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15-귀환(3)
내 노력 덕분인지 운 덕분인지 아무 일 없이 잘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안고 있던 아이는 무사히 방에 재울 수 있었고, 나는 시스티아를 데리고 보육원 밖에 나왔다.
시스티아는 정말 내내 울었다.
혹여 내가 어디로 가버릴까봐 나를 붙잡은 채.
그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워 나는 계속 괜찮다고 말하며 달랬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까.
내가 한 번 느꼈던 아픔을 시스티아에게 느끼게 만들어버렸다.
“이제 괜찮아?”
“…조금.”
그렇게 울었는데 아직 조금이야……?
그래도 이제 눈물은 거의 멈춘 것 같으니 다행이다.
“눈도 완전 퉁퉁 부어서, 못생겨지면 어떻게 해?”
“진짜? 나 못 생겼어졌어?”
어? 그냥 농담 좀 하면서 분위기 좀 바꿔볼까 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내가 너무 분위기 파악을 못 한 건가? 예전 시스티아라면여기서 툴툴거리면서 뭐라고 했을 텐데.
“아니, 아니야. 하나도 못생겨지지 않았어. 그냥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한 거야.”
“그래?”
“그럼. 눈이 부어 있어도 시스티아는 아주 예쁘니까 걱정하지 마.”
“읏!”
“오……?”
시스티아가 갑자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응석 부린다기보다는 얼굴을 숨긴다는 측면이 강한 것 같은 듯한……?
“갑자기 왜 그래?”
“어, 얼굴 보지 마. 부끄러우니까.”
“에이, 괜찮은데.”
“안 돼!”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듯이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귀엽네. 귀여워.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후아아…….”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면 시스티아에게서 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하면 될지 조금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 눈물이 쏙 들어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응? 뭔가 가슴 부근에서 딱딱한 게 느껴져.”
“아, 이거야.”
나는 곧바로 꺼내서 보여준다.
오늘 보이는 것만 두 번째인가?
“알?”
“응. 맞아.”
“왜 알을……?”
“어떤 사람에게 부탁 받았어.”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시스티아라고는 하지만 그때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미리 생각해둔 것을 말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라니?”
“절벽에서 떨어지는 걸 어떤 사람이 구해줬어. 이름은 아르라고 해서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거든. 그 사람에게 이 알을 맡게 되는 대신에 여러 가르침을 받았어.”
역시 전부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진실을 섞는 편이 훨씬 편하다.
나는 생각해뒀던 이야기를 쫙 풀어서 말했다.
중간중간에 설명도 섞어가며 최대한 상대가 납득이 될 수 있도록.
내일 란델이 와서 물어보면 똑같이 말해야 할 테니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야지.
그렇게 약 10분 정도 말 하고 나면 모든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 제법 강해졌다고? 이제 오크 따위에게는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시스티아, 너도 확실히 지킬 수 있어.”
“나, 나도!”
“응?”
“나도 이제부터는 리제를 돕고 지켜줄 수 있어!”
아까의 부끄러움은 어디로 갔는지 그대로 얼굴을 들고 정면에서 나를 바라봤다.
똑바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에는 두려움이나후회 같은 감정들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방금 했던 말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도.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리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신성력이 많아졌어. 신성마법도 지금 많이 공부하고 있고…….”
자신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스티아가 성녀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신성력과 신성마법으로서는 그녀를 따라올 자는 세계에 그 누구도 없을 테니.
내가 놀란 것은 그 뒤에 나온 말이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도 리제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아니, 들어서 그런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나 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 거야.”
“뭐, 뭐?”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 시스티아에게 있어서 거기까지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건가?
그렇게 놀라고 있으면 그 뒤에는 충격적인 말이 나온다.
“리제가 떨어지고 한 한 달 뒤인가. 꿈에서 여신 메르님께서 나오셨어. 그때 알려주셨거든. 난 그 말만 믿고 지금까지 버텨…….”
“너 지금 성녀가 된 거야!?”
