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13-귀환(1)
“혹여 도망가려고 해도 소용없다. 넌 이미 포위되었으니까.”
그 말을 증명하듯, 주변에는 이미 다수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다들 실력자다. 피부로 느껴진다.
이대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도망은 무리다.
“…당신들은 누구죠?”
“질문은 내가 먼저 한다. 넌 누구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할까? 아니, 그것도 좀 석연치 않은데.
혹시 내가 다른 곳으로 와버린 걸까? 확실히 여기는 넓지만...
“저는 딱히 수상한 사람은… 아니, 그쪽에서 보면 충분히 수상하겠지만, 전 에르틸에서 사는 사람이에요.”
“거짓말하지 마라. 에르틸의 인원은 전원 파악하고 있다. 너 같은 녀석이 있던 적은 없다.”
이곳이 다른 곳은 아닌 것 같다.
확실히 내가 알던 에르틸. 그 주변의 숲이 분명하다.
그보다 마을 사람을 전원 파악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그건 제가 행방불명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어서…….”
“아무래도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남자가 나에게서 떨어져 신호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 중 여자 두 명이 밧줄로 나를 묶기 시작했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믿어주지 않는다니, 이거 참…….
씁쓸함을 느끼며, 일단 얌전히 구속된다.
지금 저항을 해봤자 남는 것은 없다. 죽거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발생하는 끔찍한 미래밖에 안 보인다.
“나는 지부장님 모시고 올 테니 구속 후에는 몸수색도 해. 너희 둘은 경계 잘하고.”
“예이. 알았수다. 리더.”
“…….”
여자 둘을 제외한 나머지 남자 둘에게 지시를 내려놓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험상궂은 대머리의 대검 남자는 굉장히 기분이 안 좋은지 뭐라 중얼거리며 바닥에 침을 탁 뱉었고, 활을 든 과묵해 보이는 남자는 밤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여자 둘은 나를 다 묶고 조금 눈치를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는 나를 봤다.
“미안해. 우리 리더가 조금 융통성이 없어서.”
“아마, 지부장님이 오시면 금방 풀려날 수 있을 거야.”
“……?”
리더라고 불리는 남자가 사라지고 나니, 여자들 쪽은 굉장히 친절해졌다.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으면 여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모험가야.”
“모험가요? 아니, 모험가가 왜 이런 아무것도 없는 마을을?”
“아… 음…….”
내 말에 조금 망설이다가 그녀는 대답한다.
“한 1년 전쯤에 우리 쪽에서 좀 실수한 게 있어서 그 사죄의 의미라고 해야 할까?”
“1년 전…….”
그 말에 떠오르는 것은 오크가 나타난 그때.
어째서 그곳에 오크가 있었는가. 그것에 대한 것은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이들이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같다.
세피룸의 모험가들.
그렇다는 건 지부장이라는 건 설마……?
“어이, 너희.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몸수색 안 해? 내가 할까? 엉?”
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였다. 대검의 남자가 굉장히 짜증 난 목소리로 이쪽에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응했다.
“우리가 언제 하든 무슨 상관?”
“그냥 경계나 서지? 신경 쓰지 말고.”
“뭐라고……!”
세 명 사이에 급작스럽게 험악한 분위기가 흐른다.
같은 팀이긴 하지만 이들은 평소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너, 원래부터 비호감이었지만 이곳에 오고 나서 더 비호감 같다는 건 알아?”
“조금 자제하지? 너 계속 B급으로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리더 덕분이잖아. 언제까지 사고치고 다닐래?”
“이 망할 년들이……!”
남자가 대검에 손을 가져간다.
그에 맞춰서 여자들도 자신들의 무기에 손을 댔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너희. 곧 이쪽에 마스터께서 오신다는 거 잊지 마라…….”
“읏……!”
“칫…….”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상황에서, 어둠 속에서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세 사람은 몸을 움찔 떨고는 황급히 물러섰다. 험악한 분위기도 빨리 지웠다.
확실히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는다면 이들이 이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흠흠. 미안해. 잠시 몸수색 좀 할게.”
“아, 네…….”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는지 여자들은 곧바로 내 몸수색을 시작했다.
가진 것은 별것 없으니까 금방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 이것 좀 봐. 이 애 피부가 엄청 좋아.”
“머릿결도 완전 좋아. 거기에 뭔가 몸에서 나는 냄새도 엄청 좋은데? 향수인가?”
‘아, 아니……!’
몸수색이라는 것을 했던 것은 처음 아주 잠깐.
이 둘은 금방 다른 길로 빠져서는, 내 몸을 이곳저곳 만지기 시작했다.
어느의미로는 철저하게 몸수색을 하는 것이 되나 이거……?
“아니, 좀 진지하게 해요!”
결국에는 몸수색 당하는 사람이 그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기운 빠지는 상황이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으니까.
“쳇. 알았다고.”
“그렇지만 딱히 가지고 있는 것도… 어?”
두 사람은 내 말에 혀를 찼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발견했다.
내가 입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몸에 지니고 있는 것.
그건 카르아에게 받은 알이다.
“이건 뭐야? 보석… 은 아닌 것 같고.”
“알 같은데? 검은색 알?”
“알 맞아요. 부탁받아서 맡고 있는 저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거예요.”
언제 태어날지는 잘 모르지만, 그 안에는 정말로 소중한 생명이 있다.
카르아에게 받은 순간부터 내가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생명이기도 하다.
