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9-봉인된 신의 성소(1)
“으, 으응…….”
정신이 들면서 천천히 눈을 뜬다.
하지만 주변에는 어둠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어디일까?
죽어서지옥에라도 온 것일까?
이 세계의 지옥은 어떤 곳이지?
“으윽…….”
상황을 파악하려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전신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다시 눕게 되었다.
어디 하나 안 아픈 곳이 없다.
특히 오른쪽 어깨는 장난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절로 나고 이를 절로 악물게 된다.
그냥 이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을 정도다.
‘아니, 잠깐만?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죽지는 않았다는 건가……?’
끙끙 앓고 있다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진짜로 죽었다면 내가 다쳤을 때의 상처 또한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있지……?”
그렇게 내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
【일어났는가? 나의 피를 잇는 자여.】
갑자기 그런 말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만 같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마치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조명이 들어오듯 주변이 환해졌다.
‘이건… 설마……?’
지금 상황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오고 싶어 했던 장소.
용신의 발톱자국의 안에 있는 숨겨진 장소.
봉인된 신의 성소에 있는 용신의 존재.
그렇다면 분명 지금 말을 거는 존재는 용신!
‘어, 어째서? 난 조건도 달성하지 못했는데.’
【흠, 잘 회복이 되지 않는 건가? 역시 너무나도 연약하군. 이걸 마시도록 해라.】
놀라고 있으면 눈앞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작은 병. 그 안에는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빛의 액체가 들어있었다.
“이, 이건… 최상급 포션!?”
모든 포션의 정점이라 불리는 엘릭서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로 큰 도시를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라 들었다.
거의 모든 상태이상 회복에, 살아만 있다면 누구든 살릴 수 있을 정도의 효과를 지녔다고 한다.
내 게임 기억과괴리되는 내용이 이 포션이기도 했는데, 게임을 할 때는 포션을 왕창 사다가 펑펑 써댔건만, 이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일 싼 하급 포션만 해도 상당히 비싸서 일반인이 사려면 한 달은 굶주리며 살아야 할 정도라고 듣는다.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올라갈수록 그 가치는 엄청나게 뛴다.
최상급의 경우에는 돈이 엄청 많거나 최상급 실력의 모험가도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 이거 굉장히 귀한 건데…….”
【이래저래 따지지 말고 마셔라. 그래야 이야기가 될 것 같군.】
“…….”
이 세계에 와서 가난하게 살다 보니 또 옛날의 가난근성이 튀어나왔다.
손에 든 것이 큰 도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진다.
‘만약에 이걸 판다면 더는 시스티아나 아이들이 고생하지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내 몸을 고친다고 하는데 안 마실 수도 없었다.
솔직히 그런 가난근성을 발휘하기에는 너무나도 괴롭다.
나는 결국 각오를 다졌다.
최상급 포션의 병마개를 열고 그것을 마셨다.
“허…….”
그러면 아주 순식간에 원래부터 다친 적이 없다는 듯이 상처가 사라지며 통증이 사라진다.
이게 바로 실제 포션의 효과…….
【다 회복된 것 같군. 용인의 아이여.】
“요, 용인… 이요?”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아무리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 오게 된 이상, 너는 자격이 있으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또 무슨… 거기에 제가 당신의 피를 잇는 자라고요?”
【정말로 미약하기는 하지만 너는 용신인 내 피를 잇고 있다. 아마도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고 유희를 하던 블랙 드래곤이 너를 낳았겠지.】
“네?”
진짜 모르겠다.
내가, 아니 정확히는 리제가 블랙 드래곤의 아이라고?
딱 잘라서 아니라고도 못 하겠다. 리제는 아기일 때 보육원 앞에서 버려진 것을 시스터가 주워 키웠고, 이 세계에는 없다시피 한 검은 머리를 지니고 있다.
용신의 말대로 블랙 드래곤의 아이였다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상태에서 너를 낳았으니, 아무리 드래곤과 인간의 하프라고해도 인간에 가깝지만,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드래곤의 피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용인이라 할 수 있지.】
“그, 그런 이야기는…….”
【당연히 이곳에 오지 못했으면 평생 모른 채로 평범한 인간으로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 단호한 말에 확실히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게임 안에서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리제.
거기에 죽는 것조차 나오지 않고, 그저 죽었다는 이야기 하나로 그 이후부터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그냥 없는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으로나마 남은 것이 기적이랄까?
그런 리제가 용인… 미량이지만 드래곤 피를 지니고 있는 용인이라고?
아니, 하지만 이건 알겠다.
내가 알고 있던 조건을 채우지도 못했는데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이유.
그건 리제가 용인이라는 것 자체가 이곳에 올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 살았으니 당연히 좋다고 하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이 다르니 그 뒤에 따라오는 이벤트도 다르다는 건가.
‘그런데, 이거 내가 아는 이벤트랑 너무 달라서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지 예상이 안 되는데…….‘
이곳에서 할 일은 그저 대화 좀 나눈 다음에 보너스 능력치 좀 받고 좋은 칭호를 얻고, 마지막에는 엄청 좋은 장비를 얻는 것에 있다.
