여신 메르시여. 정말로 감사합니다!”
“……?”

이게 뭔… 여신 메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윽!?”

그렇게 놀라고 있으면 갑자기 머리에 둔한 통증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어떤 기억이 내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

‘이건…….’

그것은 한 소녀의 기억.
12살의 보육원 소녀 ‘리제’가 여태까지 살아온 기억.
분명히 내 기억이 아닌데, 전혀 이상하고 어색하지가 않았다.

마치 내 기억인 것처럼.
그렇기에 나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눈앞의 여성을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할 수 있었다.

“저 이제 괜찮아요. 원장님…….”

아무래도 나는 이상한 상황에 빠진 모양이다.


#


이곳에서 눈을 뜨고 나서 5일. 상황 파악을 한 나는 이곳이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하던게임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로 믿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나는 설명하기 힘든 뭔가로 인해서 이 세계에 오게 된 것이다.
그것도 12살의 여자아이의 몸에 빙의라는 형태로.

정신은 ‘나’라는 주체에 리제의 기억이 마치 자연스럽게 녹아든 형태로 있어서 굉장히 혼란스럽기는 한데,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다는, 굉장히 기묘한 모순이 생겨버렸다.
일단 생활하는 것 자체에는 그렇게까지 불편한 점은 없다.
그래, 여자아이가 되었다는 점만 빼면!

이건 분명히 내가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에 봤던그 메시지가 원인일 거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파악하고 나서 드는 의문은 메시지는 ‘2회차’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나(플레이어)라는 존재는 용사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 되니까 나는 용사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용사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 생각은 곧바로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기억 속에는 리제라는 소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편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 존재다.

‘아니,  그런 것도 아닌가?’

리제의 기억에, 흑발의 인간은 없다고  정도로 수가 적다고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리제는 제법 눈에 띄거나 했는데, 그것에 모습 자체를 생각해보면 리제라는 여자아이는 분명 그 캐릭터일 거다.
성녀의 호위기사단 중에서 이름도 대사도 없이 잠깐 그림으로 나오고 말며, 잠깐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딘가에서 죽고 마는 엑스트라 캐릭터였다.

게임 내에서 흑발이라는 보기 드문 머리 덕분에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엑스트라 정도는 되는구나?
대사라도  줄 나오는 마을사람보다 못한 취급이지만.

“언니. 정말로 괜찮아?”
“응. 괜찮아. 이제 정말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원장님도 다 나았다고 하셨잖아. 그러니까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계속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표정은 바뀌지가 않는다.
뭐, 이렇게 과잉으로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다 죽어가던 사람이 일주일 만에 완쾌했다며 일어나 돌아다니고 있는 거니까.

“다시 안 좋아지면나한테 말해. 내가 리제 언니 몫만큼 더 일할게.”
“필… 미안해. 너도 아직 다른 애들 같이 놀고 싶을 나이인데.”
“아니야. 나도 이제 7살이고 다른 얘들 누나, 언니야. 그러니까 이러는 건 당연해!”
“…….”

이 보육원은 다행히 빚은 없지만, 재정적으로 너무나도 힘든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어린아이들도 보육원의 일을 돕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모두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고집을 부린 것은 보육원에 재정상태를 생각하면 가만히 쉴 수 없다는 초조함에 기인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맏언니로서 원장 선생님을 도와 보육원의 거의 모든 일을 해내는 그런 너무나도 착하고 상냥한 그런 아이.
하지만 너무 자기희생이 강해서 많은 걱정을 끼치기도 하는 그런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나다.

본래의 리제라는 아이의 마지막 기억이 어땠는지를생각하면, 아마 이 몸은 완벽하게 내 몸이 된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이런 현실이 되어버렸지만, 돌아갈 방법도 모르고 일단은 여기서 살면서 뭔가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일단 최소한의 목표는 최소한이라도  아이로서 살아주고 싶다.
기억이 전부 있는 것은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일 테니까.

“자, 그러면 얼른 원장님에게 가 봐. 애들은 나한테 맡기고.”

“응… 알았어.”

필은 여전히 내가 걱정되는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지만, 내가 필사적으로 설득하면 겨우 원장님이 있을 주방으로 향한다.
나는 나대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이 모여 있을 곳으로 향했다.

“아, 언니다!”
“누나!”

내가 나타나면 5명의 어린아이가 우르르 몰려와 나에게 안겨들거나 내 팔을 붙잡았다.
마치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보육원에는 원장님이 있지만, 아이들 엄마의 역할을 맡은 것은 리제였다.
언니, 누나이면서 동시에 엄마 같은 느낌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언니. 이제 안 아파?”
“응. 이제 하나도 안 아파.”
“다행이다…….”

차례대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다들 안심한 듯이 나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한 아이가 나를 보며 어쩐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누나는 이럴 때는 거짓말쟁이라고 하던데?”
“언니가 거짓말쟁이?”
“아파도 안 아프다고 하고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고…….”

아, 이거. 필이구나? 아니면 네드라든가.
작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는 거야…….

“아니야. 거짓말 아니야. 누나 정말 안 아파.”
“진짜?”
“그럼.”

딱히 안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난 지금 정말로 건강하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때는 굉장히 몸이 아팠지만, 그것도 지금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이것 덕분일 것이다.

이름 : 리제
레벨 : 5
칭호 : 보육원의 맏언니(체력+3)
힘 : 6 체력 : 11 민첩 : 5 마력 : 3

마치 게임과 같은 상태창.
여기에 인벤토리도 있고 스킬창도 있으며 시야 왼쪽 하단에는 로그창도 보인다.
이게 어떤 원리로 내 몸에 작용하는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빙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죽은 몸이 살아나고, 회복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은 이것이 원인일 것이다.
레벨업이나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이 내가 아는 게임과 똑같은지는 이제부터 확인해봐야겠지.

만약에 그것이 된다면 일단 나는 용사급으로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내가 가진 게임의 지식들이 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면… 용사도 부럽지 않을 힘을 얻을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계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도 지키려면 그만큼 무력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자, 그러면 슬슬 밥 먹을 준비하자. 다들 모였지?”
“응!”
“어? 그 누나가  보이는데?”

다들 힘차게 대답하는 와중  명이 그렇게 말한다.

“그 누나?”
“며칠 전에 새로 들어온 누나!”

아, 그러고 보니 원장님께 새로 들어온 여자아이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누굴까?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 언니라면 저기 창문 밖으로 보이던데.”
“그래?”

나는 일단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이가 가리킨 창문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굳었다.
아직 어린 모습이고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도저히 다른 인물로는 볼 수가 없었다.
반짝이는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귀여운 외모.

“근데 저 누나 이름이 뭐였지?”
“기억  나. 저 언니는 맨날 화만내고 무시하고… 무서워…….”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모습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굉장히 냉랭한 모습이었다.
표정도 굳어 있고 눈동자에는 생기가 얼마 안 보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불안정한 모습.
하지만 동시에 가시가 돋친 듯 날카로움이 존재했다.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시스티아…….”
“아,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리제 언니. 알고 있었어?”

그럼. 잘 알다마다.
내가 좋아한 성녀의 이름이 시스티아인데.

나는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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