“뭐, 그런 거라면 알았어.”
“어? 그런 거로 되나요?”
“별로 위험해 보이지도 않으니까.”
여자 중 한 명은 마법사였기 때문에 알을 잠시 조사하더니 그런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는데 이렇게 넘어가 주다니 나에게는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근데 이거 무슨 알이야?”
“글쎄요……?단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만 아는데요.”
“뭐야 그게… 반대로 위험한 거 아니야?”
“하하하, 그렇진 않을 거예요.”
태어나면 확실하게 드래곤이 나올 테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얼버무린다.
드래곤의 알이라고 알면 아마 눈이 뒤집혀서 뺏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드래곤은 이 세계의 최강 생물 중 하나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눈독을 들이는 엄청난 고가의 재료이기도 하다.
드래곤과직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은 비싸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 이 알 또한 다른 이들이 보면 마찬가지일 거다. 엄청난 가치를 지니겠지.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없지만.
“아무튼 알았어. 돌려줄게.”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품고 있는 걸 보니까 엄마 같은걸?”
“엄…! 아니, 그건 아니죠…….”
어디까지나 난 보호자로 엄마는 따로 있으니까 그런 건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농담을 좀 섞어가며 몸수색도 끝이나 알이 내 품으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웃기고 있네.”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남자가 다가오더니 여자의 손에 있던 알을 낚아채고 내 목에서 그것을 완전히 벗겨갔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너희들 몸수색이 우습냐? 어떤 건 봐주게?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고?”
그것은 정론이었다.
수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붙잡아 가지고 있는 물건을 압수하는 게 몸수색이다. 어떤 물건은 봐주고 안 봐주고 하는 건 없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인정할 만한 정론.
여자들도 어쩌면 쉽게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짓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얼른 돌려줘. 이 애의 소중한 거라잖아.”
“싫은데? 압수품을 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잖아?”
“너 진짜……!”
분개하는 두 사람을 보고 킥킥웃는다.
그리고는 내 쪽을 한 번 힐끗 보더니, 알에 연결된 줄을 손가락에 놓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끊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러다가 조금만 미끄러지면 저 멀리 날아갈 것 같네~”
“…원하는 게 뭐야?”
“하~ 오늘 처음 본 수상한 꼬맹이를 위해서 거기까지 하는 거냐?”
“원하는 게 뭐냐고! 이 개쓰레기 자식아!”
욕설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지만, 여전히 비웃으면서 말한다.
“꿇어.”
“뭐, 뭐?”
“꿇으라고. 여태까지 나에게 막말한 거 사죄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해. 그럼 이걸 돌려주지.”
“허…….”
진짜 덩치와는 맞지 않게 속이 굉장히 좁았다.
치졸해도 이렇게 치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나를 힐끔 보더니, 서로를 바라봤다.
한 명은 사제 한 명은 마법사이다. 이 근거리에서 전사인 남자를 상대로 강제로 뺏는 것도 불가능.
적끼리였다면 진즉에 목이 달아나고도 남을 거리다.
그만큼 마법사와 사제에게는 취약한 거리.
“흐흐…….”
남자는 여전히 알을 빙글빙글 돌리며 유쾌하다는 듯이 우리들을 비웃었다.
여자들은 이를 악물면서 결심을 했는지 무릎을 꿇기 위해 준비를 했다.
내 시선은 알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저러다 깨지기라도 한다면?
-뚜둑
내 안에서 끊어져 가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지금 저 남자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짜 이러고 싶지 않은데.
“두 분 다 저를 위해서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니, 하지만…….”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저런 놈에게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 두 사람을 제지했고, 곧바로 나를 내려다보는 놈의 시선을 맞춘다.
“뭐하냐? 꼬맹이? 네가 뭔데…….”
“됐으니까 아가리 닥치고 나랑 해결하자. 탈모 새끼야.”
그런 내 말에 주변이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놈을 도발하기 위해 말을 잇는다.
“머리털이랑 같이 양심도 가져다 버렸냐?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누구한테 화풀이냐.”
“뭐, 뭐라고!!!”
화가 잔뜩 난 놈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거리를 확인하고 나는 손을 구속한 줄을 힘으로 끊었다.
-퍽!
그리고 눈앞의 목표물에 바로 주먹을 날렸다.
“억……!”
당황, 고통 등등이 섞인 소리를 짧게 내고는 다리 사이에 손을 가져가며 무너진다.
그사이에 나는 놈의 손에서 떨어져 내리던 알을 무사히 잡았고, 다시 목에 걸었다.
어디 흠집 난 건 없지……?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품속에 넣었다.
그나저나 한 건 좋은데 손에 엄청난 찝찝함이 남네. 주먹으로 때린 적은 처음이라...
“우와…….”
“쟤 거품 물고 있어…….”
여자들은 조금 불쌍하다는 듯이 시선을 보낸다.
정작 이 일을 벌인 나는,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니, 딱히 아프다는 것이 부럽다는 것이 아니고 그 아픔을 느낄 수있다는 것이부러운 거다.
오해하면 곤란하다고? 그저 지금의 나로서는 느낄 수 없는 고통이니까…….
‘젠장. 별것이 다 부러워지네.’
하여간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첫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진짜 하고 싶지도 않은 경험을 몇 번을 하는 거냐.
속이 쓰려오는 것 같다.
괜히 더 열 받는 것 같다.
아, 짜증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