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2-봉인된 신의 성소(4)
확실히 한창 고통에 휩쓸려 있었을 때는 바빴다. 무아지경으로 마나를 수습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무려 1년.
그렇게나 시간이 많이 지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시스티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보육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모든 것을 침착하게 끝마치고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갈고 닦았다.
이름 : 리제
레벨 : 10
칭호 : 용신의 수호자(모든 능력치+5)
힘 : 70(+15) 체력 : 78(+15) 민첩 : 57(+15) 마력 : 80(+15)
패시브 스킬
?? - LV??
불완전한 드래곤하트 - LV0
웨폰 마스터리 - LV3
용언 - LV1
액티브 스킬
용화 - LV1
2배 좀 넘게 증가한 3개의 능력치, 대폭 상승한 마력, 새롭게 추가된 스킬.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래 일주일도 꽤 빡빡하다. 그렇지만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아도 되는 생활 덕분에 어떻게든 되었다.
카르아가 있는 이 구역에서는 생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상처를 입어도 자동으로 회복이 되는 그런 곳이다.
수련을 하려는 곳으로서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곳에서 여러 조정을 하면서, 나는 카르아에게 이런 저런 것을 배웠다.
역시 오래 산 용신이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옛날이야기가 많았지만,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당장에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 건, 포션이나 아티펙트같은 마법과 연관성이 있는 것들의 제작 방법일까?
카르아의 이야기로는 나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내 마력이 안정되고 조금만 더 마법에 대해 배운다면 말이다. 드래곤 하트가 불완전하다는 게 장애물이지만.
여러모로 걸려있는 제한이, 일단 최우선으로 해결할 일이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여러모로 고마워요. 카르아.”
【음… 그 아이는 잘 부탁한다. 리제.】
“근데 진짜 이름은 제가 지어도 되겠어요?”
【상관없다.】
“그러면 부화하면 한번 올게요.”
【그럴 필요는 없다. 나에 대한 건 신경 쓰지 말고 잘 지키는 일에만 힘써줬으면 좋겠다.】
“…….”
카르아가 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맞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에게서 떨쳐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너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저기, 카르아. 당신은 어째서 여기에 봉인된 거죠?”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것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르아가 며칠 사이 대화하면서 말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봉인된 이유.
솔직히 이 의문은 게임을 할 때도 들었다.
뜬금없이 용신이라는 존재가, 고작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곳에 있는 것인가 하는의문.
【…너는 알 것 없다.】
역시 말해주지 않는군.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은 처음이었지만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봐요. 카르아. 나 지금용신의 수호자라는 입장이거든요? 근데 그런 사람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도 말 안 할 거예요?”
【넌 그저 그 아이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아니, 그러니까……!”
【...나 같은 건 알지 못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나는 뭐라고 하려다, 이어진 카르아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카르아는 살 수 있는 날이얼마 안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지 않으려고 저러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일까.
가족인데.
카르아가 수호자를 정하고 알을 같이 내보내는 것은 자신과 함께 쭉 이곳에서 부화하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이곳에서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호자 후보를 기다린것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내주면서 아이를 지켜달라고.
자신이 하지 못 하는 일을 부디 대신해달라고.
무력한 신의 마지막 부탁.
“…….”
나는 품속의 알이 있는 부근에 손을 댄다.
거기서는 계속해서 소중한 생명이 느껴진다.
‘내가 이 둘의 마음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기뻐할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내 이기심, 자기만족이지만 말이다.
“알았어요. 그러면 전 이만 가볼게요.”
【그래. 잘 가거라.】
카르아의 그런 말을 들으며 나는 절벽에 손을 댄다.
여기서 올라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미 카르아와 이야기가 끝난 상태다.
나는 한 단계 올라가기 전에 카르아에게 말한다.
“나중에 심심하면 놀러 올게요. 카르아.”
【뭐, 뭐라?】
“뭐가요? 수호자가 놀러 오겠다는 데 그것도 안 돼요?”
【후우…….】
카르아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만약 육체가 있었으면 손을 머리에 짚고 있었을 것이다.
【멋대로 해라.】
“언질 잡았으니까 나중에 발뺌하기 없기에요?”
【…….】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침묵해버리는 카르아.
확실히 삐졌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킥킥거리며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맨몸으로 오르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곧 ‘경계’에 다다른다.
카르아가 있는 이곳과 완전한 절벽 밑바닥의 경계.
이곳을 나가야 확실하게 절벽의 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망설일 것 없이 그 경계에 손을 댄다.
【나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와도 좋다.】
나가기 전에 그런 말을 들었다.
그것은 최대한의 양보.
알았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을 돌려주며 경계를 빠져나온다.
“으읏… 확실히 저 안이랑은 다르네.”
경계의 밖으로 나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몸을 짓누르는 압력.
이곳은 흐르는 마나를 죄다 흡수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 압력은 내 마나를 빨아들이려 하는 것에 의한 것이다.
본래라면 내 마나도 금방 텅텅 비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카르아에게 내부에 존재하는 마나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배웠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지만,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
그 시간 안에 여기를 빠져나가야만 한다.