그 장비가 너무 좋아서 초반부터 후반까지 사용해도 문제가 없어서 용사의 장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거의 템빨의 완성형이라고 해야 할까?
난 그걸 노리고 오려고 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면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자격이 있다거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다거나 하셨는데 그건 뭔가요?”
【자격이라는 것은 내가 주는 시련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시, 시련…….”
굉장히 귀찮아 보이는 단어가 나왔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너에게 거부권은 없다. 이건 결정된사항이지.】
“아, 알고 있어요.”
까, 깜짝이야.
하기 싫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런 말을 하니 엄청나게 깜짝 놀랐잖아.
내 속마음을 읽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자…….
하아… 가장 좋은 쪽은 아마 지금 걱정하고 있을 시스티아와 보육원의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여기를 나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그게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일단은 말을 좀 맞춰볼까.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괜찮은가요?”
【그래, 허락하마. 아이야.】
“용신님의 이름은요?”
【카르아다. 육체가 있었을 때는 용신 카르아라 불렸었다. 지금은 내 혈족인 드래곤들에게도 잊혔지만 말이지.】
“카르아…….”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이름과 똑같군.
【나를 알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이름은 들은 적이 있어서요.”
【흠. 그런가.】
단순히 그런 것뿐인데도, 그 목소리에는 기쁨이 느껴졌다.
자신의 정식적인 혈족인 드래곤들에게도 잊힌 이름인데, 내가 그냥 어디서 들은 걸 기억만 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모양이다.
이런 건 게임에서 보지 못한 건데, 꽤 귀여운 면이 있다.
뭐, 많이 쓸쓸했을 테니…….
“저는 용신님이 말씀하시는걸 하지 않으면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 거죠? 많이 힘든가요?”
【그렇다.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너는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힘들지 안 힘들지는 너에게 달렸지.】
이거 그 시련인지 뭔지를 해서 만족시키지 못하면 나가지 못하는 것 같군…….
제발 어렵지 않은 것이길 바랄 뿐이다.
“혹시 잘못하면 죽는 건 아니죠?”
【그것도 너에게 달린 일이다.】
“…혹시나 말하는데 내용은요?”
【미리 알려주진 않을 거다.】
“…….”
아, 힘든 일 확정인가…….
“후… 좋아요. 받죠. 그 시련이라는 거.”
【…….】
사람이 기껏 마음을 먹고 하려고 하면 어쩐지 카르아 쪽에서 당황한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왜요?”
【… 아니, 좀 더 당황하거나 저항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음. 어린아이가 아니고 다 큰 존재 같다는 느낌이 있다. 혹시나 폴리모프한 드래곤도 아닐 테고…….】
제법 날카롭네.
괜히 오랫동안 산 존재가 아니라는 건가?
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가 엄청나게 오래 사니까, 이 용신은 당연히 오래 살았을 거다.
평범한 드래곤도 최대 1만년까지는 산다고 게임에서 본 적이 있다.
게임 자체가 아무래도 옛날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현대와 같이 드래곤이 주인공의 밥이라든지, 히로인 중 한 명이라든지, 애완동물이라든지, 약해빠진 존재가 아니고 숫자 자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세계관에서 아무나 건들 수 없는 최상위 계급에 있는 존재들이다.
대개 레어에서 재보를 쌓아놓고 뭔가를 연구하거나 빈둥빈둥 지내면서, 근처에서 사는 노예들, 아니 드워프들에게 물건 만들라고 협박하거나, 엘프들을 가지고 놀거나, 가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고 싶어 덤벼드는 인간과 상대하거나, 폴리모프로 다른 존재로 변해 세계를 유유자적 여행하거나, 그런 존재다.
리제의 부모, 아마 엄마로 추정되는 존재도 그렇게 폴리모프로 인간으로 변해 유유자적 여행하다가 임신해서 낳고 버리고 간 것이리라.
엄청 민폐다. 세상에 고아가 얼마나 많은데, 한몫하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다만 ‘리제’의 기분을 생각하면 그 부모를 만나면…….
아니, 이건 지금은 됐다.
“그냥 제가 좀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아서 나이에 비해 좀 그래요.”
【그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만… 뭐 됐다. 그런 건 지금 상관없는 일이니까.】
귀찮아진 건지, 진짜 아무래도 좋아졌는지 카르아는 그렇게 말하고 넘어간다.
신이라고 해도 나에 대한 특수성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보인다.
신도 모른다면 도대체 나는 이곳에 어떻게 온 걸까.
어쩌면 그보다 더 초월적인 존재가 있을지도…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러면… 바로 시작할 텐가?】
“포션 덕분에 팔팔해졌는데 바로 할게요.”
【좋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카르아에게서는 내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나에게 달린 일이라는 거겠지.
어쨌든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나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획과는 많이 다르게 되었지만 나는 여기서 얻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뭐가 되었든 하는 수밖에.
【그럼, 잘 견뎌내길 빈다. 아이야…….】
용신카르아의 그런 말이 끝나면 여태까지 조용했던 로그가 떠올랐다.
[용신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엄청난 양의 마나의 흐름을 느낍니다.]
[집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이(가) 당신을 보조합니다.]
시련이라는 이름의 미지의 경험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