분명 내 기억으로는 시스티아가 14살이 되었을 때 성녀가 되었을 거다.
그런데 11살인 지금 벌써 성녀가 되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성녀? 아닌데?”
“아니라고……?”
“응. 내가 그런 굉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겨우 꿈속에서 한 번 나오신 것뿐인데.”
“아…….”
그, 그런가. 아니, 확실히 성녀가 되는 건 시스티아도 시스티아지만 교단에 신탁이 내려져야만 인정이 되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교단에서 시스티아를 데려가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성녀가 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재회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헤어져야 하는 건가 싶어서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그렇고, 그런 굉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라.
아니야. 시스티아. 넌 미래에 성녀가 되는 것이 확정되어 있거든.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렇지만 만약 내가 성녀가 된다면 좋을지도. 좀 더 확실하게 리제에게 힘이 될 수 있잖아.”
“아니, 성녀가 되면 좋은 점이 그것뿐이야? 좀 더 다른 것들이 있지 않아?”
“으음. 그러면… 아!”
내 말에 시스티아는 조금 생각하더니, 뭔가 굉장히 좋은 것이 떠올랐는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다시는 리제가 어디로 가지 않도록, 항상 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한다든가?”
그 말을 하며 짓는 그 미소는 굉장히 귀여웠지만 동시에 굉장히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그럴 것이다. 그냥 내가 이상한 것이 틀림없어.
“어쨌든 그것도 나 하나에만 집중된 거잖아? 시스티아는 욕심이 없네.”
“난 리제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거든.”
에헤헤 하고 좋아라 웃는 시스티아. 그 모습에는 아까와 같은 느낌은 없었다.
이것 봐. 내가 잘못 느낀 거잖아?
오해도 풀렸겠다, 나는 지금의 행복감을 솔직하게 느끼기로 했다.
“그건 기쁘지만, 그런 말은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해.”
“그럼 나중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지금 잔뜩 하면 되는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응~♪”
한순간에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말이었다.
딸에게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 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 이런 걸까.
아… 너무 좋다.
젠장. 나중에 시스티아랑 결혼하는 행복한 놈이 나타나면 한 대 정도는 때려줘야지.
‘하아… 시스티아가 많이 변했네.’
그렇게 행복을 곱씹고 다짐하며 시스티아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내가 절벽에 떨어지기 전과 비교해서 굉장히 솔직하게 바뀐 모습이다.
게다가 매우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어쩐지 시스티아의 성장의 중간과정을 생략해버린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현재의 시스티아가 훨씬 낫다.
“뭐, 그렇게 내가 좋다니 어쩔 수 없네. 그럼 지금은 내가 그 말을 듣는 것으로 하자.”
“지금은, 이라는 건 없어도 되는데.”
“흠흠.”
“아~ 리제 얼굴 빨갛게 되었어. 귀여워~”
“언니를 놀리는 거 아니야.”
그렇게 나는 일단 다른 일은 제쳐두고 오랜만에 시스티아와 오붓한 시간을보낸다.
정말이지 날아갈 것만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
다음날.
내가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서 보육원의 모두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알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부터 작은 마을이었으니 소식이 도는 것은 굉장히 빨랐다.
일단은 원장님부터 필과 네드와 다른 아이들.
작은 아이들을 제외하고 세 명은 평소 시스티아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울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제의 시스티아에 이어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특히나 필이 나를 바보라면서 엄청 울어댔는데, 역시 이런 건 좋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는 최대한 조심해야지.
마을 사람 중에서는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내 귀환을 기뻐했다.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해 주는 모습을 보고 제법 감동을 받았다.
착한 사람들이야. 정말로.
그러면서 나는 역시 제일 많이 받을 거로 생각한 질문인,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느냐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시스티아에게 말한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말 자체는 그리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사람들끼리 알아서 주고받으며 전달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늘 방문하기로 한 란델에게도 그 소식은 들어갔다.
“음. 그러면 저 절벽 밑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거지?”