“흡……!”
나는 숨을 들이쉬며 마나를 내부에서 빠르게 돌린다.
이것은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오러 운용법.
마나를 내부에 받아들여 오러로서운용할 수 있는 이 단계가 익스퍼트 단계다.
이 단계가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일반인과 초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는 다 됐어.’
지체할 시간은 없기에, 준비가 다 되자마자 바로 오르기 시작한다.
절벽을 조금씩부수면서 손잡이와 발판을 만든다.
이것을 빠르게 반복한다.
“확실히 할 만은 한데, 엄청나게 지치네. 망할.”
대략적인 높이는 카르아에게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들은 것과 몸소 체험하는 것은 역시 다르다.
나는 계속해서 올라간다.
“단순히 훈련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 힘드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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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폐가 찢어질 것만 같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아직 불완전한 드래곤 하트가 제발 쉬라며 신호를 보내고 있다.
팔과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부들부들 떨린다.
도대체 얼마나 올랐을까?
완전히 지친 상태가 되고 나서야 나는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계산으로는 좀 더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지만, 본래 생각과 실전은 다른 법이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아~ 힘들어…….”
다 올라와 나는 곧바로 드러누우며 지친 몸을 달랜다.
그저 이 절벽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뿐인데 몸이 너무나도 가볍다.
“역시 바깥이 좋네…….”
거기에 기분 탓인지 공기의 질부터도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작게 숨을 쉬고 뱉으며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몇 분간 있으면 곧 호흡은 안정이 된다.
다른 곳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말이다.
‘역시 밤에는 별이 좋단 말이야.’
체감으로는 한 2주 정도로 느끼지만, 실제로 지금 내가 있는 시간대는 다르다.
카르아가 있던 곳이나, 밖이나 시간에 관해서는 다른 것이 없다고 했으니까 이곳도 똑같이 1년이 넘게 흐른 뒤다.
뭐, 1년이라고 하면 전체적으로 큰 변화 같은 것은 없을 테지만, 우리 보육원은 내가 없어지고 어떠한 변화는 있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생각해둔 것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기에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조금 어색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아마 장례도 치러져 무덤 또한 만들어져있을 가능성이 있다.
죽었다고 생각한 이가 불쑥 나타나는 것은 어떨까?
한 번 상상해 봤다.
“엄청나게 놀라긴 할 테지만, 기뻐했으면 좋겠어.”
답이 나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보육원으로 향할 생각이다.
가서 무엇을 이야기할지 그것만 좀 생각했다.
나에게 있었던 모든 일은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기에는 좀 위험하다.
카르아도 되도록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그 장소에서 있었던 일들은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거기에 아무도 갈 수 없는 미지의 장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해보자. 분명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최소한 혹은 아예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따로 할 수 있는 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건 나도 잘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현재 내가 가진 힘에 관해 설명할 길이 없는데.
나에 대해서 그렇게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을 사람들만 잘 넘기면 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람의 소문이라는 것이 어떻게 퍼질지 모르는 것이다.
비밀로 해 달라 한다고 한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면 그것은 비밀이 아니니까.
다만 에르틸 마을은 엄청 작은 마을이고 그렇다고 나에 대해 금방 알아차릴 고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 현재 수준은 익스퍼트 중급 정도. 힘을 숨기는 것은 확실하게 배웠기 때문에 아마도 같은 수준의 상대까지는 발각되지 않을 거다.
난 정규적으로 밟은 것이 아니라서 여러모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음.
익스퍼트 상급 이상이라고 치면 나라의 숙련된 기사 혹은 고위 귀족.
그게 아니라면 B급 이상 모험가는 되어야 한다.
그런 자들이 이런 작은 마을에 있을 리는 없으니까.
‘무조건 숨기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알리는 편이 더 낫겠지?’
물론 그 정보를 내가 지은 이야기로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대강 밑에서 은거기인 같은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배웠다고말하면 되겠지.
어차피 그들이 밑에 가서 확인해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
다른 이에게 들키면 안 되는 큰 비밀을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이제야 알 것 같다.
생각해보면 다른 세계에서 리제의 몸에 빙의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비밀이지.
그건 리제의 기억으로 인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어서, 한동안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리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자, 그러면 이제 충분히 쉬었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니 가볼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 바로 마을로 향하려 한다.
그러던 그때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뒷덜미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물리적인 것이 아닌 무형의 무언가로 느낀 감각.
그리고 이런 비슷한 것을 나는 최근에 느낀 적이 있다.
오크 커맨더의 습격이 있었을 때!
“움직이지 마.”
“!”
내가 어떻게 행동하기도 전에, 내 목덜미에 날카로운 것이 대어진다.
그것은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었다.
허튼 짓을 한다면 금방이라도 목을 그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 검을 들고 있는 누군가가 내 뒤에 있었다.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이 아직 미숙한 나에게도 느껴졌다.
아마 ‘현재‘의 나로서는 이기지 못할 강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