“힘들다기보다는 할 게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죠. 솔직히 아무것도 없거든요. 있어도 떨어져 죽은 생물의 사체 정도……?”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다니, 믿기지 않네.”
“사람의 경지를 뛰어넘은 사람이라면 이상할 건 없죠.”
“하긴 그건 그렇지. 최고의 경지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는 인간의 영역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하니까.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점심쯤 되어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되고 나서란델이 보육원을 방문했고, 따로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란델은 자신이 들은 것 그 이상과 이외의 것들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은 밑에 무엇이 있었는가. 나를 도와준 사람은 누구였는가.
이 두 가지가 중점이었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만 들어서는 결론이 나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곳에 혼자의 힘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힘을 얻은 것도 얻은 거지만 뭔가를터득한 건가?”
“솔직히 있다고 한다면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는 좀 그래요. 어디까지나 감각적이라서요. 게다가 알려드리면 밑에 내려갈 생각이시죠? 그거 위험해요. 아마 란델 씨라고 해도 내려가는 것까진 괜찮지만 올라오는 건 힘들 거예요.”
아무리 란델이 괴물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저 밑에 가기에는 힘들 거로 생각한다.
물론 방법에 대해 말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
밑에 관심을 멀리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런 가능성만으로 란델이라는 중요 인물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
“음.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더 내려가 보고 싶어지지만, 그만두는 게 좋겠군. 호기만으로 그런 일을 하기에는 젊지도 않고 말이야.”
20대로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굉장히 위화감이 있는데요.
란델은 내 말을 믿는다는 듯 그 이상은 물어보지 않고 대충 그렇게 끝냈다.
솔직히 좀 더 캐물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넘어가니 나도 좀 놀랐다.
나를 본 처음부터 굉장히 호감이 있는 듯 보였는데, 이 사람은 도대체 날 왜 좋게 보고 있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란델의 성격상 뭔가 나쁜 의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그렇다 치고 미지의 영역이라 도전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그만두게 하는 편이 좋겠네. 대가도 없는 모험에 목숨을 걸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니까.”
“‘모험가’라는 직업의 마인드는 아니라, 생각이 드네요.”
“난 어디까지나 모험가를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입장이니까. 현장은은퇴했으니 그런 마인드도 바뀔 수밖에.”
솔직히 란델 정도면 은퇴하지 않고 더 활발하게 모험을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모험하는 것보다도 길드를 관리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기로 정했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자, 이러면 대강 이야기는 끝난 건가? 그럼 곧바로 이제 내 개인적인 용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말이지…….”
“왜요? 제가 있으면 못 하는 이야기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계속 그러고 있는 거 힘들지 않아?”
“안 힘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란델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쭉 내 옆에 딱 붙어 있었던 시스티아다.
마치 새끼를 지키려는 맹수와 같이 위협하듯 란델을 노려본다.
잘못하면 으르렁하는 소리도 나올 것만 같은 기세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원장님에게 들었다.
시스티아는 오크의 습격을 받아서 내가 절벽에 떨어진 일에 대해서, 그 책임이 있는 란델을 용서할 수 없고, 란델은 그것을 그저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오래 갈지는 몰랐는데,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시스티아도 쉽게 마음의 정리를 못 하는 것 같다.
“시스티아.”
“리제. 이건 나와 시스티아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야.”
“…….”
뭔가 둘 사이의 관계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스티아에게 한마디 하려고 하면 란델에게서 제지가 들어왔다.
확실히 이건 당사자들 간의 문제이긴 하지만 나도 아예 상관없는 것은 아닌데…….
굉장히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란델이 저렇게 말하니 끼어드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그보다 딱 이 제안만 할게. 어제 내 잘못에 대한 건 전부 청산했다고 하긴 했지만 역시 그것만 가지고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진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나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다음에 나오는 란델의 말에 그 생각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너에게 딱 맞는 보상은 이것이라 생각이 들었지. 리제. 내 밑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배워보지 않을래?”
…대박.
설마 그런 제안을 받을지는 몰라서, 평소라면 쓰지도 않을 말을 할 정도로 놀란 것이다.